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1.23 구로구청 통일강연
통일을 위한 우리의 역할

오늘 스님은 오전에 북한 현실을 분석하는 전문가 모임에 참석한 후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서 각종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런 후 저녁 7시에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이 주최하는 통일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구로구청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는 ‘한반도 위기, 평화를 묻는다’는 부제가 붙어 있었는데, 전쟁 위기로 출렁이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열리는 구로구청 대강당에는 통일의병 서울경기본부 소속 서울서부 지역 의병들이 이른 시간부터 나와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팀장들이 함께 강연장을 답사하고 온 터라 마음은 조금 여유 있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 입구가 좁아서 봉사자들이 어우러져 복작복작 재밌게 청중을 맞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6시 30분에 약속한 차담 시간에 맞춰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통일의병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신 작가님도 함께 이성 구로구청장을 만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성 구청장님은 2000년에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했던 추억을 나누며 그때 만났던 봉사자 이름까지 기억했습니다. 이번 강연을 주최한 단체가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집에 가자'라는 타이틀의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둔 분들이 걸어서 판문점을 넘어 고향까지 간다는 목표로 만든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무조건 갈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세부 전략도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향을 잃은 분들의 아픔과 절실함이 느껴졌습니다. 스님도 그 취지에 크게 공감하면서 97년 북한에서 대량 아사자가 발생했을 당시 전국의 대학을 찾아다니며 북한 돕기를 호소했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강연이 진행될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먼저 김홍신 대표님이 통일의병을 대표하여 인사말을 한 후 서울 서부지역 의병과 그 가족들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노래를 율동과 함께 합창하여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통일된 한반도의 주역이 될 예쁜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요, 통일코리아. 우리 모두 함께 오며 통일의병 돼요’라는 피켓을 들고 노래를 하니 더욱 벅찬 감동이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성 구로구청장님의 따뜻한 인사말을 듣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다음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평화 운동가로서의 법륜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이어서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은 무대에 올랐습니다.

보통 통일 즉문즉설은 행복한 대화 강연보다 청중이 적지만, 이번 강연은 준비된 좌석을 다 채우고 심지어 빈 곳에 깔개를 깔고 앉기도 하여 총 360여 분의 청중들이 강연장을 꽉 채웠습니다.

차담 때의 마음이 남아서인지 스님은 이 땅에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사는 분들의 아픔을 얘기하면서 여는 말씀을 이어나갔습니다.

오늘은 총 7분의 질문자가 나왔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스님의 ‘통일의병 주최이니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말씀 때문인지 유치한 개인 질문이라 포기하겠다고 해서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꼭 결혼해야 하는지’였고, 세 번째 질문은 ‘전생에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세에도 누구로 태어날지 모르는데 도대체 누굴 위해 이생에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여 재밌는 문답이 되었습니다. 이 문답 속에서 사람들은 보통 통일이 될지 안 될지를 물어서 되는 일만 하려고 하는데 스님은 그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필요한 일을 할 뿐이라는 말씀으로 ‘일은 사람이 하고 뜻은 하늘이 이룬다’는 말의 뜻을 풀어주기도 했습니다. 네 번째는 민원인을 대하는 일이 많은데 자살을 생각하는 분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통일 편익만 얘기되는데 통일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싶다는 질문이었습니다. 여섯 번째는 평화통일을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일의 예를 들어달라고 질문했고, 일곱 번째는 최근에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면서 또 한 번 위기가 고조되어 촛불집회에 나가자고 하면 지인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언론조차 너무 조용한데 전쟁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일의 예를 물었던 질문자와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원래 개인적인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강연 듣다가 개인 고민은 해결돼서 평화 통일에 관련한 생각을 해봤어요. 직장이며 개인적인 일 때문에 너무 바쁘고 주말에는 쉬느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평화 통일이 굉장히 큰 사안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몇 가지만 말씀해주시면 실천을 해보겠습니다.”

“3.1운동 때 태극기 들고 만세 불렀단 얘기 들었죠? 질문자는 3.1 운동 때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그런 데 일체 참여 안 하고 장사만 하거나 공부만 해서 질문자에게 유산으로 뭘 좀 남겨준 게 자랑스러울까요? 아니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젊을 때 공부하다가 말고 장사하다가도 문 닫아놓고 가서 만세를 부른 게 자랑스러울까요? 겁이 나서 만세는 못 부르고 태극기 운반만 해줬다든지 인쇄소를 운영해서 태극기를 찍어만 줬다, 이런 것도 괜찮아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어느 쪽이 더 자랑스러울까요?”

“후자가 더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단기적으로 생각하면 당장 돈을 버는 게 이익이지만 조금 길게 생각해보면 시대적 과제라는 게 있어요.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때도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고, 장사를 해야 하고, 취직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가장 큰 과제는 나라의 독립이었어요. 그걸 시대적 과제라고 해요.

