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6.23. 유럽지구 정토행자대회 3일째
“비난을 수행의 과제로 삼으세요”

안녕하세요. 유럽지구 정토행자대회 마지막 날입니다.

어젯밤에 늦게 잠이 들었지만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다 함께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제일 먼저 기도 장소로 내려왔습니다. 아직 방석이 깔려있지 않자 스님이 직접 방석을 깔았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스님이 이번 정토행자 대회 참가 행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거명하며 축원 기도를 하였습니다.

“유럽 정토회 발심 행자들이 모여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따라 해탈, 열반을 증득하고자 어떻게 수행 정진하고 또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바른 법을 전파할 것인지 논의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정진한 공덕으로 육신은 강건하고 정신은 맑으며 마음은 평화롭고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정토행자가 되게 하여지이다. 또 이와 같이 좋은 법을 널리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까지 전법을 하기 위한 원력이 민들레 씨앗처럼 널리 퍼져나가기를 발원하옵니다.

이와 같이 수행 정진하고 발원한 공덕 일체중생에게 회향하오니 배고픈 자에게 양식이 되고 병든 이에게는 양약이 되며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터가 되는 등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지이다.

특별히 발원하옵나니 저희가 태어나고 자란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이 서로 교류 협력하여 마침내 하나로 나아가는 통일의 길이 열리게 하여 지고 식량부족으로 고통받는 북한동포들에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이 하루속히 제공되게 하여지이다.”

스님의 간절한 축원을 들으며 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과 열반의 길을 제시하고 전법하고자 하는 열의와 한반도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옥수수죽으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이 옥수수 죽은 북한에 1만 톤 옥수수가 잘 지원되기를 바라며 준비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옥수수죽을 앞에 두고 북한 어린이들이 눈에 밟히는 듯 한 마디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우리가 먹는 옥수수죽에는 우유가 들어가서 고급 죽이네요. 북한에서 먹는 옥수수 죽은 이렇지 않아요.”

식사를 마치고 공양간에 가니 식사를 준비해준 분들이 공양간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식사를 하러 간 사이 유럽지구 총무님들은 강당에 남아 오늘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회의를 했습니다. 이렇게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지원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다들 편안하게 행자 대회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음식을 준비하신 분 중 한 분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라는 명심문으로 음식을 하니 분별심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많은 음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준비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식사 후 스님과 유럽 정토행자들이 다 함께 아침산책을 나갔습니다. 쭉쭉 뻗은 나무들을 보면서 왜 유럽에서 나무로 전봇대로 이용했는지 알 수 있겠다는 스님의 말씀에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곧게 뻗은 전나무와 침엽수가 하늘 높이 쭉 뻗어올라가 있습니다.

산책길 곳곳에 고사리밭을 만났습니다. 고사리가 지천으로 있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길로 산책을 나가 보았습니다.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스님은 그 길의 가장 앞에 서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숲 속에서 1시간 남짓 아침마다 산책을 하는 것은 참 좋습니다. 한 길로 쭉 서서 길을 만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산책 후 개편된 경전반에 대한 이정인 국장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작년의 개편된 불교대학에 대한 설명에 이어 개편된 경전반, 이제 수행 세트가 완성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2차 만일을 위한 우리의 10차는?’이라는 주제로 모둠으로 나누어 토론을 했습니다. 스님은 행자들이 토론을 하는 동안 숙소에서 밀린 업무를 보았습니다.

모둠활동 후 다시 모여서 각자 사용한 공간을 깨끗이 청소한 후 회향식을 했습니다. 먼저 오전에 조별로 모둠 토론한 내용을 발표한 뒤에 스님이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모둠 토론의 주제이자 먼저 이번 행자 대회의 가장 큰 의제였던 ‘해외 전법’을 어떻게 할지, 정회원 법회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정리한 후 수행의 관점을 강조했습니다.

