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9.13 온라인 일요 명상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은 로봇처럼 살라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로 하루를 시작한 후 낮에는 원고 교정을 하고 태풍으로 넘어진 벼를 세운 뒤 저녁에는 일요 명상수련을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비구름 사이로 흐릿한 햇살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제에 이어 몸이 불편한 마을 어르신 밭으로 갔습니다. 오늘도 풀숲을 정리했습니다.

낫으로 풀을 베는데 풀이 억세서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땅두릅은 작은 나무 만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안 되겠어요. 예초기를 돌려봅시다.”

스님은 줄로 된 예초기를 돌려보았습니다. 예초기는 억센 풀을 베지 못하고 겉돌거나 덩굴에 엉겨버렸습니다.

“안 되겠네요.”

농사 창고에서 쇠날로 된 예초기를 가져와 다시 시도해보았습니다. 줄날 보다 훨씬 무겁고 위험했지만 풀이 잘 베어졌습니다.



매캐한 기름 냄새와 왱왱 거리는 소리 속에서 스님은 시원하게 풀을 다 벴습니다.

예초기를 다 돌리고 다시 낫을 들었습니다. 풀을 치우고, 예초기로 안 베어진 부분을 낫으로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풀을 다 베고 나니 땅이 드러났습니다. 사면과 땅 사이에는 수로도 나 있었는데 물이 가득했습니다. 산사태가 나서 수로가 막혀있었습니다. 유난히 모기가 많다 했더니 고인 물에서 모기가 자랐나 봅니다.

삽을 들고 수로를 뚫었습니다. 진흙에 풀 줄기, 뿌리가 엉켜있어서 삽질 한 번에도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은 이내 아래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원시인처럼 사는 것 같네요. 밭을 다 개간했어요.”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은사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이 이번에 새 책을 출간하는데 스님이 그 책의 발문을 써주기로 했습니다. 원고를 완성한 후 공동체 법사단과 함께 원고의 내용이 적절한 지 검토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밥 먹고 나서 운동 삼아 벼세우기 울력을 같이 합시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오후 3시에 저녁 공양을 하고 3시 40분부터 느티나무 아랫논에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세웠습니다. 몸이 안 좋거나, 다른 일이 있는 사람을 빼고 공동체에 모든 사람이 울력에 참가했습니다. 논에 도착하니 스님은 이미 벼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행자들도 얼른 논 장화를 신고, 짚을 한 단씩 들고 벼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행자들에게 스님은 벼를 세울 때 ‘연기’를 떠올려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연기의 노래를 부르면서 벼를 세워봅시다.”

이어서 노랫말도 읊어주었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마치 볏단이 서로 의지하듯이.”(웃음)

“네!”

사사삭 벼를 세우는 소리, 철퍽철퍽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음악처럼 되풀이 되었습니다.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울력은 2시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느티나무 아랫논은, 계속 비가 와서 태풍 ‘하이선’이 지나가고 6일 만에 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짚이 부족하자 스님은 오래 젖어 갈색으로 변한 벼잎을 이용해 벼를 세웠습니다.

한쪽에 벼를 다 세우고, 다른 쪽으로 가서 또 벼를 세웠습니다.


벼를 다 세우고, 피를 뽑았습니다.


논둑에 던진 피는 모아 트럭에 실었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논 옆 수로에서 장화와 장갑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애썼어요.”

벼를 다 세우고 난 후 해질녘에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저녁 8시 30분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온라인 명상수련을 하며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시작한 온라인 일요 명상수련이 벌써 23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스님은 지난주에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 소식을 전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간 잘 지내셨어요? 한반도에는 지난 열흘 동안 세 개의 강력한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바람이 아주 강했고 많은 비를 뿌렸습니다. 피해가 많았지만 예상보다는 피해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도 큰 피해는 없지만 벼가 쓰러진다든지 여기저기 피해가 있어서 아직도 복구 작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2시간 이상 쓰러진 벼를 세우는 일을 해서 허리가 아프고 매우 고단합니다. (웃음)

만약에 코로나 바이러스만 없었다면 정토회 회원들이 봉사활동을 많이 가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텐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 두북 수련원에 있는 농장도 피해를 입었지만 정토회 회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방문을 못 합니다. 공동체 성원들만 시간을 내어 복구를 하다 보니까 복구가 계속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외국인이 영어로 올린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두 명의 질문이 올라왔는데 그중 한 명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은 로봇처럼 살라는 건가요?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인생을 살려면 긍정적인 감정도 버려야 한다고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선 즐거움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 삶이 살 가치가 있나요? 저에게는 감정 없는 로봇의 삶처럼 보입니다.”

