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6. 인도성지순례 12일째 (쉬라바스티)
“감격스럽죠? 이곳이 바로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문 곳입니다.”

쉬라바스티 Sravasti

부처님은 성도 후 45년간 교화여정 중 이 곳 쉬라바스티(사위성)에서 24안거를 보냈습니다. 부처님의 중요한 활동 근거지가 되었던 사위성으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성지순례를 떠난 지 12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성도 후 가장 오랜 기간 머무신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에서 그 숨결을 느끼며 하루 종일 머뭅니다. 

금강경의 한 구절처럼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400여 명의 순례단은 가사를 정갈히 수하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부처님과 천이백 비구 대중들은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서 걸식을 하고 한 줄로 천천히 걸어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이 기러기 떼의 모양과 같았다고 그래요.

우리도 그들처럼 여기서 기원정사까지 한 줄로 조용히 석가모니불 염불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 가보겠습니다. 왼발이 나갈 때는 왼발이 나가는 줄 알고, 오른 발이 나가는 줄 알아차려보세요. 걸으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출발해보겠습니다.”

자욱한 안개를 가르며 고요히 걸어가는 기나긴 행렬은 이곳 사위성에서 설해진 금강경의 한 구절이 그대로 재현이 된 것 같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많은 안거를 하셨던 기원정사

기원정사에 천천히 걸어 도착한 순례단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스님을 따라 물 흐르듯이 부처님과 당시 제자들의 발자취를 거닐어 보았습니다.

아난 존자가 물을 떠서 부처님께 드렸다는 우물 터, 부처님이 열아홉 발자국 행선했던 자리, 부처님이 안 계실 때 부처님을 대신해서 생각하기 위해 심은 보리수나무를 지나 부처님이 머문 처소인 ‘간다 쿠티’를 돌아 맞은 편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심정례공양...(마음을 다해 공양 올립니다)"

400여 명의 순례단이 부처님이 머물던 곳인 간다 쿠티를 향해 엎드려 절을 하는 사이 동쪽에서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예불에 이어 스님은 간절한 목소리로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성지 어느 곳에서든 항상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순레단은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명상에 들었습니다.

기원정사를 창건한 수닷타장자

스님은 먼저 기원정사를 창건한 수닷타 장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생생한 묘사에 벽돌 더미의 유적지에서 부처님 당시의 상황이 금세 재현되었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한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사위성에도 왕사성의 죽림정사 같은 수행처를 마련해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사위성과 멀지도 않고, 정진하기에 딱 좋은 곳이 기타 태자의 숲이었다고 합니다. 수닷타 장자가 그 숲을 사려하자, 숲을 팔 생각이 없었던 기타 태자는 금화로 숲을 다 깔 수 있다면 팔겠다고 했고, 수닷타 장자는 실제로 금화로 숲을 깔기 시작합니다. 이런 수닷타 장자의 태도에 놀란 기타 태자 역시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고, 금화로 깔지 못한 나머지 땅을 보시하였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의 당시 이름은 제따바나(Jetavana)입니다. ‘제따’는 사람 이름이고 ‘바나’는 숲이란 뜻이에요. 제따라는 사람이 소유한 숲, 즉 제따 태자의 숲입니다.

이 지역에 살면서 아주 사업을 크게 하는 분이 있었는데 이름이 수닷타(Sudatta) 장자였어요. 요즘으로 말하면 사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사하는 계급인 바이샤에 속하는 사업가를 장자(長者, seṭṭhi)라고 부릅니다. 재벌 수준의 큰 사업가였는데 이 사람의 별명이 아나타핀디카(Anathapindika)예요.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왔기에 붙은 별명입니다. 한문으로는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 라고 옮겨요.

남방불교에서는 ‘급고독장자’ 라는 말은 안 나오고, 원래 제따의 숲이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제따바나’라고 합니다. 한문으로 번역할 때는 제따의 숲을 이 사람이 구입해서 여기다가 부처님이 머무르도록 정사를 만들었다는 뜻을 넣었어요. 제따 태자는 한문으로 옮길 때 기타 태자(祇陀太子)라고 합니다. 기타 태자의 숲에 급고독장자가 지은 절이라고 해서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고 하고, 이걸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불러요.“

그리고 이곳 사위성에 있었던 다양한 교화 사례를 재미있고 실감나게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코살라국의 프라세나짓 왕도 부처님께 귀의하였다고 합니다.

