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2.11 필리핀 민다나오 방문 3일째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게 불교야”

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 JTS센터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오전에 2020년 사업계획에 대해 논의를 하고 마닐라로 이동하여 저녁 6시부터는 마닐라 정토법당 이전 개원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부터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다 함께 했습니다. 스님은 4시부터 법당에 나와 먼저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가 끝난 후 밖에 나오니 가을 하늘처럼 맑은 날씨를 보니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향훈 법사님의 안내로 필리핀 JTS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텝들과 함께 센터 주변 농장을 둘러보러 나섰습니다.

우천 시 퇴비 손실을 막고, 농사를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지난 2월 초에 비탈로 되어 있던 농장을 크게 3단으로 구분하여 평탄화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농장 곳곳에 심어놓은 파인애플, 바나나, 커피, 파파야, 고추를 돌아보며 농작물의 생육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파파야는 무생채처럼 만들면 아주 훌륭한 반찬이 된다고 합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도 유기농 퇴비를 사용하여 각종 야채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수확한 야채로 공동체 성원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센터 내 신축 주차장, 팜하우스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의 농사에 대한 관심은 어딜 가나 한결같습니다. 농장을 한 바퀴 돌아 센터까지 오니 아침 식사할 시간이 되어 다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7시 30분부터 2020년 사업계획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향훈 법사님으로부터 필리핀 JTS 사업계획을 보고 받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내년 사업계획 중에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는지 함께 점검해 보았습니다.

특히 마을개발을 할 때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는 스님이 처음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마을에 학교를 세울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스님은 염소가 살던 방을 하나 얻어서 거기에 머무르며 현지인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사업계획에 대한 논의를 깊이 하다 보니 어느덧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급히 짐을 정리한 후 차량 2대에 나눠 타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예상치 못한 교통체증으로 점심을 먹기에는 빠듯했습니다. 다행히 짧은 시간에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향훈 법사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내년에 보자”라고 하며 공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으로 민다나오에서의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서 마닐라에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짐을 찾아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녁 6시부터는 마닐라 정토법당 개원법회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법당으로 가는 길이 거의 주차장이 된 상태로 차가 막혀 있었습니다. 평소 2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시간 넘게 걸려서 가야 했습니다. 개원법회 한다고 내빈들을 초대해 놓았기 때문에 결국 차에서 내려 마지막 3km는 뛰다시피 이동해서 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마닐라 정토법당 이전 개원법회

다행히 6시 조금 넘어 이전 개원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참석한 내빈들과 함께 커팅식을 했습니다.

노재국 마닐라 정토법당 대표의 인사 말씀, 이규초 불사 추진위원장의 불사 경과보고, 신부님의 축하인사, 내빈 소개 후 스님의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법문에 앞서 마닐라 정토법당을 이전하면서 정토회 회원들이 직접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많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의 원칙에 맞게 불사가 진행된 것을 특별히 격려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정토법당 이전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장소 물색하랴, 구입하랴, 시설 공사를 하랴,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노력한 것을 보니까 정토회의 원칙에 맞게 공사를 잘하신 것 같습니다.”

바쁜 가운데 참석해준 교민사회 지도자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참석한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어떤 자세로 정토법당을 운영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마닐라 정토법당을 이전 개원하면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불교인이다’, ‘종교인이다’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수행자이다’ 하는 정체성을 좀 더 분명하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600여 년 전에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하는 한 젊은이는 이 세상에 대해서 큰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불행해야 하는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왕궁 안에서는 이 의문을 도저히 풀지 못해서 결국 출가를 했습니다.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출가하기 전 세상에 살 때는 왕자를 시봉 하는 하인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말을 몰 때는 말을 모는 하인이 따로 있고, 마차를 끌 때는 마차를 끄는 하인이 따로 있고, 옷을 입을 때는 옷을 입혀 주는 하인이 따로 있고, 잠을 잘 때는 잠자리를 봐주는 하인이 따로 있고,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수행자가 된 이후로 돌아가실 때까지 어떤 시종이나 하인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께서 연세가 많이 드셨을 때 같은 수행자 중에 옆에서 도운 사람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같은 수행자로서 도운 것이지 어떤 하인 신분으로 부처님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은 부처님이 나무 밑에서 걸식하며 생활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이것이 늘 부처님에 대한 정반왕의 불만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처님의 출가는 막지 못했지만, 집을 지어서 부처님이 거기에 살도록 요청하고, 길거리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을 반대해 좋은 음식을 차려서 제공하고, 심지어 잘 생긴 젊은 자제들을 뽑아서 부처님을 시중하도록 사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반왕은 늘 부처님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잠은 어디에서 자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만 물어보지, 부처님이 무슨 법문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왕족이라는 신분을 갖고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신분의 허위의식, 높은 계급이라고 하는 그 허위의식을 버렸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신앙이나 자신이 배웠던 철학도 진리에 기준해서 바르지 않다고 생각해서 버렸습니다. 평생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음식을 얻어먹고, 나무 밑에서 잠을 자는, 그런 모습으로 팔십 평생을 사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부처님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 시대의 스님들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신라는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왕이 절마다 땅과 노비를 하사했습니다. 그 노비들이 농사짓고 밥 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스님들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거기에 사는 스님들은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참선도 하고 경전 공부도 하고 설법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스님들은 ‘훌륭한 종교 지도자다’, ‘훌륭한 불교 철학자다’, ‘위대한 학승이다’ 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훌륭한 수행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세상이 신분제 위에 있다고 해서 자기도 신분제 위에 생활을 한다면 그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신라 시대 승려 중에 수행자라고 이름을 붙일만하다면 늦게라도 깨닫고 수행자의 길을 갔던 원효 스님입니다. 나중에 그는 승려라는 지위마저도 버리고 민중 속에서 살았어요.

