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8.6 공동체 안거 마지막 날
“누군가에게 꽁 하는 것만은 극복합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수행공동체 안거 수련 마지막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과 108배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대중들은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비닐하우스로 나갔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지난 열흘은 더워서 일하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날이 흐려 일하기 딱 좋았습니다.

비닐하우스에 한 조, 수련원 뒤편 고추밭에 두 조, 점심식사 준비에 한 조로 나누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태풍이 오기 전에 바깥에 있는 고추를 다 따야하기 때문에 고추밭에 가장 많은 사람이 갔습니다.

스님이 제일 먼저 나와 고추를 따고 있었습니다. 하루 사이에 또 빨갛게 익은 고추가 많았습니다. 스님이 지나간 자리에 고추가 줄지어 있습니다.

한참 고추를 따고 잠시 쉬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앞 풀밭에 둘러앉아 바람에 땀을 식혔습니다.

“옛날에 농촌 봉사활동을 가면 고추 따는 게 일이었어. 얼핏 보면 고추 따는 게 뭐가 힘들어. 그냥 따면 되는데. 그런데 하루 종일 고추를 따면 허리가 너무 너무 아팠어. 고추가 쏟아져 나올 때는 진짜 일손이 부족하거든. 그래서 외부에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일손을 도와줘야 해.”

함께 고추를 딴 실무자들은 엉덩이 방석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예찬도 했습니다. 엉덩이 방석에 앉아서 일하면 허리가 덜 아프기 때문입니다.

보리차로 잠깐 목을 축이고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실무자들은 고추를 따고 바로 가방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고추를 따서 바닥에 그대로 두고 빠르게 앞으로 나가고 마지막에 한꺼번에 고추를 주워 담았습니다. 같은 시간에 두 배 많은 고추를 딸 수 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따야할 고추가 많이 남아서 1시간 더 일을 했습니다. 실무자들은 마지막까지 집중하여 고추를 따고 씻었습니다.

일을 마치니 기다렸다는 듯이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강당에 모여 어제 쓴 소감문을 함께 읽었습니다. 지난 19일의 안거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니 노동이 아니라 놀이였습니다. 일과 수행과 놀이의 일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도반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공동체와 사회에 도움이 되기에 저는 아직 부족하지만, 먼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편안하게 가볍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움 받아도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사랑이 재산으로 쌓이는 것도 아니고, 잠깐 기분 좋을 뿐인데, 사랑받기 위해 해왔던 노력들이 허망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소하지만 내가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농사가 싫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농사를 해보니 좋았습니다. 머리로 한계 짓고 있는 내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가다 보면 하안거가 다가옵니다. 정신없이 달려가다 보면 동안거가 다가옵니다. 이렇게 쉼표가 있어 한 해를 살아갈 기운을 충전합니다.”

“능력보다 수행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찔렸습니다. 지금 일으키는 마음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참 몰라주었습니다. ‘미안해’ 이 한마디가 때로는 바다보다 깊고 한강보다 넓습니다. 혼자 ‘미안해’라고 되뇌이니 상대에게 닿기도 전에 내 마음에 편안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우리 모두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함께 있으니 참 좋습니다.”

각자가 얻은 깨달음을 나누었습니다. 혼자 품고 있던 이야기는 메아리가 되어 서로에게 퍼졌습니다. 스님은 소감을 다 듣고 수행과제를 하나 주었습니다.

“올해 수행 과제로 이것 하나는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성질도 부리는 것은 말 안할게요. 대신에 ‘꽁’하는 것은 없앴으면 합니다. 누군가에게 삐져서 그 사람 얘기만 나와도 밉고 시비하는 것이 마음이 꽁한 겁니다. 누군가에게 ‘꽁’하는 것만은 올해 극복을 했으면 해요.

