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16 행복한 대화(9) 광주
“백혈병,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라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천이백여 명의 대중이 모인 가운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캄캄한 새벽 4시 30분, 스님은 법당에 먼저 내려와 명상을 하고, 대중과 함께 예불을 드렸습니다.

발우공양에 참석해 함께 공양을 한 후 출가한 행자들을 위해 당당하고 겸손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30분간 법문 해주었습니다.

정토회에 스님이 없는 이유

“공동체에 입재해서 들어온 여러분들은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의 기준이 출가한 승려라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을 버리기 위해서 세속 사람들과 똑같이 머리를 기르고 산다는 것도 늘 명심해야 해요. 목에 힘주지 말고 대중과 똑같이 겸손하게 살라고 머리를 길러 놓았는데, 다들 이 머리털에 집착해요. 깎아 놓으면 깎은 대로 집착하고, 길러 놓으면 길러놓은 대로 집착합니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있으면, ‘내가 스님인데’ 하는 ‘중상’이 생겨요. 설령 오늘 머리를 깎았다 하더라도 남들이 볼 때 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모두 웃음)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자는데도 주위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참 존경할만하다’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친구들 중에도 존경할만한 사람이 있잖아요. 평소에 ‘존경할만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 수행자였구나’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예요.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그래서 위대합니다. 양치고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주인이 늘 종 취급을 했지만, 종들 중에서도 사람이 워낙 착실해서 ‘아, 참 사람 좋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알고 봤더니 승려였다고 하니까 그 주인과 여동생이 모두 아도화상에게 귀의를 했습니다. 종으로 있을 때 이미 그 사람을 존경한 겁니다. 자기 집 종인 데도 ‘아,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하고 존경하다가 승려라는 신분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귀의해버린 거예요.

여러분도 지금처럼 머리를 기르고 생활하면 내 실력이 100이라 하더라도 남이 알아주는 것은 50에 불과합니다. 나를 100으로 알아주려면 내 수행력이 150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를 길러 놓았더니 지금 여러분은 수행력이 아니라 자기가 갖고 있는 세속적인 재능을 갖고 잘하느니 못하느니, 능력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승려가 되면 그런 재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이 마음속에 ‘나는 출가한 승려다’ 하는 자부심을 딱 가지고, 세상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돈이나 기술이나 재능이나 지위 같은 것에 비굴하게 굴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마세요.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나를 숨긴다는 뜻이에요. 세상 사람들한테 밥도 해주고, 허드렛일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면서 나를 숨기고 겸손하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관점을 딱 가져야 여러분이 수행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언제라도 머리를 딱 깎으면 주위 사람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법사 수계를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아, 그분이면 법사님 되고도 남는다’ 이런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지내다가는 법사 수계 할 때 주변에서 ‘아이고, 그게 법사냐? 그게 법사면 나도 하겠다’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법사 수계를 할 때 대중의 지지를 받는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대중과 같이 일할 때도 ‘아, 존경할 만하다’라는 평을 들어야 합니다. ‘대중과 같이 일할 때는 성질도 더럽고, 하는 짓도 엉망이었는데, 법륜 스님 옆에서 좀 꺼떡꺼떡 하더니 법사가 됐구나’라는 평을 들어서는 안 돼요. 언제든 법사 수계를 해도 대중이 ‘그분은 평소에 말이며 행동이며 생활이며 어느 모로 보나 법사가 될 만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생활을 해야 합니다.