“소감문 발표 잘 들었습니다. 어제 즉문즉설 할 때 정토회 안에서의 갈등과 직장에서의 갈등에 대한 질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갈등에 직면했을 때 자기 수행을 점검하는 기준을 이렇게 잡아보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 아내, 자식들과 가정을 이루어 살거나, 회사 내 같은 부서 동료들 서너 명이 함께 일하거나, 정토회에서 같이 봉사하는 사람 서너 명이 함께 일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사람 수가 더 많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정도 인원 속에서 내가 유독 한 명하고만 부딪힐 때는 반드시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조금 민감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는 내가 그 사람을 ‘내 수행을 점검해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과의 갈등을 나의 수행으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의 목표잖아요.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그 과정이 곧 붓다로 가는 길입니다.

그 사람과의 갈등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아서 내 수행을 점검해보는 겁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뭐라고 해도 거기에 내가 분별을 안 내는 쪽으로, 아이가 어떻게 해도 거기에 내가 분별을 안 내는 쪽으로, 직장에서 상사나 부하나 동료가 어떻게 해도 거기에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쪽으로 나아가 보세요.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는 겁니다. 그렇게 경계에 휘둘리는 나를 늘 보면서 자기를 점검해 나가시면 좋겠어요.

제가 아침에 활동가 한 분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 분은 본인이 정토회에서 봉사할 수 있게 남편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분이에요.

‘너는 아직 수행이 멀었다. 너는 남편이 서포트를 잘해줘서 이 일을 하기 때문에 옆에서 시비하는 인간을 만나면 금방 흔들릴 거다. 너의 좋음이라는 것은 네 힘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조건에서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남편을 만난 것도 복이라고 할 수 있죠.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행복하게 이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내 힘이 아니라 남의 힘으로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복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것은 수행의 힘은 아닙니다. 수행은 이런 복하고는 달라요. 복도 있고 수행도 되면 더 좋겠지만요. 그러나 박복해도 수행은 할 수 있습니다. 공자님도 박복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성인이 되었는 데도 부인이 그걸 인정해주지 않고 계속 구박했다잖아요. (모두 웃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해요.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면 이걸 수행의 과제로 삼아 보세요. 수행은 상대를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 환자라서 저렇구나.’
‘아, 성격이 저렇구나.’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요. 그 사람을 마냥 다독거리고 비위를 맞춰주라는 게 아니에요. 그를 이해함으로써 내가 그 갈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저도 지어놓은 복이 많다면 비난을 안 받을 텐데, 지혜는 좀 있지만 아직 복이 좀 부족하다 보니 비난을 좀 받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저에게 ‘너는 복이 부족하니까 밖에 가서 복을 좀 짓고 와라’ 이러셔서 제가 20년간 밖에 가서 살다 왔는데도 아직도 복이 부족해서 욕 얻어먹는 일이 생깁니다. 아무런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도 계속 비난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이런 걸 수행의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서너 명 중에서 두 명이나 나와 갈등이 있다고 합시다. 지금 내 상태가 이 사람도 보기 싫고, 저 사람도 보기 싫은 상태예요. 이렇게 나와 두 명이 동시에 갈등이 있다면 나도 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가족 중에서 남편만 나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나에게 문제제기를 한다면, 내 성격에도 문제가 좀 있다는 자각을 해야 해요. 이럴 때는 ‘나 자신에게도 좀 문제가 있겠구나’ 이렇게 자기를 점검해봐야 해요.

함께 일하는 사람이 네 명인데, 네 명이 다 꼴 보기 싫다고 합시다. 지금 내 상태가 남편도 꼴 보기 싫고, 아이들도 꼴 보기 싫고, 직장에 가도 다 꼴 보기 싫은 상태입니다. 이러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해요. (모두 웃음)

물론 스스로 자기를 점검하는 게 필요하지만, 이런 경우는 벌써 스스로 자기를 극복하기에는 좀 힘든 상태입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하다가 병원에 가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그래서예요. 상사도 싫고, 옆에 있는 동료도 싫고, 주위 사람들이 다 싫다면 내가 조금 민감한 사람일 확률이 높아요. 모든 사람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것 같고, 나한테만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다면, 여러분은 잘 자각하지 못해도 이미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었다는 뜻이에요. 내 심리가 너무 과민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식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 상태에 이르면 ‘직장을 확 때려치워버릴까’, ‘확 죽어버릴까’, ‘확 이렇게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정도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간의 안정제 처방을 받아야 할 상태입니다.

