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0.11~12 새터민 온라인 통일축전, 두북에서 서울로 이동
“저를 무시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전에 외국인과 영어 통역으로 온라인 즉문즉설을 끝마친 후 오후에는 새터민들을 위한 온라인 통일축전이 열렸습니다.

10월 11일 새터민을 위한 온라인 통일축전

좋은벗들 역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온라인 통일축전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처음 열리는 행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원래 통일축전은 추석 명절 때 고향에 다녀오지 못한 새터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도 함께 지내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 운동장에서 같이 뛰고 즐기고, 노래자랑도 하던 프로그램입니다. 이 역시 올해는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3시 정각에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지난 17년 동안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 온 좋은벗들 소개 영상을 시청한 후 해마다 지내 온 합동 차례도 영상으로 함께 시청했습니다. 좋은벗들 활동가들이 지난 11일 임진각을 찾아 합동 차례를 지내고 온 모습이었습니다.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이 희망의 장소가 되길 기대하며 온라인 통일축전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자의 제안에 각자 어디에서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는지 댓글창에 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창원, 진주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400여 명의 새터민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즐거운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온라인 통일축전이 열린다는 공지가 나간 후 전국에서 8명이 노래와 춤을 녹화해서 보내왔습니다. 좋은벗들 사무국장을 지낸 노옥재 님을 비롯해 심사위원 두 명을 소개한 후 곧바로 장기자랑을 시작했습니다.

천안에서는 신나는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해운대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홀로아리랑을 불렀고, 아산에서는 분위기 있는 색소폰을 연주했습니다.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 가운데 스님을 모시고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즉문즉설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장기자랑 시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은 먼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예전처럼 운동장에 다 같이 모이지 못한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평년 같으면 운동장에 다 같이 모여서 직접 노래도 부르고, 운동회도 하고, 참 좋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연결할 수밖에 없네요. 그래도 닭 대신 꿩이라고 하잖아요. 현장에서 못하면 온라인으로라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웃음)

이어서 3명의 질문자가 화상으로 연결되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남한 사람들에게 차별을 받는 게 너무 힘들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남한 사람들의 차별과 무시가 저를 힘들게 합니다

“제가 처음에 대한민국에 정착할 때는 정부와 국민에게 참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평생 죽을 때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새터민들의 정착금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한에 넘어와 9년 동안 생활하면서 차별과 무시를 많이 받았고, 그게 저에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상처를 받은 새터민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금은 처음 가졌던 고마운 마음이 점점 식어가고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이 식어간다는 건 참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거든요. 이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

스님은 먼저 합장을 하고 공손히 사과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질문한 새터민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한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 가면 피부 빛깔이 다르다고 차별받을 때가 많습니다. 또 남성 중심의 사회에 가면 여자라고 차별받을 때도 있습니다. 또 한국 사람이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민족이 다르다고 차별을 받습니다. 일본에 가면 ‘조센징이다’ 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중국에 가면 ‘조선족이다’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 가면 고려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습니다.

그러면 같은 민족끼리는 서로 차별을 안 할까요? 그건 아니에요. 옛날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같은 조선 사람인데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쌍놈이라고 차별을 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안에서도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 와서 살면 좀 차별을 받습니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가서 살아도 좀 차별을 받고요. 또 남한 출신 중에 북한에 가 있는 사람 중에도 차별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남한 출신의 국군포로들은 북조선에서 얼마나 차별을 많이 받습니까? 또 공산주의가 좋아서 남한에서 월북해서 북한 정부의 고위 관리가 되었지만 남한에서 보낸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아서 결국 정치적인 숙청을 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자기가 사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가면 차별을 조금씩 받기 마련입니다. 외국에 가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국내에서는 지역적으로 차별을 조금씩 받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일부러 차별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조금 특이하면 그 점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분들이 시골 동네에서 낳은 아이들까지도 조금씩 차별을 받거든요. 혼혈이라고 차별받고, 말을 잘 못한다고 차별받습니다. 이것은 어디든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존재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게 세상사라는 거죠.

그것처럼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을 차별하는 것도 반드시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차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 중에는 남한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도 역시 차별을 받거든요. 지금 남한에는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약 3만 5천 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조선족은 한 60만 명 정도 들어와 있어요. 조선족은 어디 가도 다 만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조선족들을 위해서도 법회를 하고 있는데, 이분들의 얘기 들어보면 그분들도 늘 차별을 받는다고 해요. 남한에 오면 수입은 괜찮지만 차별받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런 차별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문제라는 거예요. 물론 이런 차별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상사에서는 늘 존재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미지가 안 좋은 건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 때문입니다. ‘핵무기를 만든다’, ‘독재 정부다’ 이렇게 늘 북한에 대해서는 안 좋은 이미지의 뉴스가 나오잖아요.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뉴스에서 보도되는 내용은 대부분 북한 정부의 안 좋은 이미지이지만 북한 주민들까지 연결시켜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북한이라는 단어는 북한 국가, 북한 정부, 북한 주민이라는 이렇게 세 가지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냥 뭉뚱그려서 이미지를 나쁘게 갖다 보니까 자기 마음에 안 들거나 하면 그 핑계를 북한에서 온 것으로 대는 겁니다. 마음에 들 때는 괜찮은데, 일을 잘 못할 때는 그렇게 핑계를 대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거예요.

