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4.8 온라인 수행 법회 7주째
“좋은 직장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온라인 수행 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수행 법회를 시작한 지 벌써 7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은 하루가 다르게 연둣빛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스님은 아침 일찍 산아랫밭, 산꼭대기밭, 비닐하우스, 저수지를 차례대로 둘러보면서 미진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둘러보았습니다. 산꼭대기밭에는 트럭이 올라가서 거름을 내릴 수 있게 도로 보수 공사를 오후에 하기로 하고, 오전 10시에 맞춰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스님이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카메라 앞에 앉자 10시 정각이 되었습니다. 2500여 명이 온라인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봄꽃 소식을 전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간 정진 잘하셨습니까? 4월 두 번째 주 수요일이네요. 지금 남부 지역에는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다 지고, 이제 연달래가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고요. 복사꽃과 배꽃도 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사회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에 관련된 여러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아직은 주된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확진자 수를 기록했고,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유럽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치사율이 10%대를 넘습니다. 일본도 잇따라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확진자 수가 하루 50명 밑으로 떨어져서 비교적 안정 국면에 들어섰습니다만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아직 확산이 되고 있기 때문에 여행이나 교류는 전 세계적으로 다 멈춰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문명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지금까지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 추세가 멈추고 다시 각 나라별 지역주의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기도 합니다. 그동안은 생산, 운송, 소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업 체계로 이루어졌는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이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마스크를 중국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중국에서 수출을 안 한다고 하고, 방호복이 부족한데 방호복 공장이 있는 나라에서 공급을 못 해준다고 하고, 진단 키트가 부족해서 다들 한국에서 구입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제 나라마다 자기 나라 안에서 방호복이며 진단 키트며 마스크를 생산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나갔던 공장들도 다 자국으로 돌아오고, 앞으로 국제적인 협력보다는 자국 내에 완결구조를 갖추려는 추세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추세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제일주의를 주장하면서 생긴 게 아니에요. 오히려 미국 제일주의도 이런 추세의 일부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화를 동반할 것 같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지금 당장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태가 조기에 진정이 되면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옛날로 돌아갈 테지만,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우리 생활 자체가 이 상황에 맞게끔 바뀌게 될 거예요. 설령 이번에 코로나 사태가 빠르게 진정돼서 옛날로 돌아가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사태가 점점 더 자주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에서 일어날 여러 가지 변화는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지금은 비상 상황으로 보고 임시로 온라인 법회를 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 일상적인 법회 형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추이를 조금 더 지켜보면서 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나가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의 관점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수행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조함이나 불안함이나 근심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마음이 불안하다고 해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바이러스 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의 목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마음을 늘 안정시켜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우리는 어떻게 적절하게 대응을 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 서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전염성을 막아내는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잠잠해진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그 뒤에 닥쳐올 경제 위기도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은 경제 위기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열 배, 백 배로 더 무섭게 닥쳐올 거예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통제를 하다 보니 경제 활동이 전부 멈춰 섰습니다.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이로 인한 후폭풍은 우리 사회에 큰 과제로 남을 겁니다.

지금은 워낙 급하니까 돈을 찍어서 그냥 나눠주는 식으로 대응하지만, 그런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왜 우리가 일을 하겠습니까? 조폐공사에서 돈만 찍어내면 되죠. 화폐를 남발하는 것은 결국 다 빚이 되기 때문에 이로 인한 부채는 앞으로 또다시 큰 사회적인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진정을 하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는 식으로 계속 가면 옛날에 우리가 즐겨하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다를 게 없어요.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풀면 혼란이 끝없이 누적돼서 나중에 대공황과 같은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몰려오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수행자들부터라도 좀 더 진정을 하고 차분한 상태에서 위기에 대처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들떠 있거나 두려워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염성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움직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좀 더 절약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

훗날 역사가들이 이 시기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코로나 사태는 지금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수행이 더욱더 중요해짐을 절실히 느낍니다.

이어서 스님은 사전에 올라온 질문에 답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9개의 지역 정토회에서 총 11개의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좋은 직장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지 않는다는 청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직장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좋은 직장, 높은 지위, 명예 등 성공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집착을 놓고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요?”

"젊으니까 놓아지지 않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무리 놓으려 해도 놓아지지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놓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래, 안 놓아지거든 그냥 들고 있어라.’ (모두 웃음)

그러면 또 이렇게 묻습니다.

‘들고 있으려니 너무 무거워요!’

