스님의하루

2021.9.16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 농사일
“미래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산 밑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내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오늘 고추를 모두 수확하기로 했습니다.

정토회 유럽지회에 활동하고 있는 김선희 님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두북 수련원을 찾았습니다. 울력 시간 내내 스님 옆에서 도우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여기서 며칠 밥을 얻어먹으려면 밥값을 해야 하니까 새우배 타러 갑시다. 새우배 알아요? 노역시키는 거요.” (웃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지와 오이를 한 바구니 수확한 후 고추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고추가 다 병이 들었네요.”

싱싱한 빨간 고추는 모두 사라지고 병든 고추와 푸른 고추만 남아 있었습니다.


“병이 심해서 지금 달린 것만 다 수확하고, 뿌리째 뽑아야겠어요. 유기농이 참 쉽지 않네요.”

고추를 다 수확한 뒤 밑밭을 나왔습니다.

“밤 주우러 갑시다. 산속에 들어가면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어요.”

어제 한 바구니 가득 밤을 주워서 혹시 새로 떨어진 밤이 더 있나 반신반의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룻밤 사이에 또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고무장화로 밤송이 한쪽을 밟고 밤송이를 벌려 밤을 슬쩍 꺼내기도 하고, 두 발로 밤송이 양쪽을 밟은 뒤 밤을 꺼내기도 했습니다. 잘 익은 밤을 꺼내는 일이 은근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밤을 주웠습니다. 산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밤을 줍는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아직 녹색인 밤송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벌어진 밤송이의 가시를 자세히 보니 그 모양이 무시무시했습니다. 껍질 속은 하얀색이었습니다.

“계곡에 떨어진 밤이 많아요.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밤을 주웁시다.”

계곡으로 내려가니 물속에도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깊게 파인 웅덩이에는 물살에 떠내려온 알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것 보세요. 그냥 줍기만 하면 돼요.”

아직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밤송이는 스님이 집게로 한 곳에 모아 주었습니다. 그러면 김선희 님이 하나씩 껍질을 벌리고 알밤을 꺼냈습니다.




“오늘도 한 바구니 가득 주웠네요.”

알밤이 가득 찬 바구니가 꽤 무거웠습니다. 자꾸만 아래로 처지는 바구니를 두세 번 들쳐 올리면서 계곡을 빠져나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니 햇볕이 쨍쨍 내리쬐었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9시에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에서 온 공동체 법사님들도 아침 울력을 함께 한 후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아침에 스님이 수확한 가지를 요리한 반찬이 나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해 들은 후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10시 30분부터는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사회사상팀에서 초기불교 승가의 소유와 분배, 그리고 경제적 평등에 대해 공부해 온 내용을 정리해 와서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사회사상팀에서는 토론 과정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과일을 법사님에게 먼저 주는 것은 불평등일까요?

“지도법사님이나 법사님들에게 과일을 드리려고 따로 놔두는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구성원들이 평등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법랍’이 특권이 된다면 평등성을 해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는 것이 적절할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농사를 지어서 가장 크고 싱싱한 채소를 도문 큰스님께 보내드린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이것은 불평등이냐 존경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수확물 중에 좋은 것을 골라서 큰스님께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정토회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분들에게 선물로 보내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는 모양이 좀 구불구불하거나 상한 것도 좀 먹고, 이렇게 하는 것을 불평등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거든요.