그 시대적 과제에 참여하는 것이 그 시대에는 굉장히 바보스러운 짓 같지만 독립이 된 뒤에 보면 다시 평가를 받는 거예요. 자랑스럽다, 잘 했다고 평가가 돼서 요즘은 태극기 인쇄만 해줬거나 운반만 해줬다고 해도 매년 3.1절마다 표창을 받고, 뒤에 서서 남들 태극기 흔드는 걸 구경만 했어도 표창을 받을 정도예요.(모두 웃음)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도 시대적 과제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독립도 했고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지만 아직 통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이 시대의 시대적 과제는 통일입니다.

지금의 통일 문제는 우리 삶과 굉장히 먼 것 같이 보이지만 만약 남북이 통일이 된 뒤에 돌아본다면 통일에 작은 기여라도 했던 사람은 계속 통일 상을 받게 되겠죠. 그리고 자손이 자랑스러워 할 겁니다.

그러니까 통일을 위해 뭘 하는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마세요. 첫째,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 것만 해도 굉장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하는 사람 고자질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반대만 안 해도 굉장한 거예요.

두 번째, 조금 소극적인 것도 괜찮습니다. 예를 들어 태극기 만드는 데 나는 직접 흔들지는 못해도 돈을 조금 냈다, 이것도 되는 거예요. 북한의 난민을 돕거나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내가 바빠서 직접 참여는 못하더라도 약간 돈을 보탰다, 이런 것도 괜찮아요. 전쟁 반대 집회에 나가려다가 사정이 생겨서 못 가고 다만 만 원이라도 후원금을 냈다면 그게 다 도움이 돼요.

그 다음에 주말에 집회 하는 데 가서 참가만 해도 도움이 돼요. 지난 겨울에 촛불집회 할 때 봤죠? 다들 거기 와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애기 업고도 부담 없이 나와서 촛불 들고 춤추고 즐겼잖아요. 그래도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요. 머리수가 많은 게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거예요.(모두 웃음) 돌멩이 들어서 던지고 ‘단결! 투쟁!’ 외치는 것보다 우선 거기 가서 그냥 놀기만 해도 머리수가 많으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니까 참가만 해서 머리수만 보태줘도 괜찮아요.

그 다음에 주위에 피켓을 들고 있으면 같이 좀 들어주면 더 좋겠죠. 혼자 드는 데 가서 이렇게 들어 봐도 좋고요. 수행에도 좋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보니까 좀 부끄럽긴 하죠.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언제 날 이렇게 쳐다보겠어요? 평소에는 아무도 날 안 쳐다보는데 이런 거 하나 들고 있으면 쳐다보고 가잖아요.(모두 웃음)

이런 식으로 작은 것부터 우리가 참여할 게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니 통일 운동이라고 해서 꼭 목숨 걸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독립 운동은 목숨을 걸어야 했어요. 민주화 운동은 감옥 갈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통일 운동은 감옥 갈 일도 없고, 목숨 걸 일도 없고, 불이익을 당할 이유가 별로 없어요. 왕따 당할 가능성은 좀 있긴 합니다.(모두 웃음) 하지만 회사에서 ‘저거 정신 나갔나? 뭐 저런 게 다 있어?’ 이런 소리를 좀 듣는 수준 밖에는 피해 입을 게 없어요. 요즘은 그렇게 겁낼 필요도 없어요.

그래서 통일 운동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돼요. 언론에 관련 기사가 나거나 할 때 댓글란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거나, 통일에 반대하는 글이 올라오면 ‘싫어요’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도움이 돼요. ‘싫어요’나 ‘좋아요’가 백만 개씩 눌러지면 그것도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질문이 있어요. 그 동안 저희는 ‘이렇게 해야 일자리를 잘 얻고 이런 자격증을 따야 인정받고 나중에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이런 지침을 받으면서 살아왔잖아요. 직장 일을 할 때는 목표가 안 생겼는데 지금 스님 말씀 들으면서 목표가 조금 생겼어요. 만약에 통일이 된다는 가정 하에, 예를 들어 5년 쯤 뒤에 통일이 된다거나 하면 제가 10년 후에 북한에서 살 수도 있을 텐데 지금 어떤 공부를 준비 해야 할까요?(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뭘 준비해 놓아야 나중에 북한에서도 먹고 살 수 있을지 알아야 목표가 생길 것 같아요.”

“좋은 질문이에요. 결혼했어요?”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수없이 많아요. 내가 지금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통일이 되면 사과 농사가 잘될까요, 감 농사가 잘될까요? 통일이 되면 사과 농사가 대박이 날까요, 감 농사가 대박이 날까요?”