조선족들도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조국에 왔다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여기 와서 살아보면 차별을 받게 되니까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서 참 재밌는 일이 생깁니다. 조선족 동포들이 중국에서 살 때는 한국과 중국이 축구 시합을 하면 누구를 응원할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중국에서 살 때는 중국을 응원하고, 한국에 와서 살 때는 한국을 응원해야 될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에 살 때는 전부 한국을 응원합니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라고 차별을 받기 때문이에요.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우려면 한국이 이겨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살면 중국에서 왔다고 차별을 받거든요. 이 때는 중국이 잘 되는 게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사는 조선족들은 전부 중국을 응원해요. 이것이 인간사이고, 현실인 겁니다. (웃음)

차별을 합리화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차별은 분명히 잘못됐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게 인간 사회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주를 할 때는 그 정도의 차별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옮겨간 데서 잘 살 수 있습니다. 이걸 힘들어하면 그 사회에서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외부에서만 보면 대한민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보여질 때가 많은데, 막상 살아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미국에 가서 살면 다 좋을 것 같지만, 막상 미국에서 살아보면 인종이 다르다고 차별받고, 말이 서툴다고 차별받는 등 여러 가지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불편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이게 인간의 삶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다시 중국에 가서 살 수도 없는 일이고요. 남한에서 차별받는 것을 못 견뎌서 영국이나 캐나다로 이민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가면 또 다른 차별을 받게 돼요. 그래도 기분은 덜 나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 가서 살면 북한에서 왔거나 남한에서 왔거나 모두 똑같이 차별을 받거든요. 대등하게 차별을 받기 때문입니다. (웃음)

그런데 남한에서는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차별을 받으니까 굉장히 기분이 나쁜 겁니다. 그러나 5천만 국민을 어떻게 다 깨우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는 자기가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때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차별을 스스로 해소하는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저를 무시하면 저도 같이 무시합니다. 상대방이 저에게 예의를 지키면 저도 예의를 지킵니다. 그게 제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그건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는 게 아니라 이미 스트레스는 받았고.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 거죠. 같이 무시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네요.” (웃음)

“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어요.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가 예의 없이 행동하면 저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갑니다.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계속 생활을 이어가요. 지금 현재는 그렇게 살아가니까 마음이 좀 편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됩니다.”

“그러면 늘 쫓겨 다녀야 되잖아요.”

“이 세상에 병원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른 병원으로 가면 되죠.”

“예, 병원이 많은 건 맞아요. 이 병원이 나를 무시하면 저 병원에 가면 되죠. 이 은행이 나를 무시하면 저 은행에 가면 됩니다. 이 가게가 나를 무시하면 저 가게에 가고, 이 식당이 나를 무시하면 저 식당에 가고, 그렇게 하셔도 돼요.”

“그러면 저는 손해 입는 게 없고, 그 병원이 손해이니까요.”

“그런데 다른 병원에 갔는데도 또 차별을 받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다른 데에 가죠.”

“다른 데에 가서 또 그러면 어떡할래요?”

“또 다른 데로 가죠.”

“불교 경전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부처님이 어떤 나라에 갔는데 왕이 걸식을 하는 출가수행자들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왕한테 배척을 당하니까 승가공동체의 전 성원이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러자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부처님, 이 나라에서 우리를 배척하니까 다른 나라로 갑시다. 다른 나라로 가면 우리를 환영하는 데가 많잖아요.’

‘그러면 다른 나라에 갔는데 또 우리를 차별하면 어떡하니?’

‘그러면 또 다른 나라로 가죠, 뭐.’

‘아난다여, 그 나라에서 또 차별을 하면 어떡하겠니?’

‘또 다른 나라로 가죠, 뭐.’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너는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쫓겨 다니니?’

그제서야 아난다 존자도 수긍을 했습니다. 이 말은 좀 차별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자꾸 피해 다니지 말고 웃으면서 그냥 적응하라는 거예요. 그게 내가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네가 차별하니까 나는 옮겨간다, 이것도 한 방법이에요. 그것도 괜찮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차별할 때 이렇게 속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이고, 어리석은 사람아. 남한 사람들이 교육도 많이 받고, 잘 살기는 하는데, 의식 수준이 저렇게 낮아서야 어떡하나. 쯧쯧…. 불쌍하구나!’

이러면서 그냥 봐주세요.”

