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0.21. 온라인 수행법회, 평화경제 국제심포지엄
"재앙이 복이 되는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서울 정토회관에서 온라인으로 수행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병원 진료를 받고 사회 인사를 만난 후 저녁에는 ‘신한반도체제와 평화경제’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주제 발표를 했습니다.

오늘은 10월 들어 세 번째 맞는 수행법회일이자 정토회 회원들의 ‘정일사’ 정진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그동안 정진하고 활동하면서 누적된 스트레스나 성과를 함께 나누고 보완하는 나누기 수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늘도 2천여 명의 정토회 정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봄과 가을에 이렇게 정일사 정진 기간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주간 다들 빠짐없이 정진해 오셨겠지요? 우리가 이렇게 전법이나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지만 항상 수행자로서 임한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통 사람으로서 그냥 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일이 되지만, 우리는 수행자로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일마저도 다 수행의 과제가 됩니다.

장애는 내 역량을 키우는 훈련의 대상

일반 사람에게는 몸이 아프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 모두 장애가 됩니다. 다시 말해 큰 불행을 자초하는 재앙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수행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이런 장애가 극복해야 할 수행의 과제가 됩니다. 재앙으로 보지 말고 내 역량을 키우는 훈련의 대상으로 보는 거예요. 이렇게 좀 관점을 바꾸어서 파격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정토회에서 소임을 하나씩 맡아 활동하는 것도 일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일거리가 늘어난 것입니다. 집안 일도 있고 직장 일도 있는 가운데, 정토회 일이라는 게 하나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쁘고 힘들다고 아우성인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수행의 과제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요? 정토회 일을 안 할 때는 가정사와 직장 일만 가지고도 힘들어서 헐떡거렸는데, 지금은 정토회 일까지 덧붙여졌는데도 오히려 예전보다 기운이 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일을 다 수행의 과제로 삼기 때문입니다. 몸이 좀 힘들고 일이 좀 많을지 몰라도 마음은 훨씬 가볍고 보람이 있습니다. 이럴 때 ‘수행자로서 일을 한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이 말은 수행자는 하는 일마다 다 수행의 과제로 삼는다는 뜻이에요.

‘처처에 불상이요(處處佛像) 사사에 불공이라(事事佛供).’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처에 불상이요’는 이 세상 곳곳에 부처님이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사에 불공이라’는 하는 일마다 수행 아닌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수행자가 되었다면 활동이나 소임을 모두 수행의 과제로 봐야 합니다.

‘보왕삼매론’은 역경을 수행의 과제로 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그 역경이 내 능력을 키워주는 조건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더 나에게 유리해집니다. 수행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수행의 과제로 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런 장애가 없을 때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그것이 발전의 기회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어서 그동안 정진하고 활동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수행법회 후 300배 정진 프로그램이 있어서 오늘은 40분만 법문을 했습니다. 총 4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은 주변에서 소임을 맡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소임을 맡는 것이 복인가요?

“소임을 맡는 것이 복이라고 하는데 왜 복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할 일은 많고 일할 사람은 없다 보니 소임이 복이라고 좋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임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궁금합니다.”

“소임이 복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는 그런 이유로 말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다들 소임을 안 맡으려 하니까 ‘소임이 복이다’ 이렇게 사탕발림 소리를 해서 끌어들이려고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모두 웃음)

절대로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어요. 말을 쓰는 사람에 따라 어떤 의도로 썼는지가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널 사랑해. 너하고 같이 있고 싶어’ 이렇게 말할 때 정말로 그 말 그대로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 똑같은 말이지만 다른 의도를 담아서 말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은 진짜다’, ‘그 말은 가짜다’ 이렇게 평가할 수는 없어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질문자의 생각과 같은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법사님들을 비롯해 정토회를 오래 경험한 사람들을 보면 힘든 소임을 맡아본 뒤에 일취월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법당 총무를 한 번 맡고 나면 확 업그레이드가 돼요. 그러나 열 명 중 한 명 정도는 업그레이드 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는 총무 소임을 맡은 것이 오히려 상처가 돼요. 그런데 열 명 중 아홉 명은 힘들다고 하면서도 고비를 넘어갑니다. 그 결과 3년 소임을 마친 뒤에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들 말합니다.

‘아, 총무 소임을 맡는 것이 큰 복이구나. 매일 108배나 300배 절하는 것보다 총무 소임 한 번 맡는 게 수행에 더 도움이 된다.’