3년이 지나도 안 고쳐진다면 앞으로도 좀 어렵습니다. 정토회 와서 3년 살면 딱 끝장을 봐버려야 해요. ‘3년 넘었는데도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냐?’ 이런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3년을 딱 그렇게 안 산다는 거예요. 30년을 그냥 대충 산다는 얘기입니다. 딱 계율에 근거해서 지킬 것은 지키는 생활을 3년만 해보면 사람이 확 바뀌어버려요.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야무지게 살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행자대학원 3년을 그렇게 살긴 하는데, 이 때는 약간 군대처럼 서로 의지해서 좀 강압적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행자대학원을 졸업했는데도 밖에 나가면 금방 물이 들어요. 사람은 물드는 존재가 있고, 물 안 드는 존재가 있고, 물들이는 존재가 있습니다. 중생은 물드는 존재이고, 보디 사트바는 물이 안 드는 존재이고, 나아가서는 물들이는 존재예요. 상대가 나보다 지위가 높든, 나이가 많든, 나하고 같이 살다가 상대가 나에게 물들어서 오히려 좋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행자들이 들어오면 우리 전체가 정화되어 나가야 해요. 새로운 물이 낡은 물에 더러워지느냐, 새로운 물이 낡은 물을 정화시키느냐, 여기에 정토회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계속 정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가면 지금은 정토회가 좀 부족하더라도 앞으로는 희망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조금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재발심을 해서 마음을 다잡고 살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새물을 자꾸 부어서 맑히는 쪽으로 자기중심을 갖고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따끔하게 말씀해주었습니다. 출가한 지 오래된 사람도, 갓 들어온 사람도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평화재단에 찾아온 손님을 만나고 오후 2시 반에 광주로 출발했습니다. 해가 쨍쨍할 때 출발했는데 강연장에 도착하니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6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작년에 장소가 좁아서 강연을 들으러 왔다가 돌아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큰 장소에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봉사자들이 미리 넓은 강당에 천 개의 의자를 깔았습니다. 천 석은 금세 가득 찼습니다.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 도착한 스님은 곧바로 대기실에서 광주시민단체 협의회 상임대표 8명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요즘 조국 장관 사퇴를 두고 시국이 혼란스럽다”며 “국론이 찬반으로 분열될 때 어떤 관점을 갖고 시민활동을 해야 하는지?”라고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스님도 가볍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광주 시민이라면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일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현 정부를 너무 두둔해서는 안 돼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남북문제, 북미협상, 한일갈등 등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조국 사태로 인해 3개월을 끄는 것은 정부의 통치 능력이 부족하다고 봐야 해요. 국론을 빨리 수습하고 대외적인 일을 해나가야 하거든요. 지금 상황은 임진왜란 때 적이 쳐들어오는데 우리 내부끼리 싸우고 있는 것과 같거든요. 광주의 정신을 살려서 패거리처럼 굴지 말고 지성인답게 객관성을 담보해서 국론을 통합시켜가는 일에 좀 앞장서 주시면 좋겠어요.”

대화를 나누던 중 강연이 시작되어서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다 함께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님들과 이야기하느라 1분이나 늦게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스님이 허리 숙여 인사하자 청중은 큰 박수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강연에서 솔직하게 질문한 사람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오늘 질문자들도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던 질문자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덩달아 한숨짓던 청중도 함께 웃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질문자는 22살 나이에 백혈병이 재발했다고 합니다. 청중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질문자를 쳐다보았습니다. 스님과 대화를 마치고 질문자는 속이 후련하다며 미소 지었습니다. 죽음을 뛰어넘어 지금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백혈병 항암치료,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2살인 대학생입니다. 고등학생 때 백혈병을 앓아서 항암치료와 골수이식까지 받았습니다. 아직 완치는 안 됐지만 이 병으로 인해 가치관이 많이 달라지고 꿈도 생겨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암세포 변이 유전자 검사 결과가 다시 양성으로 나타났고, 재발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할 수도 있기에 현재 입원 예약을 하고 대기 중입니다. 아직 골수검사를 하기 전이여서 재발이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병의 증상들로 자주 입원해야 하고,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마다 제약이 많아 자꾸 발목이 잡히는 것 같아 힘듭니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플 때 옆에 남아주었던 친구들 외에는 관계를 다 끊어버렸더니 이제는 친구도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최근에 만났던 남자 친구도 제가 입원하게 되면 옆에 남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

자꾸 모든 기준을 아팠던 것에 두게 되고, 병에 얽매이게 됩니다. 걱정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걱정에 잡아먹힐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질문자는 말하는 내내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하루살이 알아요? ‘하루살이’가 무슨 뜻이에요?”

“하루 살고 죽는 곤충이에요.”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습니다. 하루살이를 관찰해보면 평균적으로 아침에 활동하기 시작해서 해지면 죽어요. 예를 들어 하루살이가 아침 6시에 알에서 나와서 저녁 6시에 죽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모든 하루살이가 사는 시간이 그렇게 똑같을까요? 아니면 낮 12시에 죽는 것도 있고, 오후 2시에 죽는 것도 있고, 오후 4시에 죽는 것도 있고, 오후 6시에 죽는 것도 있고, 또 일부는 밤 8시에 죽는 것도 있고, 밤 10시까지 살다 죽는 것도 있을까요?”

“다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하루살이의 인생에서 오후 2시에 죽는 것은 단명한 셈이고, 밤 8시에 죽으면 장수한 셈이에요. (질문자 웃음)

그런데 인간이 볼 때는 하루살이가 오후 2시에 죽으나 밤 10시에 죽으나 별 차이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우리의 삶을 하루살이에 비유해 보면, 오후 2시에 죽는 건 20세에 죽는 셈이고, 오후 4시에 죽는 것은 40세에 죽는 셈이고, 오후 6시에 죽는 것은 60세에 죽는 셈이고, 밤 10시에 죽는 것은 100살에 죽는 셈이에요.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으로는 그게 굉장한 것 같지만 저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인간의 일생은 하루살이와도 같습니다. 오후 2시에 죽으나, 6시에 죽으나, 10시에 죽으나, 그게 그거예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33세의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그것도 십자가에 못 박혀서 사형을 당하셨잖아요. 그래도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셨어요. 질문자에게는 오래 사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건 지금 하면 되잖아요. 질문자가 80세가 된다고 해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까요?”

