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16. 북미 순회강연 (8) 미국 버지니아 페어팩스(Fairfax)
“다람쥐가 자꾸 내 과일을 훔쳐 먹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에서 북한 및 동아시아 전문가들을 만나 북미관계 및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녁에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Fairfax)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워싱턴 정토회관에서 새벽 예불을 마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 7시 20분에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워싱턴의 전형적인 날씨입니다. 화창하고, 덥지도 않고, 바람까지 불어 시원하고, 걸어 다니기도 좋습니다. 제일 먼저 백악관 북쪽 호텔에서 디트라니 대사님과 NCNK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전미 북한위원회) 소장 키스 루스 님을 만났습니다.

작년 6월에 디트라니 대사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스님은 서울 봉은사를 안내하고 평화재단에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디트라니 대사님은 그때 무척 감사했다며 이번에는 대사님이 스님을 초대했습니다. 오랜 인연인 두 분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나서 지난 상반기에 진행된 대북 인도적 지원과 스님이 북한을 방문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디트라니(Joseph DeTrani) 대사님은 6자 회담 당시 대북 특사를 지낸 분이며 2005년 9.19 합의 당시 스님의 조언을 듣고 북미 간의 공동성명을 이끌어 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대북 협상 전문가입니다. 키스 루스(Keith Luse) 소장님은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루거 상원의원의 전문 보좌관 시절부터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두 분은 스님과 오랜 친구이며 스님의 조언을 경청하고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애를 많이 쓰셨던 분들입니다.

상원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어 키스 루스 소장님은 먼저 자리를 뜨고, 스님과 디트라니 대사님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두 분은 만날 때마다 북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진지하고 치열하게 토론을 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교류하며 쌓아온 신뢰가 느껴집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은 다른 미팅이 있어 잠시 들렀다 오고, 스님은 다음 장소로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미국의 수도답게 워싱턴 DC에는 미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단체와 연구소들이 있습니다. 오늘 오찬 모임이 있는 NCNK도 그중 하나입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오늘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전 국무부 공무원, 인도적 지원단체 직원, 연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스님과 대화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의 진행으로 스님이 먼저 JTS가 지난 7월 말까지 옥수수 1만 톤을 북한에 지원한 이야기를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식량 지원을 북한 내에서 운송할 때 어려움, 인도적 지원 품목의 대북 제재 면제 신청 과정의 어려움,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남한 시민들의 반응, 스님이 바라는 북미 외교의 바람직한 방향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그중 스님이 바라는 북미 외교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이 보시기에는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북미 관계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까?”

“현재 북한은 미국과 대화해서 북한을 정상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늘 그렇듯이 자신들의 안전이 먼저 담보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북한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보다는 북한의 안전을 어느 정도까지 담보해주느냐에 따라서 북한의 태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제 경험으로는 북한이 두 번 정도 진지하게 미국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의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첫째, 2005년 9.19 합의 이후 2008년 까지였고 둘째, 이번에 그런 의향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있었습니다만 그때의 사정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니 말할 수가 없고요.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북한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해치면서까지 그렇게 할 의향은 없어 보입니다. 이 점을 미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지금도 미국이 대북 제재를 강하게 했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고 이해하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겁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 정상 국가가 되겠다는 것입니까?”

“북한은 국가 안전을 위해서는 핵이 필요하고, 국민 경제를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안전을 담보하면서 경제 개발을 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본질적인 요구라는 것을 미국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여기에 모순을 갖고 있습니다. 핵을 갖는 한은 경제 개발을 하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전만 담보된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미국이 요구했던 것처럼 ‘너희가 먼저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 안전을 담보해 주겠다’라는 요구는 북한이 못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안전이 담보된 뒤에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라고 봐야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이 관점은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해결되기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스텝 바이 스텝(단계별 접근)이라는 얘기가 나온 겁니다.

