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6.26. 해외순회강연(6) 호주 멜번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걱정이예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호주 멜번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각자 방에서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안에 나라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서 조금 여유로운 날입니다. 그래도 시드니에서 멜번까지 약 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하고, 숙소에서 시드니공항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시드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스님은 이틀 동안 직장도 나가지 않고 운전을 해준 표정민 님에게 책을 선물하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오전 10시에 멜번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12시가 되어 멜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최영희 총무님 부부와 이지형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멜번의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온이 7도까지 떨어져 추웠는데 오늘부터 날씨가 포근해졌답니다.

점심시간이라 바로 멜번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에는 따뜻한 국이 있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즈음, 식당의 셰프님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셰프님은 스님을 꼭 뵙고 싶었다며 미리 준비해온 스님의 책을 꺼내 사인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님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책에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식당 사장님과 다 함께 기념사진도 촬영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멜번의 동쪽에 위치한 멜번 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멜번정토회원들은 스님을 2년 만에 만났다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녁에 열릴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회원들은 바로 강연장으로 떠나고 스님은 법당에서 밀린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강연 후에 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짐을 차에 싣고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Box Hill 시의 시청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시청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강연을 찾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시청 휴게실에는 멜번의 총영사 김성효 님 부부와 영사 손경자 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영사님은 스님에게 “멜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하고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스님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두 분에게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곧이어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2년 만에 열린 강연이라 그 열기가 더욱 뜨거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강연에는 약 3백 명이 참석했습니다. 스님이 청중에게 인사를 건네자 3백 명이 힘차게 화답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괴로움이 생기는 이유와 괴로움이 사라지는 원리에 대해 30분간 설명했습니다.

“지구가 둥글긴 둥근가 봐요. 한국에는 여름이 찾아와서 이제 기온이 32도를 웃돌고, 저도 여름옷만 가지고 왔는데, 호주에 오니까 제법 쌀쌀하네요.

우리가 자기 경험에만 갇혀 있으면 진실을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으면 ‘내가 봤다’, ‘내가 들었다’라고 하면서 확신에 찹니다. 그러나 이 넓은 세계에서는 내가 경험하고 확인한 것이 반드시 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태양을 관찰하면 마치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우리의 두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실제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 그것은 인식상의 오류로 인한 착각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왜 이런 오류가 발생했을까요? 그건 바로 자전하는 지구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괴로움도 인식상의 오류가 일어날 때 생기는 정신현상입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이유

여러분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고 하면 대개 즐거움을 떠올리는데, 정신현상을 잘 탐구해보면 즐거움 뒤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이런 즐거움은 열반이라고 하지 않고 ‘낙(樂)’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것을 ‘고(苦)와 락(樂)의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괴로움을 없애고자 하면 즐거움 또한 함께 포기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해탈과 열반의 길을 알려줘도 그 길을 잘 안 가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괴로움이 없는 것은 좋지만 즐거움 또한 사라지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즐거움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죽어서 소가 되고 말이 되는 것은 인도의 전통사상에서 사용하는 윤회의 개념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바로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늘 반복해서 되풀이되는 것을 말합니다. 열반(涅槃)이라는 것은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 되는 윤회의 고리가 끊어져서 괴로움이 없는 고요적정(寂靜寂靜)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 지속가능한 행복이야 말로 완전한 행복 또는 참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이렇게 우리가 완전한 행복과 자유에 이를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준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가르침이 점점 종교화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붓다는 어느새 신(神)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했던 출가수행자들은 어느새 종교적인 의식을 지내는 사제 계급이 되었고, 세상속에 살면서 그 길로 나아갔던 재가수행자들은 어느새 복을 비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름만 다를 뿐 세상의 다른 종교와 큰 차이가 없는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붓다의 가르침에서 합리적인 이치 부분을 논리화시킨 것은 불교철학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어떠한가

그러나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수행’입니다. 죽어서 극락에 가는 것은 종교로서의 불교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수행의 목표는 아무런 번뇌나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죽어서 어디에 갈지를 생각하는 것의 뿌리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는 위로의 말이 필요한 거예요.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그런 위로가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화에 앞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종교로서의 불교, 종교로서의 기독교, 종교로서의 무슬림은 오늘 우리가 나누는 대화와 직접 관계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수행은 믿음이나 사색을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어떠한가’를 중요시합니다. 사실이 어떠한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과학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실제의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인식상의 오류를 마치 실제인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인식상의 오류를 시정하면 괴로움은 사라져버립니다.

