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8 행복한 대화(5) 경기 광주
“제 실수로 사람이 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에서 8백여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법당에 일찍 내려와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중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오전에는 치과 진료를 받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에서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경기 광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6시 50분이었습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로 멀건 잣죽을 한 그릇 먹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각’이라고 설명한 후 _“실제로 한번 해보겠습니다.”_하고 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10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질문자들의 갖가지 사연으로 2시간 동안 온 세상을 만난 듯 했는데요. 오늘은 자신의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해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요

질문자는 말을 꺼내기 전부터 눈물을 글썽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저의 큰 실수로 주차해놓은 차가 미끄러져서 어떤 아주머니를 돌아가시게 했어요. 처음에는 너무너무 죄송한 마음에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시간이 약인지 이제는 밥도 먹고 여기 나와서 용기 내서 질문도 하게 됐습니다.

예전 같은 일상생활로 들어가기 위해서 정신과 치료도 받으며 약도 먹고 사람들을 만나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제 나름대로 극복해 보려고 스님의 동영상을 수도 없이 봐 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맛있는 음식을 봐도 돌아가신 분께 죄송하고, 그분 또래의 아주머니를 뵈어도 울컥 눈물이 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롭습니다. 주변 분들은 세월이 약이라 하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이 사실들이 없어지는 건 아닐 텐데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돌아가신 분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요?”

중간중간 흐느끼며 울먹이는 질문자의 모습에 심한 자책감과 괴로움이 전해져 왔습니다.

“질문자가 어떻게 살아도 돌아가신 분한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

질문자의 흐느낌과 깊은 한숨이 이어져 객석도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습니다.

“질문자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자기가 너무 위대한 줄 알아요. 질문자가 무슨 재주로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돌아가신 분이 돈이 필요해요? 돌아가신 분이 음식이 필요해요? 돌아가신 분이 무엇이 필요하겠어요?”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조금이라도 사죄가 될까요.”

“질문자가 어떻게 해도 돌아가신 분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 돼요.”

“네.”

질문자는 더욱 흐느꼈습니다.

“질문자가 행복하게 산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한테 나쁜 것도 아니고, 슬피 울면서 산다고 돌아가신 분한테 좋은 일도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은 이제 이 세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에요.”

“그런데 그 죄스러운 마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네, 본인이 울면서 살고 싶으면 울면서 살고, 웃으면서 살고 싶은 웃으면서 살고, 본인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지 돌아가신 분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내가 음식을 준다고 돌아가신 분이 먹을 수 있으면 음식을 드리고, 옷을 준다고 입을 수 있으면 옷을 드리고, 돈을 준다고 받을 수 있으면 돈을 드리면 돼요. 그러나 돌아가신 분은 그것을 받을 수가 없잖아요.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에게는 돈을 드리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돌아가신 분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과는 합의가 된 상태입니다”

“가족들과 합의를 했으면 됐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가 어떻게 살 건지만 정하면 돼요. 그분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요. 내가 웃으면서 산다고 그분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울면서 산다고 그분에게 좋은 영향 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은 아무 영향도 줄 수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어차피 본인이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돌아가신 분에게 아무 영향을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이 문제만 남은 거예요. 질문자는 어떻게 사는 게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울면서 사는 게 좋겠어요, 웃으며 사는 게 좋겠어요?”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면 돼요. 그분 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니까요. 사건이 생긴 지 얼마나 됐어요?”

“두 달 되어가요.”

“그럼 두 달 전보다 지금의 상태가 더 나아졌어요, 더 나빠졌어요?”

“많이 좋아졌어요.”

“그것 보세요. 그러면 앞으로 1년 정도 지나면 조금 더 좋아질까요, 안 좋아질까요?”

“좋아질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2년 지나면 더 좋아질까요, 더 안 좋아질까요?”

“더 좋아지겠죠.”

“그러면 2년 후에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지금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이제 본인이 결정을 하면 돼요. 돌아가신 그분 하고는 더 이상 아무 관계가 없어요. 울면서 조금씩 좋아지다가 2년 후에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오늘부터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어느 쪽으로 결정할래요?”

“다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려놓아지지가 않아요.”

