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9.24. 정토대전 편찬 회의
“부처님 당시에는 불교교리란 것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공동체 법사단과 회의했습니다.

주황빛으로 익어가는 감을 보며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스님은 비닐하우스에 도착하여 뒤로 먼저 가서 떨어진 밤을 주웠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지.”

하루 만에 밤송이가 또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주머니 가득 밤을 줍고 비닐하우스 3동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봄에 파종하고 여름 내 땅속에서 익은 땅콩을 캤습니다.

줄기를 쑥 뽑으니 땅콩이 주렁주렁 딸려 나왔습니다.

“줄기마다 땅콩이 달렸네.”

땅콩은 뿌리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꽃에서 자란 씨방 밑부분이 길게 자라 땅속으로 들어가 익습니다. 땅콩 한 알이 싹이 트고 꽃을 피워 수많은 땅콩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땅속 줄기에 주렁주렁 달려 올라오는 땅콩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피어납니다.


스님은 땅콩 줄기를 한쪽에 가지런히 놓고 행자들에게도 당부했습니다.

“땅콩 줄기는 나중에 정리하기 좋도록 한 쪽에 가지런히 놓아주세요.”

“네.”

땅콩을 줄기에서 떼어내고 크고 실한 것과 작고 부실한 것으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캐는 것보다 땅콩을 떼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스님과 행자들은 말없이 땅콩을 캐고 땄습니다. 비닐하우스 끝으로 갈수록 땅콩을 담은 상자가 가득 찼습니다. 구부정한 자세로 한참 땅콩을 따다 보니 허리가 뻐근합니다.



땅콩을 다 캐지 못했는데 울력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남은 땅콩은 내일 캐기로 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묵직한 땅콩 상자를 창고로 옮겼습니다.

비닐하우스 입구로 나가는데 땅콩 줄기가 이리저리 놓여 있었습니다. 어제 땅콩을 캔 행자들이 줄기를 가지런히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스님은 땅콩을 가져다 놓고 줄기를 한쪽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다음에 일을 하기 편하도록 하는 게 좋아요. 이렇게 가지런히 두면 내일 치울 때 편하잖아요.”

정리를 다 하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땅콩을 한 알 까 보니 속이 꽉 차 있었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11시부터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회의했습니다.


정토대전은 총 5권의 책으로 만들 예정인데, 오늘은 그중 첫 번째 책인 경전 모음집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습니다.

본격적인 내용 검토에 앞서서 부처님의 전생담을 넣을지 말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담을 정토대전에서 빼면 어떨까요?

“앞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계적으로 전할 것을 생각하면 부처님의 전생담은 정토대전에 넣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생담은 인도의 설화가 주된 내용인데, 인도의 설화를 부처님의 위대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정토회가 좀 더 수행적 관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분명히 하면 좋겠어요.”

전생담을 넣지 말자는 한 법사님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법사님들은 이에 대한 생각을 다양하게 말했습니다. 대화를 경청한 후 스님도 이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네. 일리가 있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부처님의 위대함을 설명하기 위해 인도의 설화를 넣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일반인들도 쉽게 부처님의 보살사상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넣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시골 할머니에게 ‘연기’, ‘무아’를 말한다면 이해를 못할 거예요. 불교가 인도에서 대중화 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하려다 보니 나온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만약 이런 내용들을 다 빼고 부처님의 가르침만 담는다고 하면, 우리의 입장은 선불교가 취했던 입장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대중화는 상당 부분 포기를 해야 될 거예요.

첫째, 경전을 기록한 당시 인도 사람들은 과거 생애에 이런 공덕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사유 체계를 가졌기 때문에 전생담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방식으로 부처님의 수행 이야기를 담는 과정에서 전생담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배경 설명을 앞부분에 먼저 넣고 나서 전생담을 책 속에 넣으면 어떨까요?