그러면 또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놔라.’ (모두 웃음)

딱히 놓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본인이 그걸 갖고 싶으니까 안 놓아지는 거예요. 왜 갖고 싶을까요? 그게 좋아 보이니까요. 돈도 좋아 보이고, 권력도 좋아 보이고, 명예도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머리 깎고 스님이 돼도 그게 잘 안 놓아지는 거예요. 본인의 눈에 그게 좋아 보여서 그래요.

그게 좋아 보이는 이유는 거기에 ‘좋음’이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좋은 것이라고 하는 어떤 요소가 그 속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착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 집착이 되는 거예요. 비유를 들어서 말씀드릴게요. 누가 나한테 금덩어리를 주면서 이렇게 시켰습니다.

‘이걸 돌같이 봐라. 그리고 저 산에 갖다 묻고 잊어버려라.’

그러나 10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노래를 불러도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못 잊고 있다가 나중에는 몰래 캐오기까지 해요.

그런데 그 금덩어리를 칼로 딱 그어보니까 페인트칠한 가짜였어요. 금빛으로 칠해놨을 뿐 속은 그냥 돌이에요. 이게 바로 본질을 딱 꿰뚫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그걸 다시 산에 가져다가 묻었어요.

‘이 나무 밑에 묻었다. 기억하자, 기억하자.’

이렇게 10년을 외워도 나중에 가면 못 찾습니다. ‘여기 묻었던가?’, ‘저기 묻었던가?’ 하면서 헤맵니다. 왜 그럴까요? 본질이 금이 아닌 줄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어디에 묻었는지 잊어버린 겁니다.

실체가 없는 줄을 꿰뚫어 아는 게 중요합니다. 돈이라는 게 허망한 줄, 명예라는 게 허망한 줄, 권력이라는 게 허망한 줄 딱 꿰뚫어 알아야 해요. 무아(無我)라는 것을 딱 자각해버리면 집착이 저절로 없어져요.

질문자는 그게 좋은 줄 알고 있으니 아무리 집착을 놓으려 해 봐야 안 놓아지는 거예요. 젊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늘 세뇌교육을 받은 영향도 큽니다. 의식이 생기고부터 늘 ‘돈 벌어야 한다’, ‘출세해야 한다’ 이렇게 세뇌교육을 받았는데, 그걸 어떻게 탁 놓겠어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 보면 선혜(善慧) 행자 이야기가 있어요. 선혜 행자는 아버지가 아주 고귀한 신분의 엄청난 부자인 데다 지위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탁 죽어버렸어요. 그런데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죽음이 슬프긴 하지만 자기에게는 행운이에요. 그 지위며 재물이며 명예를 모두 자기가 차지하게 되니까요. 왕과 왕자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가족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버지가 죽는 건 슬픔이지만, 아버지가 죽어야 왕자가 왕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안 죽고 건재하면 왕이 못 돼요. 그래서 옛날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는 일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죽음은 잠깐 슬프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자기가 다 가지게 된다는 뜻이에요. 전에는 아버지 것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것이 된 거죠.

그런데 이 젊은이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그때 본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돈도 한 푼 못 가져가고, 명예도 하나 못 가져가고, 지위도 못 가져갔잖아요. 이게 정말 자기 것이라면 죽을 때도 가져가야 할 텐데, 자기 것이 아니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거죠. 그게 허망한 줄을 탁 꿰뚫어 알아버리니까 거기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지위도 왕한테 반납하고, 재물도 왕에게 위탁해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도록 청하고 출가를 한 거예요.

이게 부처님의 전생인 선혜 행자가 발심하는 첫 이야기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렇고, 야사(耶舍) 비구도 그렇고, 출가의 계기가 비슷해요. 저녁에 아름다운 무희들과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즐기다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들었어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까 보니까 간밤에 흥겹게 놀던 사람들이 술이 취한 채 이리 자빠지고 저리 자빠져 자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시타림(屍陀林)처럼 보였습니다. 시타림은 당시 인도에서 사람이 죽으면 쓰레기처럼 갖다 버리던 숲이에요. 그렇게 여기저기 엎어지고 자빠져 있는 시체나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자기들이나 그 꼴이 순간적으로 똑같이 보였다는 겁니다.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다시 말해 락(樂)이 곧 고(苦)임을 체험한 거예요.

‘도솔천의 칫타라 궁전 같이 아름답던 내 연회장과 궁전이 어찌 이리 무덤과 같은가?’

이걸 한순간에 자각하게 되니까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거예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가지고 있다가 요즘 주가가 폭락하는 것 같은 사건이 일어나 일순간에 다 잃었다고 해 봅시다. 100억을 호가하던 증권이 일순간에 휴지조각이 됐어요. 그럴 때 아까워하며 더 애걸복걸하다 보면 급기야 자살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아, 그게 머릿속에 있는 숫자에 불과했구나’, ‘종이와 글자에 불과했구나’ 이렇게 자각할 수 있다면, 자각하는 순간 오히려 다른 문제까지 다 해결돼버려요.