어제 어느 부서의 국장님한테서 장문의 편지를 받았어요. 읽어보니까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자기가 정토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수행도 열심히 하고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수행을 헛것으로 한 것 같대요. 지금 불사를 하나 진행하고 있는데 얽힌 문제가 많아 정말 힘든 상황이에요. 지금까지 어려웠던 건 어려운 축에도 안 들어갈 정도라고 해요. 그동안 자기는 똑똑해서 뭐든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리 막히고 저리 막혀서 뭘 해도 안 되고 있답니다. 지금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하루 네 번의 정진 덕분이래요. 새벽에 정진하고, 아침 먹고 나서 정진하고, 점심 먹고 나서 정진하고, 저녁 먹고 나서 정진하고, 이렇게 네 번 정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정진할 시간에 사업 계획을 연구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연구만 해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수준이니까 정진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꾸준히 정진을 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평소에 스님께서 수행자로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저는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옴짝달싹 못 하고 꽁꽁 묶여버릴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장애에 부딪혔을 때는 굉장히 힘들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나면 ‘아, 이게 복이었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총무를 하면 복이라고 할까요? 여러분이 그냥 회원으로만 있을 때는 조금만 봉사를 해도 다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이렇게 칭찬을 해줍니다. 그런데 총무라는 직책을 맡으면 수고한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없어지고 ‘총무가 뭐하느냐’, ‘왜 그것도 안 해주느냐’ 이렇게 내내 책임을 묻는 사람만 늘어나요. 열에 아홉 명은 비판을 하고, 칭찬하는 사람은 열에 한 명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직책을 맡을수록 힘든 거예요. 일만 힘든 게 아니라 남의 일까지 다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까지도 ‘총무가 그것도 감독 안 했느냐’고 온갖 야단이나 비난, 지적을 듣게 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그만두려니까 그만둘 수도 없고, 그야말로 중간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 하는 거예요. 극복을 못 하면 낙오자가 되고, 낙오자가 안 되려면 죽기살기로 버텨야 해요. 버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극복이 되는 겁니다. 극복을 하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아, 그게 나한테 복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거예요. 제가 늘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재앙이 복인 줄 알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하는 일마다 다 복이 된다.’

재앙마저 복이라면 세상에 복 아닌 게 어디 있겠어요? 수행을 하면 그런 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소임이 복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지, 질문자를 괴롭혀서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일부러 괴롭히겠어요? 질문자가 없다고 정토회가 안 돌아갈 줄 알아요? (모두 웃음)

정말 힘들면 소임을 그만둬도 돼요. 그러나 ‘맡은 일은 끝까지 한번 해본다’ 이게 수행이에요. 그러니 이런 수행적 관점을 갖고 해 보세요. 지금은 복인 줄 절대로 알 수가 없어요. 장애를 넘어 봐야만 비로소 복인 줄 알게 됩니다. 장애를 넘기 전에는 재앙이에요.

‘소임이 복이다’ 이 말은 장애를 넘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예요. 질문자는 장애를 아직 못 넘은 사람인데 장애를 넘은 사람들이 자꾸 복이라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나를 여기 붙들어두려고 하는 말이 아니냐’, ‘소임 맡을 사람이 없으니까 설득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이 자꾸 드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질문자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장애를 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장애를 넘고 나면 ‘아, 그게 참 나한테 복이었구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한번 정진을 해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활동 모둠과 일반 모둠으로 나누어져 있는 상황에서 일반 모둠으로 가기를 꺼려하는 보살님들이 계십니다. 소임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어떤 소임까지를 활동 모둠으로 구분할지 궁금합니다.
  • 온라인 활동이 일반화되고 있는데, 기존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습니다. 변화에 대처하는 수행자의 자세가 궁금합니다.
  • 직장 일과 병행하면서 소임을 하려니 공지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등 업무 이외에 틈틈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깨어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어떤 관점으로 임해야 할까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다음 일정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국내외에서 생방송을 시청한 정토회 정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 정진이 끝나고 나서는 지난 보름 동안의 수행을 돌아보며 마음 나누기를 한 후 수행 법회를 마쳤습니다.

점심에는 병원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추석 때 온라인 명상을 하면서 10일 동안 단식을 했는데, 그 이후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위에 계속 통증이 있어서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습니다.

병원 진단을 받고 나서 스님은 그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위궤양이 전체적으로 아주 심하다고 하네요. 젊을 때는 위궤양이 심할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런지 원인을 잘 모르겠어요. 심장약을 3년 동안 먹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인지, 올해는 농사일을 하느라 땀을 많이 흘리면서 레몬즙을 자주 마셨는데 그게 원인인지... 아무튼 위가 아프니까 기력이 회복이 안 되고 그래서 목소리도 회복이 안 되나 봐요.

그래서 10일 뒤에 조직 검사를 받기로 했어요. 조직검사를 받으려면 심장약 복용을 중지해야 하고, 그러면 몸을 무리하지 않고 좀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울력에 참석하기 어렵겠습니다. 양해를 해주세요.”

스님은 아쉽지만 앞으로 10일 동안은 좋아하는 농사 울력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와 사회 인사 한 분과 외부에서 미팅을 가진 후 오후 4시에 서울 신라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통일연구원에서는 매년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는 ‘신한반도 평화체제와 평화경제’를 주제로 발표가 있었는데 스님에게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해 발표를 요청했습니다.