몇 해 전에 실제로 문경 수련원에서 똑같은 문제 제기가 있어요. 보시 들어온 과일을 씻으면서 그중에 좋은 것 몇 개를 골라서 법사님께 드린다고 따로 빼놓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행자님 한 명이 불평등한 것 아니냐고 문제 제기를 했었습니다. 이것이 불평등인가, 아니면 스승에 대한 존경인가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약 스님이 좋은 것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특권을 행사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특권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율장에도 법랍이 특권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나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장로가 와서 ‘내 자리가 없으니 자리를 내놔라’ 하는 것은 특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장로가 왔으면 설령 내가 밥을 먹고 있더라도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자리를 마련해드리는 것이 수행자의 예의입니다. 이런 것은 수행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예의 아니겠어요? 예의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질서라고 평가해야지 담마(불법)에 속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에 괴로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 밥을 어떻게 먹고 자리를 어디에 앉느냐가 수행은 아니잖아요. ‘내가 나이가 많으니 자리를 내놔라’ 했는데 상대가 자리를 안 주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반면에 어른이 왔는데도 신경 안 쓰고 자기 밥 먹는 데만 집중한다면 살핌이 부족한 거예요. 장로뿐만 아니라 환자나 어린이가 와도 살펴서 자리를 안내해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것은 계율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나 사섭법(四攝法)처럼 수행자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나 태도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제기는 대부분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가 되지 않아서 오해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투명성이 부족하면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었는데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어요. 불투명한 데서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100퍼센트 투명하게 하기가 어려워요. 법사단에서 투명하게 결정했다고 하지만, 이 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밖에 사람들이 볼 때는 ‘저걸 왜 저렇게 결정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예를 들어 과일이 보시로 들어왔는데, 몇 사람이 의논해서 ‘과일이 많이 들어왔으니까 이건 동네 노인들에게 나눠주자’ 해서 누가 차에 싣고 갔다면, 그 논의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이 볼 때는 ‘왜 저 사람이 보시 들어온 것을 차에 싣고 가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투명성이 굉장히 중요해요.

보시물에 대해서는 아무리 작은 보시라도 항상 투명하게 공지를 해야 합니다. 어떤 연유로 누가 어떻게 보시를 했는지 공지해야 하고, 가능하면 ‘어떻게 분배를 하기로 했다’ 하는 내용까지 공지를 해줘야 합니다. 사과 한 박스가 들어왔는데, 앞으로 대중공양 시간에 조금씩 내겠다든지, 울력할 때 참으로 내겠다든지, 얼마의 양이 들어왔고 어떻게 쓸 것이라는 것을 전체 대중이 다 알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이 공지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런 얘기를 자세히 안 해주거든요. 만약 오늘 떡이 보시가 들어왔다면 이렇게 공지해야 합니다.

‘오늘 떡이 100개 들어왔는데 양이 많아서 오늘 아침 식사에 다 내지 못하고, 점심 식사 때도 내겠습니다.’

이렇게 공지를 해줘야 대중의 의문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사과가 10개 보시가 들어왔다면 ‘오늘 아침에 후식으로 다 내겠습니다’ 이렇게 딱 공지가 되어야 해요.”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 스님이 아침에 주워온 알밤이 맛있게 삶아져 나왔습니다.

“아침에 제가 주워 온 거예요. 한번 들어 보세요.”

이어서 부처님 당시의 출가수행자들은 왜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걸식을 했는지, 용성조사님이 화과원과 금광, 선농당을 운영한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출가수행자는 왜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걸식을 했나요?

“부처님 당시 출가공동체는 왜 생산을 하지 않고 걸식하고 나무 밑에서 자고, 대중들의 보시를 받으면서 생활을 했나요? 그것이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인지, 당시 사문들의 전형적인 삶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용성 조사님의 ‘선농일치’도 이런 측면에서 봐도 될지, 대중들의 노고 위에 출가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선농일치를 한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음식을 요리해서 먹지 말라는 것은 맛에 대한 욕구를 경계한 것이고, 생산하지 말라는 것은 이익에 대한 욕구를 경계한 것입니다. 그 말이 노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런데 이 말이 형식적으로 굳어서 남방 스님들은 청소, 음식, 농사 등 일체 일을 하지 않고 신도들이 절에 와서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고, 농사도 지어줍니다. 계율에 그런 활동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부분은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이익을 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동체 성원들이 왜 역할분담을 해서 밥을 해 먹고 농사를 짓는지에 대한 설명이 분명해야 합니다. 남방 스님들이 볼 때는 절에서 밥을 해 먹고 농사를 짓는 것이 세속 생활로 보이거든요.

