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5.8 천일결사기도 생방송, 발심행자교육 수료식 등
“행복, 제일 쉬운 길이지만 왜 가지 못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천일결사기도 생방송과 발심행자교육 수료식,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회 등 하루 종일 생방송이 이어졌습니다.

새벽 4시 30분, 종성을 들으며 명상을 한 후 예불을 마치고 5시 정각에 제5차 백일기도 20일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4000여 명의 천일결사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다 함께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를 한 후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이 몸은 항아리처럼 깨지기 쉬우니이 마음을 성채처럼 굳건하게 만들어서 지혜의 칼로 마라를 물리쳐라. 성취한 것을 지키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아, 머지않아 이 몸은 땅 위에 누울 것이고 의식 없이 버려질 것이다. 쓸모없는 나무토막처럼.”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백일기도를 새로 시작한 후 3주 간의 고비를 무사히 넘긴 초심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벌써 10-5차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한 주가 빨리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초심자들은 벌써 그만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죠. 작심삼일이 될 수 있는 고비인 3주를 잘 넘기셨으니 축하드립니다. (웃음)

이렇게 꾸준히 수행정진해나가시면 됩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나를 위해서 1시간을 먼저 사용하세요. 육신을 위해서 밥을 먹이듯이 나의 마음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 아침 기도를 1시간 하는 겁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먼저 시간을 갖는 거예요.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1시간을 나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기도는 아주 쉽습니다.

‘아이고, 몸이 피곤하다. 좀 더 자야지.’

이런 마음은 몸을 더 중요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남을 더 중요시하게 되면 눈 뜨자마자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먼저 1시간을 사용하자는 거예요.”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법구경의 내용은 각 구절마다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사연이 있습니다. 사연은 없애고 부처님의 말씀만 모아서 경전으로 편집한 게 법구경입니다. 그래서 스님은 앞 구절과 뒷 구절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연이 의미하는 핵심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내용은 수행자는 몸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가 핵심 내용입니다. 문장 속에 나오는 ‘마라’라고 단어는 ‘마왕’이라는 뜻이에요. 수행에 있어서 마왕은 바로 번뇌입니다. 지혜의 칼로 마왕을 물리친다는 말은 지혜로 번뇌를 물리친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대로 행복해지는 길

몸에 대한 집착뿐만 아니라 우리는 정신적으로도 집착을 합니다. 집착을 하게 되는 이유는 중독성 때문입니다. 자꾸 더 좋은 술을 찾다 보면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 하는 술을 찾게 되죠. 커피도 그냥 마시다가 더 맛있는 커피를 찾잖아요. 커피만 이런 게 아니죠. 또 차를 마시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 차, 저 차 마시다가 점점 더 좋은 차를 찾고, 한 통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 하는 차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집착은 모두 습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독이 들고 그 세계에 빠지게 되면 더 좋은 것을 구매하는 것으로 기쁨을 누리고, 그걸 못 누릴 때는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여러분들에게는 제대로 잘 안 들릴 거예요. 악몽을 꾸는 사람에게 아무리 밖에서 소리쳐도 그 사람 귀에 들리지 않고, 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눈만 딱 뜨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헐떡거리는 것도 딱 끊고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남편이다’, ‘내 아내다’, ‘내 자식이다’, ‘성적이 올랐다’, ‘성적이 떨어졌다’, ‘결혼을 했다’, ‘결혼을 안 했다’,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 ‘남편이 일찍 들어온다’, 이런 것들도 전부 집착입니다. 한 생각 딱 놓아버리면 삶이 편안해지는데, 이 도리를 깨치기가 쉽지가 않아요. 술을 안 먹는 게 쉬운 일이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게 쉬운 일이고, 마약을 안 하는 게 쉬운 일인데, 거기에 중독이 되면 안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만두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일 쉬운 길이지만 왜 가지 못할까요?

이것을 옛 선사들은 이렇게 비유했어요. 어떤 사람이 눈이 먼 사람을 업고 갔습니다. 업고 가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시 내가 화장실 좀 갔다 와야 되겠으니 나무에 좀 매달려 있어라. 바로 밑이 천 길 낭떠러지니까 손을 절대로 놓지 마라.’

그러고는 그 사람이 다시 안 오는 거예요. 팔이 너무 아프니까 ‘살려 달라’, ‘살려 달라’ 하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길가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놓으세요’ 이랬어요. 이 사람의 발과 땅은 한 뼘도 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팔이 너무 아프다고 아우성치니까 놓으라고 했던 겁니다. 놓으면 팔이 아플 일이 없는데 이 사람은 천 길 낭떠러지라고 생각하니까 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을 놓는 건 쉬운 일이지만 이 사람은 손을 놓으면 죽는 줄 알기 때문에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한 생각 놓아버리면 편안해지는데도 그러면 죽는 줄 알고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요즘 사람들한테는 이런 비유가 좀 덜 와닿을 거예요.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가진 걸 보고 부러워합니다. 비싼 차, 비싼 커피, 비싼 옷, 비싼 술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죠?