타인의 불행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시오

“부처님이 이곳에 머무실 때 이 나라의 왕이 찾아왔어요. 빨리어로는 빠쎄나디라고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세나짓(Prasenajit) 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여기 계시고 또 유명하다니까 왕이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안 오려다가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권유를 하니까 찾아와서 첫 번째로 묻는 말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왕이 됩니까?’ 였어요.

보통 같으면 훌륭한 왕이 되려면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하고 군대가 강해야 하고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식의 애기를 하겠죠. 그런데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이래요.

‘대왕이시여, 백성을 외아들 사랑하듯이 하십시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십시오.’

이게 굉장히 유명한 말이에요.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라. 여러분들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겠다는 것도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방법이에요.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평생 벗겨 먹으려고 하잖아요. 자기는 별 볼일 없으면서 아내 하나 잘 만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모두 웃음)

친구 하나 좀 잘 만나겠다, 사업 상대 하나 잘 만나겠다, 좋은 사람 하나 만나겠다, 이런 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덕 좀 보겠다는 소리예요. 여러분들이 무슨 경쟁을 해서 이겼다고 만세 부르는 것도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거예요.

부처님이 출가 전에 고민했던 얘기를 알면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싯다르타 태자의 젊은 시절의 고뇌를 모르면 뜬금없는 말처럼 들립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십시오. 그러면 고행을 안 해도 됩니다.’

당시에는 온갖 좋은 것을 다 가지려고 하거나, 또 한편으로는 수행한답시고 며칠씩 굶고 고행하는 현상이 생겼어요. 특별한 고행을 한다고 그런 난리를 안 피워도, 배고픈 자를 먹이고 병든 이를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면 그것이 바로 훌륭한 왕이 되는 길이라는 거예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빠져서 욕심내고, 화내고, 어리석게 굴면, 훌륭한 왕이 되기는커녕 자기 생명 하나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주 유명한 얘기예요.”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서 45안거 중에 19안거를 보내시며 수많은 사람들은 교화하셨습니다. 스님은 그 중 대표적인 교화 사례들을 쭉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실제 경전 속에서는 그 내용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함께 독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전을 반 쯤 독송하고 스님의 설명을 듣고 경전을 마저 독송하였습니다. 아함경의 절반 가까이가 이곳 사위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오늘 독송한 내용 말고도 어마어마한 사례들이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순례객들은 기원정사 곳곳에 흩어져 정진을 하거나 자유롭게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는 사람, 조별로 모여서 공동 정진을 하는 사람들, 간다 쿠티를 바라보며 절을 하는 사람 등 순례객들은 성지에서 받은 감동을 정진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승화하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끝나고, 야단법석이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손을 들고 질문하라고 하자 한 시간 반 동안 총 8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이 옷 세벌만 가지고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냈는지, 깨달음의 경지를 누가 판단해 줄 수 있는지, 싯다르타 태자는 어떻게 농경제를 보고 큰 연민의 마음을 낼 수 있었는지, 저녁 법문 시 피곤해서 조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걸이 꼭 나쁜지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이 자리에서 제자들과 이와 같이 법담을 나누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단법석 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과 일대일로 기념사진을 찍지 못한 순례객들은 스님과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남방불교의 예불문, 공양진언, 반야심경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며 성지마다 예불을 드리는데 정작 그 뜻은 모르는 순례객들을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원정사에서 법회를 모두 마친 후 다함께 사위성을 향해 걸었습니다. 대중 일동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대로 걷기 시작하자 스님은 금강경의 첫 구절을 읊으셨습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수급고독원에 대비구중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공양 때가 되어 큰 옷 입으시고 발우를 지니신 채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차례로 밥을 빌어 본 곳으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마치신 뒤 의발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우리도 지금 기원성자에서 사위성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서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처님 당시를 재현하듯 긴 행렬을 이루며 기원정사에서 사위성으로 향했습니다. 한 인도인이 다가와 스님에게 꽃 한 송이를 주었습니다. 꽃을 든 스님 뒤로 400여 긴 행렬이 뒤따랐습니다.

