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9.14. 고구마 줄기 삶기,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답사
“할머니 묫자리 문제로 갈등이 심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늘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고구마를 수확하고 나서 고구마 줄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고구마순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팔팔 끓는 물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삶아주면 ‘고구마순 볶음’을 먹기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스님은 솥에 물을 붓고 화덕에 불을 붙였습니다.

마른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잘 탔습니다.

“먹기 좋게 삶아 봅시다.”

고구마 줄기는 푹 삶아야 하는데 가스로 삶으면 불이 약한 데다 오래 삶아야 해서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또 고구마 줄기의 양이 많아서 한 번에 삶을 수도 없습니다. 몇 해 전 수해복구 때 주워 온 화덕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불이 세서 금세 고구마 줄기를 삶았습니다. 솥에서 건진 고구마 줄기는 쟁반에 올려놓은 후 식혔습니다.

고구마 줄기를 다 삶고 화덕도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다 탄 숯과 재를 꺼내고 솥을 깨끗이 씻은 후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오전 공양을 하고 오후에는 비닐하우스 4동에 가서 가을배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저께 가을배추 모종 심기를 끝냈지만, 오늘 다시 가서 보니 말라서 죽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빈자리가 생기지 않도록 남은 모종을 갖고 하나씩 땜질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밭을 나오는데 밭이 산 아래에 있어서인지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떨어진 알밤만 주워도 양동이가 가득 찼습니다.

오늘은 두북 공동체 성원 모두가 포살 법회를 하는 공동체의 날입니다. 포살 법회가 끝나고 다 함께 소풍을 겸해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보러 갔습니다.

“스님, 두북 수련원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반구대 암각화를 못 봤어요.”

“좋아요. 가봅시다. 제가 안내해 줄게요.”

먼저 암각화박물관을 찾아갔습니다.

“울산에 국보가 2개가 있는데, 하나가 반구대 암각화이고, 하나가 천전리 각석입니다. 그 모형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실제 바위 속 암각화보다 박물관에 전시된 모형을 통해 그림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보세요. 고래 그림이 많죠? 다양한 종류의 대형 고래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어요.”

반구대 암각화에는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고래, 사슴, 노루,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너구리, 멧돼지, 바다거북, 물개, 어류, 바다새 등 20여 종에 달합니다.

천전리 각석 모형물을 비롯해 선사 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을 관람한 후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자, 그럼 반구대 암각화를 실제로 보러 갑시다.”

다리를 건너고 대나무 숲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통과하여 널찍한 바위 위에 도착했습니다.

“이게 공룡 발자국이에요. 제가 어릴 때는 이게 공룡 발자국인지 몰랐어요. 물이 고이니까 여기서 손을 씻곤 했죠. (웃음)

공룡은 중생대 백악기 말에 멸종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1억 5천만 년 전에 약 2억 년 가까이 지구 상에 존재했던 동물입니다. 현생인류가 고작 20만 년 전에 출현했으니까 공룡과는 비교가 안 되죠.”

공룡 발자국을 본 후 다시 길을 걸어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대곡천의 절벽 앞에 도착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바위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어요.”

바위 가까이에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디지털 망원경이 설치되어 암각화의 실물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배와 작살, 그물을 이용해 고래를 사냥하는 포경 장면도 묘사되어 있고, 자세히 보면 사람 얼굴 모양도 있어요.”

바위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후 다음은 천전리 각석을 보기 위해 산길을 올랐습니다. 암각화박물관이 있는 지점에서 1.2km 정도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나니 천전리 각석이 나타났습니다.

“이 길이 제가 어릴 때 외갓집으로 가는 길이였어요. 7살 때 외갓집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30리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나요.”

천전리 각석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어두컴컴해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에도 공룡 발자국이 많아요. 자세히 찾아보면 발톱 자국까지 흔적이 있습니다. 여기 있네요.”

스님이 가리키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자 정말 공룡의 발톱까지 찍힌 자욱이 보였습니다.

강을 건너가니 천전리 각석이 나무로 만든 데크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그림 문양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스님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 바위는 암각화라고 하지 않고 각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라시대 명문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선사시대의 동물 문양과 동심원, 마름모 등이 새겨져 있지만, 이 바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신라 법흥왕 시대의 명문입니다.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이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도 있다고 하고, 갈문왕의 부인이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을 어린 아들과 찾았다는 내용도 있다고 해요.”

