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3.22. 농사일
“연구하면서 짓는 농사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조금씩 해 뜨는 시간이 빨라집니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도 빨라집니다.

오전에는 올해부터 새로 농사를 시작한 밭에 감자를 심었습니다. 씨감자 세 박스 60kg과 필요한 도구를 챙겨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은 벚꽃 나무와 진달래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봄나들이를 온 듯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두둑 위에 25cm 간격으로 호미로 표시를 해주었습니다. 그 뒤로 파종기와 감자를 든 사람이 짝을 맞춰 감자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파종기로 푹 땅을 찌르면 거의 동시에 감자를 쏙 집어넣어줍니다. 파종기를 벌리며 들어 올리면 그 위로 흙이 덮였습니다.

감자를 심고 지나간 자리에 북삽을 든 사람들이 흙을 더 도톰하게 덮어주었습니다.

스님은 삽으로 흙을 퍼서 덮어주었습니다. 잠시 허리를 펴면 진달래, 벚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감자를 다 심었습니다. 잠깐 휴식한 후 비닐하우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님은 비닐하우스 가장자리를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두북 수련원 담벼락에서 가져온 파를 옮겨 심었습니다.

모종을 키우는 일은 아기를 돌보는 일과 비슷합니다. 모종 하나하나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농사담당자는 물을 주고, 온도를 맞춰주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가지 모종을 모종판에 옮겨 심었습니다. 조금 더 키운 후에 밭으로 옮겨 심을 예정입니다. 잔뿌리가 다치지 않게 살살 옮겨 심었습니다.

두둑과 두둑 사이에 작년에 사용했던 부직포를 다시 한번 깔아주었습니다.


파를 다 옮겨 심은 스님은 비닐하우스, 밭, 논, 못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버려진 농사 도구를 주웠습니다. 그리고 못에서부터 비닐하우스에 있는 물탱크까지 주운 호스와 파이프로 연결을 했습니다. 못에 고여 있는 물을 물탱크로 옮기기 위해서였습니다.


호스를 다 설치하고, 마지막으로 전기를 연결하려고 배전판을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배전판에 전선이 다 끊겨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봤지만,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오늘은 물을 못 채우겠네요.”

전기를 다룰 줄 아는 분에게 연락했더니 며칠 후에 와서 고쳐준다고 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논 옆으로 난 수로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가시가 억센 제피나무와 가시덩굴이 뒤얽혀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지나다니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치웠는데 오늘은 깔끔하게 정리를 했습니다.

“제피나무 가시는 아주 독해요. 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물에 풀어놓으면 물고기가 다 죽어요.”

이 곳 저곳 찔려가면서 가시 덩굴을 베었습니다. 스님은 베어 낸 가시 덩굴을 발로 꼭꼭 밟아 부피를 작게 만든 후 수로 위로 치웠습니다. 수로 주변이 이발을 한 것처럼 시원해졌습니다.



“깔끔해졌네요. 수고했어요.”

스님은 만족스러운 듯 수로를 둘러보고 못으로 올라갔습니다.

“전기가 없으니 이제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서 실험을 한 번 해봅시다.”

전기를 이용해서 수중펌프로 못에 고여 있는 물을 비닐하우스 앞 물탱크에 채우려고 했지만 전선이 다 빠져있어서 전기를 쓸 수 없었습니다. 스님은 위치의 차이를 이용해서 못에 있는 물을 200m 아래 물탱크까지 보내보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위에 있는 못에서 아래에 있는 비닐하우스 물탱크까지 논과 밭 사면에 버려져 있던 각종 호스를 고무줄과 청테이프로 연결해두었습니다. 호스와 호스 사이에 넣은 짧은 파이프는 주운 것입니다.

호스 입구는 찌꺼기가 걸러질 수 있도록 그물망으로 막아주었습니다. 그물망과 끈도 못 주변에서 주운 것입니다.

