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5.26 감자 수확, 두북 특별위원회 회의
“오늘은 감자를 수확했어요.”

안녕하세요. 오늘 감자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지난 2월에 비닐하우스에 심은 감자가 드디어 수확할 때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서 원고 교정을 하고 기도를 한 후 5시부터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5시가 넘자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올랐습니다. 법사님과 행자님들이 나오기 한 시간 전, 스님은 미리 감자 줄기를 베어두었습니다. 대중들이 도착하면 바로 감자를 캘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것입니다.

“감자 줄기가 이렇게 크고 많은데, 이것도 먹을 수 있으면 참 좋겠네요.”

과연 감자 줄기만큼 감자알도 굵을지 기대하면서 감자 줄기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는 순서와 방법에 따라 같은 일도 걸리는 시간이 다릅니다. 스님은 어떻게 하면 일을 효율적이고 깔끔하게 할 수 있을지 연구했습니다. 감자 줄기를 베어서 이리 저리 아무렇게나 놓으면 치울 때 더 힘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베어낸 감자줄기를 고랑에 차곡차곡 놓았습니다. 자른 감자 줄기는 비닐하우스 옆 동 고랑에 쭉 널어두었습니다. 처음 줄기를 벨 때 가지런히 놓아두어서 옮기는 일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감자 줄기는 말려서 잘게 자른 다음 다시 흙과 섞여 거름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감자줄기를 다 베어서 널고 나니 법사님과 행자님들이 비닐하우스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제동씨도 감자를 수확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새벽 6시였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시간 맞춰 도착했네요. 어제 제동씨가 새벽 4시에 출발하겠다고 해서 제가 그 시간에 오면 감자 다 캐고 없으니까 새벽 2시에 출발하라고 했어요.” (웃음)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창고 지을 땅을 평탄화하는 두 사람 외에는 모두 감자를 수확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감자 캐는 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살살 감자가 상하지 않도록 캐는 게 중요해요.”

먼저 부직포와 비닐을 걷어내고 호미로 감자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포슬포슬한 땅에서 굵직한 감자알이 나올 줄 알았는데 땅이 너무 딱딱했습니다. 호미로는 도저히 감자를 캘 수 없어서 두 명이 삼지창으로 흙을 한번 뒤집어주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흙이 부서지는 게 아니라 땅이 갈라지며 돌 같은 흙덩이가 줄줄이 생겼습니다.


감자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단단한 땅에서 간신히 자란 감자가 기특했습니다.


스님은 감자를 심기 전에도 원래 이 땅은 논이었기 때문에 감자가 자라기 어려울 것이라고 미리 언지를 주었습니다.

“뭐든지 해봐야 알죠. 내년에는 모래를 더 섞어서 농사를 지읍시다.”

감자를 캐는 풍경이 마치 잔칫집 같습니다. 대화가 오가고 웃음이 넘쳐납니다. 많은 사람이 하니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단단한 땅 속에 박힌 감자를 조심스레 찾아내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스님, 기계를 사용하면 빨리 수확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러면 운동이 안 되잖아요. 운동도 하고, 재미삼아 하는 거죠.”



땅을 파니 감자보다 돌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향훈 법사님은 돌을 보며 농담을 던집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감자가 아니라 돌이네요.” (웃음)

조심조심 땅을 파보지만, 계속 호미로 감자를 찍게 됩니다. ‘아이쿠’ 하고 안타까워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자 스님이 한 마디 했습니다.

“자꾸 감자를 찍는 사람의 심보는 감자를 빨리 먹고 싶은 거예요. 상처 난 감자는 빨리 먹어야 하거든요.” (모두 웃음)

감자를 열심히 캐다 스님이 허리를 펴며 봉암사에서 부목살이 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젊을 때 봉암사에서 부목을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저랑 같이 부목을 했던 사람이 저한테 큰 깨우침을 준 적이 있었어요. 저는 똥통을 나를 때 80%를 채워서 흘릴 듯 말듯 하면서 부지런히 다녔는데, 그 사람은 20%만 채워서 할랑하게 다녔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주인도 아닌 게 주인처럼 행세한다’

그래서 제가 ‘남의 일이든 내 일이든 일을 제대로 해야지’라고 하니까 또 이렇게 말해요.

‘너는 몰라서 그렇다. 아무리 네가 열심히 일한 뒤에 중간에 쉬고 있다 하더라도 주인이 볼 때는 네가 쉬는 모습을 딱 보는 순간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양을 조금만 담아서 계속 움직여야 주인이 볼 때 좋아한다니까. 노가다는 몸이 전 재산인데,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일하다가 몸살 나면 너만 손해다.’

당시에는 그 얘기를 듣고 ‘참 게으른 사람이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사람 말이 다 맞아요.” (웃음)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시간이 지나 감자를 다 캤습니다.

감자를 크기별로 분류해서 상자에 옮겨 담았습니다.



