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5.29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점등식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밝히는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은 농사일과 두북 특별위원회 회의를 한 후 서울로 올라가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점등식에 참석했습니다.

5시 30분에 산 윗밭을 둘러보고 대나무 숲에서 죽순을 한 포대 따왔습니다. 그리고 산 아랫밭을 둘러보았습니다. 가뭄이 심해 스님이 만든 연못에도 물이 제대로 고이지 않았습니다. 산 아래를 가로질러 저수지로 가는데 풀잎에 맺힌 이슬마다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보약처럼 들이키며 저수지로 올라갔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물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앞 물통과 연결된 호스를 저수지 아래로 더 깊숙이 끌어내렸습니다. 호스 길이가 길다보니 두 사람이 끌어내리는데도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수지에서 일을 마치고 내려오니 공동체 대중도 각자 일을 나누어 하고 있었습니다. 논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한 뜬모를 다시 심어주고 있었습니다.


새로 지은 농사 창고 주변은 포클레인으로 평평하게 다졌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고추 한 잎 한 잎 마다 천연 유기농 약을 뿌려주고 있었습니다. 벌레 먹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유기농 약재에 바닷물, 난각칼슘, 참진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양배추, 브로콜리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는 참깨를 심고 있었습니다. 참깨를 땅에 직접 심는 것보다 모종을 키우면 발아율이 높습니다. 그래서 모종을 키우기 위해 상토에 따로 참깨를 심어두었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고 난 빈 땅에는 양배추, 브로콜리 겉잎과 마른 감자줄기, 왕겨, 발효된 소똥을 흩뿌려놓았습니다. 스님이 삽으로 거름을 일부 펴주고, 기계를 이용해 땅을 깊이 뒤섞어주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둘러본 후 스님은 얼갈이 배추와 열무를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추와 열무를 뽑고 나서 바로 잔뿌리를 자르고 떡잎과 상한 잎을 정리했습니다. 스님이 지나간 자리에 배추와 열무가 가지런히 줄을 섰습니다.



열무를 다 수확한 후 스님은 돌아서서 나오며 상자에 열무를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두 상자에 가득 담긴 배추와 열무의 모습이 정갈했습니다. 열무를 수확하는 모습에서 일을 이치에 맞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쑥갓을 수확했습니다. 스님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닐하우스 가엣 밭에는 이제 고수가 자라고 있습니다. 고수도 한 그릇 수확했습니다.

“법사님들이 좋아하는 고수도 수확해야겠어요.”

오이도 어느새 굵어졌습니다. 각종 찬거리를 들고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계속 일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자란 감나무의 가지를 쳐주었습니다.

잘라낸 감나무 가지에 달린 감잎도 땄습니다. 10시 30분부터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하기로 했지만, 지금 감잎을 따지 않으면 마르기 때문에 회의 시간을 30분 미루고 다함께 감잎을 땄습니다.



여린 감잎은 씻고 덖어서 감잎차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긴급 울력을 마치고 11시부터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시작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발표만 하고 토론을 하지 못한 ‘개원 기념법회’와 ‘정토대전 편찬’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특히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정토대전은 경전모음, 불교사상서, 사회사상서, 의식집, 깨달음의 글, 크게 다섯 가지를 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 중 불교사상서를 아예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긴 시간의 토론과 스님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불교 역사 속에서 대승불교와 선불교가 일어났을 때는 가이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인 혁신과 기성 불교로부터의 배척이 있었다고 그 역사를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토회가 하고 있는 일이 어느 수준까지 가야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웃음을 보이며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 우리 정토회도 이 정도 갖고는 안 되겠는데요!” (웃음)

“혁신이라는 게 정말 쉽지 않네요.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지금 스님이 하고 있는 즉문즉설을 불교 역사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법사님들은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쏟아내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정토회는 수행 불교와 실천 불교,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시대에 맞게 정토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근본불교, 대승불교, 선불교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정토회는 어떤 위치로 자리매김 해아 할까요?”

“불교사상서를 즉문즉설 방식으로 만들어 볼까요?”

“저는 그냥 스님이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갖고 있는 특징으로 불교사상 체계를 잡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스님께서는 고뇌가 사라지는 것이 불교라고 정의하시고, 그 방법으로 즉문즉설을 하시고, 서로 다른 생각을 모두 수용하고 화합시켜내는 삶을 지금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법문하신 것을 집대성해서 현대인들이 쉽게 이 법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과거에 발간된 경전을 번역하고 해설하는 데 애쓰기 보다는 지금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자는 거죠.”