“내려놓든 안 내려놓든 놔두고 우선 이 결정부터 해보세요. 앞으로 1년, 2년, 3년 지나면 조금씩이라도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좋아질 겁니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좋아져서 3년 만에 좋아지는 게 나아요, 오늘부터 좋아지는 게 나아요.”

“오늘부터 좋아지는 게 낫습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좋아지면 되지요.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좋으면 3년 시간을 들여서 좋아지고요.”

“지금부터 좋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로소 질문자의 얼굴이 가벼워졌습니다. 청중도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분에 대한 죄스러움이 강해서 그럴까요? 아니에요. 그것은 정신 질환이에요. 더 나빠지거나 그대로라면, 그것은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해요.

두 달이 지나고 보니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는 것은 자연치유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1년 지나면 조금 더 좋아질 것이고, 3년 지나면 최소한 웃고 다닐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에요. 상황은 아무 변화가 없지만, 그때 가서 어차피 좋아질 거면 지금 좋아지지 무엇 때문에 3년 끌고 좋아지려고 해요? 제 말에 동의가 된다면 당장 오늘부터 좋아지면 되지요. 그런데 ‘스님 법문 들을 때는 그럴 듯한데 안 좋아집니다’ 하면 3년 시간을 끌고 좋아지면 돼요.

그래도 죄스럽거든 집을 팔아서 그분 가족에게 다 줘 버리고, 그래도 죄스럽거든 있는 돈을 싹 찾아서 그분 가족에게 줘버리고, 그래도 죄스럽거든 속옷만 빼고 싹 벗어서 줘버리세요. 혼자서 울고 있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그것은 착한 척하는 자기만족이에요.

그런다고 그분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집을 팔아서 돈을 주면 가족이라도 도움이 되지만 질문자가 우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짓을 한다는 것은 양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서 그런 겁니다.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10년 지나면 나도 웃고 살 거야. 그런데 10년 지난다고 그분에게 무슨 변화가 있을까? 죽은 사람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가족한테 내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내가 오늘부터 좋아지면 되지 10년 뒤에 좋아질 필요가 뭐가 있나?’

그래서 내가 히히 웃고 다닌다고 상대편 가족이 와서 ‘어떻게 사람이 그래 놓고 웃고 다니느냐?’라고 물으면 ‘그러면 울고 다닐까요?’ 하고 물어보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저도 울고 다녔는데 법륜 스님하고 얘기하니까 울고 다니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했어요. 베개만 젖으니 웃고 다니라고 했어요.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하니까 그 사람 웃을 것까지 저보고 웃으라고 했어요.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저도 동의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남편이 돌아가시면 잠깐 동안만 울고 그 후에는 웃어야 합니다. 시집 한 번 더 갈 수 있으니 좋잖아요. (모두 웃음) 이렇게 얘기하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운다고 그 사람이 살아오나요? 운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돼요?

그러면 ‘그래도 눈물이 나잖아요’라고 하는데, 그래서 잠깐만 울으라고 하는 거예요. 옛날부터 3일만 울으라고 해서 3일장, 그래도 좀 더 울고 싶으면 5일만 울으라고 5일장을 했습니다. 절에서는 49일만 울으라고 해서 49재를 지냅니다. 49일이 지난 다음에는 웃으면서 지내라는 거죠.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 죽고,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대신 죽기라도 하겠지만, 아무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자기감정의 낭비밖에 안 돼요. ‘남편이 죽었는데 넌 뭐가 좋다고 웃고 다니냐’ 이렇게 남이 오해할 수는 있겠죠. 왜냐하면 우리는 슬프게 사는 게 잘하는 줄 아니까요. 그러면 조금 우는 척하세요.” (모두 웃음)

“네.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나고 한 분이 스님의 답변에 불만족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손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이 분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질문자는 마음에 죄책감이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해소를 했으면 좋을까 싶어서 질문을 드린 것 같은데,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질문자에게 미진한 부분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가 밝아질 수 있게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부족하다고요? 그러면 질문한 분한테 마이크를 한 번 줘 보세요. 스님과 대화를 하고 나서 자기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았어요? 아니면 아직도 전혀 해결책을 못 찾았어요?”