이렇게 헐떡거리고 살지 말고 집착을 내려놓게 되면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조금만 더 자고 싶다’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버리면 더 이상 잠이 안 오듯이 집착도 탁 놓아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리 아프게 절만 할 게 아니라 집착을 놓는 것을 경험해서 깨쳐버리면 삶이 자유로워집니다.

몸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해서 몸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됩니다. 적당한 음식을 먹여주고, 적당한 휴식을 취해줘서,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몸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중독성에서는 벗어나야 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 사이 산 너머로 해가 떴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9시부터는 발심행자 신청자 교육 수료식을 시작했습니다. 2차와 3차 발심행자 신청자 교육을 마친 수료생과 지부장, 지회장, 법사단 등 23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먼저 정토회 대표님의 인사말을 듣고, 이어서 수료생들이 발표하는 소감문을 함께 경청했습니다. 감동스러운 소감문을 들으며 긴장했던 마음이 어느새 편안해졌습니다.

이어서 스님에게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수료생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한 후 정토회에서 발심 행자가 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발심행자교육을 수료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경과 보고를 보니까 졸업률이 3분의 2밖에 안 되네요. 세 명 중에 한 명은 수료를 못 하고 두 명만 수료를 한 걸 보면 교육이 좀 강도 높게 진행이 되었나 봐요. 강도 높은 교육을 잘 마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웃음)

부처님이 만든 새로운 길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신앙공동체가 아니고 수행공동체 정토회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정토회는 처음 출발할 때부터 신앙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을 기초로 하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스스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붓다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임을 지향하고 출발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나도 극락에 가야 되겠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신앙인이라면, 수행자는 남의 옷자락을 잡고 가는 게 아니라 ‘내 발로 걸어서 부처의 세계로 가겠다’ 이렇게 원을 세운 사람입니다.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게 해준다거나 새로 태어나면 부자가 되게 해 준다는 말을 하는 것은 종교이지 수행이 아니에요. 수행자는 점을 치거나 운명을 봐주거나 날짜를 봐주거나 하는 행위를 절대로 못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계율에 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수행자에게는 날마다 다 좋은 날입니다. 좋은 날이 따로 있고 나쁜 날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람은 누구나 다 생긴 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어떤 관상은 좋은 사람이고, 어떤 관상은 나쁜 사람이고, 이렇게 규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스님이 그런 걸 할 줄 알아야 스님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복을 빌어줘야 스님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복을 빌어주는 것은 제사장의 역할이지 수행자의 역할은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 사회는 출생과 성별에 의해서만 성스러운 길을 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부처님은 출생에 관계없이, 성별에 관계없이 오로지 자기 결단에 의해서만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길을 가는 수행자들의 모임이 상가입니다. 우리가 귀의해야 하는 것은 상가예요.

상가가 구성되려면 자기 결단을 한 수행자가 최소한 네 명 이상 모여야 합니다. 혼자서 상가가 구성되는 건 아니에요. 자기 결단을 한 사람들이란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입니다. 즉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자기 결단을 하고 나온 사람이에요. 신분에 관계없이 이 사람들이 바로 수행자입니다.

대승불교가 일어난 이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수행자가 아닌 제사장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재가 수행자인 우바새, 우바이는 신자가 되어 버린 것이고요. 불교는 종교로 변해가고, 출가 수행자인 스님들은 제사장이 되고, 재가 수행자는 신자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대승불교가 새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이 아니다’ 하면서 다시 상가를 구성했어요. 그 사람이 출가했냐 아니냐, 스님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발보리심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역할을 하는 스님은 수행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재가자 중에서도 발보리심한 자는 수행자가 될 수가 있었어요. 이렇게 상가를 새로 구성했습니다. 새로 구성된 상가에는 출가한 스님도 있고, 재가자도 있었던 거예요.

대승불교는 상가의 구성원을 스님이라고 안 부르고 ‘보살’이라고 불렀습니다. 부처님 이전에는 성스러운 그룹을 브라만이라고 불렀습니다. 브라만은 오직 출생에 의해서 될 수 있었고, 남성만 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부처님 이후에는 오직 자기 결단에 의해서 상가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출생도 아니고, 성별도 아니고, 자기 결단에 의해서 상가를 구성했어요.

그것처럼 대승불교에서는 출가한 형식보다 발보리심 한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상가 구성원에는 브라만 출신도 있고, 크샤트리아 출신도 있고, 바이샤 출신도 있고, 수드라 출신도 있었던 것처럼 대승불교의 상가 구성원에는 비구 출신도 있고, 비구니 출신도 있고, 우바새 출신도 있고, 우바이 출신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부대중으로 상가를 구성했습니다.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등 이런 보살들을 탱화에서 보면 머리카락을 깎았어요? 기르고 있어요?”

“기르고 있어요.”

