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4.5 천도교 포덕 160년 천일기념식, 정토불교대학 졸업수련 법문 촬영
“일상이 곧 수행이 되려면”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천도교 포덕 160년 천일기념식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정토불교대학 졸업 수련 법문을 촬영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10여 년 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이웃 종교 지도자분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는데요. 그중에는 천도교도 있습니다. 특히 박남수 전 교령님과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서 매월 한 번씩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천도교를 창명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무극대도를 득도한 지 160년을 맞이하는 천일기념일입니다. 더욱이 천도교에서 새로운 교령님과 중앙집행부가 취임하는 날이기도 해서 스님도 특별히 초청을 받았습니다.

송범두 신임 교령님과 새로운 중앙집행부가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자 청중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도 함께 축하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과 천도교 교령님의 인연은 그 스승의 스승, 그 스승의 스승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50년 전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혜월 화상과 최제우 대신사의 남원 덕밀암에서의 깊은 교감은 그 후 3.1 운동 준비 과정에서 용성 조사님과 손병희 교주의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제자의 제자로 이어진 교류가 오늘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해 새롭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 자리가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동학농민혁명과 3.1 운동에서 보여준 통합의 정신을 재현하여 각자위심으로 병든 사회병리 현상을 동귀일체하는 사회 공동체로 전환하는 지혜를 발휘해 나갑시다.”

포덕문, 기념사 낭독에 이어 기념송, 천일기념가를 함께 부른 후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신임 교령님을 비롯해 중앙집행부를 맡은 분들과 악수를 나눈 후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오후 2시에는 정토회관 2층 강당에서 정토불교대학 졸업 수련 법문을 촬영했습니다. 4월 말부터 전국에서 가을 불교대학 학생들의 졸업 수련이 진행됩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스님의 법문을 함께 시청할 수 있게 오늘 법문을 촬영했습니다.

스님은 불교대학 졸업을 앞두고 1년을 돌아보며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앞으로 어떤 수행을 더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면서 학생들을 격려했습니다.

“지난 불교대학 1년 동안 무엇을 배웠나요? 불교대학에서 교리를 알게 됐다고 졸업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교리도 알면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입학할 때 보다 괴로움이 줄었는가’에요. 1년 전과 비교해서 똑같은 일을 겪어도 덜 괴롭고, 미워했던 사람을 봐도 덜 싫다면 공부를 제대로 한 겁니다. 1년이 지났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어떤 건 더 심해졌다면 수행을 안 한 거예요. 불교 지식은 늘었는지 몰라도, 그 가르침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겁니다. 이런 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스스로 경험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해요.

우리는 매주 한 강의를 듣고, 배운 것을 일상에서 체험해보는 연습을 해왔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 바꾸기’에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업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것을 보고도 업식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달라요. 비유하면 프리즘과 같습니다. 빛은 원래 색깔이 없잖아요. 그런데 프리즘에 빛을 비추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로 보여요. 프리즘이 바로 업식과 같습니다. 같은 상황도 각자가 가진 업식에 따라 어떤 사람은 빨갛게, 어떤 사람은 노랗게 보여요. 빨갛게 보이는 사람은 빛이 원래 빨갛다고 하고, 노랗게 보이는 사람은 빛이 원래 노랗다고 합니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인식한 대로 말하는 거예요. 나는 빨갛게 보이는데 상대가 노랗다고 하면 ‘이게 어떻게 노랗냐? 빨갛지!’하고 싸웁니다. 관점을 바꿔서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노랗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또 다른 예로 하나의 산을 두고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동산’이라고 하고, ‘서산’이라고 합니다. 동산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서산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내가 사는 마을에서 나와서 저 마을에 가서 산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와서 보니 서산이네.’하고 알 수 있어요.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보면 ‘공부를 왜 안 해?’라고 하잖아요. 아이 입장에서 보면 ‘공부가 힘들구나.’하고 알 수 있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게 아니에요. 아이 입장을 알면 ‘그래, 힘들지?’하고 이해하는 바탕 위에 ‘그래도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만 좋은 게 아니라 부모도 편안해져요.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연습은 꾸준히 해야 해요. 뭘 자꾸 고치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연습을 많이 해도 쉽게 관점이 바꿔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자기 입장만 보고 살았기 때문이에요.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면 화가 나고, 괴로워집니다. 그럴 때 상대의 입장에 서 보는 게 관점을 바꾸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이해가 됩니다. 상대가 이해되면 나의 괴로움과 화가 사라져요. 불교대학에서 이런 이치를 배웠으면 일상에서 연습을 해봐야 해요. 남편하고 싸울 때, 애들이 뜻대로 안 될 때, 직장에서 다툴 때, 그때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이런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을 두고 ‘일상이 곧 수행’이라고 합니다. 선禪의 언어로 ‘평상심이 도다.’라고 해요. 정토회에서는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고도 하죠. 괴로움과 분별심이 일어날 때 ‘아, 놓쳤구나. 다시 해보지.’ 이렇게 늘 연습으로 받아들이면 일상이 곧 수행이에요. 명상하는 시간, 절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이 수행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수행이 잘 안 돼요. 놓치면 놓친 줄 알아야 수행이 되는데 놓친 줄도 몰라요. 누군가가 미워도 금방 ‘내가 나를 고집했구나.’ 이렇게 딱 돌이키면 수행을 한 거예요. 그런데 미워하는 마음을 하루가 넘게 계속 붙들고 있으면 그 날 하루는 수행을 안 한 거예요. 열흘을 계속 미워한다면 열흘 동안 수행을 안 한 겁니다. 열흘 동안 미워하면 내 마음이 괴롭죠. 그러니 일상에서 마음을 잘 살펴보고, 분별하거나 괴로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관점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거예요.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입학할 때는 입학 법문 듣고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못했구나. 나는 문제다.’고 생각하면 이것도 사로잡힘이에요. 넘어졌으면 ‘넘어졌구나. 일어나야지.’하면 돼요. ‘나는 왜 자꾸 넘어지지?’하고 앉아서 우는 것은 뉘우침이 아니에요. 그런 후회는 ‘나는 넘어지지 않아야 되는 사람이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후회는 수행이 아니에요. 잘못했을 때 ‘나는 왜 자꾸 잘못하지? 문제야’라고 생각하면 수행자가 아니에요. 그러면 비굴해져요. ‘내가 잘못했구나’ 이걸로 끝나면 됩니다. ‘다음에는 안 해야지’하고 또 잘못하면 ‘놓쳤구나’로 끝나야 돼요.