질문자처럼 젊은 사람이 돈, 지위, 명예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좋은 직장이라는 건 일단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많이들 생각해요. 높은 지위나 명예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보기에 좋은 건데 그게 어떻게 놓아지겠어요? 금덩어리를 놓으라는데 그게 어떻게 놓아지겠어요? 그러니 지금 못 놓는 건 당연한 거예요.

이걸 놓기 위해 애쓴다고 놓아지는 게 아니에요.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가 다시 놓는 걸 보고 ‘이건 더러운 거야. 필요 없는 거야. 놓고 가’ 이렇게 말해줘서 다시 놓고 가다가도 돌아와서 또 들고 갑니다. 출가한 스님들 중에도 돈을 보면 돈에 집착하고 지위를 보면 지위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집착을 놓고 절에 들어와 놓고는 더 큰 걸 보면 또 집착을 하는 겁니다.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국왕이 되어 달라고 청했을 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내 나라의 왕도 싫다고 나왔는데, 왜 남의 나라의 왕이 되겠습니까? 남이 뱉은 가래가 더 굵다고 해서 그걸 주워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게 확연하지 않기 때문에 늘 집착이 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제법(諸法)이 공(空)하고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하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놓으려고 해도 안 놓아지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놓느냐’라고 묻지만 놓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이 허망한 줄을 경험을 통해서 탁 체험하게 되면 저절로 놓아져요.

집착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누군가가 ‘그걸 쉽게 구할 수 있다’라고 하면 유혹에 빠지기가 쉬워요. 그래서 사기를 당하거나 신흥종교에 빠져드는 일이 생깁니다. 내 힘으로는 못 얻는데 누군가가 ‘조금만 하면 그걸 얻을 수 있다’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말려들게 됩니다.

그런데 수행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돈과 지위와 명예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이 수행이 아니라, 그것이 허망한 줄을 탁 꿰뚫어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수행이에요. 아마 ‘깨달음의 장’에서 그걸 체험해보았을 텐데 질문자는 약효가 다 떨어졌나 봐요. (모두 웃음)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는 더욱더 정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이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해도 수행을 해서 중심을 딱 잡고 살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런데 젊은이들은 체험을 아직 못한 경우가 많아요. 생각으로만 공부를 하지 실생활에서 딱 체험이 안 되니까 늘 미련이 남는 거예요.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겨보면 깨닫게 돼요.

‘내가 참 쓸데없는 것에 대한 환상을 쫓고 살았구나. 신기루를 쫓으며 인생을 살았구나.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아온 산천을 헤맸는데 집에 와서 보니 바로 처마 밑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얘기처럼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여기, 내가 숨 쉬는 이 자리에 있구나.’

이걸 탁 자각하면 삶이 편안해집니다. 그렇게 편안해진 상태에서 필요하다면 지위를 가질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재물도 가질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재물에 집착되어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저 필요하기 때문에 가지는 거예요. 은행 직원이 항상 돈을 세지만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거기에 집착이 안 생기는 것과 같아요. 돈을 만지지 않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리 만져도 그냥 종이조각으로 보고 자기 직업이니까 그냥 헤아리는 거예요.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런 지위나 돈도 필요하면 쓸 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매여 있으면 고통이 따릅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입재식, 수행 법회, 나누기 등 모든 활동을 온라인으로 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법문들은 후 마음에 울림도 적고, 아침 기도도 덤덤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수행정진이 계속되어도 될까요?
  •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법당에 나가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꾸 물러서려고 하는 마음이 듭니다.
  • 저는 법회만 듣고 주어진 봉사만 하면서 조용히 법당에 다니고 싶은데 모둠은 또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아서 좀 불편하단 생각이 듭니다.
  • 정치 성향이 다른 댓글을 보거나 친구들과 얘기하면 화가 납니다.
  • 각자 원을 세워서 기도를 하라고 하는데, 과연 내가 원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가닥이 잡히지 않습니다.
  • 남편이 정토회에 계속 다닐 거면 이혼하자고 합니다. 주말부부인데 남편은 집에 오면 말도 안 하고 라면만 끓여먹습니다. 그래도 주말에는 집에 오니 다행인데, 숙이지 못하는 제 마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선거법을 개정했으나 양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자신들이 만든 법을 무효화시키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어떤 관점을 갖고 총선에 임해야 할까요?
  • 소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소수정당에게 가는 내 투표는 사표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소수정당에게 투표하면 수구꼴통 정당에게 더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당이나 여당의 위성정당에 투표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입니다.
  • 뜻하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이번 일로 지구공동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는데, 경제, 환경, 통일을 생각했을 때 앞으로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질문의 수가 많아서 모두 답변을 하고 나니 예정된 60분을 훌쩍 넘겨 90분을 경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4월 15일에 있을 총선 투표에 참여해 국민의 권리를 행사할 것을 당부하며 수행 법회를 마쳤습니다.