너무 어두워서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그래도 수려한 경치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행자님 한 분은 어두울 때 온 게 아쉬웠는지 다음에 또 오자고 제안했습니다.

“스님, 다음에는 도시락 싸서 이 계곡에 또 소풍을 옵시다.”

오랜만에 농사일을 쉬고 스님과 함께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금요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형제들이 묫자리 문제로 갈등이 심해요

“저에게는 90세 된 할머니가 계시는데 사후 묫자리에 관한 의견 충돌로 아버지와 삼촌들의 사이가 매우 나빠져 있습니다. 나중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 묫자리 문제로 아버지 형제간에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됩니다. 앞으로 제가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지혜롭게 도울 방법이 있을까요?”

“질문자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거예요. 할머니의 나이가 90이면 아버지 형제들도 벌써 60이 넘었을 텐데, 나이 60이 넘으면 남의 말 잘 들어요? 안 들어요?”

“네, 고집이 있으십니다.”

“아버지 형제들뿐 아니라 누구나 다 60이 넘으면 남의 말 잘 안 들어요. 그러니 의견 충돌하고 싸우게 좀 놔두면 돼요.”

“제가 중간적인 입장이라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양측에서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면 화합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그건 질문자가 할 수 없어요. 할 수도 없고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에요. 질문자에게는 할머니이지만 아버지 형제들에게는 어머니잖아요. 어머니 묫자리를 어디에 쓸지는 아버지 형제들이 의논해서 정하도록 놔두면 돼요. 아버지 편도 들지 말고, 삼촌들 편도 들지 말고, 이웃집 보듯이 하시면 됩니다.

‘아버지랑 삼촌들이 의논해서 뜻을 모아주면 저는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화장하라고 하면 화장하고, 매장하라고 하면 매장하고, 저는 그저 집안 어르신들이 정해 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의견이 어떻게 나뉜 거예요? 화장할지 매장할지 문제예요?”

“지금 살아계신 할머니는 두 번째 할머니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먼저 돌아가신 첫 번째 할머니 곁에 묻히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산이 아닌 첫 번째 할머니 옆에 묫자리를 썼습니다. 두 번째 할머니는 전통대로 선산에 묫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삼촌들이 세 분이 함께 생활도 했으니까 묫자리도 그 두 분 옆에 모시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삼촌들의 의견이 아버지의 의견과 충돌이 생긴 상황입니다.”

“삼촌들과 아버지 모두가 첫 번째 할머니의 자식들입니까?”

“형제 세 분은 첫 번째 할머니가 어머니이고, 형제 두 분은 두 번째 할머니가 어머니입니다.”

“그럼 질문자의 아버지는 어느 쪽이에요?”

“아버지는 두 번째 할머니를 선산에 묻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 할머니의 자식들이 선산에 묻자고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첫 번째 할머니의 자식인 아버지가 왜 선산에 묻자고 하죠?”

“첫 번째 할머니 바로 옆에 할아버지가 묻혀 계시는데, 할머니 바로 옆에 또 할머니를 묻게 된다면 나중에 두 할머니가 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옛 전통대로 두 번째 할머니는 선산으로 모시는 게 맞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왜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은 할아버지와 첫 번째 할머니가 묻힌 옆자리에 두 번째 할머니를 묻자고 할까요?”

“첫째, 같이 살아온 정도 있고, 둘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묻힌 곳에 두 번째 할머니도 모셔서 새로운 선산으로 구축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또 나중에 벌초하기도 편리하다고 하셨습니다. 원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렇게 설명하신 걸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아버지만 선산에 매장하자는 의견이에요?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지금껏 장남인 아버지 뜻대로 하셨는데, 첫 번째 할머니의 아들인 둘째 삼촌이 반향을 일으키셔서 다른 삼촌들과 합의점에 도달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만 선산에 모시자고 주장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문제는 질문자가 나선다고 해결되기 어려워요. 아버지의 형제들이 의논해서 결정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질문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아요.

