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20 석가족 명상수련 3일째, 상카시아▶가야 이동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안녕하세요. 오늘은 석가족 명상수련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도 5시에 일어나서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마음을 콧구멍 끝에 모아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거기에 끌려서 따라가지 말고 내버려 두고, 오직 콧구멍 끝에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안 된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된다고 들뜨지 말고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긴장하지도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놓치면 다시 합니다.”

명상 시간 중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줄었습니다. 소리 없이 아침이 밝아오듯 어느새 명상이 몸에 익을 무렵 끝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석가족 청년회 회장이자 이번 수련의 실무 총괄을 맡은 수바스 지는 108배와 명상을 한 후 수련생들을 위해 짜이를 끓여내었습니다.

수련생들은 짜이와 빵, 과일로 아침 공양을 하고 명상수련을 마무리하며 소감을 쓰고 나누었습니다.

“명상수련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자유롭게 써보세요. 뒷장에는 개선했으면 좋을 점을 적으면 됩니다.”

짧은 2박 3일이었지만 느낀 것이 많았는지 수련생들은 소감을 길게 적었습니다.

여자 수련생들 중에는 종이를 받아 들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0명 중 7명이 글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남자, 여자로 나누어 소감문을 읽었습니다. 소감문을 쓰지 못한 여자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말로 나누었습니다.

여자 10명 중에서 2명, 남자 17명 중에서 3명을 뽑아 전체 앞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이런 기회 자체가 주어진 것이 감사했어요. 여자들은 특히 이런 기회 자체도 없고, 참여하기도 어렵거든요.”

“부처님이라는 단어만 알았지, 그 내용은 아무것도 몰랐는데 수련을 통해서 처음으로 부처님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처음으로 명상을 해보았습니다. 앉기가 어려웠지만 할수록 익숙해졌습니다. 익숙해지면서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해보니 ‘정말 무상하구나. 내가 아끼는 몸도 무상하구나’를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자리에서 일어나 많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호흡에 집중하다가도 어느 순간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다리에 통증이 있었는데 사라지기도 했고, 또다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건의사항도 있었습니다.

“명상수련을 좀 더 길게 하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4박 5일은 하면 좋겠어요.”

“사진 촬영하는 소리가 신경 쓰였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그건 당신이 명상을 잘못한 거예요. 스님께서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잖아요.” (모두 웃음)

힌디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수련생들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발표는 힌디로만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수련생들이 쉬는 시간에 쁘리앙카를 통해 수련생들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소감문 발표까지 마치고 명상수련을 정리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명상 잘하셨습니까?”

“네!”

“저는 한 4일 전부터 감기 몸살로 많이 아팠습니다. 수련도 못할 뻔했어요. 만약에 법문을 하는 거라면 목이 아파서 못 했을 거예요. 마침 명상하는 거라서 저도 좋았습니다. 명상을 이틀 하다 보니 몸도 조금 나았어요.”

시작할 때보다는 좋아졌지만 목소리에 여전히 감기 기운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스님은 이어서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명상의 여러 단계 중 첫 번째 단계인 ‘호흡 알아차리기’를 했습니다. 이 첫 번째 단계를 잘하면 나머지 단계는 저절로 됩니다. 첫 번째 단계, 두 번째 단계, 그다음으로 세 번째 단계, 이렇게 순차적으로 나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첫 번째 단계를 잘하면 그다음 단계가 모두 저절로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호흡 알아차리기는 가장 기초이면서도 전부입니다.

모든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정, 즉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는 것입니다. 긴장하거나, 들뜨거나, 애써서는 안 됩니다. 모든 긴장을 풀고 편안한 가운데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안해지면 졸음이 찾아옵니다. 또 졸지 않으려고 애쓰면 마음이 긴장되기 때문에 그것도 맞지 않습니다. 어떤 의지를 갖고 ‘이렇게 해야지, 하지 말아야지, 졸지 말아야지, 잘해야지’ 이렇게 하면 마음이 긴장되기 때문에 기본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긴장을 풀고 편안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부작용이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졸음이 옵니다. 둘째, 생각이 많이 일어납니다. 셋째, 멍청해집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무언가 하나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나빠나 사띠(Anapana-sati) 수행에서는 호흡에 집중을 하고, 선(禪) 불교에서는 화두(話頭)에 집중을 합니다. 예를 들어, ‘나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집중을 합니다. 위빠사나에서는 호흡에 집중을 합니다.

