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6.16. 종교인 모임, 평화재단 회의, 수행법회
“이혼한 남편이 양육비를 안 줍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스님은 1층 법당에서 명상을 하며 새벽 예불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5시 정각에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7시가 되자 목사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속속 평화재단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반갑게 종교인 분들을 맞이한 후 조찬을 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농사지은 각종 쌈채소가 밥상 위에 올라왔습니다.

“정말 귀한 음식이네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지난 주말에 수확한 햇감자를 포실포실하게 삶아서 내었습니다.

“올해 첫 수확한 감자입니다.”

“가장 맛있는 감자가 하지 감자인데, 정말 맛있네요.”

스님은 모임을 시작하면서 김명혁 목사님에게 여는 말씀을 청했습니다. 목사님은 지난주에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종교인 모임에 대해 갖고 있는 자긍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종교와 배경이 서로 다르지만 20년이 넘게 종교인 모임을 갖고 있다고 기독교 사람들에게 소개하곤 합니다. 특히 제가 모임을 시작할 때마다 법륜 스님이 저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제가 기도를 마치면 법륜 스님이 ‘아멘!’ 한다고 얘기하면 다들 놀랍니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자꾸 우리는 종교와 배경이 다르다고 이야기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면에서 같은 종교와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웃음)

큰 웃음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현재 북한 상황에 대해 공유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북한의 옥수수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kg당 1800원 하던 것이 3000원까지 올랐습니다. 이건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쌀값이 오르니 주식을 쌀에서 옥수수로 바꾸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게다가 식량을 수입하지 못하니까 밀가루 가격이 쌀값의 두 배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특히 콩기름, 밀가루, 설탕이 제대로 공급이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준비는 하는데, 북한에서 일절 안 받고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은 점점 어려워질 것 같아요.”

현재로서는 인도적 지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현실을 모두 안타까워하면서 오늘은 국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 보았습니다. 스님이 종교인 분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30대 야당 대표의 등장,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지금 보수 야당의 지도자가 30대 청년이 된 것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 같다고 보고 계시나요?”

종교인 분들은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세대 갈등의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 커지고 있었는데, 이 저항이 이준석 현상으로 인해 더욱 확대될 것 같아요.”

“소득 불평등이 너무 커지고 있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봅니다. 아파트 분양으로 하루아침에 몇 억씩 버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서민들이 갖는 분노가 이루 말할 수가 없거든요. 특히 청년들이 빈부격차에 대해 갖는 분노는 더욱더 커져만 가고 있는데, 이런 분노가 이준석 현상을 만나서 더욱 크게 요동칠 것이라고 봅니다.”

“이준석 현상은 일시적인 것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야당에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순간 모든 이슈가 대선 후보에게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30 세대의 절망감이 새로운 바람을 계속 일으킬 것이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 분 한 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경청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명혁 목사님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을 잘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이해를 잘 못하겠어요. 사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법륜 스님이 좀 정리를 해주세요.”

스님이 마지막으로 의견을 말했습니다.

변화의 물꼬에서 기성세대의 역할

“미국에서도 40대의 오바마 대통령이 나왔고, 캐나다에서도 40대의 총리가 나왔고, 영국에서도 40대의 총리가 나왔고, 프랑스에서도 39살의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었고, 이탈리아에서도 39살의 총리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지금까지 대통령 후보가 모두 60대가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정당의 대표로 30대가 등장했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겁니다. 진보 정당에서는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보수 정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누구도 예상을 못했을 거예요.

이런 변화가 일회성으로 끝날지, 세대교체를 가져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저는 일회성으로 끝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으로 가느냐, 다시 뒷걸음질하다가 앞으로 가느냐, 그 차이만 남았지 물꼬는 이미 터졌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이 변화가 정치계만이 아니라 어쩌면 경제계나 종교계까지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 결과 한국 사회가 역동성을 갖게 될지, 혼란이 가중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기성세대이면서 종교지도자인 우리들의 역할은 이런 변화가 역동이 되도록 하고 혼란이 안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동성까지는 못 만들더라도 최소한 혼란을 방지하는 역할은 우리 기성세대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 달 동안 변화의 추이를 더 지켜봅시다.