사실은 소승불교의 논장과 대승불교의 경전은 역사적으로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승불교는 원문을 그대로 두고 시대에 맞게끔 재해석한 것을 논장이라고 불렀다면, 대승불교는 그것을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경전이라고 불러도 소승불교의 입장에서는 비불설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승 경전이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 상황에 맞는 직설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가령 아함경의 논장은 제가 금강경을 여러분에게 해설해주는 것과 같다면, 대승 경전은 그런 해설 없이 제가 곧바로 즉문즉설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다’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해설을 하느냐는 거죠.

당시의 시대 상황이 경전을 해설하는 방식으로는 불교를 대중화시키기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대승 경전이라는 새로운 경전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금강경 같은 반야 사상의 핵심은 법집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전통불교의 교리를 고집하는 법집을 타파하고 나서 그 내용이 수용이 되니까 나중에 법화경과 같은 대승 경전들이 더 발전해서 나오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생담은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을 앞에 넣은 다음 경전 속에 넣는다면 부작용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면 정토회는 전생을 인정하는 것인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조금 더 연구를 해봅시다.”

법사님들도 활발하게 의견을 말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전생담을 읽었을 때 불교와 담을 쌓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법륜 스님의 해설을 듣고 나서 너무 속이 시원해지면서 정토회에 들어오게 됐거든요. 그런 것처럼 앞부분에 해설을 잘해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생 이야기라고 소개하는 순간 오히려 부처님의 위대함이 반감될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전생 이야기 자체가 전혀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요.”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팽팽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용은 만들되 정토대전에 넣을지 말지는 나중에 결정합시다. 우선 기존에 나온 내용들을 토대로 편집까지는 해놓고, 막판에 싣지 말자고 결정이 나면 그때는 별책으로 발간해도 되니까요. 여기까지 논의합시다.”

다음은 경전 속에 담겨 있는 부처님의 일생을 어떻게 편집해서 넣을 것인지 토론했습니다. 스님은 20여 년 전에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을 언급하면서 이번에는 그때보다 내용을 더 보완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어떻게 한 권의 책 속에 담을 것인가

“왕조 시대에 왕을 칭송한 이야기는 잘 남아 있지만,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한 오늘날 중국에서도 만약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 있으면 다 검열해서 삭제하잖아요.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기록도 결국 경전을 기록하는 사람이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쓴 사람에 따라 역사 기록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역사 기록이 다릅니다. 그걸 감안해서 경전의 내용을 봐야 합니다.

전체 목차를 보면 부처님의 일생에서 중간에 건너뛴 부분들이 일부 있어요. 사문유관에서 생로병사를 경전에서는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잘 살리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출가했을 때 처음에는 혼자 공부하느라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이 시기의 묘사도 더 구체적으로 넣어보면 좋겠어요. 특히 6년 동안 고행을 할 때의 모습들이 더 보강이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성도 후에 7주 간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부처님이 12연기를 역순으로 살펴보는 얘기가 더 자세하게 들어가도 좋을 것 같아요. 단순히 7주 간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볼 수 있거든요. 12연기는 성도 전 깨달음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성도 후 교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성제를 최초로 설법한 곳은 사르나트이지만, 그 준비는 깨달은 후 7주 동안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연결 고리가 조금 더 분명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순서가 조금 조종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크게는 초기 경전, 대승 경전, 선, 이렇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초기 경전은 다시 부처님의 일생, 교리, 율,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야 할 것이고요. 교리에 해당하는 것이 진리에 대한 말씀인데, 그것은 다시 수행에 대한 말씀, 사회에 대한 말씀으로 나눌 수 있겠죠.

우선 전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할 수 있습니다. 경전을 순서대로 읽었을 때 오는 감흥도 필요하지만, 본인이 공부를 하다가 ‘이 말씀이 어느 경전에서 나온 말씀이지?’ 하고 찾을 때 필요한 검색적 성격의 경전도 필요합니다.”

경전을 통합적이고, 수행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설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불교 서적들이 부처님의 일생, 교리, 율을 다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이 세 가지를 통합적으로, 수행적으로 말씀해주신 것이 참 좋았거든요.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은 삶을 어떻게 살자는 가르침이니까요.”