다만 알아차릴 뿐

숨을 의도적으로 길게, 짧게, 깊게, 얕게 조절하는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쉬어지는 숨을 내가 알아차릴 뿐입니다. 몸이 긴장하면 숨이 가빠지고, 몸이 편안해지면 숨이 천천히 쉬어집니다.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숨이 가쁘면 가쁜 줄 알고, 숨이 부드러우면 부드러운 줄 알 뿐입니다. 숨이 불규칙적이면 ‘불규칙적이구나’하고 알고, 규칙적이면 ‘규칙적이구나’하고 아는 것입니다. ‘숨이 부드러워야 한다’, ‘숨이 규칙적이어야 한다’ 이런 게 아닙니다. 숨이 쉬어지는 대로 그냥 알아차리는 거예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숨이 들어오면 ‘숨이 들어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나가면 ‘나가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길게 들어오면 ‘길게 들어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가쁘면 ‘가쁘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부드러우면 ‘부드럽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입니다. 늘 알아차려야 합니다. 중도(中道) 수행의 핵심은 ‘사띠(sati)’, 즉 ‘알아차림’입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예를 들어, 앉아 있어서 다리가 아프면 우리의 욕구는 다리를 펴고 싶어 합니다. 이때 다리를 펴면 욕구를 따라가는 길이 됩니다. 욕구가 일어날 때 욕구를 따르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반대로 다리가 아픈데도 펴지 않고 참는 것은 고행주의입니다.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욕구에 따라가면 과보를 받고,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됩니다.

부처님은 출가 전에는 욕구를 따라갔고, 출가 후에는 욕구를 억제했습니다. 부처님이 6년 고행 끝에 새로 발견한 길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억제하는 것도 아닌 제3의 길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리에 통증이 있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욕구와 싸우면서 참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다만 ‘통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다리를 펴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도 받지 않습니다.

꾸준한 연습과 훈련

설명은 이렇게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됩니다. 통증이 생기면 다리를 풀어야 하거나, 안 풀려면 참아야 합니다. 참으면 긴장을 하게 되고, 긴장을 하면 평정심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건 마치 외줄을 타는 것과 같습니다. 두 개의 기둥 사이를 밧줄 하나로 이어놓고, 그 밧줄 위를 걸어간다고 해봅시다.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물어보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왼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가운데로 똑바로 걸어가라.’

말은 이렇게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떨어집니다. 한쪽으로 안 떨어지려고 하면, 그 반대쪽으로 기울어져서 떨어집니다.

수행도 이와 같습니다. 중도라는 것은 균형을 잘 잡고 가는 것입니다. 통증이 있을 때 다리를 펴면 욕구를 따르는 것이니까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고,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은 그 반대쪽으로 기우는 것입니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통증을 통증으로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꾸준히 연습해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더라도, 귓가에 소리는 들리지만 내 마음은 코끝에 집중해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자꾸 소리에 끌려가기 쉽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몸 어딘가가 가려워도 가만히 호흡에만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졸음이 올 때 ‘안 자야지’ 하고 버티는 것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졸음이 온다는 것은 육체가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졸음이 올 때 몸이 잠깐 흐트러져도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올라도 그건 생각의 문제일 뿐이고 나는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시장통을 지나갈 때와 같습니다. 가게에서 사람이 나와서 팔을 잡고 자기 가게에 오라고 잡아당깁니다. 그 사람이 이끄는 대로 가게에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나오면 30분이 지나 있습니다. 그다음 가게에서 다른 사람이 잡아당기면 다시 30분이 지납니다. 이처럼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그 생각을 따라 계속 가면 이것은 망상을 피우는 것입니다.

옆에서 팔을 잡아당겨도 나는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팔을 잡아당기는 것은 가게 주인이 하는 일이고, 나는 그냥 내가 갈 길을 계속 갑니다. 옷가게 주인이 잡아당겨도 그냥 지나가고, 음식점 주인이 잡아당겨도 그냥 지나가고, 온갖 가게 주인들이 나를 잡아당겨도 그냥 쭉 지나갑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도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여기서 엄마 생각이 났다가, 부인 생각이 났다가, 불교 생각이 났다가, 붓다 담마가 생각났다가, 온갖 생각이 올라옵니다. 이때 붓다 담마를 생각하면 좋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두 웃음)

어떤 생각에 끌려가도 그건 다 망상입니다. 부처님이 나타나서 잠깐 보자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오직 호흡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가장 큰 장애는 망상과 번뇌

처음에는 계속 놓치고 또 놓치게 마련이지만, 계속 연습하다 보면 호흡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길어집니다. 명상을 열흘 동안 하게 되면, 첫날에는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3일 정도 지나면 졸음은 없어집니다. 눈을 감고 하루 종일 있어도 졸음은 오지 않습니다. 그때는 다리가 아픈 게 문제예요.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아요. 그런데 다리 아픈 것도 5일 정도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7일이 지나도 다리 통증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장 어려운 것은 머릿속에서 생각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번뇌가 최고의 장애입니다.