“저분 말씀처럼 제가 정말 너무 큰 죄책감 속에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좀 편하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방금 전에 ‘착한 척 눈물 흘리지 마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마음 속에서 죄책감을 탁 털어 버리고 싶고, 스님 말씀처럼 3년 후에 괜찮아질 거 오늘부터 바로 괜찮아지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 말은 사람을 죽여 놓고 자기는 죄책감을 탁 털어버리고 편하게 살겠다는 얘기 아니에요? 심보가 나빠요. 진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3년간 울어야죠. 아니 10년은 울어야죠. 그래도 죄가 안 갚아져요.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실수로 죽여 놓고 자기는 하루 만에 죄책감에서 벗어나겠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나요?”

스님의 말씀에 질문자는 깊고 깊은 한숨을 쉽니다.

“한번 생각해 봐요. 그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기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잖아요. 죄를 지어 놓고 왜 벌을 안 받으려고 해요. 죄를 지어 놓고 하루 만에 생글생글 웃겠다면 그건 나쁜 사람인 거잖아요.

제 얘기는 죄를 지은 바가 없는 도리를 얘기하는 거예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하고, 죄를 지은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 오늘부터 웃어야 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죄를 지었다고 자꾸 주장하니까 '그러면 10년간 울어라' 이 말이에요. 저는 죄를 지은 바가 없다는 도리를 얘기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죄를 지은 줄 알고 울다가 ‘아, 내가 죄를 지은 바가 없네’ 하고 깨달으면 지금부터 웃는 거예요.

본인이 생각해도 죄를 지어 놓고 3일 만에 방글방글 웃는다는 건 모순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착한 척하지 말라는 거예요.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아야 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죄를 지었는데 돈 좀 준다고 해결되고, 합의한다고 해결이 돼요? 죽을 때까지 참회를 해야죠.

그런데 저는 ‘죄를 지은 바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질문자는 계속 ‘나는 죄를 지었어요’ 이렇게 주장하니까 ‘그래? 그러면 실컷 울어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제 좀 이해가 되세요?”

“네.”

질문자의 짧은 대답에 좀 전과는 달리 가벼움이 묻어 보입니다.

“죄를 지었으니까 집을 다 팔아서 그분 가족들에게 갖다 주고, 계속 우세요. 그분은 죽기까지 했는데 질문자가 무슨 불만이 있겠어요. 계속 울어야죠. 죄를 정말 지었다면 죗값을 받아야죠. 돈 좀 준다고 해결이 되나요? 며칠 운다고 해결이 되나요? 그런데도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그 심보가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데 스님이 딱 보니까 질문자는 죄를 지은 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웃고 살아라고 얘기한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됐어요, 아직 안 됐어요?”

“해결됐습니다.” (모두 박수)

조금 긴 대화였지만 질문자의 얼굴이 밝아진 모습을 청중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40대 중반에 세무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체력이 떨어져서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요.
  • 슈퍼맨을 원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저는 슈퍼맨이 아닌데 아내에게 어떻게 맞춰줘야 할까요?
  • 아들이 38살인데 지방대를 다니다 중퇴했어요. 아들이 회사도 그만두고 빚도 지고 있는데 계속 허황한 꿈만 꾸고 있어요.
  • 남편이 암으로 1년간 투병하다가 3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남편하고 많이 싸웠는데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남편이 많이 그립습니다.
  • 아들이 게임을 못하게 하면 부모에게 욕을 하면서 죽으라고 해요.
  • 나이 드신 어머니께 잘해드리고 싶은데 자꾸 싸워요.
  • 재작년에 스님에게 업무 스트레스로 질문을 하고 정신과에 다니며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일을 할 때 머리가 잘 안 돌아가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정신적 빈부격차를 줄이고 어떻게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격려 박수 부탁드립니다.
  • 30대 중반 청년입니다. 일 년 전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여자 친구 쪽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헤어진 후 6개월을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이제 누굴 만나도 예전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까요?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한 줄로 들어보았습니다. 대부분 가볍게 한 마디씩 했습니다. 청중은 질문자들의 변화에 놀라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자식한테 지듯이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 지겠습니다. 무조건 네네 하겠습니다.”
“병원에 가서 아이의 심리적 문제를 검사받겠습니다.”
“돌아가신 남편하고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목디스크를 잘 치유하겠습니다.”
“아들 입장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질문자는 ”강박관념으로 뭔가 찾느라 잠을 못 잔 거 같아요. 운동 열심히 하고 잠 푹 자고 빨리 회복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다 좋았는데 ‘빨리’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어요.”

