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9.10 농사일, 공동체 법사단회의
“한 부모 아빠입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회의를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비닐하우스로 가서 열무와 배추를 솎아주었습니다.

오늘은 태풍으로 망가진 호스를 다시 연결하려고 했는데, 어제 벼세우기 울력을 하고 나서 함께 호스를 연결할 젊은 행자들이 몸져 누었습니다. 일감을 변경해 산 아랫밭으로 갔습니다.

산 아랫밭에 이르니 행자들이 배추에 거름을 주고 있었습니다. 어리디어린 몸으로 태풍을 세 차례나 맞은 배추들의 모양새가 볼품없었습니다. 아랫밭을 담당하고 있는 행자가 스님에게 함께 거름을 주자고 했지만 스님은 톱과 낫을 들고 울타리 주변으로 갔습니다.

“저는 힘든 일을 해야지요.”

울타리 둘레에 덤불을 치우고 나무에 잔가지를 잘라주었습니다.



산 아랫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스님은 작은 방죽을 두 군데 만들었는데, 태풍이 오기 전날, 미리 물이 빠지도록 방죽의 둑을 다 터놓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갔으니 다시 물을 모을 수 있도록 둑을 막았습니다.


길 건너에 있는 방죽의 둑을 막고 밭 울타리 바로 옆에 있는 방죽의 둑도 막았습니다. 먼저 큰 돌을 단단히 박았습니다. 그 다음 방죽의 바닥을 더 깊이 파고 진흙으로 둑을 쌓았습니다.




헌 비닐을 주워와 둑 위에 묻어주었습니다. 둑까지 물이 차오르면 둑이 터지지 않고 물이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연장을 방죽 물에 씻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땀을 안 흘릴 수는 없네요.”

고무장갑 안까지 땀이 차서 장갑을 벗으니 손이 축축했습니다.

이상기후에 의해 바뀐 생태계 때문인지 여름철에만 기승을 부리던 모기가 선선한 가을의 문턱에서도 극성입니다. 몸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수십 방을 뜯겼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12시부터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태풍 피해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태풍이 세 개나 지나갔는데 지리산 수려원은 큰 피해가 없었어요?”

“들깨는 잘 묶어 놓아서 쓰러지지는 않았고, 고추가 병이 들어서 큰일입니다.”

“봉화 수련원은 큰 피해가 없었어요?”

“피해는 없었습니다.”

지난 전국대의원회의 이후 두북특별위원회가 해산되고 어제부터 공동체 법사단 주례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법사님들은 어제 공동체 법사단회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몇 가지 안건에 대해 스님으로부터 점검을 받았습니다.

수행법회, 정기법회, 불교대학, 경전반에서 하고 있는 온라인 법회 의식에 대해 꼼꼼히 점검한 후,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 진행 계획, 정토대전 편찬 계획과 사회사상서 목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오후 내내 논의를 한 후 저녁 6시가 넘어서 마지막 안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이 화엄경 보현행원품과 불교 5대 수행을 합본하여 불타 경전 조사 어록을 발간 유포할 예정인데, 책 속에 들어갈 발문을 써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은 발문의 내용에 무엇을 쓰면 좋을지 법사님들의 의견을 물어보면서, 청소년 시기에 도문 큰스님과의 만남이 스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자발적으로 아침마다 첨성대 주변을 청소했어요. 눈이 오면 미추왕릉에 있는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곤 해서 장대를 가져가 그 눈을 털기도 했습니다.” (웃음)

“그렇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법사님들이 궁금해하며 묻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 형성은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받은 영향은 성인이 되었을 때 받은 영향보다 더 크고 오래갑니다.

청소년 시기에 만난 불심 도문 큰스님

저는 중학교 때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무한한 우주에 대한 탐구와 세상 만물의 운행 원리는 생각만 해도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불심 도문 큰스님을 만난 인연으로 저는 과학자가 아닌 한 사람의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불교학생회에 다녔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불교학생회 부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분황사에 큰스님이 와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임원들과 함께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 큰스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분황사에 자주 가게 되었고, 큰스님의 법문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수많은 법문 중에서 저는 불교의 우주관에 대한 내용을 듣고 가장 큰 감흥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은 이미 옛날에 우주를 훤히 꿰뚫어 보셨구나. 아무리 내가 노력해서 아인슈타인 이상 가는 과학자가 된다 하더라도 우주의 티끌만 한 것도 하나 밝혀내기 어려울 텐데, 부처님처럼 깨달으면 온 우주를 한눈에 볼 수 있겠구나.’

이렇게 불교의 우주관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불교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는 많은 법문을 저에게 들려주셨고, 저를 수행자의 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절에 들어오고 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경주 불교학생회 회장과 영남불교연합 학생회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는 뒷전이 되고, 영남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학생 포교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리어카를 끌고 황룡사 터에 가서 기와 조각을 주워 깨끗하게 씻은 후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뭡니까? 금은보화입니까? 아닙니다. 조상의 얼입니다. 장롱 속에 금은보화를 보관할 게 아니라 조상의 얼이 담긴 기와를 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웃음)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저는 청소년 시기에 자연스럽게 큰스님의 원(願)인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이 저의 원(願)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어떤 제안을 받으면 보통 “이건 못합니다”, “그걸 어떻게 합니까?” 이럴 때가 많은데, 저는 큰스님의 영향으로 이런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큰스님은 ‘하자!’ 이렇게 결정을 하시면 어떤 장애가 있어도 그냥 하시니까 저도 처음에는 못 할 것 같은 마음이 들다가도 큰스님 말씀을 따라 하면 해낼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영남불교연합 학생회 여름 수련대회를 해야 하는데 분황사는 너무 좁으니까 너희 학교 강당을 빌려라”라고 하셨어요. 저는 처음에 ‘종교 단체가 학교 강당을 어떻게 빌리지?’ 이런 걱정이 들었는데, 결국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학교 강당을 빌렸습니다. 3일 동안 강당 바닥을 청소해서 500여 학생들이 발우공양도 하고 법문도 듣는 수련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멋모르고 한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저에게 하나의 큰 원(願)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 그런 일들을 해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때의 경험이 그 이후 어떤 일을 할 때 겁 없이 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불교 운동의 나침반이 되어준 책