미국은 북한이 약속을 어겼다고 말하지만, 북한 또한 미국이 약속을 어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9.19 합의를 했을 때도 바로 이어서 방콕 델타 아시아 은행(BDA) 제재 문제가 터졌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시스템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쪽에서는 합의를 하고, 한쪽에서는 뒤통수를 친다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 문제를 풀고 싶어서 계속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그때 대북 협상 특사를 맡고 있었는데,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북한은 미국을 너무 믿고 회담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안 지켜지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북한도 이 기회를 잡아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2월 하노이 회담 때도 북한이 너무 미국을 믿었기 때문에 충격이 컸던 것 같습니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이 결렬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회담이 결렬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면 그 먼 거리를 기차 타고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찬 모임을 마치고 NCNK 측에서 준비해준 점심식사를 하면서 대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스님은 미국의 태도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전쟁으로 전국이 초토화되는 아픔을 겪었어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 대하듯이 하면 안 되듯이, 트라우마가 있는 북한이 미국을 의심하는 게 당연한데 미국은 그걸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열띤 토론을 하다 보니 시간이 늦었습니다. 앞으로 북미 간 실무급 대화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기로 하고 다음 장소로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아침에는 꽤 쌀쌀했는데, 오후에는 기온이 올라가서 더위가 느껴졌습니다.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맨스필드 재단 사무실에서 스님의 또 다른 오랜 친구 프랭크 자누치(Frank Jannuzi) 소장을 만났습니다. 한 벽면을 다 채우는 큰 유리창을 통해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옵니다.

반갑게 인사한 두 분은 북미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내년에 있을 미국 대선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갔습니다. 민주당 소속 전문 보좌관이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가운데 한 분인 바이든 의원의 보좌관으로 상원 외교위에 오랜 기간 근무한 자누치 소장님은 민주당 경선과 대선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에 대한 스님의 의견도 나누었습니다. 저녁에는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워싱턴협의회 이재수 회장을 만나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봉사자들이 스님에게 반갑게 인사합니다. 스님도 봉사자들에게 수고가 많다고 격려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페어팩스에서는 2년 만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는데, 약 23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워 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페어팩스에 위치한 Lord of Life Lutheran Church에서 열렸습니다. 루터파 교회인데 스님이 페어팩스에서 강연을 할 때면 늘 장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총 9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청중의 호응이 좋았던 다음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람쥐가 내 과일을 훔쳐 먹었는데 죽여도 될까요

“저는 요즘에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고 있어요. 저희 집에 과일나무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슴, 다람쥐, 벌이 과일나무를 망가뜨리거나 과일을 다 먹어버려서 저희가 먹을 수가 없어요.”

“과수원이에요, 정원수예요?”

“정원수인데 많아요. 그들도 먹어야 하니까 제가 웬만하면 같이 먹으면서 살려고 했어요. 다람쥐 같은 경우에는 윗부분을 따먹고, 사슴은 자기 키가 닿은 것을 먹고, 벌은 사슴이나 다람쥐가 생채기를 내놓은 곳에 들어가서 과일을 다 파먹어요. 제가 스님 법문을 듣기 전인 작년에는 남편이랑 작정을 하고 다람쥐를 많이 죽였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다람쥐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다람쥐가 서서히 오기 시작합니다. 스님 법문을 듣기 전에는 다람쥐 죽이는 것이 굉장히 기쁘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과일을 망쳐놨으니까 죽어도 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님의 법문을 보고 ‘내가 다람쥐를 너무 많이 죽였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람쥐를 죽일 수도 없고 가만히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스님이 법문 하시길 ‘동물이 하지 않는 일은 인간도 하지 마라’라고 하셨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다람쥐가 먼저 제 것을 훔친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죽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스님 강의를 들어보니까 그건 살생을 하는 것이어서 벌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과일나무만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속상해요.”

“과일나무를 베어 버리면 되겠네요.”

“저도 먹어야 하잖아요.”

“그럼 나누어 먹지요. 그만한 일로 죽일 것 까지는 없잖아요.”

“그런데 다람쥐가 먼저 남의 물건을 훔친 거잖아요.”