화를 벌컥벌컥 내더라도 ‘아이고, 제가 화가 났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같이 살 수 있어요. 문제는 ‘꽁’해서 볼 때마다 시비하거나 아예 말을 안 하고 외면하는 거예요. 그러면 같이 사는 것이 불편하잖아요. 그게 큰 괴로움이에요. 같이 사는 사람끼리 불편하지 않으려면 성질이야 바로 못 고쳐도 꽁하는 것은 버려야 해요. 상대방에게 그런 감정이 올라오면 ‘아! 내가 수행자니까 적어도 ‘꽁’하지는 말아야겠다’ 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 가지 원을 분명히 했으면 합니다. 첫째, 개인은 자유롭고 행복해야 합니다. 여기서 자유란 내 욕망, 습관,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신심명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만 버리면 된다.’

우리가 지금 다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좋고 싫음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과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행복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거예요. 여러분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나는 지금 이대로 온전한 사람이에요. 다만 때가 좀 묻었기 때문에 때를 씻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일은 필요할 때마다 배우고 익히면 되요.  

둘째, 내가 속한 정토회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제일 모범적인 단체로 만드는 겁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환경운동도 하고, 자기 수행도 하는 거예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이상적인 단체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질을 좋게 만들고 양을 확대해야 정토회가 발전할 수 있어요. 

셋째,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중에 가장 모범적인 나라로 만드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주로 모범적이라고 말하는 나라는 스위스, 북유럽, 뉴질랜드 정도인데, 미국이나 중국은 크기는 크지만 모범적인 나라라고 하지는 않아요. 모범적인 나라가 되려면, 자연 환경도 잘 보존되고, 빈부격차가 적고, 사람들이 평등하고, 시민의식도 괜찮아야 합니다.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요. 우리의 통일은 과거가 청산된 위에 건설되는 새로운 나라여야 합니다. 그 새로운 나라는 모범적인 나라여야 합니다. 환경적으로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모범적이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정토회가 모범적인 단체가 된다면, 이것이 모범적인 나라를 만드는 큰 기초가 될 수 있어요.또 대한민국이 모범적인 나라가 되면, 정토회가 세계로 확산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질수록 한국에서 출발한 정토회가 세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돼요. 한국의 이미지가 형편없으면 한국에서 출발한 단체가 세계화되는 것도 무척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정토회가 아무리 훌륭하고 대한민국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요. 내가 괴로우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물론 나만 편안하기 위해서 혼자 있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에요. 욕 얻어먹을 일은 아닙니다. 개인만 안온하면 된다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세상에 유의미한 사람은 아니에요. 본인은 좋겠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유의미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붓다는 항상 나도 좋고 세상에도 좋고,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은 길을 안내하셨습니다.

우리는 붓다가 안내한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 우리 공동체는 ‘질’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대중부는 이 길을 확산시키는 일을 주로 합니다. 평화재단에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을 진두지휘해 나가는 일을 주로 하는 겁니다. 깨달음의 장, 명상 수련 등을 진행하는 법사님들은 주로 개인이 자유롭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공동체 구성원인 여러분들은 비록 갈등이 있지만 같이 살면서 점점 수행력을 높여서 공동체성의 질을 높이고 모범적인 모습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사회나 다 그렇듯이 우리 정토회 안에서도 모범적인 곳이 있어야 따라오는 곳도 있게 됩니다. 법사님들도 지도 법사가 그래도 조금 더 모범적이어야 다른 법사님들이 따라올 수가 있지 않겠어요. 법사단이 조금 더 모범적이어야 대중들이 따라가고, 대중들이 조금 더 모범적이어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느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만 하는 일도 있고, 우리의 힘으로 안돼서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특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와 뜻이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뜻이 다른 사람하고도 의논해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정토회는 뜻이나 원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은 실제로 성격이나 방식이나 모든  면이 다른 사람들과 타협해 가면서 만들어 가야 할 일이기 때문에 정토회를 운영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일정한 큰 틀에서만 동의하면, 정토회 밖의 사람들과도 같이 일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일이 되지 정토회 사람만으로는 일이 추진되기가 힘들어요. 그럴 때 여러분이 그 분야에 종사하는 뜻이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가도 안 되고, 그 사람들의 문제 제기에 주눅 들어도 안 되고, 대립해서도 안 됩니다. 분명한 우리의 목표를 가지고 언제든지 그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도 해주지만 정신적으로는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재능적인 측면은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낫지만, 수행적인 측면에서는 그 사람들의 시비나 분별, 힘든 점들을 여러분이 다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전체를 보는 눈과 목표가 없기 때문에 자꾸 작은 문제에 휩쓸리고 힘들어하는 겁니다. 이 길로 가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어떤 사람이든 써야 합니다. 자기는 밥만 짓고 있더라도 ‘아! 이런 목표를 향해 정토회가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해요. 내 수행은 내가 책임지지만, 정토회와 사회운동에서는 어떤 역할이든 주어지면 그것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사령탑이 돼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되 전반적인 일의 목표에 대해 희망과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을 수 있어요. 