자기를 점검하는 기준을 이렇게 가지고 있으면, 우울증이 있든 조현병이 있든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자기가 자기 상태를 딱 점검해보세요.

‘아, 이거는 수행으로 삼아야겠다.’
‘아, 이거는 내가 나를 좀 체크해야겠다.’
‘남편이나 아이가 문제인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민감한 것 같다.’

이렇게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또 동시에 여러 명이 문제제기를 하면, 내가 좀 주의를 해야 해요. 상대가 문제 제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를 시비하는 거예요. 내가 여러 명을 동시에 시비하고 있다면, ‘아, 이건 병원에 가서 한 번 체크해봐야겠다’ 하고 병원에 가보세요. 의사와 얘기해봐서 약을 먹으라고 권하면 약을 먹으세요. 꼭 안정제가 아니더라도 밀가루를 줘서 먹어도 효과가 있습니다. (모두 웃음)

약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기만 해도 효과가 있어요. 다녀와서 밀가루 약이라도 받아서 먹으면 마음이 좀 덜 민감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의식에서 작용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밀가루라는 걸 본인이 알면 효과가 없겠죠. (모두 웃음)

그렇게 자신을 점검하면 인간관계 때문에 일상이 힘든 건 벗어날 수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다 내 마음에 딱 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 내 마음에 딱 든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에요. 부처님이 항상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복이 다하면 괴로움에 떨어집니다. 복이라는 것은 윤회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모든 걸 내 마음에 들도록 해준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가 이사를 가거나 직장 또는 부서가 바뀌어서 내 마음에 들었던 그 사람과 헤어지면 아쉬움이나 괴로움이 생기고, 특히 상대가 죽어버리면 슬픔이 생기겠죠.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에요. 지금 좋긴 하지만 해탈의 길은 아닙니다. 그건 내 힘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내가 천상에 가 있을 땐 다 좋아도, 지옥에 떨어지면 다시 괴로워지잖아요.

해탈은 천상에 있으나 지옥에 있으나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해요. 그렇다고 해서 복을 일부러 버릴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복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종교인들은 복에 매달리죠. 좋은 조건에 처하기를 늘 원합니다. 그게 기복(祈福)입니다. 이렇게 수행의 목표와 관점을 분명히 갖고 있으면 사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이 제일 스트레스받는 문제 중 그 첫 번째가 인간관계라면, 두 번째는 경제적인 문제일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모든 재물은 다 명칭이 하나로 통일이 됐어요. 바로 ‘돈’이에요. (모두 웃음)

그런데 천하 만물이 본래 내 것이라고 할 게 없어요. 이게 무소유입니다. 내가 안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본래 내 것이라고 할 게 없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계속 가지고 있다 보면 그게 내 것이라는 착각을 자꾸 일으켜요.

그러나 일상 속에서 내가 가지고 쓰고 있으면서도 내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직업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행 직원입니다. (모두 웃음) 은행 직원은 돈을 수도 없이 세서 이리 지불하고, 저리 지불하고, 입출금 업무를 보지만 그게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해요. 은행 직원이 그걸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시 금융사고가 납니다. (모두 웃음) 그러니까 실제로 생활 속에서도 이렇게 착각하지 않고 지내는 게 가능해요. 늘 돈을 만지고, 돈을 지불하고, 돈을 받아들이면서도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은 그 돈이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하잖아요. 그렇듯이 여러분이 본질에 딱 접근해 있으면 그것을 쓰더라도 집착은 없을 수 있어요. 내줄 건 내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늘 활용해서 쓰지만 집착은 없습니다. 집착은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생기니까요.