“제가 아래에서 호스를 묶을 테니, 위에서 물을 부어주세요. 물이 여기까지 꽉 차고 난 다음, 제가 끈을 푸는 것과 동시에 호스 입구를 바로 물에 넣어야 합니다.”

못 주변에 나뒹굴고 있던 페트병을 주워 반으로 잘라 물을 붓는데 사용했습니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물을 흘려보내는데 호스 여기저기서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도 물이 샙니다.”

청 테이프로 물이 새는 곳을 막아주고 다시 물을 흘려보냈습니다.

“여기도 또 물이 샙니다. 여기도요. 이 호스는 쓰기 어렵겠습니다.”

결국 중간에 연결한 일부 호스는 새 것을 끼우기로 했습니다.

“다 재활용해서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웃음)

스님은 아쉬운 얼굴로 호스를 갈아 끼웠습니다. 다시 호스를 중간에서 묶어주고 위에서 물을 흘려보냈습니다.


“자, 하나, 둘, 셋! 물에 넣으세요!”

스님의 말과 동시에 호스 입구를 저수지로 팍 집어넣었습니다. 호스 아래로 모두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납작했던 호스에 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호스를 따라 저 아래까지 내려 가보았습니다.


맨 아래쪽 헌 호스와 새 호스와 헌 호스를 연결한 부분에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곧 터질 듯 물이 튀어나오고 있어 고무줄로 묶어주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못으로 올라와서 호스를 돌로 고정시켜주고 그물망에 모이는 찌꺼기를 건져주었습니다. 호스가 점점 통통해졌습니다. 호스 입구로 올챙이들도 빨려 들어갔습니다.

“물 잘 내려가요?”

“네! 저 아래 물탱크까지 물이 내려옵니다.”

스님은 찌꺼기를 빼주다 허리를 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전기에너지 없이도 위치에너지를 이용해서 물을 보내는데 성공했네요. 아직 과제가 하나 남았어요. 입구에 찌꺼기가 모여서 계속 걸러줘야 해요.”

스님은 연구를 하다 대야에 방충망을 씌워서 호스 입구에 대주었습니다. 대야에 거른 물이 호스로 들어가게끔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못의 물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두고 잠시 쉬면서 더 연구해봅시다.”

못 옆에 둘러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막대기와 막대기 사이에 방충망을 씌워서 입구를 막으면 어떨까요?”

“컨테이너 박스에 방충망을 씌워서 입구를 막아도 좋겠어요.”

찌꺼기를 걸러낼 방법에 대해 열띤 의견이 오갔습니다. 물의 수위가 낮아져 호스도 더 깊이 옮겨야 했습니다. 다섯 시가 넘어 해가 지자 금세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도구를 챙겨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논 옆에 가시덩굴이 많은 곳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가시 덩굴을 마저 베어냈습니다. 몇 걸음 걷다가 스님은 사면에서 또 무언가 발견했습니다.

“이것 봐요. 멀쩡해요.”

전기선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해서 비닐하우스로 가지고 갔습니다. 물탱크에는 물 5톤이 차 있었습니다. 스님은 물탱크에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뚜껑을 닫아주었습니다.

뚜껑을 닫는데 물이 넘쳐흘렀습니다. 농사 담당 행자들은 물이 가득 찬 탱크를 보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로와 울타리를 점검했습니다.


“자, 그럼 저녁 예불 후에 잠깐 농사 회의를 합시다.”