사위성으로 들어서니 길이 어딘지 잘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풀이 무성했습니다. 숲 속에서 놀던 아이들이 “스님! 스님!”하면서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섭니다.

“엄청나게 부유한 도시였던 사위성도 이렇게 정글로 덮였습니다.”

모든 것이 무상함을 느끼며 순례객들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스님을 따라 사위성 서문으로 들어가서 성 중심에 이르니 이번에는 두 개의 큰 탑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스님이 송수신기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이것은 앙굴리말라를 기념하는 탑이고, 저기 오른쪽에 있는 것은 수닷타 장자를 기념하는 탑입니다. 수닷타 장자는 선한 사람으로서 위대한 사람이고, 앙굴리말라는 악인이었다가 참회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었어요.”

순례객들은 스님을 따라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앙굴리말라 스투파를 돌고, 수닷타 장자 스투파를 돌아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교화하시다

스님은 부처님이 어떻게 99명을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교화했는지 당시의 모습을 영화 보듯이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위성 교외에 99명을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가 나타났는데, 부처님께서는 앙굴리말라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도망을 가면서 부처님께 그곳에 가면 살인자 앙굴리말라가 있으니 가지 말라며 말렸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여래에게는 두려움이 없다’고 하시며 가시던 길을 계속 가셨다고 합니다.

마침내 앙굴리말라가 나타나 부처님을 보고는 ‘사문아, 게 섰거라!’ 하면서 칼을 들고 달려드는데, 부처님은 천천히 걸어가는데도 앙굴리말라가 아무리 쫓아가도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앙굴리말라가 ‘멈추어 서라! 멈추어 서라!’ 고함을 치면서 계속 쫓아옵니다. 결국 부처님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난 뒤에 앙굴리말라가 말을 합니다.

‘왜 멈추라고 하는데 멈추지 않느냐?’
‘나는 이미 멈춘 지 오래되었다. 정작 멈추지 않은 것은 바로 너이니라.’

이것이 부처님 화법의 독특함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살려달라거나 도망을 가는데, 부처님은 태연하게 자신은 이미 멈춘 지 오래되었고 오히려 멈추지 않은 사람은 앙굴리말라 너 자신이라는 조금은 아리송한 말을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멈추라는데도 계속 걸어가지 않았느냐?’
‘나는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손해 끼치는 악행을 멈춘 지 이미 오래되었느니라. 그런데도 너는 아직도 그 행을 멈추지 못하고 있구나.’

그 말을 들은 앙굴리말라는 집착된 상태에서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온 거예요.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앙굴리말라는 칼을 버리고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참회를 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법문을 설하시고, 그 법을 듣고 앙굴리말라는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고 출가하기를 청합니다.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출가한 앙굴리말라는 용맹정진하여 일주일 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합니다.

...(중략)...

앙굴리말라가 비구가 된 이후에 마을에 탁발을 하러 갔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앙굴리말라다!’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마침 앙굴리말라가 탁발을 하러 간 집에서는 부인이 아기를 낳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소리를 들은 부인이 겁에 질려서 그만 아기를 낳는 도중에 기절을 하게 됩니다. 아기도 부인도 위험해지니까 앙굴리말라는 얼른 부처님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니, 부처님께서 앙굴리말라를 그 집으로 돌려보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힘사여, 다시 그 집에 돌아가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단 한 사람도 해친 적이 없다고 말하라.’

실제 앙굴리말라는 많은 사람을 해쳤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는 ‘출가 사문이 된 후로’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법을 듣고 출가하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 부처님께서 시키는 대로 부인에게 그렇게 말하니,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아기를 순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힘사는 비폭력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앙굴리말라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전에는 앙굴리말라가 나타나면 두려워서 도망을 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돌멩이를 들고 앙굴리말라에게 집단으로 던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돌을 맞은 앙굴리말라는 결국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 소식을 듣고 그 자리로 오셨는데, 이미 앙굴리말라는 피투성이가 된 후였습니다.