“머리를 기르고 있다는 것은 스님 출신이 아니라 재가자 출신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정토회도 이런 대승불교의 전통을 따라서 ‘스님이냐 아니냐’, ‘남자냐 여자냐’, 심지어는 ‘종교가 불교냐 기독교냐’,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 이런 걸 논하지 않고 누구나 다 발보리심 하면 수행자가 될 수 있게 한 겁니다.

발심행자가 되기 위한 단 한 가지 조건

부처님 당시에 어떤 계급도 차별하지 않았듯이 정토회에서도 성별을 차별하지 않고, 계급도 차별하지 않고, 종교도 차별하지 않고, 민족도 차별하지 않고, 인종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다 발보리심 하면 수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은 갖추어야 합니다. 발보리심을 해야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 상가 구성원이 되려면 자기 결단을 하고 출가를 해야 했듯이 여러분도 정토회의 발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발보리심을 해야 돼요. 과거에 종교가 기독교였든, 과거에 종교가 없었든, 이런 건 따지지 않지만 반드시 발보리심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발보리심이란 무엇일까요? 복을 빌어서 또는 도움을 얻어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 발보리심입니다. 더 이상 자식을 탓하거나, 남편을 탓하거나, 부모를 탓하거나, 그 누구도 탓해서는 안 돼요. 그런 조건에서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항상 자신이 선택해야 합니다.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든지, 거기에 적응을 하든지, 포기해 버리든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이렇게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수행자입니다. 수행자가 되어야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누누이 법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토회 회원이 된 사람들 중에 이런 관점을 제대로 안 갖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회원과 정회원을 분리해야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이 된 사람들 중에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가진 사람들만 따로 구분한 것이 정회원이고, 정회원이 바로 ‘발심행자’입니다. 법문 듣는 걸 좋아하고 정토회의 방향을 지향하지만 아직 관점 정리가 안 된 사람이 ‘회원’이고, 관점 정리가 딱 된 사람이 정회원인 ‘발심행자’입니다.

전법활동가의 길

여기에 덧붙여 얼마 전에는 정토회가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에서는 전법 활동이 가장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전법활동가’라는 구분이 하나 더 필요해졌어요. 전법활동가는 관점 정리만 분명하게 되어 있으면 안 되고, 전법 활동도 함께 해야 합니다. 전법 활동을 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과 시간을 투여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바로 ‘전법활동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막 발심행자 교육을 수료했는데, 앞으로 전법활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교육과 훈련을 더 받아야 해요.

자신의 직업이 사장이든 종업원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정토회에서는 따지지 않습니다. 직장에 가면 사장님이라고 불리더라도 정토회 안에서는 똑같이 평등한 수행자입니다. 정토회 안에서도 사장님이라 불리는 것은 허용이 안 됩니다. 집에 가면 부부일지 몰라도 정토회에 오면 여러분들은 멤버 대 멤버예요. 정토회에 와서도 부부가 같이 붙어 다니기만 하면, 정토회 회원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법활동가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남편하고 같은 조에 편성해주세요’ 이런 부탁을 하는 사람은 회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부부가 전법활동가가 되는 순간 정토회 안에서는 이혼이 딱 되어야 해요. 자꾸 사장이니 종업원이니, 남편이니 아내니, 부모니 자식이니 이런 세속적인 지위를 정토회 안에 끌고 들어온다는 것은 출가하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평생 동안 출가하지는 못해도 정토회 안에서는 출가자의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세속적인 지위를 탁 내려놓아야 해요. 정토회 안에서 인종 차별이 일어나거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수행공동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입장 정리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이어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수료생들로부터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발심행자가 된 특권으로 사전 질문 신청 없이 현장에서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2시간 동안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한번 발심행자교육을 수료한 것을 축하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온라인 동문회를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 개설한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수료했던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모두 모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스님과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즉문즉설 시간을 2시간 동안 갖고 동문회를 마쳤습니다.

요즘은 스님이 두북 수련원에 주로 머물다 보니 손님이 가끔 찾아옵니다. 오후 4시에는 지역 인사 한 분이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한 시간 동안 차담을 나눈 후 두북 수련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오후 5시에는 인근 지역의 사찰에서 주지 스님 한 분이 스님을 찾아와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까지 대화를 나눈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장수 죽림정사로 이동해 지난번에 마무리 짓지 못한 도량정비 울력을 하루 종일 한 후 저녁에는 다시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와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0/200

신선애

스님 감사합니다 ()

2021-05-14 19:02:55

보각

감사합니다스님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내는게 중요하군요. 정토회 에서 부부는 정토회 안에 오면 이혼을 해야한다는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여기 안에서는 수행자이구나..

2021-05-13 07:37:09

고불장

수행자는 남의 옷자락을 붙들고 가는게 아니라..
내 발걸음으로 걸어서 가는 거라는 말씀에 저를 돌아봅니다

2021-05-12 15: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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