‘본래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 물건도 없어요. 터럭 끝만 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유용하게 쓰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이 집을 청소하는 것도 이게 꼭 우리 집이라고 생각해서 청소하는 게 아니에요. 보통 사람은 이 집이 첫째, 내 집이 아니고, 둘째, 내가 돈을 주고 빌린 공간이니까 내가 지저분하게 해 놓고 나가도 아무 문제의식을 안 느껴요. 돈을 지불했으니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죠. 그런데 우리는 돈을 지불했냐 안 했냐, 내 것이냐 네 것이냐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지위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늘 목에 힘주고 사니까 사는 게 피곤합니다. 밑에 있는 사람은 억압받아서 피곤하고, 위에 있는 사람은 목에 힘준다고 피곤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이 평등한 것을 자각하라고 가르치신 거예요. 그런데 억압받을 일도 없고, 억압할 일도 없고, 내세울 일도 없고, 쭈그러들 일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같이 어울려서 일하니까 서로 좋잖아요. 꼭 억압받는 자를 해방하는 것만 좋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일이 됩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재물, 지위, 명예,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어요. ‘저 사람이 사장하다가 요새는 청소부 한다’ 이렇게들 수군거리지만 이건 본질과 아무 상관없는 역할일 뿐이에요. 역할은 그냥 청소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농사짓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밥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갖고 살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절에 오래 살아보면 그런 붓다의 법의 가피를 전혀 입지 못하고 그냥 불교라는 이름으로 다니기 때문에 신도 회장 할 때는 목에 너무 힘을 주다가 신도 회장 떨어지면 그때부턴 절에 안 나오는 사람이 많아요. (모두 웃음)

또 전 회장이라고 해서 내내 목에 힘주려는 사람도 많고요. 일반사회라면 이해가 되지만, 법을 공부하고 입만 열면 공(空)이 어떻고 하면서 불교 교리를 논하면서 그러는 걸 보면 아무리 부처님의 법이라 해도 지식화 돼 있을 때는 아무런 법력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해요. 옛날에는 불교의 원리를 너무 몰라서 그저 믿고 복만 비니까 불교대학을 운영했지만, 이 불교대학이라는 게 그냥 하나의 종교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 그치기 쉬웠어요. 종교학자가 기독교 지식을 습득하듯이 불교 지식을 습득하거나, 자연에 대한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처럼 지식만 공부를 했습니다. 지식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작용을 하는 건 아니에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게 학교 교육인데, 부처님의 가르침도 학교 교육처럼 불교대학, 경전반 이런 식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은 그런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합리적 원리를 아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지식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항상 경험을 하고, 자기 삶에 변화를 가져와야 해요. 변화를 가져온다는 게 꼭 대단히 크게 변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스트레스받던 사람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괴로워하던 사람이 괴로움을 덜 느끼고, 슬픔이 조금이라도 가시는 이런 변화가 와야 해요. 고집을 하던 사람이 고집을 좀 덜 하고요. 고집하는 것 자체는 못 고쳐도 고집 때문에 비판을 받을 때 덜 괴로워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집하는 것은 성격이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아, 내가 성격이 좀 고집이 세구나’, ‘내가 화를 잘 내는구나’ 하고 내가 이걸 자각하고 있으면 괴로움이 덜합니다. 그걸 고치면 좋지만 안 고쳐도 수행에서는 괜찮아요. 그러면 화를 벌컥 내도 상대가 뭐라 그러면 금방 ‘아이고, 죄송합니다’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어요. 다만 이걸 움켜쥐고 있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공부를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 이 공부를 안 하고는 우리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커다란 저택에서 살고, 사회적 지위가 주어진다 해도 괴로움은 해결이 안 됩니다. 그게 해결이 됐으면 부처님이 뭐 하러 출가하셨겠어요? (모두 웃음)