법사님들의 여러 제안을 경청한 후 스님은 왜 정토대전 편찬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정토대전이 필요한 이유

“과거나 지금이나 담마의 근본 뿌리는 같아요. 제가 그동안 불교의 역사를 강의한 이유는 담마의 뿌리가 시대에 맞게 어떤 포장을 해왔느냐를 알게 해주려고 했던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담마의 근본 뿌리를 계승하는 겁니다. 다만 시대에 맞게 어떤 포장을 하느냐는 달라질 수 있는 거죠. 제가 30년 전에 강의했던 내용이나 지금 강의하고 있는 내용이나 근본 내용은 똑같습니다.

정토대전이 대중에게 필요한 건 아닙니다. 대중은 경전을 몰라도 괜찮아요. 그런데 만약 정토대전이 없으면 여러분들이 따로따로 나눠지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집을 통해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놓아야 하는 겁니다. 정토대전을 읽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무엇을 계승했고, 그 뿌리가 무엇이며, 어떤 관점에 서 있다는 것을 정립하고자 하는 겁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회의가 들면 그 때 이 정토대전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근본을 꿰뚫고 있어야 브라만의 권위를 뚫고 나온 붓다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 수 있는 겁니다. 또 재가자가 중심이 된 대승 수행자들이 승려 중심의 권위를 뚫고 나왔다는 것은 붓다와 거의 같은 수준인 겁니다. 중국에서 선불교가 ‘교’를 부정하고 그 벽을 뚫고 나온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 더 연구해 보세요. 정토대전이 저한테 필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만들어야 할 책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책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법사님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희 코가 석자이군요. 스님의 일이 아니셨네요.” (모두 웃음)

“큰 방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토대전 편찬이 정말 만만한 작업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결집이 되도록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두북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서 매일 회의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개인의 해탈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입장 정리를 분명히 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도 머리가 복잡한 이유는 입장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수행의 원칙도 지켜가면서 대중의 요구도 수용하려다 보니까 양다리를 걸치게 된 겁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법은 분명한 겁니다. 다만 우리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감당하는 선에서 조율을 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곧 정토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않겠어요?

그냥 저 혼자서 싹 다 정리해버려도 되는데, 제가 왜 100일 동안이나 매일 여러분과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할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정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스님의 말씀을 듣고 법사단 모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몇몇 분들은 스님을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오늘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더욱더 수행정진을 철저하게 해야겠다고 발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절하고 염불하는 게 수행이 아니에요.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이 없어지는 게 수행입니다.”

두북 특별위원회 회의가 끝나자마자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간혹 차가 막혀 있는 구간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다행히 행사 시작 전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서초법당에서는 저녁 7시 예불을 시작으로 부처님오신날 전야제인 점등식을 시작했습니다.

매년 점등식마다 많은 사람이 법당을 찾아와 함께 연등에 붉을 밝혔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재확산 조짐으로 인해 점등식은 온라인으로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행사를 열심히 준비해 준 활동가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오늘은 대중이 많이 모인 가운데 전야제처럼 등불을 켜야 하는데, 어제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도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조짐이 있으니 다수가 모이는 집회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발표했습니다. 정토회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방역을 위해 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따르기로 하고, 모든 행사를 취소했습니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은 불자로서 1년 만에 맞이하는 가장 중요하면서 준비도 가장 많이 하는 행사라서 취소하기가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1년에 한 번 있는 초파일 행사를 취소하는 아쉬움보다 국민들에게 끼치는 나쁜 영향이 훨씬 더 큽니다. 초파일 행사의 중요성을 유보할 만큼 큰일이라서 많이 아쉬운 가운데 수도권은 초파일행사를 모두 취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전야제도 온라인으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온라인을 통해 집에서 전야제를 보게 된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 특히 아쉬운 사람들은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달간 꽃도 꽂고, 옷도 준비하고, 잔뜩 준비를 했는데 취소가 되니까 많이 섭섭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죠.

