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8.29 농사일
“고추 농사가 보통 일이 아니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했습니다. 7월에는 명상수련과 안거, 8월에는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오느라 논밭을 돌보지 못했는데요.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비지땀을 흘리며 밀린 농사일을 했습니다.

새벽 6시, 날이 밝자 스님은 가장 먼저 고추가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고추가 하루가 멀다 하고 빨갛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7월 안거 기간에는 공동체 상주대중이 매일 울력을 하며 고추를 땄고, 8월에는 주말마다 서울에서 대중이 내려와 고추를 땄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건조대 위에서 잘 마르고 있었습니다. 잘 마른 고추를 순서를 정해 건조기에 넣었습니다.

잘 건조된 고추는 무게를 잰 후 습기가 들어가지 않게 비닐봉지에 잘 담았습니다. 고추 농사는 올해 처음 시작했는데요. 첫 수확물을 보자 ‘자식을 잘 키운 기분이 이런 기분인가’ 싶을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고추를 심고 따고 씻고 돌본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생각났습니다. 햇볕, 물, 공기, 땅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걸 먹는 사람들은 이런 정성을 모를 거야. 농사를 지어봐야 그걸 알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세상의 은혜에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고추를 따러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사람 키보다 작던 고추가 지금은 스님의 키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습니다.

“이 높은 걸 어떻게 따려고 해요?”

“사다리 놓고 따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추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잖아. 나무처럼 높이 자라니까.”

이렇게 키 큰 고추나무는 처음 본 행자님은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비닐하우스를 나온 스님은 산 밑에 채소를 심어 놓은 밭으로 이동했습니다. 매일매일 주렁주렁 열리는 고추를 따느라 모두가 비닐하우스에 집중해 있는 사이 산 밑에 밭은 많이 소홀해졌습니다. 스님은 밭 전체를 둘러보며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다들 고추 따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이 밭은 주인이 없어졌네.”


그래도 가지는 제법 많이 열렸습니다. 가지를 따서 가방에 소복이 담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스님이 방금 따 온 가지는 아침 밥상에 가지무침 반찬으로 올라왔습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비가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했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쉼 없이 농사일을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봄과 여름에 심어 놓은 들깨, 상추, 고소가 아직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여기를 싹 정리하고, 가을배추와 무를 심자.”

풀 한 포기 남지 않도록 비닐하우스 안을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뿌리 채 걷어낸 들깨에서는 튼실한 깻잎만 따로 떼내어 반찬 재료로 쓸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새싹처럼 푸릇푸릇하게 자라난 고소는 뿌리까지 뽑아 물로 잘 씻어낸 다음 점심 반찬으로 내었습니다.

밭이 깨끗하게 정비되자 스님은 유기질 비료를 뿌린 후 땅을 갈아엎고 흙을 뒤집었습니다.


삽질을 하느라 땀을 콩죽처럼 흘리던 스님은 숨이 차다며 들고 있던 삽을 옆에 있는 행자님에게 건넸습니다.

“아이고, 땀나는 것 좀 봐라. 숨이 차네. 나는 힘이 없어서 다른 일을 좀 할게요.”

젊은 행자님이 삽질을 신나게 하는 사이 스님은 방금 뽑은 고소를 물에 씻었습니다.

갈아엎은 땅에는 비료와 흙이 잘 섞였습니다. 다시 삽을 든 스님은 모종을 심을 수 있게 고랑마다 두둑을 만들고,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네.”

비닐하우스 안이어서 그런지 땅 속은 많이 메말라 있었습니다. 물을 흠뻑 머금은 흙들도 속이 참 시원하겠다 싶습니다.

비닐 멀칭까지 한 후 드디어 배추와 무를 심었습니다. 배추는 모종을 심고, 무는 씨앗을 심었습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심고, 마지막으로 흙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오늘 심은 배추와 무는 11월경에 수확해서 겨울 김장에 사용할 예정입니다. 배추와 무가 햇살, 물, 공기, 땅의 기운을 듬뿍 받아 무럭무럭 자라나주길 기원해 봅니다.

스님이 계획한 일은 모두 마쳤습니다. 새벽 일찍 고추를 따러 간 팀이 해질녘이 되어도 아직 일을 못 끝내고 있다고 하자, 스님은 장갑을 끼고 다시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고추 농사가 보통 일이 아니네. 고추 따는 일을 도와주러 가자!”

빨갛게 익은 고추들이 하염없이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농사일 총책임을 맡고 있는 행자님은 “고추 키우는 게 꼭 자식 키우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농사는 자식 없는 젊은 청년도 부모의 마음이 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명이 한 고랑씩 맡고 쉼 없이 고추를 따며 전진했습니다. 스님은 맨 끝 고랑을 맡았습니다.

집중을 안 하면 잎 사이에 가려진 빨간 고추를 순간 놓치기도 합니다.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습니다.

한 명이 한 고랑을 따는 데에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4명이 하루 종일 딴 고추를 모두 모아서 건조대에 말린 후 비닐하우스를 나왔습니다.

비닐하우스 밖에는 들판에 벼이삭이 노랗게 영글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벼는 벌써 고개를 숙였습니다.

농사일을 모두 끝내고 날이 어둑해질 무렵, 마지막으로 태풍에 쓰러진 국화를 일으켜 세워 지지대로 받쳐주는 일을 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참 기나긴 하루였습니다.

“오늘 진짜 일 많이 했다. 다들 수고했어요.”

스님의 한 마디에 피로가 싹 사라집니다.

해가 지고 방 안에 들어와 맛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묘덕 법사님이 한 마디 했습니다.

“오늘 딴 고소를 다 손질하지 못했는데, 어떡하죠?”

법사님의 한 마디에 다시 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밤 9시까지 다 함께 고소를 다듬고 씻었습니다.

고소를 다듬으며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대화 중에 이번 고추 농사는 초기 시설 투자를 많이 하다 보니 수확량에 비해 적자가 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럼 누가 이 적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느냐는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한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이 이 일의 총책임자니까 스님이 주인이죠.”

농사일 담당을 맡고 있는 행자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농사지으면서 재미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이 주인이죠.”

대화를 듣고 있던 스님이 한 마디 했습니다.

“손실이 났을 때 가장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그 일의 주인이야.”

고추 수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보통 11월 말까지 계속 수확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요. 모두가 처음 고추 농사를 짓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습니다. 그래도 학습비까지 계산하면 결코 적자는 아닐 것입니다.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며 오늘 딴 고소를 모두 손질했습니다. 깨끗하게 씻은 고소는 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습니다.

내일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전국 대의원회의가 오전 10시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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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지금,여기서 가장 재미본 사람이
그곳에 주인!!! 감사합니다 꾸벅^^

2019-10-28 18:55:30

정지나

저도 처음 농사를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경험하면 할수록 모든것에 감사함을 알게되네요
순간순간 깨어 지금에 이곳에서 주는지혜를 집중하게습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꾸벅^^

2019-10-14 11:26:34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_^

2019-09-15 17: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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