수행자의 길

제가 한참 혈기가 있을 때인 20대에는 불교 개혁 운동을 했습니다. 당시 불교계가 시끄러웠잖아요. 비구와 대처 간에 분쟁이 있었고, 총무원장을 서로 하려고 싸움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봉암사 선방 조실 스님을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우연히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불평과 불만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스님들의 행위, 절의 운영 방식, 교육, 모두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렇게 두 시간 동안 비판을 했는데, 그분께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다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보게. 어떤 사람이 말이야. 논두렁 밑에 떡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네. 그곳이 절이야. 그것이 불교라네.’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교를 개혁한다고 하면서도 저는 불교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머리 깎고 가사 장삼을 수한 사람이 스님이고, 기와집이 절이고, 이런 제도와 교육 시스템이 불교다.’

그래서 문제가 많다고 주장을 했는데, 이 분이 하신 말씀은 ‘너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느냐, 잠꼬대하느냐?’ 이 얘기였어요. 중이라고 하는 수행자는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고 그 마음이 청정한 자가 수행자라는 겁니다. 절이라는 것은 기와집이 아니고 마음이 청정한 자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겁니다. 설령 논두렁 밑에 앉아 있어도 그곳이 절이라는 거예요. 그때 제가 자각했습니다.

‘내가 불교를 개혁하겠다고 하는 그것마저도 꿈속의 노름이었구나! 그건 바로 허공에 헛꽃을 꺾으려 하는 것이었구나!’

허공에 있는 헛꽃은 환상의 꽃이에요. 환상의 꽃을 꺾으려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잖아요. 그분의 말씀은 ‘부질없는 짓 그만하고 눈을 떠라. 환영에서 깨어나라’ 이런 얘기였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이런 모양을 갖고 수행자니 아니니 하는 생각을 버렸어요. 어떤 집을 갖고 이것이 절이니 아니니 이런 생각도 버렸습니다. 우리가 진실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런 대화를 하는 그 사람이 수행자이고, 그런 사람이 찻집에 앉아 있으면 찻집이 절이고, 가정집에 앉아 있으면 가정집이 절이고, 교회에 앉아 있으면 교회가 절입니다. 들녘에 앉아 있으면 들녘이 절입니다.

수행자는 어떤 종교 지도자의 개념이 아닙니다. 어떤 인종이든, 어떤 계급이든, 어떤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든,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의 삶이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떤 사람이든 수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수행자의 길은 밖으로부터 뭔가를 구하는 욕망을 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욕망을 추구하는데 자기 힘으로 안 되니까 남한테 부탁해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비는 것은 해탈의 길이 아닙니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세상을 떠나 저 깊은 산속에 가서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 밥 먹고 똥 누고 사회생활하는 그 속에서 내 마음을 여일 하게 유지시키는 그것이 수행입니다.

