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12 행복한 대화(19) 수원
“내 나이 64살, 이제 나를 위해 살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3200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 수원 컨벤션센터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새벽 4시 30분,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대중과 함께 새벽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 머물며 실무자들과 미팅을 하거나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오후 5시에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수원 강연은 2019년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총 3025석의 자리가 만석이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주위에 아파트 단지가 많아서 그런지 가족 단위의 참가자가 많았습니다. 맨 앞에 앉은 한 분은 오후 4시부터 입장을 위해 기다렸다고 합니다.

6시에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은 염태영 수원시장님과 잠깐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 오늘은 앵콜 강연이십니다. 지난번에 수원시청 대강당이 너무 비좁아서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못 듣고 돌아갔지 않습니까. 너무 죄송해서 이번에는 누구든지 강연을 들을 수 있게 컨벤션센터를 마련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짧게 환담을 나누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이 무대 위에 오르자 3천여 명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컨벤션센터의 열기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뒤에 앉은 사람들은 얼굴이 콩알만큼 보입니다. 얼굴이 구분도 안 돼요. 얼굴은 안 보이지만 환영합니다.

누구나 제한 없이 강연을 들을 수 있게 장소를 마련해준 수원 시장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오늘도 혹시 자리가 없을까 봐 오후 4시부터 온 사람 있으세요?”

“여기요.”

“그래서 앞자리에 앉으셨네요. 자리가 없어서 자꾸 일찍 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저도 항상 죄송합니다. 강연이 7시에 시작하니까 6시 30분에 오면 딱 맞는데,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까 4시부터 오는 분들이 계셔서 늘 미안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오신 분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함께 앉아서 얘기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즉문즉설은 어떤 취지를 갖고 진행되는 강연인지 간단히 설명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2시간 16분 동안 총 12명이 스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한평생 돈만 벌고 산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50대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해 큰 여운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평생 돈만 벌었지 나를 위해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저의 부모님은 너무 가난하게 사셨어요. 아버지는 맨날 남의 돈을 꿔서 사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부모님이 안 됐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돈만 벌고 평생 살았어요.

어느덧 제가 64세인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까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행했을 뿐,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건 아무것도 없고, 먹고, 입고, 자고, 짐승들이 하는 짓만 겨우 하고 살았던 거예요. 이제는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오늘부터 사람답게 살면 되잖아요. 더 물을 것이 있어요? 저한테 앞으로 사람답게 살겠다고 신고하시는 거예요?” (모두 웃음)

“돈 벌고, 애들 키우고, 좋은 옷을 입고, 이런 것 하고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 종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한 인생을 사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어요. 그렇게 사람 같이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조만간 가진 돈을 다 탕진하겠어요. 누군가에게 속을 징조예요. 어디다가 돈을 몽땅 갖다 줄 것 같네요.”

“어디 돈 갖다 주는 것은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했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그것은 사람 같이 사는 게 아니고, 어릴 때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과 비슷한 마음이었어요. 그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하고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것하고 제가 잘 사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아무 관계없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까지 잘 살았어요.”

“그게 잘 산 거예요?”

“그래요. 질문자는 남에게 빌어먹고 살지 않았죠?”

“네.”

“그럼 잘 산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남한테 기대어서 빌어먹고 살기도 해요. 질문자는 자기가 벌어서 목사님한테도 드리고, 부모님한테도 주고 살았잖아요. 남한테 주고 살면 복 받는다고 하는데, 질문자는 복 받을 행동을 했잖아요. 남한테 구걸하고 살지 않았고, 빚지고 살지 않았으니까요. 잘 살은 거예요. 혹시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죽인 적 있어요?”

“아이들을 때린 적은 있어요.”

“아이들을 때린 것은 좀 반성해야 해요. 때린 적이 있으면 아이들이 나중에 질문자에게 좀 섭섭하게 할 거예요. 그리고 남의 돈을 뺏거나 훔친 적이 있어요?”