‘죽고도 사는데 그것 취소하고 못 살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행사를 준비하신 여러분께 사과를 드립니다. 누구를 대신해서 사과를 할까요? (모두 웃음)

정부를 대신해서, 정토회를 대신해서 사과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은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점등식을 할 때는 항상 ‘가난한 여인의 등불’ 얘기를 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 그 나라의 왕인 프라세나짓 왕이 부처님을 위해 등불을 많이 켰습니다.

아주 스마트한 조직, 부처님과 상가

당시에 수행자들은 건물이 아닌 나무 밑에서 자고 숲에서 머물렀습니다. 비록 큰 건물을 갖고 있는 기존 브라만들에 비해서는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는 굉장히 불리한 조건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주 우수한 콘텐츠를 갖고 있었습니다. 괴로워하는 중생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탁월한 콘텐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처님을 무시하거나 얕보지 않고 오히려 존경했습니다. 더군다나 숲에서 머물고 설법을 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또 어디에 전법을 하러 가더라도 건물 짓는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만든 상가는 요즘 말로 하면 아주 스마트한 조직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사람을 먼저 만나서 법을 전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재산을 내놓고 공간을 마련해주었지 부처님이 절을 지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아마 부처님은 요즘 온라인 시대를 미리 경험하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웃음)

숲속에 비구 대중 1250명이 모여 있었으니까 밤이 되면 등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프리세나짓 왕은 수많은 등불을 보시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도 제공했습니다. 부처님은 평소에는 얻어먹었지만, 누군가가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하면 식사 초대에는 응했습니다. 내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주겠다고 하면 받았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큰 서원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주거나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가난한 여인이 생각할 때는 프라세나짓 왕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여인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프리세나짓 왕은 과거 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이 생에 왕이 되었구나. 그런데 이 생에도 이렇게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등불 공양을 올리고 음식 공양을 올리니 다음 생에도 부유하게 살겠구나. 그런데 나는 지난 생에 좋은 일을 못해서 이 생에 가난하게 살고 있고, 이 생에 가난해서 복을 못 지으니 다음 생에 또 가난해 질 거다.’

이런 생각이 바로 당시 인도 사회의 전통적인 인과응보설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혁명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도 뭔가 전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가난하다고 하루 사는 데 급급해서 복을 짓지 못하면 다음 생에 또 가난해지니 이것을 바꾸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오늘 내가 밥을 한 끼 굶는 한이 있더라도 복을 지어서 변화를 가져와야 되겠다’

그래서 자신이 번 돈의 전부를 오늘은 부처님께 등불 공양으로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냈습니다. 기름집에 가서 동전 두 닢을 주면서 기름을 달라고 하니까, 기름집 주인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하루 끼니도 겨우 이어가는 여인이 밥을 사먹지 않고 기름을 사러 왔으니까요. 그래서 여인에게 ‘당신이 기름을 사서 무엇에 쓰려고 그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부처님이 수행하는 도량에 등불을 밝혀서 나도 복을 지으려고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기름집 주인은 여인을 기특하게 여겨 기름을 곱절로 주었습니다. 곱절로 줘봐야 적은 양이었습니다.

여인은 그 기름을 가지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자리에는 이미 등불이 다 켜져 있는 거예요. 여인은 자신의 등불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감히 밝은 등불들 사이에 달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살펴 아무도 등불을 밝히지 않은 가장자리에 가서 등불을 밝혔습니다. 큰 등불이 많은 곳에서는 자신의 등불이 형편없이 초라했는데 등불이 없는 가장자리에는 자신의 등불이 아주 밝게 빛났어요.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면 다음 생에 왕처럼 태어나게 해달라든지,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면 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든지, 몸이 아픈 사람이라면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달라든지, 이렇게 기도를 할 겁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등불을 밝히며 ‘다음 생에는 저도 부처가 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발원을 했습니다. 부처가 되게 해달라는 말은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앞으로는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밤이 깊어져서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이 계신 숲 근처에 밝혀진 등불을 끄러 갔습니다. 불이 켜져 있을 때는 여인의 그 작은 등불이 잘 안 보였는데, 불을 모두 끄고 나니 가장자리에 등불이 하나 밝혀져 있는 게 보였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다 껐다고 생각했는데 불이 켜져 있어서 의아해하며 다시 가서 불을 끄려고 입으로 불었습니다. 그런데 불이 안 꺼지는 거예요. 옷자락을 펄럭여서 불을 끄려고 했는데도 안 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라. 너는 그 등불을 끌 수가 없다. 그 등불은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가난한 여인의 큰 서원이 담겨져 있는 등불이기 때문이니라. 그 여인은 그 등불을 밝힌 공덕으로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리라.’