그전에는 ‘이 불교 교단을 어떻게 개혁하느냐’, ‘사람을 어떻게 모으느냐’ 하는 생각으로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깨가 엄청나게 무거웠어요. 그런데 그 스승님이 준 관점에서는 이 일을 하기가 너무 쉬웠어요. 아무것도 개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절을 지을 필요도 없고, 스님들을 바꾸어야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사람들을 만나서 진실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고,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이 사라지도록 하면 돼요. 그러고 나서 손을 맞잡고 함께 이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나 혼자 시작했지만, 상대도 깨닫게 되면 이제 둘이서 손을 잡고 이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장소가 없으면 작은 사무실을 빌려서 하면 되고, 가정집에 모여서 하면 되고, 식당 일이 끝나면 식당 빈자리에서 하면 되고, 그것도 없으면 교회를 빌려서 하면 되고요. 장소를 특별히 정할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훨씬 쉬워졌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정토회입니다.

‘부처님이 가셨던 수행자의 길을 우리도 한 번 가보자.’

이것이 정토회의 창립 목표였습니다. 제가 불교가 가진 종교적인 전통을 계승하려고 했다면 해인사나 통도사에 가서 살면 되지 무엇 때문에 정토회를 새로 만들었겠어요? 정토회는 ‘수행공동체’,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머리를 깎느냐 기르냐 이것은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냐 절에 다니냐 이런 것도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수행자들의 모임이 될 수 있도록 마닐라 정토법당을 잘 운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이곳에서 법회를 열고 수행 정진을 할 때도 밥 해 먹고 청소하는 것을 참가하는 수행자들이 해야 합니다. 법당 공사를 여러분들이 직접 했듯이 말입니다.

바깥에서는 사장이든, 사모님이든, 회장이든 직위가 있으시니까 대우를 받으시겠지만, 그것은 바깥 세상에서 그런 것이고 법당 안에 들어오면 똑같이 수행자입니다. 회사에서는 사장이고 직원이지만, 여기 오면 모두가 똑같은 수행자예요. 이걸 놓치면 안 됩니다.

필리핀은 인건비가 싸다 보니까 가정부와 운전수를 집집마다 두고 있는데, 이들에게 법당에 필요한 일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여기는 수행 공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여러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수행 도량에는 가정부를 데려와서 일을 시켜서는 안 돼요. 그분이 자기도 부처님의 법이 좋아서 도반으로서 이곳에 와서 청소하고 밥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기는 가톨릭 신자인데 사모님을 따라와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봐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정토회에서는 더더욱 용납이 안 됩니다.

정토회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기술 있는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시켰다면 스님의 유튜브 영상도 좀 더 빠르게 제작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촬영하는 사람도, 편집하는 사람도, 모두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문 기술을 가진 봉사자가 없다 보니 편집이 늦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토회가 이 원칙을 고집하는 이유는 신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수행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정토회 회원이 된 여러분들은 수행자입니다. 머리 깎은 스님과 같습니다. 여기 안에서는 나이가 많든 적든 수행자로서의 원칙을 지켜야 해요. 법당이 크다 보니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를 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집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 법당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고, 그 이유 때문인지 정토회 안에는 부자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편리를 쫓아가면 수행자라 할 수 없어요. 정토회 이름으로 복을 비는 기도를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부처가 되기를 서원한 사람인데 누구한테 빕니까. 물론 개인이 혼자서 복을 비는 건 얼마든지 괜찮아요. 개인이 복을 비는 것은 관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정토회 이름으로 복을 비는 기도를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여러분들이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규모가 작은 법당은 이 원칙을 훼손할 일이 거의 없는데 규모가 큰 법당은 이 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뭐든 규모가 커지면 문제라고 보셨기 때문에 나무 밑에서 주무시고 사셨던 거예요. 수행자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범위 안에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공간이 커지는 것은 괜찮지만, 반대의 경우는 안 됩니다. 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에요. 여러분이 수행자의 본분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규모를 크게 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손때가 묻어나게 법당을 아주 소박하게 잘 꾸며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노력해서 만든 공간이니까 한 분이라도 더 와서 행복해질 수 있게 여러분들이 자원봉사도 많이 해주십시오. 민다나오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 장애아동을 돕는 일, 마을을 개발하는 일에도 적극 동참해서 그들이 자립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해요.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위해 이 도량을 잘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모두 박수)

개원법회를 마친 후 내빈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필리핀 세부 법당에서 온 10여 명의 활동가들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참가한 전체 대중과도 일일이 인사를 나눈 후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10시가 넘어서 법당을 나왔습니다. 오늘 밤에는 이원주 대표님 댁에서 머문 후 내일 아침 7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내일은 한국에 도착하여 저녁 7시부터 평화 리더십 아카데미 동문 송년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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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20-02-03 20:32:07

전은혜

논두렁밑에 앉아서 마음을 청정히하면그게 불교야. . .마음에 가르침을 새깁니다. .

2019-12-31 06:30:09

진달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19-12-23 05: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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