‘아힘사여, 지금 어떠한가?’
‘저는 평온합니다. 저는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앙굴리말라는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 앙굴리말라의 일화입니다. 이 일화는 희대의 살인마도 법에 귀의하고 눈을 뜨면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깨달음은 누구나 다 가능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앙굴리말라라는 살인마도 성인으로 거듭나게 했으니, 이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부처님을 위대하게 만든 일화라고 널리 전해졌습니다. 그럼 이 일화에 해당하는 경전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스님이 말씀해준 내용이 경전 속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독송해 보았습니다. 경전으로 읽으니 더욱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경전을 독송한 후 스님은 조금 더 설명을 보태었습니다.

“감격스럽죠? 이렇게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을 읽으면서 ‘사람을 그렇게나 많이 죽였는데 가만히 놔둬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거예요. 나쁜 짓을 했다고 응징하는 게 좋을까요? 지금까지는 나쁜 짓을 했지만 참회하고 앞으로는 좋은 일을 하도록 하는 게 좋을까요? 만약 누군가 내 돈을 빌린 다음 안 갚았다면, 그 사람이 죽는 게 나아요, 그래도 살아서 내 돈을 갚는 게 나아요? (모두 웃음)

이건 우리의 선택이에요. 여기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어요. 첫 번째 선택은 상대방이 나쁜 일을 하니까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는 것입니다. 옛날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강조하던 때에는 대부분 이러한 징벌의 태도를 가져왔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 이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입니다. 그때는 소돔과 고모라의 예처럼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는 하나님이었어요.

두 번째 선택은 그 사람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나쁜 일을 했지만 그가 앞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교화가 핵심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시설을 우리가 교화소 또는 교도소라고 부르는 거예요. 물론 도저히 교화가 안 되는 경우에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격리시키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우리에게 교화할 능력이 부족해서 대비책을 마련해두는 것이지, 교화를 할 수만 있다면 격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에게는 감정적으로 복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잘못을 하면 징벌을 하고 싶어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예도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향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라고 하셨어요. 이 순간 징벌의 하나님에서 용서의 하나님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 둘은 성격이 다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누가 잘못을 했을 때 벌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나아가 앞으로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거예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앙굴리말라는 여전히 살인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이미 아힘사라는 성자(聖者)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폭력에 맞서 괴력을 쓰지도 않고 자기의 삶을 안온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만약 네가 돌멩이를 맞고 죽지 않았다면 더 큰 과보를 받았으리라’ 고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이런 이야기의 교훈을 당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보왕삼매론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이런 경우에 감정으로 반응하게 되고, 그럴 때는 이런 말의 교훈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예가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바람 핀 남편은 분명 예전 남편의 가치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일은 두고, 지금 새로 같이 살 남자를 구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남자를 구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남편을 유지하는 것이 낫지 않은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조건을 따져보라는 말인데,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는 ‘그러면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그대로 두라는 말이냐?’ 이렇게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웃음)

여기서 핵심은 과거에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늘 지금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서 지금을 놓치고, 나중에 후회할 감정적인 선택을 내리곤 합니다. 그리고 늘 더 큰 손실을 봅니다. 이것이 제 1의 화살을 맞은 다음 제 2의 화살을 맞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제 1의 화살을 맞을 지언정 제 2의 화살은 맞지 말라’ 라고 하신 것은 늘 지금에 깨어있으라는 뜻입니다.”

순례객들은 저마다 받은 감동을 안은 채 다음 순례 장소로 향했습니다.

동원정사

다음 순례 장소는 베사카 부인이 지었다고 하는 동원정사입니다. 동원정사에서 스님은 베사카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또 실감나게 들려주었습니다.