내가 잘했다고 고집하는 것만 잘난 게 아니에요. 내가 못났다 하는 것도 잘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학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잘나고 못난 게 없어요. 다만 ‘넘어졌으면 넘어졌구나’하고 일어나면 돼요. ‘저 사람은 한 번 넘어지고 가는데 난 열 번 넘어졌다. 나는 못났다’ 하는 건 수행자의 마음가짐이 아니에요. 한 번 넘어지고 가나 열 번 넘어지고 가나, 가면 되는 거예요. 몇 번 넘어졌다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등산할 때 몸이 건강한 사람은 3시간 만에 가고 좀 덜 건강한 사람은 4시간 만에 가면 돼요. 1시간 먼저 갔다고 훌륭한 사람이고, 늦게 갔다고 부족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신체 조건이 다르니까 먼저 가는 사람도 있고 늦게 가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가는 거예요. 운전면허 시험을 어떤 사람은 한 번 만에 통과하고 어떤 사람은 다섯 번 떨어지고 여섯 번째 합격했다면 이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 아니에요. 면허증을 받으면 다 똑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 차이가 날 수는 있어요.

수행자는 교만해도 안 되지만 비굴해도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내가 잘났다는 교만함과 늘 자기를 문제로 여기는 비굴함이 뒤섞여있어요. 남하고 비교해서 특별히 잘났다고 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동시에 남하고 비교해서 특별히 못났다고 할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남보다 키가 한 뼘 더 큰 게 잘난 거면 내가 남보다 키가 한 뼘 작으면 못난 거예요? 다만 다를 뿐이에요. 근데 내가 키에 집착하면 ‘키가 커서 내가 잘났다, 키가 작아서 내가 못났다’ 하는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생기는 겁니다. 우월하고 열등한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뭔가에 집착하기 때문에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집착을 놔라.’ 고 말하는 거예요.

제가 여러분이 입학할 때 ‘1년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떨어지지 말고 끝까지 한번 해보세요. 끝까지 해보고 도움이 안 된다면 그만둬도 됩니다’고 했어요. 오늘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저하고 약속을 잘 지켰다는 거예요. 우선 여기까지 온 것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1년을 평가해봐서 별로 도움이 안 됐다면 여기서 그만두셔도 괜찮습니다. 도움은 됐는데 ‘부지런히 정진을 못했다. 아쉬움이 있다’ 면 경전반에 입학하셔서 조금 더 체험하는 공부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같은 수행자로, 도반으로 계속 만나면 좋겠습니다. 졸업 수련 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법문 촬영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이 왜 필요한지, 앞으로 수행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스님의 자상한 설명에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습니다. 졸업 수련을 통해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모두가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저녁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불교계 시민활동가들과 미팅을 가진 후 밤늦게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내일은 평화재단 통일의병들, 공동체 실무자들과 함께 두북에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봄기운 완연한 흙과 풀, 농사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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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내 욕심에 부끄러운 행동을한 나를 자각하며 자책합니다
실패가 아닌 그저 연습일 뿐이며 다시 툭툭 일어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4-13 22:37:29

이선희

이순간 이자리 평온한일상이 행복인줄 알아 감사합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신 스승님 감사합니다
깨어있어 잘살피고 잘쓰이겠습니다

2019-04-09 10:17:43

박진자

집착하는 이 몹쓸 습을 버리기 위해 오늘도 정진 내일도 정진입니다~귀한 글 감사드립니다_()_

2019-04-09 10: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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