즉문즉설은 여러분이 ‘이러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괴롭습니다’하고 주제를 꺼내면 그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식상의 오류가 시정되면 ‘아, 슬플 일이 아니네요’, ‘아, 괴로울 일이 아니네요’ 하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인식상의 오류를 발견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대화에서 저는 질문자가 자기 인식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말을 건낼 뿐이에요.”

이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9명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중 호주에 계속 머물러야할지, 아버지를 생각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에 대해 물었던 질문자와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해외에 있어도 될까요 vs 한국에 정착해야 할까요

“호주 멜번(Melbourne)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행다니며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이 일을 할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제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떠돌이처럼 살고 있는 제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정착해야하나 하는가 입니다. 저만 생각하면 지금처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세계 곳곳을 누비고 싶지만, 한국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국에 들어가서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이후로 홀로 저를 키우신 아버지께서는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신 적이 있어서 저는 늘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와 얼마 동안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가야 할지, 해외에서 몇 년은 더 체류해도 괜찮을지 고민이 됩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고, 질문자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여행을 더 하고 싶다면 여행을 더 해도 됩니다. 다만 그 경우에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질문자가 ‘아, 일찍 한국에 돌아갈 걸’ 하고 후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질문자가 한국에 돌아가서 아버지와 같이 살면 또 다른 후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마음 한켠으로는 아버지가 안쓰러우니까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아버지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을 마음껏 살지 못했다는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버지만 안 계시면 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에게 책임 전가하는 겁니다. 그때 아버지가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아버지가 미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내 인생을 희생하고 왔는데, 왜 당신은 그걸 몰라줍니까?’

이렇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요. 이 두 가지 길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해줄 수는 없어요.

다만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한국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왜냐하면 지금 질문자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하는 사람이 결국 아버지가 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아버지가 질문자를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다. 질문자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나그네 같은 인생에 대해 지금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 불안함을 없애려고 아버지 핑계를 대고 한국으로 들어가려는 심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설령 한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나는 떠돌이 인생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이런 마음으로 결정을 해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질문자가 해외에 조금 더 머무는 결정을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아버지 인생은 아버지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만약 돌아가신다면 그래도 내가 장례식은 잘 치뤄 드려야겠다.’

만약 아버지를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가 돈을 벌어서 사람을 구해드리면 됩니다. 질문자도 성인이고 아버지도 성인이기 때문에 성인과 성인 사이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기대하듯이 기대를 하거나 반대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인생이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서 결정을 하세요. 만약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다면,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떠돌이 인생에 대해 싫증을 느껴서 돌아간다’ 이렇게 결정을 하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계셔서 제가 돌아올 집이라도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해외에 조금 더 머무는 결정을 한다면, ‘나는 아버지의 노예가 아니다. 나는 자유인이다. 나는 내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설령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하더라도 그걸 가슴에 상처로 두거나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선택은 질문자의 몫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한 관점으로 선택하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됩니다. 반면에 본인의 심리를 알아차리고 결정하면, 어느 것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층 홀가분해진 질문자의 표정을 보며 청중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자주하게 됩니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싫은 소리를 해야 할까요, 관계를 생각해서 싫은 소리를 참아야할까요?
  • 가까운 사람들이 죽을까봐 불안해요. 어떻게 하면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 지금 동거하는 여자친구를 무척 좋아하지만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결혼을 해야 하나요?
  •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남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니 힘들어요. 어떻게 하면 남의 말과 행동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지 않고, 제 스스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 저는 인생에서 ‘건강하기, 행복한 가정 만들기, 성공하기’를 성취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제 인생의 목표를 생각하면 한국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지난 1월에 결혼한 후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 친구도 놔둔채 남편을 따라 호주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신혼이라 재밌을 줄 알았는데 싸우게 돼요. 남편에게 바라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할까요?
  • 행복해지려고 호주로 왔는데 내 뜻대로 되는 게 없고, 몸도 안 좋아지고, 무기력하고, 성질이 나요.
  • 군대에서 전역한 지 1년 되었습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오늘은 특히 젊은 청년과 남성들의 질문이 많았는데요. 질문을 하기 전에 힘들 때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인사를 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직접 스님을 볼 기회가 적은 해외에는 유투브 즉문즉설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강연은 2시간이었지만, 스님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9명에게 모두 답변을 하기 위해 빠르게 진행을 했습니다. 9명 모두와 대화를 마치니 2시간 하고 40분이 더 흘렀습니다. 한 명, 한 명 대화는 다른 강연에 비해 짧았지만 울림이 있었고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이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집착은 무서운 거예요. 집착하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안 들어옵니다. 꿈속에서 강도한테 쫓기고 있는 사람한테 ‘강도는 없어. 정신 차려’라고 말한다고 그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흔들어서 깨워야 해요. 눈을 뜨면 스스로 ‘강도가 없네’하고 알게 됩니다. 선(禪)불교에서는 말로 해서는 이치를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주장자로 서른 대를 맞아라’, ‘할!’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사로잡힘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걸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 용어로 ‘공(空)’이라고 표현해요. 꿈속에서는 강도가 있는 것 같았지만 눈을 뜨고 보면 강도가 없습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공(空)이라고 표현할 뿐이지, 공(空)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법(諸法)이 공한 줄 알면, 즉 그것이 꿈인 줄 알아버리면 두려움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면 정말 행복할까요