인도 JTS에 파견이 될 때 돈 계산만 하겠다고 인도까지 가겠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인도에 가면 아이들을 가르치든지, 동네에 가서 사람들하고 집을 짓든지,  모내기를 하든지, 이런 일을 해야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크다 보니까 누군가는 인도에 가서 계속 시장을 보고 돈 계산만 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이 사람이 전체를 보는 눈이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수행이 안 되면 그 일을 못 하는 거예요.  역할을 바꿔가면서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해줘야 합니다. 

공부라는 것은 이렇게 딱! 하고 마음 내어서 해 보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언하에 깨친다는 겁니다. 환상을 쫒지 말고, 마음을 ‘탁!’ 하고 내어서 해보는 거예요. 그렇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에요. 안 되는 것은 안 되지만, 그게 딱! 안 되면 깨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예요. 

정토회가 여기까지 온 데는 법사님들의 노력이 컸습니다. 한 분 한 분 다 법사가 되려고 들어온 건 아니에요. 

‘언제든지 필요한 거 이야기하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자세는 이래야 합니다. 그러나 법사님들이 여러분들을 일선에 배치할 때는 아직은 여러분들이 자기 욕구에 끄달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 사람의 특징에 맞게 일을 하도록 조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도 껴안고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후배를 대할 때 그런 입장으로 대해줘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사람들의 특징을 배려해주다 보니 밑으로 갈수록 원칙이 자꾸 흐트러지고 적당하게 하려는 경향이 커지긴 합니다. 그런데 또 원래대로 엄격하게 하면 밑으로 가면 완전히 군대식으로 돼요. 무슨 문서 하나 내려가면 그대로 해야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줄을 어떻게 서야 한다는 것이 훈련이 돼서 스님이 자리 바꾸려고 해도 안 돼요. (모두 웃음)

원칙을 분명하게 알아야 원칙을 유연하게 적응할 수가 있어요. 원칙이 없기 때문에 더 경직되게 적용을 하게 되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쇠 같은 강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것입니다. 휘어져도 바람이 다 불고나면 바로 ‘착!’ 하고 돌아오는 그런 가르침이기 때문에 항상 원칙을 지키되 못 지키면 참회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못 지키는 것은 조금 포용을 해주고요. 그렇게 나아가면 아마 우리들도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박수)

큰 박수갈채와 함께 19일 간의 안거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어느 때보다 스님의 회향 법문이 진솔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해 준 ‘꽁’하지 말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지난 19일 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시청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수행의 길로 잘 안내해 준 스님에게 공동체 실무자들은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과 동북아 역사기행 팀은 회향법문이 끝나자 곧바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나머지 실무자들은 역할을 나눠 대청소를 하고, 고추밭에 가서 태풍이 오기 전 남은 고추들을 부지런히 땄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스님은 저녁 6시부터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밤늦게까지 회의를 한 후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수행법회 생방송이 서초법당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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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화

원칙을 분명하게 알아야 유연할 수 있다는 말 마음에 새깁니다.

2019-09-14 05:30:52

정지나

지금 여기 나. 감사합니다 꾸벅^^

2019-09-02 22:13:31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8-24 16: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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