남북관계도 어느 날 갑자기 큰 변화가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희망을 갖고 우리도 준비해 나갑시다.”

변화의 추이를 더 지켜본 후 다음 달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종교인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한 분 한 분에게 농사지은 감자를 한 상자씩 선물했습니다.

이어서 하루 종일 약속된 미팅을 이어갔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활동가들과 사업 논의를 했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각 부서의 담당자들이 발표하고 스님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실무적인 논의를 끝마치고 각자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각자 자신이 생각했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에요?”

한 명 한 명 어려운 점을 이야기했고, 어떻게 개선해나가면 좋을지 스님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서울 정토회관에서 수행법회를 생방송했습니다. 800여 명의 저녁반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어제는 북한전문가들과 모임을 했고, 오늘은 종교지도자들과 모임을 했어요. 그 외에도 여러 일들이 있어서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평소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만, 지금은 서울에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200여 명의 방청객 중에서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이혼한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혼한 남편이 양육비를 안 줍니다. 어떡하죠?

“저는 이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고 있습니다. 애들 아빠가 5년 전부터 양육비를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여성가족부를 통해 양육비 이행 지원을 받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습니다. 무책임하고 거짓말을 계속하는 애들 아빠를 상대하려니 화부터 올라오고, 양육비를 받아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아이 셋을 키우느라 대출을 받아서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수행자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일까요?”

“수행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정말로 모르겠어요?”

“하하....” (웃음)

“만약 남편이 죽었다면 질문자는 아이 셋을 어떻게 키울 거예요? 다른 누군가한테 맡길 거예요? 이렇든 저렇든 본인이 키울 거예요?”

“당연히 제가 키울 겁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아빠가 죽은 게 나을까요? 자기들을 돌봐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게 나을까요?”

“살아있는 게 낫습니다.”

“그러면 됐죠.”

“그래도 아빠로서 양육비도 대고 아이들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면 좋죠. 그런데 본인이 그렇게 안 하겠다는 걸 어떡해요? 남편에게 수입이 있다면 양육비를 청구하면 됩니다. 청구를 해서 법적인 보장을 받으면 다행이고, 그렇게 안 되면 그걸로 그만이에요. 그걸 어떡하겠어요?”

“법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이미 판결이 났는데도 지급하지 않고 있어요.”

“지급하지 않으면 지급하지 않는다고 또 고소를 하면 되죠.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겁니다.”

“그걸 3년째 하고 있습니다.”

“3년이 아니라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몇 년이라도 계속 고소하면 돼요. 그게 힘들면 포기하면 되고요. ‘밑져봐야 본전이다. 되든 안 되든 계속 고소해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계속 고소하면 됩니다. 다만 계속할 때는 그걸 힘들어하거나 욕하지 말아야 해요.”

“특히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지면 양육비를 안 주는 애들 아빠가 원망스럽습니다. 한편으론 계속 고소를 해봐도 소용이 없으니까 ‘포기할까’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쉽게 포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남편이 죽은 게 낫겠냐’ 이렇게 물어봤잖아요. 애들 아빠가 도움이 안 되더라도 살아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면 뭐가 문제예요? 애들 아빠가 죽고도 남은 가족들은 문제없이 사는데요. 그러니 남편이 죽었다 생각하고 그냥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도 되는데, 다행히 살아있다니까 계속 청구를 해보는 거죠. 밑져봐야 본전이잖아요. 큰돈 안 들이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고, 법에 보장된 내 권리는 최대한 찾아야 하잖아요. 이익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 돈을 받아서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안 받을 이유는 없잖아요.

그러나 내가 누구한테 돈을 빌려줬다고 해도 상대가 돈이 없거나 끝까지 안 갚겠다고 버티면 못 받는 겁니다. 그걸 억울해하면 내 손해입니다. 돈도 못 받고 마음에 미움만 갖게 되잖아요. 양육비를 받지 말라거나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질문자에게 이렇게 묻는 겁니다.