“좋은 대학교도 졸업하고 싶어요.”

“죽는다는데 좋은 대학교 나와서 뭐해요?”

“사랑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어요.”

“사랑도 지금 하면 되고, 결혼도 지금 하면 되죠. 좀 당겨서 빨리빨리 하면 돼요. (모두 웃음)

꼭 오래 살아야만 결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결혼식 하고 3일 만에 헤어지면 돼요. 그러면 결혼도 한 번 해본 것이 되고, 하룻밤도 자 본 것이 되고, 사랑도 해본 것이 되잖아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요?

스님이 예전에 이런 경우를 봤어요. 어떤 사람이 참 어렵게 살다가 이제야 사업에 성공해서 살만해졌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힘든 게 다 지나가고 이제 살만한 때가 됐는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암에 걸렸대요. 그것도 위중해서 곧 죽게 됐어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저 사람의 행복을 천사가 질투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가슴 아파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 사람이 1년밖에 못 산다고 예측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다들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병문안을 다녀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한 사람이 죽었어요. 하루밖에 못 살 사람이 1년이나 살 사람을 위로해주고 간 거예요.

그러니 사람은 하루 사나 1년 사나 중요하지 않아요. 1년밖에 못 살기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라, 1년밖에 못 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1년을 괴롭게 살기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 질문자에게 남은 생이 1년인지 2년인지 10년인지는 모르지만, 질문자는 지금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남은 시간을 온통 괴롭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불행한 거예요.

얼마나 사느냐는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일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법륜 스님도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저는 내일 죽어도 오늘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거예요.

백혈병이면 뭐 어때요? 이 복잡한 세상에 무엇 때문에 오래 살려고 그래요? 지금 죽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안 죽었는데도 자기가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이 1년에 2만 5천 여 명이나 돼요. 질문자보다 젊고 질문자보다 건강하지만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이 우리나라 안에서만 몇 명이나 될까요?

예를 들어 질문자가 앞으로 3년 산다고 해봅시다. 질문자보다 건강하고 나이도 질문자보다 어리지만 그 3년 안에 질문자보다 먼저 죽는 사람이 10명, 20명, 100명, 1000명은 될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많이 사는 셈이에요.

결혼하고 싶으면 남자 친구와 바로 결혼하세요. 결혼하면 영원히 같이 살 것처럼 생각하지만, 멀쩡한 사람도 결혼해서 사흘이나 열흘 혹은 1년 만에 헤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그러니 결혼도 한 번 해보면 돼요. 그런데 아기는 내가 낳고 싶다고 무작정 낳으면 안 돼요. 백혈병은 아기한테 전이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기한테 나쁩니다. 그러면 아기는 안 낳으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학교는 다녀서 뭐해요? 학교 안 다닌 스님도 이렇게 잘 사는데요. 그것은 마치 이가 시리다면서 아이스크림을 꼭 먹으려고 하는 것과 같아요. 무엇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꼭 먹으려고 해요? 이가 시리면 안 먹으면 되죠.

질문자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백혈병을 앓았던 사람도, 백혈병이 재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하루를 살더라도, 열흘을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스님이 볼 때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런데 뭐 큰 문제라도 생긴 것처럼 질질 짜고 울어요?”

질문자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화하는 중에도 자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38명이나 됩니다. 우리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시간 동안에도 3명이 죽습니다. 병으로 죽는 게 아니라 자살하는 사람만 꼽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백혈병이 재발할지 안 할지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재발하면 재발하는 대로, 좀 빨리 가면 빨리 가는 대로, 늦게 가면 늦게 가는 대로 살면 됩니다. 굳이 먼저 죽을 것도 없고, 오래 살려고 발버둥 칠 것도 없어요.