감자 수확량이 적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19상자, 360kg을 수확했습니다. 감자 30kg을 심었으니 12배로 늘어난 셈입니다.



사람들이 감자를 담는 사이 스님은 앞쪽에서부터 돌을 주웠습니다. 모은 돌은 창고를 짓기 위해 땅을 평탄화하고 있는 곳에 가져다주었습니다.


감자 수확을 마치고, 쌈채소도 두 상자 수확했습니다.


언제 감자가 있었냐는 듯 땅이 텅 비었습니다. 빈 땅에는 다시 참깨를 심기로 했습니다.

트럭으로 감자 상자를 모두 옮기고 울력을 마무리 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스님은 자전거를 타고 먼저 출발했습니다.

수련원으로 돌아와 발우공양을 하고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했습니다. 공동체 법사단은 삼배로 스님에게 인사를 드린 후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온라인 정토회’, ‘개원법회’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온라인 방식에 대해 SWOT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강점, 약점, 기회, 위협 요인은 이와 같습니다. 강점을 활용하여 기회를 선점하는 전략,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여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 강점을 살려 위협 요인을 최소화하는 전략, 약점을 보완하여 위협요인을 제거하는 전략에 대해 발표해 보겠습니다.”


오후 내내 온라인 정토회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운영이 될 경우 대규모로 만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갈수록 스님 얼굴을 직접 볼 일이 없어지겠네요.”

“저도 부처님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모두 웃음)

논의가 한참 진행되는 중에 스님이 갑자기 천장을 보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낮에도 형광등을 계속 켜놓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형광등을 꺼도 글자가 잘 보이는지 한 번 해보세요.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데 굳이 형광등을 켜야 하나요?”

“불을 꺼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낮에는 전부 불을 끄고 지내도록 합시다.”

형광등을 모두 끄고 나서 다시 논의를 이어나갔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으로 개편할 경우, 학습의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면 무조건 오계를 주는 것은 앞으로 하지 않았으면 해요.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수행자가 되겠다고 발심을 한 사람에 한해 오계를 수계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에서는 수행자가 되겠다는 발심을 할 수 있게 분명한 가르침이 주어져야 합니다. 경전반에서는 대승 수행자로서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마음을 내도록 교과과정을 편성하면 좋을 것 같고요. 대승 수행자는 보시와 봉사도 다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뜻합니다.

모둠장의 역할이 점점 강화되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법당에 나와서 청소하고 공양을 짓는 것보다 사람을 살피는 훈련을 해야 전법을 널리 할 수 있습니다.”

모레 금요일에는 정토회 내에서 ‘온라인’과 관련한 업무를 보는 모든 활동가들이 모여서 함께 온라인 정토회의 방향에 대해 공청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오늘 논의에서는 공청회 때 발표할 내용과 쟁점에 대해서도 정리했습니다.

스님이 회의를 하는 사이 농사일을 돕던 김제동씨는 저녁 7시가 되어 인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스님이 오늘 수확한 감자 한 봉지를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오늘 일당이에요.”

“일단, 받겠습니다. (웃음) 스님은 일당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저는 일단 받겠다고만 했습니다. 하하하.”

김제동씨의 재치 있는 농담과 함께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는 저녁 8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저녁 예불을 한 후 8시 30분부터는 농사팀 행자님들과 마음 나누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부터 농사일을 해가 뜨기 전에 하고, 해가 진후에 할 수 있도록 일과를 조정했습니다. 이제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6시부터 농사일을 합니다. 낮에는 실내 업무를 본 후 3시 30분에 저녁을 일찍 먹고, 다시 8시까지 농사일을 하고 저녁예불을 드립니다.

오늘은 감자를 수확하고, 새로운 일과를 보낸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감자가 생각보다 작아서 아쉬웠어요.”

“단단한 흙 아래에서 자란 감자들이 기특했습니다. 다같이 감자를 캐니 잔칫집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농사를 담당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감자가 작다’, ‘땅이 너무 단단하다’라고 하는 말들이 꼭 저에게 비난하는 소리로 들렸어요. 그런데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뿐이라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오전이 지났을 뿐인데 꼭 하루를 다 보낸 기분이었습니다. 48시간 같은 하루였어요. 그래도 시원할 때 농사일을 하니 훨씬 좋았습니다.”

스님은 요즘 계속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행자님들의 나누기를 다 듣고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서야 하루가 긴 줄 아셨군요.”

마음 나누기를 마치고 나니 10시가 가까웠습니다. 두북 수련원 지붕 위로 초승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하고 수행법회 생방송 촬영을 한 후 평화재단 전문가들과 함께 워크샵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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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

저는 그래도 부처님을 실제로 보았네요^^

2020-06-09 00:51:49

정명

2시30분에 일어나는 스님을 보며 아침에 제시간에 기도도 못하는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2020-06-07 17:35:47

정지나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말해봅니다
그리고 그대로 받아들여 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6-03 22: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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