...(모두 웅성임과 웃음)

감은 원래 북한계선이 차령산맥이에요. 지금은 기후 온난화 때문에 서울까지 감이 열리기는 하지만 원래가 차령산맥이 북한계선이어서 남부 지역에서만 나는 과일이에요. 그러면 북한에는 감이 없을 거예요. 그러면 통일 후에 감은 소비 시장이 늘겠죠.

사과는 어떨까요? ‘황주 사과’ 들어 봤죠? 북한에서는 사과 농사가 잘 돼요. 게다가 노동력도 값싸니까 통일이 된다면 사과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많이 내려오겠죠. 그러면 사과 농사는 통일 후 약간 손해를 볼 수도 있어요.

그러면 사과 농사를 짓는 사람은 이제 중국 수출 같은 길을 좀 생각해 봐야 하겠죠. 안 그러면 북한에 가서 과수원을 운영해야 해요. 이런 것처럼 많은 부분에서 남북 간에 상호 보완적인 일이 생겨요.

어떤 게 불리하고 유리한지를 10년, 20년씩 길게 내다보고 연구를 해야 해요. 대신에 우리 농업이 어떻게 가야 할까요? 지금의 쌀농사처럼 노동력으로 하는 농사는 조금 줄여야 하겠죠. 그보다는 청정식품을 생산하는 농사, 상품성 있는 농사를 늘려야 해요. 그러니 농가 단위로 하지 말고 한 동네나 한 면이 하나의 농업 회사를 마련해가서 그 상표로 수출하는 방향을 모색한다면 굉장한 경쟁력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이런 것처럼 통일 후 북한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봐야 해요. 질문자가 관심이 있다면 조사를 해보는 거예요. ‘남북 간에 교역이 일어난다면 어떤 문제가 우리에게 유리하고 어떤 품목이 필요해질까? 예를 들어 북쪽에 가서 뭘 가르친다고 하면 뭐가 잘 될까? 미용 기술을 가르치면 잘 될까, 화장품을 팔면 잘 될까?’ 이런 걸 연구해 보세요.

지금 이렇게 남북 관계가 안 좋은데도 북한에서 쿠쿠 밥통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요. 화장품도 잘 나가고요. 남한 드라마도 잡혀가서 두들겨 맞고도 또 본대요. (모두 웃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사회가 변해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질문자가 연구를 좀 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 웃음, 모두 박수)

통일 질문이 적지 않았음에도 강연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했습니다. 내용으로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역할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의 이야기를 나눴지만, 밖에서 보면 개그콘서트가 열리는 곳처럼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웃음이 넘쳐났습니다. 통일강연 즉문즉설이 끝나고 청중과 스님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했습니다. 어린 시절 많이 불렀던 노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분단의 상처처럼 오랜 시간 불러보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불러보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연예인 사인회를 방불케 하는 책 사인회까지 잘 마친 후 오늘 강연을 준비하고 진행한 서울경기본부 의병들과 단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강연이면서 2015년부터 시작된 통일 즉문즉설 강연으로서 통산 40번째 강연을 성공리에 마친 것을 축하하는 자리를 간단히 가졌습니다.
우선 3년 동안 전국으로 다니시며 강연을 해주신 법륜스님께 감사의 꽃다발을 드렸습니다. 다음은 김홍신 대표님과 함께 축하 케이크 위에서 빛을 내는 40이란 숫자 초의 불을 껐습니다. 서울 서부지역 의병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강연이 이런 의미가 있는 강연인 줄 몰랐다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3년 동안 총 40회 강연, 참가자는 약 16,600명, 봉사자만 2,100여 명이 함께 이루어낸 일입니다. 2시간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통일 이야기에 집중하던 많은 분의 진지한 표정과 희망을 보는 맑은 눈동자가 생각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때 뿌린 씨앗이 언젠가는 싹을 틔워 통일코리아를 지탱할 아름드리 나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했다는 말씀과 함께 12월23일 행사에 많이 참여할 것을 당부하시며 강연장을 떠났습니다.

오늘 구로강연 글을 쓴 통일의병 이원경입니다. 스님과 함께 40번 강연을 진행 해 오면서 때로는 힘들기도 했지만 뿌듯한 경험이었습니다. 강연마다 통일 이야기를 듣는 청중들 사이로 통일코리아의 희망이 아지랑이처럼 퍼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감동과 보람의 시간이었습니다. 통일 이야기 강연에 참여한 한분 한분의 마음속에 평화와 통일의 씨앗이 뿌려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동안 도움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원경, 손명희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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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화

감사합니다.오늘부터 통일의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유관순 의사께서 국가를 위해 바칠 수 있는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원통하다라는 말씀을 남겼지만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은 작은 것부터 해보겠습니다. ㅣ

2017-12-30 07:56:09

윤은주

감사합니다 작은일 부터 실천해보겠습니다

2017-12-02 17:04:33

생각보다는 참여

만인의 바램, 평화를 합창하러 12월 23일 광화문으로 달려 가겠습니다.

2017-11-28 16: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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