“베사카 부인은 경전에 따라 위사카 부인으로 기록하기도 합니다. 베사카 부인은 어릴 때부터 부처님의 법을 접하고 자랐는데, 결혼한 시댁은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육사외도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부처님의 명성이 점점 커지고 있었는데, 베사카가 시집을 온다고 하니까 혹시라도 시댁 사람들이 부처님 교단에 귀의할까 싶어서, 그 교단에서 종교지도자 한 명을 파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사카 부인의 시아버지가 밥을 먹고 있는데 스님들이 탁발을 왔습니다. 인도의 문화 중에는 밥 먹는 모습을 탁발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반드시 밥을 주어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자기가 믿는 교단의 사람들이 아니니까 밥을 주기가 싫어서, 스님들이 오자마자 뒤로 돌아서서 발우를 숨기고 아무것도 안 먹은 척을 한 거예요. (모두 웃음)

그 모습을 본 베사카 부인은 마음 아파하며 스님들을 찾아가서 대신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걸식하는 수행자들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사실 어제 먹다 남은 식은 밥인데 그걸 드리기가 조금 그래서 벌어진 일이니 오해하지 말라며 수습을 합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잘 차려서 먹고 있는데 어제 먹다 남은 식은 밥을 먹는다고 거짓말을 해서 도리어 자기를 모독했다며 며느리를 파문하려고 합니다. 사실 평소 시댁과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어요. 부잣집 딸인데다가 종교도 다르고, 평소에도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을 초청하고 싶어 해서 부담스러운 며느리였는데, 이 일을 핑계로 며느리를 파문하려고 한 거예요.

그런데 며느리가 파문 당해서 쫓겨난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니까 그 경우에 며느리의 지참금이 모두 시댁 소유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 일을 두고 소송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재판에서 결국은 베사카 부인이 이깁니다. 시아버지를 변호하기 위해서 둘러댄 것이지 모독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 판결이 납니다. 또 이 사건을 통해 집에 스님들을 초청해서 공양할 수 있는 권한까지 얻어냅니다.

베사카는 부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시댁 식구들과 인연을 맺어주고자 자리를 열었는데, 니간타파 제자가 어떻게든 부처님의 설법을 못 듣게 하려고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해요.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는 법을 듣지 못하고, 대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니까 병풍 뒤에 숨어서 몰래 듣게 되었는데, 그렇게 몰래 듣다가 시아버지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모두 웃음)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시아버지가 불법에 귀의하게 돼요. 시아버지는 며느리 덕분에 불법을 알게 되었다며 며느리에게 고마워하며 며느리를 자기 법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 녹자모(鹿子母)입니다.

베사카 부인은 늘 기원정사에 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싼 코트를 입고 갔다가 기원정사에 깜빡하고 놓고 온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는 하인을 시켜서 코트를 찾아오게 합니다. 그러면서 하인에게 ‘내가 놔둔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가지고 오고, 만약 아난다 존자가 다른 곳으로 옮겨두었거든 코트를 보시하고 오라’고 이릅니다. 하인이 기원정사에 갔더니 이미 아난다 존자가 코트를 치운 후여서 하인은 그 옷을 보시하고 돌아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난자 존자는 수행자 모임에 비싼 코트는 필요 없다며 보시를 거절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베사카 부인은 이미 보시하기로 마음을 내었으니, 그러면 그 코트를 팔아서 그 돈으로 보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경매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옷이 너무 비싸서 아무도 살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자 베사카 부인은 자기가 자기 코트를 비싼 돈을 주고 사서, 그 돈으로 이 동원정사를 지었다고 해요.” (모두 웃음)

동원정사에서 직접 스님의 설명도 듣고 경전도 독송해보았습니다.

경전 독송 후 스님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대부분의 경전 내용은 스님들의 이야기입니다. 그중 비구 스님들의 이야기가 80%,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가 10% 정도 되고, 재가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 교단에서 실제로 재가수행자들의 역할이 아주 컸습니다. 특히 사위성에서는 수닷타 장자와 베사카 부인의 위치는 특별합니다.