스님은 부처님 당시에는 원래 교리란 것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는 교리란 것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느냐에 대해 현실적 실천방법에 대한 말씀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인식에 오류를 범해서 괴로움이 발생하니까, 왜 오류가 생겼는지 설명을 하다 보니 교리가 나온 거예요. 12연기 따로 있고, 사성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성제에서 집성제로 가는 과정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하는 12연기가 나온다면, 집성제에서 멸성제로 가는 과정에서 해탈로 가는 12연기가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사성제 안에 12연기가 들어 있습니다. 팔정도 역시 사성제 안에 들어 있어요. ‘무상’, ‘무아’, ‘고’라고 하는 삼법인도 사성제 안에 들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처음에 설법한 내용은 딱 세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첫째, 중도입니다. 이것은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둘째, 사성제입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과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팔정도입니다.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가 핵심이고, 나머지는 이 속에 모두 들어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근본 교설을 공부하고 나면 명상을 해야 합니다. 명상을 제대로 하려면 이런 원리에 입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사님들은 처음에 경전을 읽으며 많이 헤맸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전을 아무리 읽어도 눈에 안 들어왔는데, 계속 보다 보니까 이제는 조금 경전이 읽힙니다.” (웃음)

무엇보다 용어에 대한 해석이 다 달라서 어려운 점이 많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경전도 경전이지만 용어에 대한 해석이 다 달라서 용어 해설집도 하나 만들면 좋겠어요.”

스님은 용어에 대한 해석을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용어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언어는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마다 사물을 다 다르게 보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가을에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시를 한 줄 쓰더라도 그 시를 쓴 사람의 마음과 그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요. 그래서 그 시를 쓴 사람의 마음이 그 시의 진짜 뜻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시인은 그렇게 썼지만, 그 시를 읽는 사람은 자기 마음으로 읽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 시를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처럼 부처님의 말씀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사람들이 기록으로 남길 때는 각 교파마다 강조점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계율에 대해서도 강조점이 다르고, 경전을 선택할 때도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각 교파마다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도 조금씩 달랐던 거예요. 지금도 학자들마다 용어를 다르게 해석하거든요. 그런데 학자마다 해석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용어가 경전에 인용되어 쓰일 때도 각 경전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용어의 정확한 의미가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초기 불교에서 사용한 용어의 의미를 비교적 정확히 이해하려면, 미얀마 같은 곳에 가서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이 용어를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나는 이 용어를 이렇게 체험하고 있다’라고 대답한다면 ‘아, 그 말은 우리 말로는 이런 의미이겠구나’ 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처음에 한문으로 된 불교 경전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용어가 팔정도에서 ‘정명(正命)’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대부분의 책에서 ‘바르게 생활하라’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바르게 생활하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제가 이해하게 된 의미는 ‘명(命)’이라는 글자가 수행자가 보시를 받을 때 어떤 자세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겁니다. 수행자는 남의 점을 봐줘서 보시를 받거나, 시를 읊어주고 보시를 받거나, 그림을 그려주고 보시를 받거나, 강의를 해주고 보시를 받거나, 이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수행자가 고행을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아이고, 저 스님은 고행을 하다니 불쌍하다’ 이런 마음을 내도록 해서 보시를 받는다면, 그것은 바른 보시가 아니라는 의미예요. 즉, 보시를 받는 것이 수행자로서 정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정명’의 뜻입니다. 현대 용어로 표현하자면, 올바른 직업윤리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원래 팔정도는 출가한 수행자들을 위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외에도 오늘은 주로 부처님의 일생을 어떤 경전에서 어떤 내용을 가져와서 편집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를 했습니다.

“준비해 온 내용에 대해서는 다 논의를 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공동체 법사단은 스님에게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회의는 저녁 7시가 다 되어 끝이 났습니다. 창 밖에는 벌써 해가 졌습니다. 저녁 예불을 하고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도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금요 정기법회가 있습니다.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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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정토대전 기대됩니다.

2020-10-05 10:27:30

무지랭이

감사합니다~^^

2020-09-28 19:55:34

실상

일반인들도 쉽게 부처님의 보살사상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전생담이 경전에 포함되었을거라는 새로운 말씀이 신선하고 이해됩니다.

2020-09-28 14: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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