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7.14. 북한 전문가 모임, 평화재단 회의
“억울함을 당하고 사실을 밝히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침 일찍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가진 후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아침 7시, 평화재단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속속 도착하는 북한 전문가들을 스님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최근 남북 관계의 변화에 대해 여러 가지 주제로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0시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저녁까지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0일 정기법회에 있었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억울함을 당하고 사실을 밝히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보왕삼매론 10번에 해당하는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라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해는 되는데 저한테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겪은 일에 대해 억울함을 밝히지 않았지만 제가 받게 된 누명의 무게가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상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안 했으면 그만이지’ 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럴 때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보왕삼매론 내용 중에 그 구절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세속적인 가치로 볼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글귀입니다.

우리가 어떤 억울함을 당하면 사실을 낱낱이 밝혀서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세상에서는 ‘정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왕삼매론은 괴로움 없이 살려면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하는 수행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세상의 이치로만 갖고 그 의미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를 모함해서 나의 억울함에 대해 사실대로 낱낱이 밝혔다고 합시다. 결국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또 억울하게 됩니다. 나로서는 해명이 돼서 좋은데, 그 사람으로선 또 억울해지는 거예요. 재판 결과를 보면 판결에서 진 사람은 늘 억울합니다. 이긴 사람은 사실이 밝혀져서 좋다고 하지만 진 사람은 한국의 판사나 법원이 너무 불공정하다고 말하면서 원망합니다.

글귀에서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는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억울함을 밝히면 상대가 다시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그에 따르는 복수가 늘 되풀이된다. 이것은 윤회의 길이다.’

내가 조금 억울해도 ‘그래, 그 사람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이렇게 수용하게 되면 여기서 끝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윤회가 종식되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대승 수행에서는 육바라밀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중에서 인욕을 강조합니다. 특히 법화경에는 상불경 보살의 인욕행이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상불경 보살은 소승들이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때려도 원망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향해 절하면서 ‘그래도 당신은 미래의 부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얕잡아 보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존경합니다. 이렇게 해야 진정한 인욕이라고 설합니다.

그런데 이 글귀는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도 젊은 시절에는 이 글귀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젊은 시절에 사회 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보왕삼매론의 앞의 아홉 구절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는데 이 열 번째 구절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세상을 더 살아 보니 어느 순간 이해가 조금 되었습니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이 본래 없구나. 내가 옳다고 하면 상대도 자기가 옳다는 것이 있기 때문에 결국 돌고 도는 윤회에 빠지는구나. 한 번 져주고 한 번 참는 것이 해탈의 길이구나.’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실대로 밝히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이해는 되는데’라고 질문하는 걸 보니 저보다 낫네요. 저는 젊을 때 이해도 안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긴 세월 동안 억울함도 당해보고, 모함도 당해보고, 왕따도 당해보고, 너무 억울해서 분노하기도 해 보고, 이리저리 세상을 살아 보고 나서야 겨우 이해했습니다.

‘해탈로 가려면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하구나. 내가 옳다는 것을 밝히려고 하면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기는 어렵겠구나’

저도 이 정도밖에 이해를 못한 수준인데, 질문자는 읽고 나서 척하고 이해가 되었다 하니 아주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웃음)

내일은 서초법당에서 수행법회를 생방송으로 한 후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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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꼭좀 답변주셔요

억울함을 참으면 먼저 간 가족영가에게 도움이 될까요? 도움이 되는게 맞으면 아무리 억울한 일이라도 기꺼이 참겠습니다. 스님...꼭 좀 답변주셔요. 제 인생이 달린 문제입니다.

2021-10-24 20:27:30

이형숙

질문있습니다~ 성추행 범죄자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라고 적용할 수가 있을까요? 물론 그 범죄자가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이 범죄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사정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신고하지 않고 억울함을 밝히지 않으면 제2의 피해자, 3의 피해자는 계속 나오게 될 것입니다.

2021-08-06 10:03:02

큰바다

크게 갈등을 끝내는 길.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10-28 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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