얼른 저녁을 먹고 예불을 드린 후 7시 30분부터 사무실에서 농사 회의를 했습니다. 올해부터 신설된 부서인 농사팀은 스님이 팀장입니다. 스님이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오늘 일해 본 소감부터 나누고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물탱크에 물이 차서 든든한 마음입니다. 사람 손이 붙으니까 일이 되어 가는 게 눈에 보여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저는 단순 노동을 좋아해요. 감자 심는 것도 재미있었고, 쑥 뜯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여럿이 같이 하니 훨씬 더 능률이 오르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들뜬 순간이 많았어요. 밭에서 싹이 난 감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들떴고, 토마토와 고추 모종이 자라는 걸 보고 마음이 들떴고, 물탱크에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걸 보고 마음이 들떴어요. 어렸을 때 엄마와 농사지을 때는 풀 뽑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요즘은 쉬엄쉬엄 일하는 것 같아서 참 좋아요.”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기다려보세요. 아직 풀이 안 올라왔어요.” (모두 웃음)

똑같은 일을 하고도 소감은 가지각색입니다.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그걸 축적해서 점점 일이 되어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처음에 저는 스님께서 산비탈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호스였고, 그걸 재활용하신다는 거예요. 구멍을 다 때워 가면서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보일러 기름을 넣을 때 입으로 불어서 넣는 방법을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해본 적은 없거든요. 스님이 과학 원리를 이용해서 물이 내려가도록 한 게 신기했어요. 무엇이든 연구하는 스님의 모습에서 배움이 있었습니다.”

“수로를 연결할 때 스님께서 계속 땅바닥에 버려져 있는 헌 것을 뜯어 와서 어떻게 하실까 궁금했는데, ‘재활용을 하려고 했구나’ 알게 된 순간 헌 것은 무조건 버리려고 하는 제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행자님들의 나누기를 다 듣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백 프로 헌것을 재활용하려고 했는데 백 프로 재활용을 못했어요. (모두 웃음) 그래도 중간에 주황색 호스만 새 것이고, 나머지는 다 재활용을 했어요.

저수지에 있는 물을 어떻게든 농사에 써보려고 연구를 많이 했는데, 전기 연결이 안 되는 바람에 약간 아쉬웠지만, 낙차를 이용해서 저수지 물을 받을 수 있게다 싶어서 시도를 했는데 성공해서 좋았습니다. 저 때문에 여러분들이 고생을 좀 했네요. 버려진 호스를 재활용하느라 애를 많이 쓰셨는데, 그래도 절반만 새 것을 사용했잖아요.

저는 비닐하우스 측면에 씨앗을 심어야 하는데, 계속 시간이 없네요. 텃밭에도 상추를 솎아줘야 하는데 아직 못 했어요. 시간 여유가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모두 웃음)

저는 이번에 두북 수련원에 머무는 동안 세 가지 일을 할 계획입니다. 첫째, 정토회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기획을 할 생각입니다. 둘째, 건강이 안 좋아서 하루에 한두 시간은 걸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잘 안 나네요. 셋째, 올해는 농사를 시작하는 해니까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틈틈이 농사일을 할 생각입니다.”

“일을 이렇게 많이 하시는데, 또 걸으려고 하세요?”

“건강을 회복하려면 하루에 10km는 걸어야 해요. 매일 경주 남산에 답사를 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요. 농사일은 밭에 울타리 치는 일이 남았네요.”

밭에 무엇을 심을지, 울타리를 어떻게 칠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아이고, 벌써 잘 시간이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회의를 합시다. 통일특별위원회에서 법문 요청이 있어서 저는 내일 오후에 법문 촬영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두북 수련원에서도 생중계를 할 수 있게 준비를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내일 뵙겠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에게 인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통일특별위원회에서 요청한 법문을 촬영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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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

코로나 덕분에 스님이 쉬시겠다 싶어서 코로나도 좋은 역할도 하는구나 했는데 매일 막노동을 하시는것 같아 심난했다가 스님의 맑은 웃음을 보니 그냥 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_()_

2020-03-31 03:41:08

초심자

생활의 달인에 나오셔도 되겠어요
어느것 하나 허투루 쓰지 않으시네요
스님의 하루하루가 알차듯이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들도
어딘가에는 쓰이도록 다 활용하시는
놀라운 아이디어
감동입니다

2020-03-27 07:54:04

해탈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전기를 이용하는 모습을 뵙고 역시 스승님이시다.
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3-26 0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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