‘남편이 죽었다면 어떡하겠어요?’
‘죽었다면 당연히 제가 키워야죠.’
‘그러면 남편이 죽은 것과 돈을 안 주더라도 살아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낫겠어요?’
‘돈을 안 줘도 살아있는 쪽이 낫죠.’

질문자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고민할 게 없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양육비는 청구해서 받을 권리가 나한테 있잖아요. 돈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계속 시도해 보라는 겁니다. 이걸 포기할 이유가 없잖아요. 돈을 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받는 데까지 받으면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안 준다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본인이 안 주는 걸 어쩌겠어요. 돈을 빌려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돈을 빌려줬는데 상대가 안 준다면 민사소송을 할 수 있고, 그래도 안 준다면 할 수 없어요. 그러면 포기해야 할까요? 포기하는 건 자유예요. 그러나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굳이 포기할 필요가 없잖아요. 하는 데까지 해보세요. 민주시민이라면 법에 보장된 자기 권리를 최대한 찾아야 합니다.

다만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면 아이 아빠를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돼요. 전남편을 미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양육비는 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최대한 받도록 노력해봐야 해요. 지금 상황은 돈을 빌려주고 못 받고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나에게는 양육비를 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계속 청구해서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에요. 계속 청구해도 못 받으면 그건 어쩔 수가 없고요.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괴로워할 일은 아니에요. 아이 셋을 키우는 건 내 일입니다. 다만 나에게 양육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니까 그 권리를 최대한 행사해 보는 거예요.”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치’라고 해서 한 달 정도 남편을 감옥에 가두는 겁니다. 진행할지 여부를 국가에서 저한테 물으니까 ‘그래도 애들 아빤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그냥 눈 딱 감고 국가에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둬야 할까요?”

“예를 들어 질문자의 돈 1억 원을 누가 빌려갔는데 안 준다고 합시다. 그래서 민사소송을 했고, 돈을 주라는 판결이 났는데도 안 주는 거예요. 그래서 안 준다고 다시 소송을 하니까 법원에서 ‘그러면 이 사람을 그 돈만큼 감옥에 넣어야 하는데 어떡하겠습니까?’라고 물어요. 그러면 질문자는 어떡할래요?”

“그게 고민이 돼서 여쭤보는 거예요.”

“그게 뭐가 고민이 돼요? 본인이 결정하면 되죠. 그건 자기 선택이에요. 남편이 감옥에 간다고 해서 질문자가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돈을 안 내서 그 사람이 감치되는 것이지 질문자 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에요. 질문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법에 보장된 선택권이잖아요. ‘감치에 동의합니다’ 이러면 감치가 되는 것이고, 본인이 감치되기 싫으면 돈을 내든지 하겠죠. ‘애들 아빠니까 내가 돈을 포기하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자기 돈을 자기가 포기하는 것도 자기 권리니까요. 포기할지 말지 스님한테 물을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할지 안 할지는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엄마가 아빠를 감옥에 가뒀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들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서요.”

질문자는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스님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건 민주시민으로서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엄마가 아빠를 감옥에 가둔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법에서 명령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 간 거예요. 왜 질문자가 애들 아빠를 감옥에 보냈다고 생각해요?

전남편을 미워할 이유도 없지만, 전남편이 돈을 안 내서 감치되는 것을 질문자가 책임질 이유도 없어요. 질문자는 양육비를 달라는 것이지 전남편을 일부러 감옥에 보내려는 게 아니잖아요. 전남편이 ‘나는 양육비 안 내고 감옥 갈래’ 하면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해야지, 그걸 왜 질문자가 걱정을 해요? 질문자 같은 사람들 때문에 전남편 같은 사람들이 양육비를 안 내는 거예요. 버티면 해결되는데 왜 내겠어요?