이런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청소년기에는 공부를 얼마나 하느냐, 어떤 지식을 쌓느냐, 어떤 기술을 배우느냐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꿈을 갖느냐인 것 같습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이번에 발간하는 이 책은 제가 청소년기에 큰스님으로부터 배웠던 불교의 내용이 대부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책에는 화엄경의 핵심을 함축하고 있는 보현행원품과 불교의 5대 수행에 대한 불심 도문 큰스님의 많은 법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체 내용이 다 유익하지만 특히 ‘수도의 표본 교화의 지침’은 제가 고등학생 초발심 때부터 공부한 내용이고, 정토회를 만들고 새로운 불교운동을 시작할 때는 나침반이 되어 준 책입니다.

책의 내용 중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말씀이 담긴 선생경(善生經)이 있습니다. 선생경(善生經)은 여섯 방향에 예배하는 선생 장자와의 문답을 통해 나와 가족과 이웃 간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경입니다. 개인적 관계로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친구와 친척이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고, 사회적 관계로는 스승과 제자, 기업주와 고용인, 출가자와 재가자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은 이런 내용들이 제가 출간했던 ‘스님의 주례사’의 모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도문 큰스님과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아이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저녁 예불 시간이 다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저녁 예불을 한 후 스님은 농사팀 행자님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서 전국적으로 배추 농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채소 값도 엄청나게 오르고 있어서 코로나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데 더 힘들 것 같아요. 우리가 배추 모종을 많이 심어서 활동가들에게 많이 나눠줍시다.”

행자님들은 마음 나누기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도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행복학교 관계편 이수 특강 때 있었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한 부모 아빠인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해외에서 혼자 9살 여자 아이와 8살 남자아이를 5년째 키우고 있는 한 부모 아빠입니다.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따뜻한 아빠이자 가르칠 건 가르치는 엄격한 아빠, 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게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빠가 혼자 아이들을 키울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기도문도 받고 싶습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꼭 여자라는 뜻은 아니에요. 엄마란 ‘기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할머니가 키우면 할머니가 엄마가 됩니다. 이름은 할머니라고 붙여도 아이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할머니가 엄마입니다. 아빠가 키우면 이름은 아빠라고 붙여도 아이의 마음 속에서는 아빠가 엄마가 됩니다.

아내가 있다면 아내가 엄마 역할을 하고, 질문자가 아빠 역할을 하면 됩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따뜻한 역할을 하고, 아빠는 엄격한 역할을 해서 역할분담을 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되, 아이가 어리광 피우지 않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아빠가 도와주면 됩니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을 부모로 둔 아이들은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선생님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자식도 학생을 대하듯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야단치며 공부를 시키더라도, 집에서는 자기 아이들을 부모로서 따뜻하게 돌봐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공부는 잘할 수 있을지 몰라도 행복하지는 못합니다.

또 다른 예로 왕조시대에는 유모가 왕자를 키웠습니다. 그렇게 키워진 왕자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유모가 엄마입니다. 그래서 왕자들이 자란 후에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엄마가 자기보다 신분이 낮기 때문에 내적으로는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는 거예요. 왕자이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엄청나게 대우를 받지만, 무의식 세계에서는 굉장한 열등감을 갖게 되어 성격이 대부분 불안정해집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경우에는 엄격하게 가르치는 역할을 학교 선생님에게 맡기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과외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질문자는 주로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엄마 역할을 하는 게 좋습니다. 혹시 가정부나 아이들 교육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네. 출퇴근하는 가정부가 있습니다.”

“가정부가 엄마 역할을 좀 하나요? 아니면 밥만 해주고 가나요?”

“아이들과 계속 같이 있어주고, 챙겨주기도 합니다.”

“가정부가 아이들을 챙겨주더라도 질문자가 엄마 역할을 좀 해야 합니다. 엄격한 역할은 선생님이 훈육하도록 하고, 질문자는 절대로 아이에게 짜증 내거나 야단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엄마와 아빠가 다 있는 집에서는 보통 아빠가 야단을 치면, 엄마가 껴안아 주고 달래주는데, 질문자의 경우에는 아빠가 야단을 치게 되면 아이들이 마음을 둘 데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이 관점만 딱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름은 아빠지만 내 역할은 엄마다.’

절대로 돈이나 출세를 아이보다 우선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직장을 가더라도 아이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주어야 해요.

‘아빠에게는 너희가 우선이다. 너희와 항상 함께하고 싶지만, 아빠에게 주어진 일도 해야 한단다.’

그러지 않고 속으로는 늘 ‘내 일이 우선이고, 아이들은 그 다음이다. 아이들에게는 돈만 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엄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세요.

‘나는 엄마이다.’

엄마는 남자나 여자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기르는 자가 엄마예요. 아이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삶의 모델이 바로 엄마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질문자는 ‘이름은 아빠지만, 내 역할은 엄마다’ 이렇게 늘 생각하고 지내시면 됩니다.”

전체댓글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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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고맙습니다

2022-01-16 10:53:43

김현숙여래심

도문 큰스님의 이번 발간 책, 저의 위시북리스트에 올립니다 선생경내용도 궁금하구요

2020-10-08 20:27:54

관음수

감사합니다 스님_()()()_

2020-09-19 11: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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