“훔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사업을 할 때 저만의 이익을 위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별짓을 다 했어요. 그래서 그것도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때 거래했던 사람들을 찾아서 그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사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과를 하면 할수록 자꾸만 ‘그런 짓을 해놓고 인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사람같이 살아야겠다 싶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사죄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습니다. A라는 사람의 것을 B가 빼앗았다면, B의 것을 또 C가 빼앗아 먹어요. 빼앗아둔 C의 것은 다시 D라는 사람이 빼앗아 먹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빼앗아 먹으며 삽니다. 그래서 내가 A한테 뺏어 왔다고 해서 꼭 A한테만 빚을 갚는 것만이 진정한 반성이 아니에요. 그 A가 가진 것도 또 다른 사람한테서 빼앗아 온 것이거든요.

이렇게 우리가 빼앗아 오는 것을 계속 반복했을 때 제일 큰 피해자는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직접 그 사람에게서 빼앗아 오지는 않았어도 몇 단계를 걸쳐서 간접적으로 빼앗아 온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 병들었지만 치료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이 초등학교도 못 다니는 사람들이 이 지구 상에는 많습니다. 이것을 기아, 질병, 문맹이라고 해요. 그 사람한테서 직접 안 빼앗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런 극빈층에게 죄를 짓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저분한테 보시를 받았다면, 그분은 또 가게를 운영하면서 손님한테 돈을 받은 겁니다. 이렇게 죽 따라가 보면, 우리 모두는 제일 극빈층에게 반성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죄를 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살 수 있을 정도는 제외하고 나머지는 이런 극빈층을 위해 보시를 하면 한꺼번에 사죄가 되는 겁니다. 만약 북한에 식량이 없어서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면, 정치 이념을 따지지 말고 그곳에 보시하세요. 아니면 저 회교도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굶어 죽는다면 지원을 하세요. 가난해서 학교도 못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 병이 들었는데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기부를 하세요.

이렇게 극빈층을 돕는 데 지원을 하면 질문자의 쌓였던 죄가 다 소멸해요.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돼요.” (모두 박수)

“한 가지 더 질문이 있어요.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보시를 했으면 그것으로 끝내야 하는데, 많은 금액을 보시했을 때는 어깨가 올라가고 누구에게 말하고 싶어져요. ‘나는 이런 것도 했어’라고 막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보시를 안 할 때보다 더 힘들어요.”

“그때는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장사하면서 남의 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은 돈이니까 그 돈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남의 돈을 돌려주고 무슨 큰소리를 치려고 그래요?

‘내가 그 사람한테 돈을 빌렸는데 안 떼먹고 돌려줬다!’

이렇게 자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죠.”

“없잖아요.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지 주는 게 아니에요. 돌려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질문자는 지금까지 남한테 빚 안 지고 살았잖아요. 그것만 해도 잘 살았어요. 그것 자체가 사람답게 산 거예요. 사람답게 사는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자립을 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짐승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남한테 구걸하고 사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짐승만큼 사는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에요. (모두 웃음)

그렇다고 해서 짐승만큼 사는 사람을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다음 단계로는 짐승보다 좀 나은 삶을 살아야 할 것 아니에요. 짐승보다 나아지려면 남을 조금이라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첫째, 짐승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립을 할 뿐만 아니라 남을 돕는 사람이에요. 둘째, 짐승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자립하는 사람이에요. 다람쥐도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해결하고, 토끼도 자기 먹을 풀은 직접 뜯어먹습니다. 그래서 짐승 같다는 표현은 나쁜 뜻이 아니에요. 셋째,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뺏어 먹고,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부모한테 얻어먹고 사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에요.

질문자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에요, 짐승 같은 사람이에요?”

“짐승 같은 사람이요.”

“그래요. 질문자는 괜찮다니까요. 짐승 같다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두 박수)

“아...”

“이 세상에는 짐승 같은 사람보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더 많아요.”

“제가 짐승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저밖에 모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면 짐승 같은 사람이라니까요.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요.”

“나쁜 것이 아니라고요?”

“짐승 같은 사람은 제로 베이스입니다. 그것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데 앞으로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잖아요?”

“네, 맞아요.”

“그러면 이제는 짐승보다 나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짐승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면, 남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합니다. 내가 번 돈을 교회에 갖다 주거나 절에 갖다 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굶어 죽는 사람,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겁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겁니다. 학교도 못 간 아이들을 학교에 가게 해 주는 겁니다. 이 지구 상에는 부모가 자식을 못 키워서 3살 미만에 죽는 유아 사망자가 1년에 500만 명이 넘습니다. 그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런 아이에게 분유 한 통이라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그 아이들이 커도 학교에 못 보내요. 자식을 학교에 못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어요. 내 자식이 아니라도 그 아이들을 학교에 갈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데 한 달에 2~3만 원도 안 들어요. 그런 좋은 일을 하기 위해 한 달에 3만 원이든,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정기적으로 후원한다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짐승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요.”