번뇌에 끌려가면 안 됩니다. 어떤 때는 명상 중인데도 실제 일어나는 일처럼 착각이 일어납니다. 꿈속에서 명상이 끝났다며 죽비를 칩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모두 웃음)

이처럼 번뇌 망상이 가장 마지막 과제입니다. 부처님도 성도하기 직전에 세 가지 번뇌가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마왕의 세 딸이 유혹을 했고, 다음으로 마왕의 군대가 공격했고, 마지막에는 마왕이 직접 나타나서 마왕의 자리를 내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모두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뜻합니다. 마왕이라는 외부의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도 시간을 내서 일 년에 최소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는 명상을 깊이 하셔야 합니다. 명상을 꾸준히 하면 세상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에도 특별한 감정의 기복 없이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단야바드.” (감사합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치며 “다음에 명상수련을 좀 더 길게 하면 올 겁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성들이 “집에서 애들을 봐야 한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어떤 여성분은 “집에서 동물들을 돌봐야 한다”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이 여성들의 마음을 받아주며 말했습니다.

“맞아요. 사람보다 동물 때문에 집을 비우기가 더 어렵습니다. 사람은 친척집에 맡길 수가 있는데, 동물은 맡길 수가 없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인도 스님은 다시 한번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수련이 너무 짧습니다. 다음에는 더 길게 수련을 해주십시오.”

스님은 인도 스님의 마음도 받아주며 다시 말했습니다.

“스님은 돌볼 사람이 없으니까 수련을 길게 해도 되는데, 여성분들은 길게 하면 참석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스님들이 애기들을 다 봐주는 걸로 할까요? (모두 웃음)

다음에는 조금 더 길게 수련을 해봅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면 옆 사람을 보면서 더 열심히 정진할 수 있어요.”

마지막 식사는 풍성하게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봉사자들이 일찍부터 와서 준비를 마쳤습니다.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짜파티, 달, 사부지, 밥, 샐러드, 과일입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사용한 공간을 청소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법당, 숙소, 화장실, 설거지와 공양간 청소를 말끔하게 마쳤습니다.

깨끗해진 법당에 다시 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회향식을 했습니다. 먼저 삼귀의 오계, 빤쯔실을 했습니다. 빨리어로 진행했습니다. 이어서 인도인 스님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예를 표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불교의 전망을 그려주며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인도인 스님과 석가족에게 자부심을 가지라는 이야기로 수련을 마쳤습니다.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643년 전에 지금의 네팔 땅, 당시의 카필라바스투 룸비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주 옛날에 살다가 가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다시 읽어봐도 너무나 사실적이고 합리적이고 정확합니다.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이해하고 ‘아, 붓다의 가르침이 정말 바르구나' 하고 알 정도로, 옛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정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도 세상의 여러 종교 가운데 21세기 과학의 시대에도 인정받을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불교가 유일하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물질의 근본이 무엇인가?’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가?’
‘정신작용의 근본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과학자들이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한 경지가 바로 부처님이 발견한 ‘아니짜(anicca, 無常)’와 ‘아나따(anattā, 無我)’입니다. 물론 부처님은 물질이나 생명을 연구하신 분은 아닙니다. 부처님은 정신작용, 즉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만 연구를 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자들이 물질과 생명에 대해 연구한 결과, 물질도 근본 실체가 없고, 생명에도 근본 실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래서 붓다 담마(Buddha Dhamma, 佛法)를 과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교는 부처님을 신처럼 믿고 복을 비는 종교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열반(Nirvana)을 추구하는 가르침입니다.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는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서 명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스님의 법문이 유튜브에 올라가고 있는데, 기독교인, 불교인, 무교인 등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듣고 좋아합니다.