그리고 백혈병이라고 해서 내일 당장 죽는 건 아니잖아요. 멀쩡하던 사람이 콜레라 같은 병에 걸려서 일주일 안에 죽는 경우가 지금 전 세계에 아주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거기에 비하면 질문자는 고급 병입니다. 그래도 질문자는 주위 사람들의 동정도 받잖아요. 게다가 언제 죽을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저러고 10년 뒤에 찾아와서 또 저한테 질문할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니 아무 걱정거리가 아니에요. 괜히 혼자서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지 마세요.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에요. 병이야 좀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남자 친구한테 연연할 것도 없어요. 아프니까 헤어지자고 말할 필요도 없어요. 헤어지고 안 헤어지고는 남자 친구가 결정해야지, 왜 질문자가 결정해요? ‘나 아프다’라고 얘기하면 도망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빨리 결혼하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하니까, 네가 죽기 전에 결혼이나 한 번 해보고 죽었으면 좋겠어.’

옛날에는 한 번 결혼해버리면 다시 결혼하기 어려우니까 이런 일이 없지만, 요즘은 상대가 죽는다고 하면 빨리 한 번 결혼해보는 게 좋아요. 그러면 결혼을 두 번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질문자가 결혼하는 데에도 아무 불리한 조건이 없어요. 남자 친구한테 이렇게 말해주세요.

‘나하고 먼저 결혼하고, 나 죽거든 전혀 연연하지 말고 결혼 또 해라. 그러면 결혼 두 번 할 수 있잖아.’

여자 친구가 아프다고 해서 떠나는 인간에게는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아프다고 하는 데도 옆에 붙어 있다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까 굳이 내칠 필요가 없고요.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몸이 아픈데 마음까지 아파야 해요? 몸은 아파도 마음은 안 아파야 해요?”

“마음은 안 아파야 해요.”

“그래서 공자님은 ‘아침에 도(道)를 이루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어요. 이런 도리를 알면 아픈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아프면 치료받으면 되지,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안 아픈 게 도(道)가 아니에요. 아프면 치료받으면 되고, 피곤하면 쉬면 되고, 배고프면 먹으면 돼요. 이렇게 좀 가볍게 생각하면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이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 할까요?
  • 임용고시에 세 번째 도전하는데 자신이 없어요. 지역을 어디로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 이혼하고 전 남편이 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다섯 살 둘째 아이에게 탈모가 있어서 주변에 살면서 돌보고 있어요. 이제 저 혼자 가볍게 살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 기독교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사람에 대한 기대가 떨어져요.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 할까요?
  • 의욕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무기력해졌어요. 이런 제 모습이 싫어요. 어떻게 예전처럼 의욕적인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아들이 도박으로 재산을 15억 탕진했어요. 3억을 더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고 사퇴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서초동, 광화문으로 분열했습니다. 실망스럽고 화가 났어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얼마 전에 소방서에서 강의를 했는데 다들 졸고 자고 있었어요. 스님은 어떻게 강의를 재밌게 잘하십니까?
  • 항상 몸 안에 꿈틀꿈틀 하는 게 느껴져요.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는데 왜 그럴까요?
  • 이십 대에는 사주를 안 믿었는데 서른 살이 되면서 사주를 믿기 시작했어요. 사주를 믿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질문자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자, 질문하신 분들 소감을 말해보세요. 얼마나 깨달았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행복합니다.”

“요즘 시국에 실망해서 이민이라도 갈까 했는데, 같이 고민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낀다는 기독교인도 재치 있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법륜 스님과 함께 천국에 가길 소망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지옥으로 가서 종교를 떠나 사랑하며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억을 탕진한 아들이 3억을 또 요구해서 힘들다는 70대 할머니는 시원하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젊은 남자 구해서 6개월은 해외에 가 있겠습니다.” (모두 웃음)

“제일 잘했어요. 근데 걱정이에요. 어느 남자가 고생할지 모르겠네요.”

소감을 이야기하다 법륜 스님의 유튜브 채널을 광고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드립니다. 법륜 스님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면 언제든지 이 좋은 말씀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이 구독해 주세요.”

한결 가벼워진 질문자들에게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어느덧 2시간 20분이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행복하세요! 혼자서는 잘 안된다면 행복학교에 와서 연습해보세요.”라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 책에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오늘 느낀 감동이 책에 담겨있는 듯 사람들은 책을 안고 기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스님은 울산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밤길을 세 시간 달려 새벽 1시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한 후 부산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집니다.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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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1-27 20:31:04

이미정

질문자가 가벼워진것 같아, 다행입니다. 안아픈게 도가 아니고, 아프면 치료받으면 되고, 피곤하면 쉬면되고, 배고프면 먹으면 된다.... 안아파야 한다는 생각을 잡고 있으니 괴로워하며 무거웠구나 알겠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잡고 있어서 무거운지.... 가볍게 사는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9-10-21 06:44:03

박미순

누구나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기에 사로 잡혀 있으니 괴로운것이다

모든사람은 어떤상황에도 행복할권리가 있습니다

2019-10-20 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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