또 상대방이 돈을 안 낸다고 해서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안 낼 수 있는 데까지 안 내보려는 겁니다. 끝까지 양육비를 안 내고 버티다가 감옥 가는 것으로 때울 수도 있어요. 그러면 질문자 입장에서는 어찌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감정 낭비하지 말고 조금 냉정해지면 좋겠어요. 죽었다고 생각하고 깨끗이 포기를 하든지, 질문자에게는 권리가 있으니까 권리를 행사하든지요. 그리고 권리를 행사했는데 상대가 양육비 내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간다 해도 그건 질문자와는 아무 관계없는 일입니다. 전남편이 법에 보장된 자식의 양육비를 안 내서 감옥에 간 건데 그걸 왜 질문자가 그 사람을 감옥에 보냈다고 생각해요? 그건 법이 집행한 겁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포기하면 돼요.”

“그 결정을 못 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예요. 스님은 질문자의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속권을 포기할까요, 유지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당신한테 주어진 권리니까 당신이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본인의 자유입니다’라고 대답해요. ‘돈이 1천만 원 있는데 이걸 자선단체에 기부할까요, 하지 말까요?’라고 물으면 ‘알아서 하세요’라고 대답합니다. 본인의 권리인데 거기에 대해 제가 이래라저래라 말할 필요가 뭐 있어요?

다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전남편이 돈을 안 내고 감옥 가는 쪽을 선택한다면, 그건 남편이 선택한 것이지 질문자가 감옥에 보낸 게 아닙니다. 질문자가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지금 질문자는 어느 쪽이든 관점이 잘못됐어요. 전남편이 양육비를 안 냈다고 미워하는 것도 잘못되었고, 전남편이 그렇게 버티다가 감옥에 간다면 ‘내가 감옥에 보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잘못됐어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건 질문자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요. 양육비를 안 내는 것도 그 사람의 권리에 속합니다. 범죄인도 자기한테 불리한 내용을 말하지 않을 묵비권이 있어요. 범죄인한테도 이런 권리가 있는데 왜 질문자와 전남편한테는 권리가 없겠어요?

그러니 전남편이 돈을 안 내는 것은 전남편의 선택권이고, 나에게는 그것을 청구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청구권이 있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찾아가 울고불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대한민국 법에 보장이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법에 위임을 하면 법이 집행해 줍니다. 그 과정에서 전남편이 감옥을 가더라도 그건 본인이 법을 안 지켜서 감옥을 간 것이지, 질문자가 감옥을 보낸 게 아니에요.”

“네, 이제 이해했습니다.”

“남편이 나를 때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에는 아무리 부부라도 때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때리는 순간 남편은 폭력사범이 됩니다. 그러면 폭력사범은 사회정의를 위해 고발해야 하잖아요. 고발하면 경찰이 잡아가서 구치소에 넣습니다. 그럴 때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하고 화해를 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나는 없었던 일로 하겠소. 그러니 이 사람을 잡아가지 마시오’라고 하면 안 잡아갑니다. 그런데 ‘나를 때린 사람을 처벌해 주시오’ 하면 처벌을 합니다. 그랬을 때 부인이 남편을 감옥에 보낸 거예요? 남편 본인이 폭력을 행사하고 감옥에 간 거예요?”

“본인이 폭력을 행사해서 감옥에 간 겁니다.”

“부인이 ‘남편을 감옥에 보내지 마시오’ 하면 감옥에 안 갈 수 있으니까 남편 입장에서는 당연히 부인이 자기를 감옥에 보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부인 입장에서는 하등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죄의식을 갖는다면 민주 시민이라고 할 수 없어요.

남편 본인이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겁니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내가 처벌하는 게 아니고 법이 처벌을 하는 거예요. 남편이 아니라 부인이나 자식이 폭력을 행사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남이 아니라 내 남편이기 때문에 이튿날 면회는 가야 하는 거예요. 면회를 가면 남편이 ‘면회 오지 말고 나를 빼내 달라’ 이러겠죠. 빼내 준다면 폭력사범을 내 손으로 빼내 주는 셈이에요. 그건 부정이에요. 폭력사범은 감옥에 가야 하고,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그 폭력사범이 남이 아니라 내 남편이기 때문에 뒷바라지를 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잘 안 되죠.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자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상대를 원망만 하는 겁니다. 반대로 죄의식을 갖기도 하고요.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을 어떻게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지혜로워야 수행자죠. 수행자로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방법을 이제 알겠어요?”