붓다 담마는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 종교를 뛰어넘어 있습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에서 시청한 횟수가 7억 회가 넘습니다. 그만큼 붓다 담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도에서도 붓다 담마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붓다 담마입니다.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가르침

미국에 가면 기독교인들이 붓다 담마 공부를 많이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크리스천 부디스트(Christian Buddhist)’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기독교인데 마음공부는 붓다 담마를 배우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태어나서 미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을 ‘인디언 아메리칸(Indian American)’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처럼, 크리스천이지만 붓다 담마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크리스천 부디스트’라고 합니다. 그만큼 붓다 담마는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공산국가여서 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간부 중에서도 붓다 담마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커뮤니스트 부디스트(Communist Buddhi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이것은 숫타니파타(Sutta Nipāta)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 됩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나의 출신 계급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땅이 많은 것이 중요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는 돈이 많은 것이 중요했습니다. 요즘에는 정보와 기술이 많은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미래 사회에는 행복이 가장 중요해집니다.

내가 행복한가

계급 차별이 없어지고 남녀차별이 없어지기 때문에 혈통은 점점 덜 중요해지고, 가난한 사람들도 밥 먹고 옷 입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세상이 바뀌기 때문에 땅, 돈, 기술도 점점 덜 중요해집니다. 앞으로는 ‘내가 행복한가?’ 이것이 가장 중요해집니다.

영원한 행복, 참 행복, 지속 가능한 행복이 바로 니르바나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니르바나를 증득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부디스트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설령 인도에서 불교를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다 해도 무슬림이나 힌두교, 기독교에 비해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구 인구 70억 명이 모두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고 나 혼자 부디스트라고 해도 당당해져야 합니다.

힌두교, 기독교, 무슬림과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른이 싸운다면 그건 어른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싸움은 두 사람이 비슷할 때 일어납니다. 부처님은 신들 위에 있기 때문에 신들과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브라만, 인드라 같은 신들을 대동하고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그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불교에는 테라바다(Theravada) 불교, 마하야나(Mahayana) 불교, 암베드카르(Ambedkar) 불교, 선(Zen) 불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붓다 담마는 모두 같습니다. 다만 모양과 형식이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스님의 옷도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문화에 따른 옷의 모양과 색, 이름이 조금씩 다른 것이지, 붓다의 담마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 나누기를 들으니까 여성분들은 불교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여성분들도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배우셔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비쉬누, 시바, 타라 같은 신들과 부처님을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런 신들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르는 종교적인 신들이고, 붓다는 오래전에 실제로 이곳에서 살다 간 위대한 스승이자 한 인간입니다. 이번 수련을 계기로 삼아 붓다 담마 공부를 더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여성들이 따로 또 찍고 싶다고 해서 한 장 더 찍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여성들은 반납했던 장신구를 다시 받아갔습니다.

석가족들은 바로 떠나지 못하고 스님을 따라 담마센터로 왔습니다. 석가족 여성 한 명은 스님에게 감사하다며 2백 루피를 보시했습니다. 스님은 차를 마시겠다며 감사히 받았습니다.

짐을 싸고 차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1시에 오기로 했던 차는 3시가 넘어서야 왔습니다. 이제 이런 인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스님을 배웅하려고 기다렸던 석가족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시 30분에 차를 타고 칸푸르 기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6시간을 달려 밤 9시 30분에 칸푸르 역에 도착했습니다.

인도는 기차 연착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칸푸르에서 가야로 밤 9시 37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예매했지만 게시판에 2시간 연착되었다고 떴습니다.

대합실에서 기다렸습니다. 조금 더 있자 12시 27분, 1시 7분, 1시 37분으로 출발시간이 계속 늦어졌습니다. 스님은 다른 인도인들처럼 대합실에 침낭을 깔고 누웠습니다.

1시 25분이 되어 기차를 타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또 출발시간이 미루어졌습니다. 스님은 자리를 깔고 앉아 명상을 했습니다. 날이 많이 추웠습니다. 새벽 2시가 넘자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결국 도착 예정시간이었던 새벽 3시에 이제 기차를 탔습니다. 오늘은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며 잠을 다 잤습니다.


6시간 후에 가야 역에 도착하면 수자타 아카데미로 이동합니다.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 3박 4일 동안 인도인 JTS 활동가를 위한 명상수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금,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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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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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20-03-26 22:35:13

파란 을 일으키자

스님 건강하십시요 ㅠㅠ
너무 고생하셔서ㅠ

2020-02-02 04:07:21

고경희

알아차림~ 꾸준한 연습과 훈련

2020-01-27 22: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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