“남한 사람들이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맞아요. 모든 사람을 그렇게 보라는 게 아니라 차별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봐주라는 겁니다. 어리석어서 그런 차별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어리석은 사람아, 언제 사람이 되려고 그러냐’ 이러면서 봐 주세요.”

“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제 마음이 훈훈해지네요.”

“다시 한번 남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남한 사람들이 학교 교육을 잘 받아도 이런 부분은 개선이 안 되네요. 남한 사람들이 아무리 경제적으로는 잘 산다고 해도 이런 의식 수준이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구나. 쯧쯧’

이러면서 좀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봐주는 마음으로 한 번 대응해 보면,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 병원을 안 옮겨 다니면서도 잘 살 수 있어요. 또 옮겨 다녀도 괜찮아요. 내 돈 내서 내가 치료받는데, 차별받으면서까지 돈을 낼 필요는 없잖아요. 식당이 한두 개도 아니고, 은행이 한두 개도 아니고, 병원이 한두 개도 아니잖아요.”

“저를 차별하는 상대방이 손해 보는 것이니까요.”

“네, 맞습니다. 아주 현명하십니다.”

“네,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질문자도 환하게 웃고, 스님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2명과 더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학생이 우아하게 가야금을 연주하고, 초등학생 어린이가 천태만상이라는 트로트를 신나게 불렀습니다. 작년 통일축전 노래자랑의 우승자가 나와 ‘잊힌 계절’이라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한복을 입은 남자분이 ‘일소일소 일로일로’라는 노래를 신나는 춤사위와 함께 불렀습니다.

신명 나는 장기자랑 시간을 끝내고 다시 즉문즉설 2부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서면으로 5개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마치고 장기자랑 시상식을 했습니다. 올해 통일축전의 대상은 멋진 춤사위와 함께 ‘일소일소 일로일로’를 부른 분에게 돌아갔습니다.

스님도 큰 박수로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장기자랑까지 끝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행사를 마치며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방식으로 통일 축전을 열고, 우리의 꿈인 통일을 기원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년에 대면이 가능해지면 다 같이 모여서 사찰 구경도 하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 현장에서 노래도 하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1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누가 이기든 지든 아마 미국과 북한 사이에 모종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 되면 좀 빨리 대화가 시작될 것이고, 바이든 대통령이 되면 한 6개월 정도 지나야 대화가 시작될 겁니다. 미국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그전 정부의 정책을 리뷰한 후 새로운 정책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지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엊그제 북한 지도자도 코로나 문제만 끝나면 남북관계를 개선하자고 말을 했으니까, 새터민 여러분들이 고향에 갈 수 있는 날도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터민 여러분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도 하고, 고향에 송금도 할 수 있고, 또 직접 만날 수도 있는 그런 날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기를 발원하면서 이번 통일 축전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통일을 기원하며 ‘다시 만나요’ 노래를 부르며 방송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고 저녁 8시 30분부터 온라인 일요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일요명상 소식은 내일 계속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0월 12일

온라인 일요명상을 마치고 다시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점심을 먹고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내일 서울 정토회관에서 니와노 평화상 수상식 연설을 녹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벽기도와 발우공양을 마치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행자들은 서울에 가는 차에 보낼 야채를 수확하고 스님은 비닐하우스를 둘러보았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비닐하우스 문을 꽁꽁 닫고 있으니 열기가 후끈했습니다.

2동 호박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암꽃이 많았습니다. 붓으로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옮겨주었습니다.



들깨 모종도 어느새 많이 자랐습니다.

얼갈이배추를 뽑고 난 자리에 들깨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잡초를 뽑고 야채 찌꺼기를 걷어낸 후 여린 모종을 조심스럽게 심었습니다.




모종이 새로운 땅에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물을 흠뻑 주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도구를 닦아 제자리에 놓은 후 스님은 점심시간까지 논과 밭 뒤에 떨어진 밤을 주웠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수확한 야채를 가득 싣고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이비인후과를 다녀오고 저녁에는 평화재단에서 윤여준 전 장관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스님은 직접 키운 고구마, 고추, 밤, 오이, 가지를 조금씩 담아 윤 전 장관님에게 드렸습니다.

내일은 서울 서초법당에서 니와노 평화상 수상식 연설을 녹화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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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질문자분의 사연에서 그 억울한 마음이 전해져서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부디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10-21 19:51:14

김희란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20-10-20 11:31:39

굴뚝연기

[‘아난다여, 너는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쫓겨 다니니?’]
저는 북에서 오신 분들 가끔 뵈면,친해지고 싶고,잘해주고 싶던데요^^스님께선 어찌 조선족분들 고뇌도 아시구요^^진짜 세상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네요^^*에궁스님~장삼이 낡고 기워입으시고ㅜㅜ제가 바느질을 배웠으면,스님인물 돋보이시게 장삼한벌 해드릴텐데요ㅜㅜ보라색꽃이 참 특이하네요~잘봤습니다^^*

2020-10-16 23: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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