“그러면 질문자는 어떤 사람이 질문자의 가게에 와서 빵을 훔쳐 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일 건가요?” (모두 웃음)

“아니, 그건 아닌데 다람쥐는 동물이니까 죽여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죽이고 과보를 받으면 되잖아요.” (모두 웃음)

“다람쥐를 죽이는 건 다 남편이 했는데, 저도 옆에서 같이 도왔거든요. 그럼 저도 같이 죄를 짓는 건가요?”

“어떤 아이가 배고프다고 질문자의 가게에 와서 빵을 훔쳐 먹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그 아이를 죽이는 것을 곁에서 도왔다면 질문자는 감옥에 가야 하지 않아요? 계속 ‘아이가 먼저 빵을 훔쳐 먹었어요’라고 주장한다고 양해가 됩니까. 아니면 아이를 죽였으니 감옥에 가야 할까요?”

“감옥에 가야 하죠.”

“그러면 감옥에 가면 되죠. 감옥에 앉아서 ‘내가 감옥에 있는 한이 있더라도 훔쳐 먹는 사람은 죽여 버려야 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내가 감옥에 있어 보니까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서 사는 것보다는 그냥 빵 몇 개 버리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부터는 누가 빵을 훔쳐 먹었다고 해서 죽이지는 말고, 그냥 야단 좀 치고 말면 돼요.”

“그러면 불교에서는 그런 살생을 하면 다음 생에 큰 벌을 받는다고 보나요?”

“글쎄요. 제가 죽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봐야 벌을 받는지 안 받는지 확실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데, 아직 죽어보질 못했어요. 그냥 책에 있는 얘기만 가지고 질문자에게 확실하게 말해줄 수는 없잖아요.”

“어떤 스님은 큰 벌을 받는다고 이야기했어요. 불교 이론은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저는 책에서 본 이야기는 안 해요. 왜냐하면 책에 있는 내용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스님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 스님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내 감을 따 먹었으니 너는 죽어야 해’ 하는 생각이 들면 죽이면 돼요. 그래서 인과 법칙에 의해 벌을 받으면 되죠. 그게 뭐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과수원을 하느냐고 물어봤잖아요. 과수원을 한다는 것은 질문자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과수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다람쥐가 과일을 다 먹어버리면, 과일 가게에 가서 과일을 사 먹으면 되지 그만한 일로 다람쥐를 죽일 일이 뭐가 있어요? 질문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상대를 죽이나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데 가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어떤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상대를 죽이면 어떡해요?”

“사람도 아니고 다람쥐잖아요.”

“그게 다람쥐든 사람이든 죽여 놓고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죽였으면 당연히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과보를 받기 싫으면 안 죽여야 하고요. 그게 어려운 일인가요?

소풍 가는 날에 비가 오면 기분이 나쁘잖아요. 하지만, 비 맞고 놀면 어때요? 비 맞으면서 소풍을 가도 괜찮아요. 그러나 ‘비 맞으면서까지 놀 거 뭐 있나?’ 하면 그냥 실내에서 TV 보고 놀면 돼요.

다람쥐를 죽였으면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나중에 누구한테 맞아 죽게 되었을 때 ‘아이고, 내가 다람쥐를 많이 죽였더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모두 웃음)

“네, 잘 알겠습니다.”

“뭘 알았다는 거예요?”

“불교에서는 왜 이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예를 들어서 제가 이 분이 의자에 삐딱하게 앉은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뺨을 때렸다고 합시다. 저는 ‘왜 똑바로 앉지 삐딱하게 앉느냐’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기분이 나빠서 저를 때리든지 고발을 하든지 할 겁니다.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한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손실이 따르는 것이 인연 과보의 원리라는 겁니다.

제가 질문자에게 욕설을 하면 질문자도 저에게 욕설을 하겠지요. 제가 상대의 물건을 뺏으면 상대도 제 물건을 다시 뺐을 겁니다. 그러니 내가 다람쥐를 죽였다면 그 과보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요. 다람쥐가 과일을 좀 따 먹으면 ‘훠이~’ 하고 쫓아버리든지, 아니면 나무에 그물을 덮어 씌우면 되잖아요. 그것도 부족하면 과일나무를 아예 베어 버리면 되죠. 그러면 고민이 안 될 거 아니에요?”