우리는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기 때문에 괴로움이 계속 됩니다. 수행에서 말하는 행복은 괴로움으로 바뀌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를 뜻합니다. 괴로움과 즐거움 사이를 윤회하지 않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들은 사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즐거움에는 마약과 같은 중독 현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독 현상은 그 끝이 없습니다. 뉴스에 종종 부잣집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내용이 나오죠. 그들은 재물이 많기 때문에 마음껏 소비를 하며 자랍니다. 이렇게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행위는 결국 쾌락을 쫓게 됩니다. 쾌락은 궁극적으로 마약과 같은 중독적인 것을 향합니다. 이로 인해 결국 건강을 해치거나 사업이 망하게 됩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자신이 가진 것을 잃게 되는데, 그렇게 보면 세상이 전반적으로 공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웃음)

여러분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중독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원하는 것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 여러분에게 딱 적당합니다. 이보다 더 좋으면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고, 이보다 더 나빠도 감당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이 딱 감당할 만한 수준인 거예요. 부부 관계도 그렇고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에는 그것만의 적절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반 위에 지금 여기서 조금 나아지는 방향으로 변화를 만들려면 힘이 가해져야 합니다. 힘이 가해지는 데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릅니다. 변화의 길을 출발할 때 이미 이러한 저항에 대한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얼마 전 북한에서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며 UN에서 식량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저희도 돕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굶는 사람들을 돕는 일은 좋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일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볼 때는 나쁜 일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볼 때 좋은 일을 하는데도 저항이 따릅니다. 그럴 때 ‘왜 내가 좋은 일을 하는데 욕을 먹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저항은 이미 그 일을 시작할 때 예견된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에는 늘 저항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선택을 할 때 이미 그 저항을 각오해야 합니다. 저항을 당연하게 감내하지 않고 ‘왜 저들은 내가 하는 일에 반대하지?’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화가 나게 됩니다. 반면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저항 때문에 그만둘 게 아니라 이 길은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에 따른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드니에 사는 한국인이 약 6만 명인데 멜번에 사는 한국인은 약 2만 5천 명입니다.한국인의 숫자가 훨씬 적은 멜번에서 강연이 끝나고 불교대학을 신청한 분이 3명이나 되었습니다. 즉문즉설 강연을 처음으로 준비해 본 멜번 총무님은 강연이 성황리에 끝나 무척 기뻐했습니다. 멜번에서는 특히 젊은 봉사자들이 많이 보였는데, 손발을 맞춰 재미있게 강연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한 후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촬영 했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다음에 만나요.”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멜번에서는 12시간도 채 머무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스님은 공항에 도착하여 항공사에서 짐을 부치고 겨우 한숨을 돌렸습니다. 쿠알라룸푸르행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스님은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 원고교정을 보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는 밤 11시 30분에 말레이시아로 출발했습니다. 오늘도 비행기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8시간 30분이 지나 다음 날 아침 6시면 쿠알라룸프르에 도착합니다. 내일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북한은 지금 춘궁기 보릿고개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는 7월까지 북한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옥수수 1만 톤은 북한 아이들이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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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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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7-30 15:19:23

정지나

나에 괴로움은 인식에 오류
본래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7-19 06:22:18

무지랭이

Thanks a lot~^^

2019-07-01 12: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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