‘어차피 할아버지와 두 분의 할머니는 살아계실 때도 같이 살았는데, 삼촌들 주장대로 돌아가신 후에 무덤을 함께 쓴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냐. 또한 무주고혼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전통 풍속대로 다른 곳도 아니고 선산에 모시자는 아버지의 주장도 일리가 있구나. 나는 어느 쪽이든 좋다.’

이런 관점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질문자가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묘수가 없잖아요. 질문자가 삼촌들 뜻대로 하자고 아버지를 설득하면 아버지가 섭섭해할 것 아니겠어요?”

“네”

“질문자가 아버지 뜻대로 하자고 삼촌들을 설득하면 삼촌들이 ‘너는 아들이어서 아버지 편드는 것 아니냐’ 하고 말할 것 아니겠어요?”

“네”

“스님이 가서 얘기하면 사람들이 좀 귀담아들을지 모르겠는데, 질문자는 어느 편을 들든 어느 의견이 더 합당한 지와 관계없이 이쪽 편을 들어도 문제이고, 저쪽 편을 들어도 문제가 됩니다. 아버지 말씀도 일리가 있고, 삼촌들 말씀도 일리도 있으니까, 서로 의논을 해서 결론이 나는대로 질문자가 따르는 게 낫습니다. 해결책이 없을 때는 놔두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달 뒤에는 어느 곳에 묻히든지 결론이 나 있을까요, 안 나 있을까요?”

“네, 결론이 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자가 관여 안 해도 그때 되면 결론이 나 있습니다. (웃음) 그러니 질문자가 지금 아무리 애써도 결론이 나지 않던 것이 외국에 나갔다 오면 결론이 딱 나 있을 거예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려고 하면 부작용만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질문자의 위치가 그래요. 삼촌들은 요즘 식으로 ‘다 평등하니 다수결로 결정하자’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이 아무리 다른 뜻을 고수해도 장남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옛날 풍속을 가치 기준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쪽 다 설득하기가 어려워요.

이것은 문화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해법을 찾고 싶으면, 질문자가 선산에도 가보고 할아버지 묘소에도 가보고 하면서 아이디어를 좀 내보세요. 예를 들면 삼촌들 뜻대로 할머니를 할아버지 옆에 묻더라도 아버지가 조금 덜 섭섭하게 화장해서 묻는다든지, 아버지 뜻대로 선산에 묻더라도 할머니의 산소 위치를 좋게 마련해서 삼촌들이 만족하게 해 준다든지, 이렇게 상호 보완점을 찾아서 해결해 나갈 수도 있겠죠. ‘어떤 아이디어를 내면 아버지가 조금 양보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아이디어를 내면 삼촌들이 조금 양보할 수 있을까?’ 이런 연구를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슨 일이 잘못되면 ‘장례를 잘못 치러서 그렇다’, ‘묫자리를 잘못 써서 그렇다’ 하면서 조상 탓을 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징크스가 생기는 걸 미연에 막기 위해서는 권위를 가진 풍수지리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문가의 얘기는 믿으니까요. 그런 것처럼 아버지와 삼촌들의 갈등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눈치를 봐서 어떤 비책을 쓰면 기울기가 어느 쪽으로 갈 건지 살펴봐야 합니다. 갈등의 기울기가 할아버지 산소 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면 아버지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에 무게를 두고 비방을 내면 됩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고집으로 인해서 선산으로 갈 확률이 높다면 삼촌들의 섭섭한 마음이 어떻게 하면 위로가 될 수 있는지 고려해봐야 해요. 양쪽이 팽팽할 때는 앉아서 구경 좀 하면 되고요”

“네”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세요. 질문자는 항상 ‘이런 결정이든 저런 결정이든 저는 기꺼이 뒤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돼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해결해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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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

지나고 나면 아무일도 아닌걸 내의견을 고집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오래 남는것 같습니다.

스님의 지혜로우신 말씀 잘 읽었습니다.매사에 치우치지 않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연습합니다.

2021-11-09 06:07:11

ㅎㅎ

그냥 놔두면 저절로 해결되는구나.. 감사합니다

2021-09-21 11:23:56

큰바다

있는 그대로 본 위에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 있을지 연구하는 자세를 갖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09-20 1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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