“과일을 따먹는 건 우리 가족의 즐거움인데, 나무를 베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다람쥐를 죽이고 과보를 받으세요.”

“제가 죽인 것은 아니에요. 남편이 죽인 거예요.” (모두 웃음)

“그 말은 남편이 가다가 교통사고 나서 죽었는데, ‘내가 죽인 건 아니니까 괜찮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똑같아요.”

“저는 스님이 고문받으실 때 떠올랐다는 그 개구리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앞으로는 안 죽이겠습니다.”

“안 죽인다, 죽인다, 이 말이 핵심이 아니라니까요. 내가 죽일 수밖에 없으면 죽이고 대신에 과보를 받으세요. 그런데 과일 손실이 작고, 과보의 손실이 크다 싶으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과일 손실을 감수해야죠. 무엇 때문에 더 큰 손실을 감수하겠어요. 그러니 그것은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내가 필요하면 죽여 버리기도 하면서, 그 과보는 안 받겠다’ 이런 심보이거든요. 심보가 나빠요.

지금까지는 내가 몰라서 다람쥐가 과일 좀 따먹었다고 죽였지만, 다람쥐가 네 것 내 것을 알겠어요? 주인이 있는 나무인지, 주인이 없는 나무인지 다람쥐는 몰라요. 다람쥐는 그냥 과일이 있길래 먹었을 뿐이에요. 그러니 그냥 쫓아 보내든지, 못 먹게 그물을 치면 되지, 다람쥐를 죽일 것까지는 없잖아요. 그리고 이미 죽인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길을 가다가 다람쥐한테 물리든지 차에 치이든지 하면 돼요. (모두 웃음)

‘깊은 바닷속 깊은 산속에 숨는다고 하더라도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제 말의 요점은 이겁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모든 것은 다 자기가 지은 인연대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신자들이 불상 앞에 과일이랑 쌀자루 좀 올려다 놓고 ‘우리 아들이 공부는 못하지만, 서울대 붙게 해 주세요’, ‘우리 딸이 능력은 없지만 승진을 하게 해 주세요’ 하면서 부처님께 비는 것은 인연 과보에 맞지 않아요. 불교 신자라고 하면서 인연 과보에 거스르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절에 간다고 해서 불교 신자가 아니라 부처님 말씀대로 행해야 불교 신자인 거예요.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것도 아니고, 정원에 과일나무 좀 심어 놨을 뿐이잖아요. 그게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잖아요. 그런데 기분 나쁘다고 다람쥐를 죽였다면, 과보를 좀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이미 지은 죄는 어쩔 수 없고요. 과보를 좀 적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모두 웃음)

“그게 얄팍한 수라는 거예요. 이미 남의 뺨을 때려 놓고, 그가 기분 안 나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거죠. 지금까지 죽일 거 다 죽여 놓고 그런 생각을 하면 되겠어요?

‘아! 제가 지은 죄의 과보는 기꺼이 받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딱 가지면 앞으로 겁날 일이 없어져요. 무슨 일이 생겨도 ‘아! 내가 과보를 받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불법이라는 것은 ‘작은 행위를 하고 큰 손실을 보는 것은 바보스러우니 바보 같은 행동은 그만해라’ 이런 가르침입니다. 그래도 그 행동을 하고 싶으면, 그 행동을 하고 손실을 감수하라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행위에 어떤 규제를 가하지 않아요. 나쁜 행위와 좋은 행위는 없어요. 바보 같은 행동과 지혜로운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바보 같은 사람은 손실이 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익이 나는 행동을 하는 겁니다. 질문자도 지금까지는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면, 이제는 그런 행동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잘 알겠습니다.” (모두 박수)

“제일 좋은 방법은 오늘 집에 가서 과일나무를 다 베어버리세요.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왜 그렇게 고민해요?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모두 웃음)

둘째, 과일나무를 놔두고 싶다면, 동물들이 먹게 그냥 놔두면 되잖아요. 동물들이 먹고 남는 것이 있으면, 우리 가족이 먹으면 되잖아요. 우리 가족도 좀 과일을 먹으려면 그물을 겹겹이 치면 되고요.”