“조금이 아니고 많이 나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지금처럼 짐승같이 사는 사람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까지 잘 살았어요.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사는 길은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겁니다. 내가 가진 재산을 자식한테 물려주게 나아요? 아니면 사회에 환원하는 게 나아요?”

“자식한테 준다는 소리는 절대로 안 했어요.”

“잘했어요! 자식은 공부만 시켜주면 끝이에요. 알았죠?”

“네”

“가능하면 죽기 전에 JTS에 기부하고 가면 좋아요. 그러면 북한의 굶어 죽는 사람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해 필요한 곳에 잘 나눠줄 거예요. 그런데 이런 말 듣고 무조건 주면 안 돼요. 왜냐하면, 이런 소리 하면서 돈 걷는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조심하셔야 해요.” (모두 웃음)

“네, 알겠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가운데 다음 질문자가 일어서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아들이 못마땅한 여성분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지 않는 아들이 안타까워요

“저는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지 않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한계를 돌파하지 하지 않는 아들은 자기가 문제없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거든요. 아들이 성인이라서 내버려 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제가 문제라는 걸 저도 알긴 알아요.

108배도 해보고, 1000배도 해봤는데, 아직 전기충격기는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거는 다 했는데도, 제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도대체 제가 왜 그런지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왜 그러긴요? 쥐가 쥐약을 먹으려고 그러는 거죠.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데요?”

“저는 사람이 일단 태어났으면 최선을 다해서 살아 보기를 원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게 각자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제가 예민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들이 능력이 더 있는데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게 굉장히 안타깝거든요.”

“능력이 있는 것을 다 발휘하면 안 돼요. 자동차의 최대 시속이 180km라고 해서 180km로 달리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사고 나요. 진짜 참 이상한 엄마네요. (모두 웃음)

180km로 달릴 수 있다면 100km만 달려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갑자기 비상사태가 일어나면 120이나 130을 달려서 위기를 피할 수가 있거든요. 180을 달려버리면 비상사태에 대응을 못하게 됩니다.

제가 능력이 100인데 능력이 150이라고 선전을 해 놓으면, 누가 나를 공격할 때 150을 예상해서 공격하면 저는 한 번에 망합니다. 제가 능력이 100이라면 바깥으로는 한 70 정도만 드러내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저를 만만하게 보고 70인 줄 알고 공격하면 제 능력인 100을 탁 드러내서 막아낼 수가 있어요. 아들이 엄청나게 현명한 아들이네요. 모자라는 엄마가 현명한 아들한테 자구 간섭하면 되겠어요? (모두 웃음)

‘아이고, 우리 아들이 나보다 낫네.’

이렇게 생각하고 입을 다무세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5분 간의 대화를 마치고 나니 문제가 많은 아들이 훌륭한 아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대로인데 관점을 바꾸니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다른 질문자들도 똑같았습니다. 관점을 바꾸니 아무 문제가 없어지는 가볍고 기분 좋은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 딸이 3개월 전에 죽었고, 남편도 최근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손자만 남았습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제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 스님께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떻게 살아야 즐겁게 살 수 있을까요?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살면 될까요? 주위 사람을 의식해서 살아야 할까요?
  • 저희 딸은 키가 크지 않는 왜소증을 갖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를 보내야 할지, 일반학교를 보내야 할지 고민입니다.
  • 2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공무원입니다. 마음 한편에 늘 무역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내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고 있지 않은지 고민입니다.
  • 딸이 주방 일을 너무 등한시합니다. 결혼도 해야 할 텐데 주방 일을 안 해서 걱정입니다.
  • 중학생인데요. 발표를 할 때 자신감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 사람은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이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청년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오지에 가서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인데 산업디자인 전공이 도움이 될까요?
  • 땅을 사서 타운하우스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 땅 주인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법적인 조치를 다 했지만 너무 괴롭습니다. 땅 주인의 자식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 한 친구가 저를 왕따 시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초등학생 어린이의 질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이 대화의 소제가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며 스님이 질문을 했던 사람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모두 한 줄로 간단한 소감을 말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많이 느꼈습니다.”
“아이를 위한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보겠습니다.”
“통쾌하고 속이 시원합니다.”
“딸의 인생이니까 앞으로는 딸을 내버려 두겠습니다.”
“항상 남과 비교했는데, 이제 자신감이 생겼어요. 발표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운 곳에 많이 후원하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스님과 함께 오지에 학교 지으러 가겠습니다.”
“복수심을 멈추고, 수행을 하겠습니다.”
“친구에게서 나오는 말은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지내겠습니다.” (모두 박수)