물론 부처님이 도를 이루고 나서는 왕위를 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도 좀 도움이 될 수 있는 수행법을 일러주시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조건으로 이 문제 자체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이 법을 알면 사회적인 조건을 꼭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지고 있어도 된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 지위나 사회적 조건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닙니다. 그걸 분명히 하면 여러분이 늘 무엇을 해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더러 아무것도 갖지 말고 다 버려라, 의미 없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모두 웃음) ‘세상은 허무한 거야! 돈 벌면 뭐하나? 지위 올라가면 뭐해?’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돈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이고, 사회적 지위도 나름의 역할을 다 하는 거예요. 청소하는 역할은 위대하고 관리하는 역할은 하찮다는 식으로 반대로 해도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다만 할 뿐이에요. 가지 역할이 필요하면 가지 역할을 하고, 나뭇잎이 필요하면 나뭇잎 역할을 하고 기둥 역할이 필요하면 기둥 역할을 하면서 주어지는 대로 역할을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직장 다녀도 참 편해요. 승진시켜주면 시켜주는 대로 하고, 안 시켜주면 안 시켜주는 대로 하고, 여기 가서 하라 하면 여기 가서 하고, 저기 가서 하라 하면 저기 가서 하면 돼요. 그걸 꼭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늘 인생을 피곤하게 살아요. 정토회 와서도 피곤하게 살고 정토회 일도 피곤하게 하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일이 많아서 힘들다고 하지만, 그건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첫째, 마음이 힘들다는 거예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자니 힘들다는 뜻입니다. 둘째, 일이 힘들다면 일하는 요령을 잘 몰라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어요. 일하는 요령을 몰라서 힘들다면 요령을 좀 습득해야 합니다. 요령을 모른다고 일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에요. 컴퓨터가 필요는 하지만, 컴퓨터를 못한다고 아예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아요. 스님이 돈이 없다고 활동을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돈 없으면 돈 있는 사람의 고민을 좀 도와주고 그 돈을 좀 이용하면 되니까요. 영어를 못하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입을 좀 빌리는 거예요. (모두 웃음)

이렇게 하면 됩니다. 다 내가 잘한다고 꼭 좋은 게 아니에요. 나도 못하는 게 있어야 서로 주고받을 수 있고, 그래야 내 교만도 좀 없앨 수 있고, 또 상대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 잘해야만 꼭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런 관점을 여러분이 가진다면 개인생활도 행복하고 사회생활도 행복할 수 있어요. 또 가정이라는 것은 꼭 배우자와 서로 사이가 좋아서 ‘너 없으면 나 못살고, 나 없으면 너 못살고’ 이런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에요. 그러다가 한쪽이 죽으면 남은 사람에게는 큰 고통이 되잖아요.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어도 살 수 있는 관계가 좋습니다. 그러니 관계에 갈등이 없으면 되지, 그저 껌처럼 달라붙어 있어야 하는 게 행복이라고 이해하시면 안 돼요. 그건 행복이 아니라 속박입니다. 사람의 관계라는 건 좀 이렇게 갈등이 없고 자유로운 관계라야 해요.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도 좋지만 세상에도 도움이 되지, 나쁠 게 없어요. 우리가 깨끗이 쓰고 가면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고, 이 집에도 나쁠 일이 없고, 우리가 이렇게 전등이라도 하나 더 끄고 살면 우리에게도 도움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 도움이 돼요. 우리가 남을 손해 끼칠 이유가 없을뿐더러 우리가 하는 일이 그래도 이 세상에 여러 모로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니까 자부심을 가집시다.

도움되는 것도 너무 크게 도움되려고 하면 그것도 스트레스가 돼요. 부처님 가르침은 항상 ‘손해는 끼치지 마라’가 첫 번째입니다. 도움은 안 돼도 좋으니까 우선 손해 끼치지 말라는 거예요. 두 번째,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되면 좋다고 가르치셨어요. 도움이 되는 건 선택사항이고, 손해를 끼치는 건 금기사항이에요. 손해 끼치는 건 아예 하면 안 되는 것이고, 도움이 되는 건 안 해도 괜찮지만 하면 더 좋다는 선택사항입니다. 그러니까 도움되는 것에 대해서는 꼭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 개인도 행복하고 함께도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합시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중에 장점이 많아요. 물론 가족도 서로 화목하면 늙어서 손잡고 다니는 등 좋은 점이 있지만, 우리가 늙으면 우리 삶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여러분이 지금 엄청나게 공들여 키우는 자녀가 아예 코빼기도 안 보이고 안 찾아올 수도 있고, 지금 사는 남편 혹은 아내와 언제 남이 될지도 알 수도 없습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법이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수행 정진하면 늙어가지고 걸음이 서툴고 입에 말이 잘 안 나와도 이렇게 웃으면서 같이 지낼 수가 있어요. (모두 웃음) 정토회에서 좋은 집은 보장이 안 되고, 좋은 음식도 보장이 안 되고, 좋은 옷도 보장이 안 돼요. (모두 웃음)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함께 이렇게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것은 보장이 됩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나가야겠죠.