통일연구원 고유환 원장님과 인사를 나눈 후 행사장에 들어섰습니다.

“쟁쟁한 학자분들이 계셔서 제가 참석할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꼭 와야 한다고 여러 번 요청을 해서 오긴 왔습니다만...” (웃음)

각 분야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끝난 후 스님은 2부 세션에 출연해 주제 발표를 했습니다. 스님은 남한이 어떤 관점을 갖고 동아시아 외교를 해나가야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잘 대응할 수 있는지 큰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지금 중국과 미국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원심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에 위치한 다른 나라들은 쇠붙이가 지남철에 이끌리듯이 양쪽으로 쏠려서 결국은 대립과 갈등으로 갈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의 미래 이익을 위해 새로운 발상을 제안하며

남한과 북한, 일본이 미·중의 패권 경쟁에 휩쓸릴 게 아니라, 오히려 세 나라가 잘 협력해서 미·중의 갈등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불꽃으로 튀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평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중립을 지킬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오랫동안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해왔기 때문에 미·중의 갈등이 심해지면 결국은 미국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고, 또 그것에 대한 중국의 실망이 한·중의 갈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한반도의 분단이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분단을 금방 극복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이루어서 균형을 잡겠다는 것은 미래의 얘기예요.

그러나 지금처럼 분단된 상태로도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북한과 중국이 긴밀하게 결합하고, 한국은 미국과 긴밀하게 결합하면서 남북관계가 단절되면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만약 남한과 북한이 긴밀한 결합을 한다면 굳이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역발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중국은 북한과 좀 긴밀하게 결합해주고, 미국은 남한과 좀 확실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남북 관계의 협력을 강화한다면, 지금의 분단 상태가 균형을 이루는 데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만 갖고는 어렵기 때문에 일본과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일본이 대국이라고는 해도 미·중에 비해서는 세력이 약하잖아요. 그래서 일본이 미국에 전적으로 편재되기보다는 남북한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미·중 사이에 어느 정도 중간 지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이익을 먼저 설정한 뒤에 과거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

그러려면 남북관계만 개선해야 할 게 아니라 북한과 일본의 관계도 개선해야 하고, 남한과 일본의 관계도 개선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자꾸 과거 역사만 가지고 얘기하면 풀 수 없어요.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는 한국과 일본도 협력을 해야 하고, 남한과 북한도 협력을 해야 하고, 북한과 일본도 협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동아시아 전체의 미래에 이익이라고 한다면, 미래의 이익을 먼저 설정한 뒤에 ‘그러면 과거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이렇게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립이 극에 달했던 독일과 프랑스도 그렇게 해결책을 찾아간 경우입니다. 과거 문제보다 미래에 어떻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냐에 중점을 두고 독일·프랑스 석탄 철강공동체를 먼저 구상했고, 이것이 이후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EC) 등을 거쳐 유럽연합(EU)의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미래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과거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접근할 때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일 관계에서는 자꾸 ‘과거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먼저 꺼내다 보니 쉽게 답이 안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루가 다르게 정세가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이 혼란기에는 협력해야만 우리의 살 길이 열린다면 그걸 먼저 목표로 설정해 놓아야 합니다. 그런 후 ‘과거에 이런 문제가 남아 있는데 이걸 어떻게 풀면 좋겠느냐’ 이렇게 논의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요?

그렇게 접근하면 한쪽은 진솔하게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반성을 하게 되고, 다른 한쪽은 너무 과거에만 매이지 말자는 식으로 나아가게 되어서,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결과로 분단에 대한 책임도 있기 때문에 한일 관계만 개선하려 하지 말고 북일 관계도 적극적으로 개선해 준다면 한일 관계도 동시에 개선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남·북·일 간에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새로운 발상을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수)

스님의 발표를 듣고 나서 백학순 세종연구소 소장님과 아키바 타다토시 히로시마 시장님, 김강일 연변대학 조선한국연구중심 교수가 집중 토론을 펼쳤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행사장에는 기자들 몇 명만 있었고,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발표 내용이 공유되었습니다.

심포지엄은 저녁 6시에 끝났습니다. 스님은 발표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국제 정세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7시가 넘어서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다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짐을 챙긴 후 8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운전하는 행자님이 피곤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밤 1시가 넘어서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함께 정토대전 편찬에 대한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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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희

감사합니다ᆢ
늘 잘 알게되어 햔시름 나 자신한테 고맙습니다

2020-11-02 19:09:48

실비아

스님의 건강이 걱정 되네요 부디 건강 잘 살피시길_()_

2020-10-27 15:16:02

정진

스님의 노고에 늘 공경 찬탄 올립니다.
부디 건강하시어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서 바른 가르침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0-10-26 15: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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