“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딸이 직장 부부여서 자녀를 출산하게 되면 할머니인 제가 돌보게 됩니다. 출산 후 3년 동안은 엄마가 보살펴야 되는데 현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면서 개근상을 받았는데,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반대합니다. 자랑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 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중증 치매를 앓고 있어서 저 혼자 돌보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자매들은 돌봄에 전혀 관심이 없고, 재산에만 관심이 있고 폭력적입니다. 어떡하죠?

즉문즉설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은 수행법회인데 정작 수행법회다운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이 이렇다고 아는 것도 큰 공부예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는 자리

여러분은 ‘법륜 스님과 인생 상담을 한다’, ‘법륜 스님이 정답을 주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인생 상담을 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인생을 소재로 해서 담마 토크(Dharma Talk), 즉 법담(法談)을 하는 거예요. 법담이란 인생의 여러 어려움을 소재로 해서 대화하다가 뭔가를 본인이 딱 깨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즉문즉설이란 인생을 소재로 해서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갈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양육비를 받느냐 안 받느냐, 이런 고민은 심리상담소나 법률사무소에 가서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고민을 소재로 스님과 대화하면서 ‘아, 고민이 없어졌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돈을 받고 안 받고, 이혼하고 안 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아, 내가 뭔가에 사로잡혀서 괴로움이 생겼구나!’

이렇게 딱 깨쳐서 돈을 받으러 가더라도 웃으면서 받으러 가고, 돈을 포기하더라도 웃으면서 포기하고, 이런 길을 안내하는 것이 수행법회이고 즉문즉설입니다.

오늘은 수행의 ‘수’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유유상종으로 모여서 질문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보통은 수행법회를 해보면 수행의 ‘수’ 자도 모르는 사람이 한 명쯤 있고, 수행의 ‘수’ 자 정도는 아는 사람도 한 명쯤 있고, 수행의 ‘수’ 자는 몰라도 'ㅅ' 정도는 아는 사람도 한 명 있는데, 오늘은 수행의 ‘수’ 자는커녕 'ㅅ'도 모르는 사람들만 모여서 질문을 했어요. (웃음)

역행보살이 되어 준 질문자분들에게

속 시원하게 번뇌가 탁 사라지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고뇌하고 산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딸이 낳은 아이를 자기가 키워야 해서 고뇌하고, 불교대학 졸업한 걸 자랑하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안 된다고 고뇌하고, 남편이 양육비를 안 줘서 고뇌하고, 아버지 돌보는 문제 때문에 힘들어서 고뇌하는 네 명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건 마치 농사짓는 사람이 밭에 가서 일한다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오늘 일 없다고 괴로워하고, 비 온다고 괴로워하고, 볕이 쨍하다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수행이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좋은 겁니다. 괴로움이 없는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이 수행의 목표예요.

오늘 법회는 수행에 대한 관점이 안 잡혀 있는 분들을 통해 수행의 목표가 무엇인지 관점을 바르게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질문해 주신 네 분에게 우리 모두 큰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런 분들을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깨닫게 한다고 해서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고 해요. 본인이 못 알아 들어서 남이 그 모습을 보고 답답해하다가 남이 깨닫는 거예요. 파편이 튀어서 엉뚱한 사람이 복을 받는 거죠. 오늘은 네 분의 역행보살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웃음)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장수 죽림정사로 이동해 용성조사 탄신 157주년 기념행사를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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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

아이가둘일경우
둘이면한명씩대려가면양육비 지급해야하나요?

2022-10-23 11:37:00

고경희

법담

2021-07-04 21:44:52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1-06-23 09: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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