우리들의 이 모임이 지금은 약간 생활할 때 가외의 일, 플러스알파의 일로 느껴질지 몰라도 이 플러스알파를 저축해놓으면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 거예요. 다 늙어서 보면 아마 ‘내가 딴 건 몰라도 정토회 나간 건 잘했다!’ 이런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결론이 나도록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고요. 그렇게 해나갑시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난 입재식에서 ‘북한에 옥수수 1만 톤 보내기 모금’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한 지 딱 일주일 만에 2,500톤 정도 더 모금되었습니다. (모두 박수)

6월 말까지 1만 톤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큰돈을 내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모두들 작은 돈이 모여 이렇게 큰돈을 만들어냈습니다. 정토회원들이 나 유튜브 보는 분들의 후불제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정말 필요하다고 하니 동참해주신 분들이 많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

감동적이었습니다. 대중은 서로에게,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함께 모금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뭉클한 분위기 속에서 해외 상임법사인 선주 법사님이 회향식을 마치며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지도법사님의 말씀에 가슴이 벅차고 울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들으니 가슴이 더 벅찼습니다.”

법사님이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하자 해외 정토행자들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2박 3일 동안 행자대회를 하면서 모든 분들이 다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유럽에서 일주일을 보내면서 4일은 외부 강연을 하고 3일은 유럽지구 행자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씨앗은 스님이 뿌리고, 그 밭을 일구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장을 해야 더 많은 밭을 일구고 열매를 잘 키울 수 있잖아요. 씨앗을 뿌리고 우리를 단단하게 하는 행자 대회는 2,3년에 한 번씩이 아니라 매년 해야 할 일 같습니다.

올해는 9차년을 마무리하는 해고, 10차는 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하는 해이면서 2차를 준비하는 귀한 시간입니다. 내년에 우리 활동가들이 다시 모여 준비를 해서 3년을 시작하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9차년에 국제국이 신설이 되면서 우리들의 미래를 2년 동안 준비를 많이 하였지만 첫 시작이라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지만 부서를 개설할 때 국제국장 1명의 인원이 배치되었습니다. 우리들의 활동이 지금 있는 사람도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각 법회마다 해외 전법 담당자 1명이 필요하고, 자막을 올리고, 콘텐츠 개발에 인력이 필요합니다. 다 함께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런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선주 법사님은 웃음반 눈물 반으로 인사말을 마쳤습니다.

이제 2박 3일의 유럽지구 정토행자 대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스님은 지역 별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마지막으로 바라지 분들께는 스카프를 선물하면서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기념사진 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런던 졸업식에 참가하지 못한 분들에게 졸업장 수여식을 하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 1시간 정도 업무를 보고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하수영 님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이제 시드니로 길을 떠납니다.

제일 값싼 경로를 택하다 보니 둘러둘러 가게 됐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도 델리까지 9시간을 타고 간 다음, 델리에서 5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시드니까지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적도를 지나는 여정입니다.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약 27시간, 시차까지 더하면 35시간이 지난 25일 화요일 오전 10시가 돼야 시드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공항에서 과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델리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며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해외 정토행자들이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아왔습니다. 한해 한 해가 갈수록 이제 해외 행자들도 조금씩 더 체계적이고 역량이 강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결 뿌듯하고 감사한 시간입니다. 비행기에서 하루를 더 지나고 25일 시드니 강연장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한은 지금 춘궁기 보릿고개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는 7월까지 북한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옥수수 1만 톤은 북한 아이들이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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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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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7-25 21:14:40

정지나

감사합니다 꾸벅^^

2019-07-15 16:30:23

임무진

그분이 내게 부처님입니다. 덕분에 내 마음을 자주 들여다봅니다. 고맙습니다

2019-06-29 09: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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