또 왕사성에서는 의사 지바카의 역할이 컸습니다. 지바카는 나라의 대신이기도 했고, 동시에 부처님의 제자로서 상가의 주치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덮었던 옷을 그대로 입지 않고 햇빛에 말리거나 빨아서 입도록 한 것 등 위생적인 면은 대부분 지바카의 제안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승단의 역사적 기록이 비구 스님 중심으로 되어있으니 비구 스님들의 수행에 대한 것이 많지만, 그 속에 재가수행자들의 역할도 컸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누구나 수행 정진하면 해탈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머리 깎고 스님이 되지 않으면 불경을 얻어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님이 아니어도 불경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수행도 참선, 위빠사나 등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얼마든지 수행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출가수행을 하면 말할 것 없이 좋겠지만, 꼭 출가수행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얼마든지 좋은 법 만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평소에는 잘 오지 않는데 오늘 특별히 부처님 당시에도 이렇게 훌륭한 재가 여자수행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들렀습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법문은 재가수행자들인 순례객들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순례객들은 큰 박수로 화답하였습니다.

이렇게 순례를 마치고 나서 대중들은 숙소로 돌아와 조별로 모여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천축선원에서 준비해준 맛난 시래기국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정부전기가 들어오길 기다리면서 돌아가면서 밥을 지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 밥하는 시간이 길어져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저녁예불을 드리고 아홉시가 다 돼서야 저녁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법회

스님은 이제 내일 상카시아를 마지막으로 성지는 다 순례한 것이라며 부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에 대해 설법해주었습니다.

“성지순례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요. 지금 시점에서 부처님이란 과연 어떤 분인가 돌아봤을 때 ‘아, 이런 분이셨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밥 먹고 똥 싸고 번뇌하면서 살아가신 한 사람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다의 공양을 드신 뒤 보여주신 자세라든지 앙굴리말라를 교화할 때 같은 여러 사건에서 보면 ‘사람으로서 그렇게 될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특별한 인격이었다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종교가 신기한 현상, 소위 신통에 기대는 면이 커요. 신비주의가 종교의 흡인력이고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미혹하게 만들고, 어리석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현상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지 그런 파워가 우리를 평화롭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 관점을 견지해서, 우리가 감정적이 되기 쉬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하되 그 감정에 치우치게 될 때 조금이라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정에 치우치면 결국은 나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는 행동을 하고 후회하게 돼요. 그럴 때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마음을 진정시키면, 자기가 자기를 해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을 해치는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어차피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사는데,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을 주는 것이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이 되게 하고 자부심을 갖게 해요. 누구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보다 이익을 줬을 때 자기 존재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이걸 심리적으로 보람이라고 하는데, 이 보람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니 소극적으로는 남을 해치지 않고 손해 끼치지 않는 삶, 적극적으로는 남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게 좋겠죠. 세상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이 되고 자부심을 갖게 되면 그것이 행복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칭찬을 받아서, 이렇게 하면 천상에 나서, 이렇게 하면 내생에 무슨 복을 받아서, 그런 결과론적인 관점이 아니에요. 바른 길을 가는 것은 그 자체가 나한테 이익이고 보람입니다.

수행자의 삶은 희생이 없는 삶입니다. ‘희생이 없는 삶’ 이란 말을 오해하면 안 돼요. 내가 남편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어떤 희생을 했다거나 헌신을 했다고 말한다 칩시다. 그게 희생이라면 나중에 돌아올 보상을 바랍니다. 보상이 없으면 피해의식이 되죠. 그런데 희생이 없다는 말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즉 그렇게 사는 게 자기에게 가장 보람 있는 삶이었기 때문에 보상이 없더라도 후회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희생이 없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다 남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의지하고 도움을 얻으며 사는 인생이 되기가 쉬워요. 그리고 자식이든 배우자든 또 다른 누구든 뭔가 남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온갖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보상이 제대로 오지 않으면 섭섭하거나 후회가 되고 실망이 돼요. 결국 이런 이유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우리 삶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헌신하되 희생이 없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삶이 언제나 온전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 의해서 영향 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보면 사실 그렇게 살기가 쉽지는 않죠. 헌신을 하더라도 누가 알아주고 칭찬해줘야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잖아요. 도와줘도 그걸 알아주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가르침의 핵심은 이겁니다.

‘남으로부터 도움 받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아니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이다.’