“회복 안 돼도 마음 느긋하게 먹고 기다리겠습니다.” (모두 박수)

전 여자 친구를 잊지 못한다는 청년은 “지금 여자 친구랑 결혼하겠습니다.”라고 하여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_“뭐가 좋은 일이라고 박수를 쳐요? 헤어진 여자 생각하면서 그 여자를 만나면 큰 실례입니다. 절대 비교해도 안 돼요. 인격 모독이에요.”_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슈퍼맨이 되기를 바라는 아내 때문에 힘들다는 남편은 같이 온 아내에게 “나는 슈퍼맨이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스님은 아내에게 “남편한테 뭘 요구했기에 남편이 저렇게 부담스러워해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슈퍼맨이 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며 어리둥절해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입장 차이도 재미있었습니다.

2시간 30분이 지나고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앞서 대화를 나눈 질문자를 다시 언급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제 이야기를 잘못 알아듣거나,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이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분이 어떻게 하든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는 영향이 없어요.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내가 돌아가신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지금 살아있는 이분이라도 계속 울고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게 좋다는 겁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인생은 괴로워하면서 살 만한 가치가 없다,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역경을 겪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나간 건 다 꿈이에요. 그냥 탁 털어 버리고 오늘부터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행복하지 않은 과거의 경험이 자꾸 떠오르면 ‘꿈이다!’ 하고 눈을 떠야 합니다. 자꾸 그 꿈을 가지고 얘기하지 말고요. TV 스위치를 돌리는 연습을 계속하면 돼요. 처음에는 잘 안 되지만 나중에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67살 먹은 혼자 사는 스님도 이렇게 싱글벙글하고 사는데, 여러분들이 싱글벙글하고 못 살 이유가 없잖아요. 방금 한 질문자도 싸우던 남편이 죽으니까 그립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죽고 나서 그리워하지 말고 살았을 때 잘해 주세요. 그리고 죽고 난 다음에는 발로 차 버리세요. (모두 웃음)

살아있을 때 발로 차고, 죽고 난 뒤에 무덤 앞에 가서 울지 말고요. 살아 있을 때 찬 물 한 그릇이라도 떠 주고, 죽고 난 뒤에는 ‘탁!’ 하고 놔 버려야 해요.”

강연이 끝난 후 스님은 내일 농사일을 하기 위해 울산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고구마가 얼마나 컸을까?”

두북에 도착하니 1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흙 향기 진한 고구마 밭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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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1-20 23:11:38

부처님께서 부처님 보듯

스님의 말씀=부처님의 말씀=중생의말씀.

살아 있는 모든 부처님들을 느낀다.

2019-11-04 15:28:45

함께행복한길

참가자들 지루하지않게 갖가지 비유와 목소리까지 달리하시며 재밌게 설명해주셔서 더더욱 감동입니다. 그리고 죄 지은바가 없는 도리를 깨쳐, 오랫동안 괴롭게 살기보다 지금당장 그괴로움에서 벗어나라. 자책하고 건강해치고 그게 당최 무슨도움이 되느냐. 차라리 내주변 주차문제 개선이나 안전운전에 관심가지고 시민활동하는게 더 나을듯. 진리의 차원에서도 하나의 현상(사고)에 대해 내가알게되면 괴롭고. 모르고살면 즐겁고. 이 자체가 모순임을 아는순간. 스님이 말씀하신 그도리에 한걸음 다가설듯. 한편 우리가 쌓는죄가 있다면 그것뿐이겠습니까. 전쟁나면 상대죽여야 내가살고, 기회와 경쟁과 결과속에 얼마나 상대를 피말려죽이는 삶을 살고있으며. 대상을 살아있는것으로 확대하면 더더욱 말할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무자성 종심기. 죄란 본래성품없고 마음따라 일어난다.는 성현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2019-10-12 10: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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