“이번 주에도 코로나 전염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약간 방심하는 것 같아요. 두려워하지 말고 편안히 일상생활을 하되 방역을 위한 수칙은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최선과 차선이 없을 때는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지혜를!

그리고 곧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앞으로 우리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입법을 하는 핵심적인 기관이 국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투표에 빠지지 말고 꼭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선과 차선이 있으면 알아서 투표하시면 됩니다. 최선과 차선이 없을 때는 포기하지 말고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 선거는 후보를 비교해서 여러분이 판단해서 선택하더라도 비례대표는 소수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투표를 하셔야 선거법 개정의 취지에 맞게 투표하는 셈이 됩니다.

정토행자들은 언제 어느 때나 자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수행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조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반도를 평화롭게 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해야 합니다. 지구 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빈곤을 퇴치하고, 지구 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작지만 늘 참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 법당은 여러분이 내는 보시금으로 월세를 내고 있는데,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법당 수입이 적어져서 월세도 못 내는 일이 있다고 해요. 그러니 법당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온라인으로라도 조금씩 보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법당에서는 각 모둠별로 단톡 방에 접속해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산꼭대기밭으로 올라갔습니다. 그전에 소를 키우는 동네 어르신 댁에 가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소똥 거름을 받아왔습니다. 트랙터로 소똥을 가득 퍼서 트럭에 실은 후 비닐하우스 옆 밭에 옮겨 두었습니다.

소똥은 볕에 잘 말리면 아주 좋은 거름이 됩니다. 비닐하우스 옆에 넓게 펼쳐 놓았다가 다 마르고 나면 포대에 담아 필요할 때 거름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아주 좋은 거름이에요.”

남은 소똥은 내일 산꼭대기밭에 올려 두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소똥을 실은 트럭이 산꼭대기밭으로 올라갈 수 있게 도로 보수 공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밭까지 거의 다 올라간 지점에 흙이 무너져 내려서 트럭이 오르기에 위험한 지역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흙을 파고 큰 돌을 가져와 축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순식간에 축대를 척척 쌓아 나갔습니다. 축대를 쌓은 위에는 포클레인으로 흙을 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을 부어 진흙이 되게 한 후 다시 그 위에 흙을 부었습니다.

다시 반대편에도 축대를 쌓고, 흙을 붓고, 물을 붓고, 다시 흙을 덮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클레인이 왔다 갔다 하며 길을 다져주니 아주 튼튼한 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트럭이 거뜬히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산꼭대기 밭에 올라오니 트럭이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습니다.

“트럭이 소똥을 여기에 내리려면 어느 정도 공간이 있어야 해요.”

밭으로 쓰려고 만든 두둑을 일부 허물고, 포클레인으로 평탄화 작업을 했습니다.

도로 정비를 모두 마치고 직접 트럭을 몰고 산꼭대기밭으로 올라와 보았습니다. 길을 잘 정비해 놓은 덕분에 트럭이 무사히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큰일을 하나 해결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이 밭은 이제 진짜 좋은 밭이에요. 경치 좋지, 물도 잘 나오지, 트럭이 올라가서 거름을 내릴 수도 있지, 이보다 더 좋은 밭이 어디 있어요?” (웃음)

스님이 뿌듯해하며 말하자, 농사짓기 힘든 곳이라며 산꼭대기 밭을 미워하던 행자님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집니다.

산을 내려와 비닐하우스에 들려 쑥쑥 자라나는 모종들에게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두북 수련원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수행 법회부터 밭 정비를 마치기까지 오늘도 정말 많은 감정들을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나니 하루가 더욱 풍성해진 느낌입니다.

“오늘도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내일 또 봅시다.”

마음 나누기를 마치고 나니 저녁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소똥을 퍼서 산꼭대기 밭에 올린 후 산꼭대기 밭을 정비하고, 일부 밭에 고수를 심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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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그저 모든것은 지나갑니다 순간순간 걸리고 넘어지지만 다시, 툭하며 갑니다 지금 여기 나
감사합니다 꾸벅^^

2020-04-15 21:07:22

최은선

스님 늘 감사합니다.

2020-04-12 15:36:53

정경원

스님건강하세요..!

2020-04-12 08: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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