용성 조사님께서 선농일치를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선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고, 둘째, 독립운동 자금을 비밀리에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교종(敎宗)이 왕실의 후원에 의해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을 때, 선종(禪宗)은 비주류니까 후원 기반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방에서 아무 후원 없이 산속에 가서 생활을 했습니다. 집도 스스로 노력해서 짓고, 밭일을 해서 먹고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원이 없었기 때문에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 이유로 노동하는 것을 오히려 강조했죠. 그래서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이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그런 선불교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용성 조사님께서 선농일치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농일치를 한 핵심적인 이유는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습니다. 금광 사업을 한 것도 겉으로는 사업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목적이 더 컸습니다. 전라도 남원의 만석꾼이자 도문 큰스님의 증조할아버지였던 임동수 거사가 많은 금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내었는데, 외부적으로는 금광 투자를 해서 망했다고 하고 실제로 돈은 중국으로 보낸 거예요.

이와 달리 용성 조사님이 중국에 땅을 사서 선농단을 만든 것은 농사를 지어서 독립군들과 그 가족들을 보호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화과원은 산속에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서 상해임시정부에 보내는 하나의 형식이었어요. 농사를 지으려면 들판에 짓지 뭐 하러 산속에 짓겠어요. 산속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고, 자금을 모아서 상해임시정부에 보내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적으로는 선농일치(禪農一致), 형식은 농사, 내용은 독립운동 자금의 비밀 운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가장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마지막 질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류가 마주칠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4차 산업 혁명 시기에는 무엇이 인류의 중요한 과제가 될까요?”

“옛날 그리스 시대에 귀족들이 노예에 의해 생산을 하고 자기들은 고급문화를 만든 것처럼, 미래에는 생산의 대부분이 기계와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다수 인류는 소비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재화나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인간의 노동 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노동 가치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안 맞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미래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미래의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수행, 놀이, 노동, 운동을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건강하려면 어차피 운동을 해야 되잖아요. 또한 먹고살려면 노동을 해야 하고 정신적으로 편안하려면 놀이를 해야 하고요. 그래서 수행, 놀이, 노동, 운동이 일치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수행과 노동을 일치시켜 나가야 하고, 다음으로 노동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 수행, 놀이, 운동이 일치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해요.

보통 노동의 반대를 놀이라고 생각하죠. 경제적 수단으로 노동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놀이는 소비적인 것이고, 노동은 생산적인 것이라고 대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옛날부터 노는 것은 탕진하는 것이고 생산하는 것은 고된 것이라고 인식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고된 노동이 주로 노예에 의해 대체되었는데, 미래에는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놀이 문화만 남는다면, 인류 문명이 쾌락을 추구하거나 타락하는 쪽으로 가기 쉽습니다. 놀이의 개념을 어떤 즐거움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토회에서 하고 있는 ‘수행’입니다.