“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 맡거나, 혀로 맛보거나, 이렇게 외부의 경계와 내부의 감각기관이 부딪치면 쾌하거나 불쾌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런 느낌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습니다. 느낌은 자동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불쾌한 반응은 곧바로 기분 나쁜 감정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즉,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괴로운 상태로 나아가게 됩니다. 반대로 쾌한 반응은 곧바로 즐겁고 기쁜 감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괴로운 감정에 휩싸이면 침울해지거나 낙담을 하는 등 감정이 매우 깊게 가라앉습니다. 또는 화가 나서 감정이 크게 긴장하기도 합니다. 즐거운 감정에 휩싸여도 역시 마음이 들뜨고 흥분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감정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그 결과 심리가 불안정해지고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것이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거기에 사로잡히게 되면 흥분 상태가 되기 때문에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고, 알아차림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명상은 쾌하고 불쾌한 느낌이 일어날 때 다만 그 느낌을 알아차림으로 해서 감정이 거기에 휩싸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면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돌이나 나무처럼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각이 굉장히 예민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거나, 맛없다고 안 먹는 것이 우리가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명상을 통해 알아차림이 깊어지면 음식의 아주 세세한 맛까지 다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맛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맛이 없다는 감정에 휩싸이거나, 맛있다고 흥분하지 않습니다. 음식의 맛에 따라 쾌하거나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다만 알아차리면서 감정에 휩싸이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음식을 먹을 뿐입니다. 오히려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감각이 무디어질 뿐 아니라 흥분해서 음식을 많이 먹거나 안 먹는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명상을 계속하면 먹든, 보든, 듣든,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감각을 느끼게 되지만 그 감각에 감정적으로 개입해서 흥분하지 않는다고 이해하시면 돼요.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보다 질문자가 직접 명상을 해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목석이나 돌멩이 같이 되려고 우리가 명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이어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하기 전 스님은 다시 한번 애쓰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마음을 한가하게 가지셔야 됩니다. 애쓰지도 말고, 자꾸 뭘 의도하려고도 하지 말고, 각오나 결심도 하지 말고, 몇 번 호흡을 놓친다고 포기하지도 말고,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생각에도 의미 부여를 하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의미 부여를 해서 따라갔다면 ‘놓쳤구나!’ 하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꾸만 애를 쓰며 어렵게 명상을 하는데, 진짜 한번 편히 쉬어보세요. 그런데 편안하면 멍청해지기 쉽습니다. 멍청해지지 않기 위해서 또렷이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지난주처럼 40분 동안 명상을 했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하고,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좀 편안하게 명상을 하셨습니까? 잘해야 한다, 잘못했다, 자꾸 이렇게 평가하지 말고 그냥 놓치면 알아차리고, 또 놓치면 또 알아차리고, 다만 할 뿐이라는 관점을 갖고 해 보세요.”

이어서 수십 개의 소감이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아픕니다

My legs ache.”

“짜릿한 뭔가가 계속 올라왔습니다.

I felt a little kind of a buzz of sensation.”

“망상이 심합니다.

A lot of distractions today.”

“오늘은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Time passed really quickly today.”

“편안했는데 좀 졸았어요.

I was relaxed but I dozed off a little.”

“중간에 지루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There was a sense of boredom in the middle.”

“집중 시간은 짧았지만 좋았습니다.

The time I focused was short but it was good.:

“시간이 빨리 지나갔습니다.

Time went by really fast today.”

영어로도 소감이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좀 이완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숨을 더 깊이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Thank you. I have noticed more relaxation today. I was with my breath it was profound. It stopped a bit after the inhale and then after the exhale I just noticed this.”

“시작할 때는 굉장히 생각이 많아서 긴장했었는데, 이제 제대로 숨에 집중하니까 잡념도 많이 사라지고 이완을 잘하게 돼서 명상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It was a lot of mental chatter at the beginning of meditation that led to tension as I focused on the breath and truly relaxed the tension and mental chatter disappeared.”

매주 비슷한 소감이 올라오는 것 같지만, 꾸준히 명상을 해오고 있는 분들 중에는 조금씩 변화도 느껴집니다.

“조금씩 더 쉽게, 그리고 더 바르게 해나가시고 있는 것 같네요.”

방송을 마칠 무렵 외국인이 영어로 질문을 올렸습니다.

호흡과 감각을 동시에 알아차릴 수가 있나요?

“호흡에 집중하는 것 외에도 명상을 하면 몸의 다른 감각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오늘 땀 흘리는 것과 머리카락이 이마에 닿는 감각 때문에 오히려 호흡을 놓쳤습니다. 어떻게 하면 호흡과 감각을 동시에 알아차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감각보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게 중심입니다. 호흡이 아주 미세해지면 조금 더 집중을 해야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미세한 호흡까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집중이 되어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둔해서 알아차리지 못한 몸의 여러 부위에서의 아주 미세한 감각까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도 사실은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발끝에 마음을 두면 발끝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때는 동시에 호흡까지 함께 알아차리는 게 아니라 발끝에만 딱 주시를 해야 합니다. 그때 알아차린 미세한 감각이 있으면 그냥 ‘이런 감각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으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이때 감각이 있는데 못 느끼는지, 감각이 없어서 못 느끼는지는 구분할 수가 없어요.

잡념이 생겨 호흡을 놓치고 감각을 못 느끼게 되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서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집중이 잘 되어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리게 되면, 다시 몸의 다른 부위의 감각을 알아차려 봅니다. 이때 ‘감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의도를 자꾸 일으키면 안 됩니다. 감각은 관심을 두면 그냥 느껴지는 거예요. 감각이 느껴지지 않으면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여기까지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은 추석 연휴에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수련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추석 때 한국은 5일간 연휴인데, 정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을 막기 위해 여행을 가거나 고향을 방문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발표했습니다. 가능하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라는 거죠.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 명절 때 고향에 안 가면 집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이렇게 혼자 사는 분들을 위해서 추석 연휴 5일간 온라인 명상수련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혼자 사시는 분들은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에 많이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고 스님은 국제국 활동가들과 몇 가지 의논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창밖으로 찬바람이 씽씽 불었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 온라인 일요 명상은 유튜브에서 다시 보기 하실 수 있습니다.

▲ 영상 보기

전체댓글 49

0/200

김현숙여래심

매주 일욜 저녁 명상에 나태함을 참회합니다

2020-10-13 00:03:50

신영철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2020-10-07 10:04:14

손혜숙

농사 짓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님과 함께라면 웬지 어렵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스님께서는 별일이 아니란 듯이 해나가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2020-09-23 06: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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