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남편 수련을 바라지한 위대한 경험

기독교 신자인 오늘의 주인공 이지연 님! 어떤 인연으로 깨달음의 장과 바라지장에 가게 되었을까요? 낯설고 생경한 문화를 접할 때 느끼는 두려움이나 불편함에서 고개가 끄덕여지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여 익숙한 것에서 감사함을 느끼게 된 부분에서는 공감이 많이 되기도 합니다. 아내를 생각해서 어려운 조건에서도 깨달음의 장에 간 남편, 그런 남편을 생각하며 바라지가 되어 정성스럽게 공양 준비를 한 아내. 참으로 아름다운 신혼부부 모습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문경에 간 까닭은?

우리 가족은 모두 기독교 신자이고, 그중 모태신앙이면서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가장 열심히 다닌 사람이 나였다. 그러다 보니 법륜스님 유튜브 방송을 자주 찾아보는 엄마가 마땅치 않았는데 엄마는 ‘깨달음의 장’ 수련까지 참가하였다.

그 후 무슨 신비함이 있었는지 나를 제외한 형제들 모두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을 다녀왔고, 수련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방에 들어가서 내가 들을 수 없도록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시간 있을 때 빨리 가야 한다”고 하고, 언니는 “자신이 필요할 때 가야 한다”라며 의견이 분분했다. 약이 오른 나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정확하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깨장에 참가 신청을 하였다.

깨장에서는 방향을 몰라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상하다거나 나쁜 것은 아니고 잔잔한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깨장에서 배운 것들이 마음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게 가장 큰 공부가 되었던 ‘화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를 예비 남편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깨장에 다녀오는 것을 내걸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예비 남편은 깨장에 가지 못했고, 대신 함께 행복학교를 수료하고 행복 시민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며 2022년도에 결혼하였다.

남편은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고, 건설 현장의 특성상 휴가를 낸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기대하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깨장 신청을 하였다. 그런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나 역시 남편의 깨장 기간에 맞추어 몰래 바라지장 신청을 하였다.

이지연 님
▲ 이지연 님

낯선 규칙과 불편한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문경 정토수련원의 맑은 공기와 자연 경관이 좋아 바라지를 하는 것이 그저 잘 쉬고 오는 힐링 시간이라고 했지만, 불교 문화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로서는 낯선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 더해져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서 법당에 올라가 ‘이상한 노래’(수행문, 경전 등)를 외면서 목탁 소리에 맞추어 절을 했고, 공양간에 돌아와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또 다른 명심문을 읊으며 각자 주어진 역할을 시작했다.

고작 라면 끓이기나 계란프라이 말고는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내가 수련생들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하는 공양간에 있는 게 너무 어색했고, 서로 잘 지내는 대중들 속에서 이질감이 느껴져 남편보다 내가 먼저 포기하면 어쩌나 매일 걱정되고 무서웠다.

재래식 화장실에는 쥐가 다니고 있었고, 머리를 감을 때 샴푸나 린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제대로 샤워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마주하면서 마지막 날까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남편에게 올리는 공양

불편함과 불안함 속에서도 ‘잘 듣고 합니다’라는 명심문을 그대로 따랐다. 평소 요리를 잘 못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시켜도 분별심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그냥 시키는 대로 순응하는 내 모습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노란 스티커가 붙은 음식 뚜껑은 김치를 덮을 때만 사용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파란색 통에 버리는 등 한 번 알려준 내용들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공양간 규칙들을 잘 지켜나갔다.

바라지 소임을 시작하기 전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라는 명심문을 세 번씩 읊을 때마다 나는 지금 수련 중인 남편이 먹는 음식이 부랴부랴 만들어 먹고 치우는 한 끼가 아닌 부처님에게 올리는 귀한 공양임을 깨달으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하였다.

바라지장 단체 사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지연 님)
▲ 바라지장 단체 사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지연 님)

불편함이 감사함이 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바라지를 끝내고 돌아온 후 음식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새로워졌다. 또한 남편과 수련원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어머니에 대해 올라오는 마음이 내 문제임을 바라볼 수 있게 방향 전환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이전보다 서로에게 더 감사하며, 이제야 신혼부부의 티를 팍팍 내고 있다.

직장에 출근해서 주위를 다시 돌아보니, 커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고, 식기를 닦은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냄새도 나지 않는 쾌적한 화장실이 있으며, 내가 하는 업무는 바라지장 일과는 비교도 안 되게 수월한 데다 돈까지 받는다. 바라지장을 다녀와서 보니 회사 구조 관계에 대한 불편함이 환경에 대한 감사함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내의 권유로 깨장에 간 남편, 남편을 생각하며 바라지장 안에서 공양을 준비한 아내.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있었고 그 경험은 위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소중한 사람의 수련에서 바라지를 하게 되면 잊지 못할 추억과 더불어 더 깊은 성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2월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_이지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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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5

0/200

지혜안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24-10-28 08:15:35

명덕

기독교인데 열 린 마음으로 깨장을 가셨다니 와~아 멋지십니다 행복하세요

2024-10-14 07:53:58

읽는 동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부부가 천생연분이시네요. ^^

2024-09-24 08: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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