그런데 아난다 존자가 그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지 않고 이런 일이 있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그 여인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프라세나짓 왕이 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작은 등불 하나 밝히고 그런 말씀을 들었는데, 등불을 켠 개수나 대접한 음식의 규모가 엄청나게 많았던 자신에게는 부처님이 그런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부처님께 달려가서 물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이 법은 참으로 미묘해서 하나를 주고도 백이나 천을 얻을 수 있으며, 백이나 천을 주고도 하나를 얻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니 대왕이시여,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며, 병든 자를 구호하십시오. 그러면 대왕도 언젠가는 도를 이룰 것입니다.’

왕 앞에서도 진실만을 말한 부처님

즉 법이라는 것은 양이나 숫자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숫자를 계산해서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심(下心)을 하여 겸손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많은 대중을 보살피고 돕는다면 언젠가는 그 길이 열린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왕이라고 일부러 내치지도 않고, 왕이라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도 않으면서, 왕 앞에서도 다만 진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보시를 한 양이나 액수로 따지면 가난한 여인의 보시는 프리세나짓왕에 비해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도 안 되겠죠. 하지만 자신이 가진 재산의 비율로 따져 보면 여인은 100퍼센트를 보시했고, 왕은 0.1퍼센트도 보시를 안 한 겁니다. 여인은 자신의 목숨과 같은 돈을 보시했다면, 왕은 먹고 입고 쓰고 남는 돈을 보시한 겁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양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불법은 참 미묘한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불법의 묘미를 다시 한 번 더 음미해보아야 합니다. 이 불법을 잘 실천해서 더욱더 행복해지고, 이 불법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것이 바로 수행자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등불을 밝히는 이유

어두운 방 안에서 물건을 찾기 보다는 불을 탁 켜버리면 한 눈에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나면 눈이 탁 떠집니다. 당시 이 법을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추어주신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등불을 밝히는 이유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등불을 밝히는 이유를 아셨습니까?”

“네.”

“돈 달라고, 복 달라고, 예뻐지게 해달라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등불을 밝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등불을 밝혀 놓고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예뻐지게 해달라고, 결혼하게 해달라고, 승진하게 해달라고, 주식 오르게 해달라고 빕니다. 가난한 여인은 세속적인 것을 원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등불을 켠 공덕으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원을 세웠습니다. 자, 이제 밖이 어두워진 것 같으니 우리도 가난한 여인처럼 등불을 밝혀봅시다.”

법문이 끝나고 마당으로 나가 점등식을 했습니다. 생방송으로 4000여 명이 시청하고 있는 가운데, 스님과 가난한 여인을 상징해서 인도옷 사리를 입고 연등을 든 네 사람만 마당으로 나가 불을 밝혔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우리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점등을 하겠습니다.”

연등불을 밝히고 스님은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가난한 여인이 등불 올린 공덕을 말하는 대목을 읽어주었습니다.

이어서 오색으로 밝은 연등 아래에서 행복한 수행자가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쓰이겠다는 발원을 했습니다.

내일 부처님오신날 온라인 기념법회에 대한 공지사항을 끝으로 점등식을 마쳤습니다.

“정부의 수도권 방역강화 방침에 따라 아쉽지만 내일 예정되었던 부처님오신날 기념법회는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정토회는 수도권 감염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지침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기념법회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촬영이 끝나고 스님은 행사를 준비한 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비록 많은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지 못했지만 온라인으로나마 연등을 밝히는 뜻을 살려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온라인 기념법회를 하고 다시 두북수련원으로 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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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

세속의 욕망이 아닌 부처가 되겠다는 원을 세운 가난한 여인의 등불. 나는 누구 지금 여긴 어디를 묻게 합니다.

2020-06-14 21:00:01

박혜진

이제서야 등불을 밝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0-06-05 21:30:23

월광

어두운 방 안에서 물건을 찾기 보다는 불을 탁 켜버리면 한 눈에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나면 눈이 탁 떠집니다. 당시 이 법을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추어주신 것과 같다’

등불 밝힐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2020-06-03 15: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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