이외에도 다음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 친한 친구 중에 한 명이 가치관이나 취향 같은 것을 따라 합니다. 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진 구도도 저를 따라 합니다. 대화를 해보니 누가 더 잘하는지 대결 구도로 가는 것 같아 힘듭니다.
  • 마음이 급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급한 마음을 버릴 수가 있을까요?
  • 진리는 하나라는 말씀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 저는 성격이 털털하고 과격하고 덜렁대는 편입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제 손에 들어오면 다 망가집니다. 제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괜찮은데, 가족들의 물건을 자꾸 깨 먹고 잃어버려서 고민입니다.
  • 지금 상황은 통일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통일을 위해서 남한이 펼쳐야 할 정책이 무엇인지 궁급합니다.
  • 진정한 자기 사랑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 아직까지 여러 사람들이 단군 이야기는 신화라고 하는데, 단군 조선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 현재 종교는 기독교와 회교가 양대 세력입니다. 세계 주류 종교에 불교 이념을 이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9명과 대화를 마치니 벌써 강연을 시작한 지 2시간 20분을 경과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강조하면서 오늘 강연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어져 있는 작은 행복은 못 보고, 욕망에 눈이 어두워 현실에 불만을 갖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삶이 피곤한 거예요. 저는 여러분에게 성인군자가 되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이익을 좀 챙길 줄 아는 영리한 사람이 되세요.’

이게 제가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에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귀한 줄 모르고 늘 밖으로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당신 발밑을 봐라’, ‘당신이 소중하다’, ‘당신의 삶은 지금 행복하다’, ‘당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 저는 이것을 자각시켜 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부터 자각을 하세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이나 아내도 이 정도가 딱 적당한 겁니다. 배우자가 지금보다 좀 더 돈이 많거나, 좀 더 잘났거나, 좀 더 지위가 높다면, 나 같은 사람을 데리고 살까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정도니까 지금 나하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 모두 요만하기 다행인 거예요. 여러분들의 경제 수준이 요만하니까 지금 여기서 스님 법문을 듣고 있는 거예요. 정말 부자라면 여기까지 법문 들으러 오겠어요? 지위 높은 사람이 여기까지 법문 들으러 올까요?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중이 모여 있는 이런 자리가 불편해요. 그래서 그들은 진리를 접할 기회가 없어요. 그리고 하루 일해서 겨우 먹고사는 사람들도 여기에 올 수가 없어요. 매일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다 자기 삶이 좀 부족하다고 해도 법문을 듣기에는 딱 적당한 겁니다. 너무 가난하지도 않고, 너무 부자도 아니니까요. 현재의 자기가 소중한 줄을 아는 것, 거기로부터 행복한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오늘은 특히 젊은 청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한 명 한 명 스님과 대화를 통해 관점을 바꿀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의사 생활을 은퇴하고 10년 이상 고대사 연구를 해 온 어르신은 스님에게 직접 쓴 책을 선물했습니다. 한국에서 40년 간 교수 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세상에 불법을 전하고자 한다는 한 교수님도 스님에게 자기 책을 선물했습니다.

책 사인회에서는 많은 분들이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인사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부스에는 하반기에 개강하는 정토불교대학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에 돌아온 후 해외 불사 위원장인 이경택 님과 불사에 대해 논의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미 국무부에서 북미 관계와 한일 관계에 대해 부서를 달리 해서 연달아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메릴랜드주 콜럼비아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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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이유없이 바쁘다 맘이...지금,여기 나
어리석은 행동과 지혜롭게 했을 때 나온
과보만이 있을 뿐! 감사합니다 꾸벅^^

2019-11-09 19:31:00

하심

시상에…울 스님이 다람쥐를 얼마나 어여뻐하신는데ㅠ

2019-09-24 21:20:36

햇빛부케

이익이 나는 행동으로?
이렇게만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야 모두에게 좋은거이니까~~

2019-09-24 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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