밝아진 얼굴의 질문자들을 화면으로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청중석에서 큰 박수가 계속 쏟아졌습니다.

“유익했습니까?”

“네”

“재미있었어요?”

“네”

“지구적인 입장에서 제일 시급한 문제가 뭘까요?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이기는지, 중국이 이기는지, 일본이나 한국이 이기는지, 이런 것일까요? 아니에요. 지구환경 문제가 가장 시급합니다.

지금 지구의 기온이 점점 올라가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고, 너 나라, 내 나라, 사람, 동물 할 것 없이 다 지금 위기에 처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적으로 생각할 때는 환경 보존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에너지를 과하게 쓰면 안 돼요. 또 일회용품을 많이 쓰니까 이게 바다로 떠내려가서, 저 태평양에 가면 한반도의 10배 크기의 쓰레기 섬이 생겼답니다. 그리고 물고기라든지, 자라라든지, 바다 생명체들의 몸속에 미세 플라스틱 가루가 산재해 있어서 이게 앞으로 우리에게 큰 위험을 가져오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환경을 생각해서 절약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지구 저편에는 절대 빈곤층이 있습니다. 얼마 전 통계가 발표되었는데 100만 불 이상 재산을 가진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0.9퍼센트라고 해요. 1퍼센트도 안 돼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가진 재산이 전 세계 재산의 44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인구의 1퍼센트가 거의 50퍼센트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빈부격차가 극심합니다.

이제는 한국 사람들도 지구 저편에서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아이들이 학교에도 못 가는 절대 빈곤층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들도 도와야 하지만, 나라를 넘어서서 절대 빈곤층도 도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연말에 다만 얼마라도 절대 빈곤층을 위해 기부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셋째, 전 세계에서 한국처럼 이렇게 잘 사는 나라 중에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나서 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반도에 전쟁만은 안 된다’ 하는 입장을 확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를 따지면 안 돼요. 여러분들 요즘 불만이 많지요? 그래도 한 가지는 고마워해야 해요. 2년 전 이맘때 우리는 전쟁이 날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런 전쟁 위기를 막은 것은 이념에 관계없이 잘한 일이라고 평가해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감정에 사로잡혀서 ‘저 자식들을 어떻게 그냥 놔두냐, 전쟁을 해야지’ 이러는데, 전쟁은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런 남북 간의 갈등과 대결구조 속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들을 도와야 해요. 굶어 죽는 사람을 돕는 것은 이념, 체제 이런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넷째,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인생이 행복한 겁니다. 행복이라고 해서 무슨 마약 먹은 것처럼 ‘헤’ 하고 입이 벌어지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괴로움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딸이 죽은 엄마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아이가 장애를 가진 아빠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남편이 죽은 사람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자신의 권리를 함부로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있듯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걸 꼭 인지하셔서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스님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3천 여 명이 순식간에 컨벤션센터를 빠져나갔습니다.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려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책 사인회가 긴 시간 이어진 후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행복학교 스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오늘 강연이 올해 강연 중에서 제일 많은 사람이 온 것 같아요. 분위기도 아주 좋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차분한 가운데 웃음이 넘쳐흘렀던 강연이었습니다. 3천여 명의 웃음만큼 대한민국의 국민 행복도가 조금 더 올라갔길 바랍니다.

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고양시 어울림극장에서, 저녁 7시에 부산 남구청 대강당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집니다.

전체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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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18 23:23:58

산나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라셨네요.
대한민국 행복도 상승^^

2019-11-18 07:58:18

이덕기

부처님 법중에 연기법을 배우긴 했는데 막연했다.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준 경우 일일이 찾아다닐필요 없이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못배운 사람에게 보시를 하면 다 된다는 말씀이 가슴에 닿는다.

2019-11-18 07: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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