문명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존 놀이의 개념처럼 어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만족을 느낄 수 있고 운동이 되고 수행이 되고 노동이 되는 그런 놀이를 개발해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는 큰 위기에 처할 거예요. 첫째, 운동 부족으로 인한 비만 때문에 인류가 큰 위기에 처할 겁니다. 비만은 아무리 약을 써도 해결이 안 돼요. 미국 같은 나라의 경우 지금 비만이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둘째, 면역력 부족으로 인한 전염병으로 멸종의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신적인 즐거움의 추구를 못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노동하지 않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 게임, 마약 등에 중독되어서 인간의 정신이 타락하는 문제가 인류 문명의 가장 큰 위기로 올 거예요.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 인디언들에게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도록 공짜로 돈을 정기적으로 지급했더니 나타난 문제가 비만, 알코올 중독, 정신적인 무력함이었다고 해요. 사람은 사회적 영향력도 끼치고 해야 활력이 생기는데, 인디인 보호구역에 격리되어 있으니 세상에 아무런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잖아요. 저항을 할 때는 그나마 영향력이라도 있었는데 그런 것이 일절 없어진 겁니다. 에스키모도 비슷합니다. 짐승을 울타리 안에 가두어서 키우는 것처럼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인디언들의 일부가 보호구역 안에서 지원을 거부하고 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저항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탄압해서 죽이는 방식으로도 멸종이 되지만, 이런 지원 방식으로 멸종하는 것은 더 이상 소생하지도 못합니다. 저항을 하면 그래도 소수가 남아서 나중에 소생할 기회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무기력증에 빠져버리고 자폭해서 멸종해 버립니다. 미래에는 이런 문제가 크게 대두될 것 같아요. 미래 사회에는 인간이 노동을 하지 않는 데다가 기본 소득이 제공되기 때문에 게임 중독, 비만, 무기력증, 자살, 이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선진국보다 오히려 아직도 생존에 헐떡거리는 나라에서 건강한 의식을 가진 새로운 집단이 나올지 모릅니다. 미래에 대한 영화를 보면 인간 사회가 타락하니까 인공지능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사회를 주도할 때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무사가 나타나서 혁명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실현 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에요.”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12시에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마쳤습니다. 불교사상팀에서는 발표 준비를 해 온 것이 없어서 회의가 예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공부 안 해온 대가를 치러야죠. 어차피 3시까지 공부하기로 한 거니까 그때까지 다 같이 울력을 좀 합시다. 지금 논에 피가 어마어마하게 자라 있어요. 피 뽑는 것 좀 도와주세요.” (웃음)

다 같이 작업복을 입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정말로 피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이 간단하게 일하는 방법을 안내했습니다.

“오늘 피를 안 뽑으면 나중에 씨앗이 떨어져서 내년에는 이것보다 10배는 더 무성해져요. 핵심은 씨앗이 안 떨어지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위로 윗부분만 잘라도 돼요.”

다 같이 한 줄로 서서 한 발씩 전진을 하며 피를 뽑거나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뽑아도 쑥 뽑히네요. 뽑을 수 있는 건 뿌리째 뽑아주세요.”

법사님들이 논 하나 전체를 맡아서 피를 뽑고 있는 사이 스님은 다른 논으로 이동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 세 명이 스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논에는 피보다는 나무처럼 큰 잡초가 군데군데 자라 있어요. 뿌리째 뽑아서 논 밖으로 던져 주시면 됩니다.”

물이 많아서 질퍽거리는 논 속으로 들어가 나무처럼 큰 잡초를 하나씩 손으로 잡아당겨 뽑았습니다. 두 개 내지 세 개만 뽑아도 들고 있기가 무거웠습니다.

스님은 힘껏 팔을 휘둘러서 잡초를 논 밖으로 던졌습니다.

“으라찻!”

네 명이 논으로 들어갔는데 두 명이 절반을 맡고, 두 명이 절반을 맡았습니다. 부지런히 논 속을 헤집고 다닌 결과 논 전체가 깨끗해졌습니다.


나무처럼 생긴 잡초를 다 제거한 후 봉사자들이 피를 뽑고 있는 사이 스님은 다시 다른 논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는 피가 정말 많네요. 오늘은 도저히 못하겠어요. 주말에 봉사자들을 부르든지 해야 할 것 같네요.”

쉼 없이 피를 뽑고 있는데 벌써 3시가 다 되었습니다.

“아이고, 일 마칠 시간이네요. 여기까지 합시다.”

논에서 나와 논 장화를 물에 깨끗이 씻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4시 30분부터 법사단회의를 하고 6시부터는 손님이 찾아와 면담을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성전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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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진

지도법사님의 하루를 볼때마다 특히 농사울력하실때마다 47년 전 시골에서 농사짓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달려가서 실력발휘를 해야되는데 맘 뿐입니다.

2021-10-01 19:35:49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1-09-23 16:06:26

보각

인류문명이 가야할 길, 일과 놀이와 수행 수행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올 것 같네요. 스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21-09-23 07: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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