이 관점이 딱 잡혀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데서 도움을 주는 존재로 전환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도움을 주는 삶으로 전환을 하게 되면 반드시 칭찬이나 다른 보상을 바라는 심리가 늘 작용을 해요. 도움을 받는 삶에서 도움을 주는 삶으로의 전환도 어렵지만, 설령 전환했다 하더라도 ‘도움을 줬으면 다음에는 보상이 와야 하지 않느냐, 재물이 아니면 칭찬이라도 와야 하지 않느냐’ 하는 보상심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 보상이 안 왔을 때는 다시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보상심리를 버려야 합니다. 도움을 주는 삶 그 자체가 나를 보람 있게 하는 삶이기 때문에, 어떤 보상 때문에 그런 삶을 산다고 하면 우리는 해탈의 길로 갈 수 없어요.

‘금강경’을 보면 그런 내용이 두 단계로 설해집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이렇게 물었을 때 첫째는 ‘일체중생을 구제하라’ 이렇게 답해요. 즉 도움을 주는 삶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구제했다’ 그러면 보살이 아니라고 해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빠져서 보살이 아니라고 합니다.

금강경의 핵심을 요약하면 이렇게 두 가지예요. 첫째, 도움 받는 삶에서 도움을 주는 삶으로, 의지하는 삶에서 의지처가 되어주는 삶으로, 사랑받는 삶에서 사랑하는 삶으로, 이해받는 삶에서 이해하는 삶으로 전환을 하라는 겁니다.

둘째, 그렇게 전환을 해도 어떤 보상심리를 갖게 되면 또 다른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줬다고 하더라도 ‘줬다’ 하는 상을 갖게 되면 뭔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심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보살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 보상심리를 버리라는 겁니다. 그 단계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입니다. 베풀되 ‘베풀었다’ 하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은 ‘베풀었다’ 하는 그 생각을 하지 마라는 뜻이 아니에요. ‘베풀었다’ 하는 생각이 보상심리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보상심리를 놓으라는 얘기예요.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사는 관점의 핵심인데, 살아보면 잘 안 되죠. 잘 안 되니까 결과적으로 인생이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잘 관점을 잡으면 우리가 남과 더불어 사는 가운데 어떤 일을 해도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중요시하게 됩니다. 성지순례의 공덕은 어떤 보상이 아니에요. 이렇게 생활하는 모든 것, 그 과정이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고 거기서 삶의 소중함을 만끽하는 것이 곧 성지순례의 공덕입니다.

그런데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은 성지순례하면서 ‘이렇게 고생했으니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지’, ‘앞으로 사업이 잘 되겠지’ 이러는지도 모르죠. 이런 생각들은 종교적인 겁니다. 종교는 늘 보상을 이야기해요. 희생을 해도 보상을 주고, 이 생에 안 주면 다음 생에, 여기 아니면 천당 가서 보상한다는 식으로 늘 보상을 얘기해요. 그런데 수행은 이런 게 없는 삶이에요. 수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함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마음을 보는 순례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강조하는 스님의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세 명 정도 질문을 받은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400명 순례객들은 취침을 하였습니다.

어느새 내일 상카시아가 10대 성지 순례의 마지막 순례 장소입니다. 내일은 새벽 3시20분에 기상하여 4시에 상카시아로 출발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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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

아 감동입니다. 공경하옵고 은덕에 감사합니다.

2019-01-28 22:28:14

김영란

남의 불행위에 내 행복을 쌓지 마라.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을 만남을 좋아했었습니다. 타인에 불행위에 내 행복을 쌓았던 지난 날들 참회합니다.
의지하고 덕보는 것 보다는 의지처가 되어주는 그런 삶을 살도록 연습합니다

물론 보상심리도 이 참에 같이 버리는 연습합니다~~^^

2019-01-28 13:42:17

엄윤주

내가 잘 못을 했더라도 앙굴리마라처럼 돌에 맞아 피가 철철 흐를때 평온할 수 있을까싶었습니다
아라한의 경지가 어떤경지인지 살짝 감이 오네요^^

성지순례의 공덕은 어떤 보상이 아니에요. 이렇게 생활하는 모든 것, 그 과정이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고 거기서 삶의 소중함을 만끽하는 것이 곧 성지순례의 공덕입니다.

성지순례의 공덕으로 삶의 소중함을 만끽하며 살겠습니다^^감사합니다^^

2019-01-22 13: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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