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화성지회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장마가 막 시작하여 비가 내리던 날, 화성지회의 최순화 님을 인터뷰를 하러 갔습니다. 멀리서 시간내어 올 만큼 대단하게 말할 것이 없다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소녀 같았습니다. ‘이해받으려 하지 않고 이해하며 살겠습니다, 여여하게 살겠습니다.’라는 수행문으로 정진하며 사는 최순화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2023. 6 화성지회 돕는이와 법사님정담회 (아래 오른쪽 최순화 님)
▲ 2023. 6 화성지회 돕는이와 법사님정담회 (아래 오른쪽 최순화 님)

어려움 없었던 어린 시절

저의 고향은 충북 음성 시골마을 입니다. 아버지는 인삼농사를 일찍 시작하셔서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그 시절 제 친구들은 초등학교만 나와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갔지만, 저는 아버지가 청주에 마련해준 집에서 외갓집 식구들과 같이 살며 중학교 때부터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시집 잘 가라고 저를 대학까지 보내주었습니다. 부족함 없는 어린시절이었습니다. 몇 십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너의 엄마는 치맛바람 일으켰던 분이야”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는 그 말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동네 대부분의 집들은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농사나 생업으로 바빠서 학교 행사에는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니는 초등학교 6년 내내 동생 손 잡고 소풍에 따라왔습니다. 그러니 제 엄마의 행동이 치맛바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2023. 7 딸과의 여행
▲ 2023. 7 딸과의 여행

여유 있는 생활이었던 만큼 저는 혜택을 더 많이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시부모님을 잘 챙기는 남편을 보며 저를 돌아봅니다.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한달에 두세번 찾아가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합니다. 제 생애 가장 감사한 분들입니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한량 남편

친구를 좋아하는 남편은 일주일에 3~4일 술을 마십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그의 성향을 알면서도 가끔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지’라는 원망의 소리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술마시는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사람은 친구를 만나 놀아야 하는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인정하고 나니 남편은 저에게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도움까지 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2023 서초동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봉축법요식 봉사 후  (오른쪽 최순화 님)
▲ 2023 서초동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봉축법요식 봉사 후 (오른쪽 최순화 님)

남편은 시골 출신이지만 대학교까지 나온 잘난 사람입니다. IMF 때 잘 다니던 직장을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그 후 몇 년 간 외국계 보험 회사를 다녔습니다. 보험이 잘 안되어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실패하여 몇 년간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자존심 쎈 사람이었지만 가족을 위해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아무것도 없어 정말 어려웠습니다. 학비는 대출받았고, 아이들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마련하였습니다. 항상 생계를 걱정하던 저에게 오빠가 편의점 자리를 소개해주어 일년 정도 편의점을 운영했습니다. 남편의 일이 잘 되기 시작하면서 편의점을 그만두었고, 그 후 남편일이 안정되어 지금은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업에 실패한 후 다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정을 잘 이겨낸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아침정진이 가르쳐 준 것들

정토회는 남편 친구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기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딸이 독일 유학준비를 하며 이국땅에서 의지가 될 곳을 같이 알아보다 독일에도 정토회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후 딸은 유학 대신 한국의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딸과 함께 정토회에 대해 알아보던 중 저는 2019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여 9-9차에 입재하였습니다.

2020.8. 20 안성수해복구 봉사 (왼쪽 최순화 님)
▲ 2020.8. 20 안성수해복구 봉사 (왼쪽 최순화 님)

절에 다니던 어린 시절, 백일기도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천일결사 맛보기 정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놓치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바다 일출 여행으로 새벽 1시에 집을 나서야 했던 날은 밤 12시 넘자마자 정진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2년간 출가가열반재일 때 혼자 일주일간 천배정진을 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500배씩 절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절을 하는데, ‘숙이는게 뭐가 힘들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하며 제가 미안하다는 말을 안하고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남편 탓만 하고 시비를 가리려 했던 저의 모습을 천배정진을 하며 보았습니다. 남편에게 숙여지지 않던 고개가 그때서야 마음 깊이 숙여졌습니다. 숙이는 연습을 몸으로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마음으로도 상대에게 ‘정말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잘 합니다.

소임을 통해 다름을 확연히 깨닫다

2차 만일결사 1-2차 봄 불교대학 학기가 끝나갈 무렵 양손에 모둠장 소임과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놓고 어떤 소임을 할까 하고 저울질했습니다. 하지만 하반기도 두 개의 소임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023년 4월 나비장터 방문 (오른쪽 최순화 님)
▲ 2023년 4월 나비장터 방문 (오른쪽 최순화 님)

‘그래 한 학기 또 겸직해서 해보자’라고 결정하니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학기 초에는 반편성부터 이것 저것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 잠잘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주어진 일들을 하느라 모둠원들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때 한 도반과의 전화통화 중 오해가 발생했습니다. 피곤해서 나온 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말 실수는 한 번이었지만 여러번의 사과와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성격이 급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성격은 급한데 몸은 따라주지 않으니 말로 일을 그르쳤습니다. 저의 실수를 개인적인 감정으로 받지 않도록 ‘우리는 사적인 관계가 아닌 공적인 관계이니 저의 말에 의문이 들면 다시 물어봐 달라’고 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하며 부딪칠 때는 ‘서로 다름’을 배웁니다. 저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 저의 기준과 상대의 기준이 다름을 배웠습니다.

2020. 10 안산다문화센터 취약계층 식품포장(아래 오른쪽 최순화 님)
▲ 2020. 10 안산다문화센터 취약계층 식품포장(아래 오른쪽 최순화 님)

불교대학 담당을 하니 매주 법사님과의 학사회의, 모둠장회의 그리고 스텝들과의 월례회의 등으로 빡빡한 일정입니다. 힘들지만 그 속에서 제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소임을 하며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제가 아주 작은 조각이 되어 움직이면 다른 스텝들이 큰 조각이 되어 맡은 소임을 잘 해주었습니다. 일정이 바쁜 것도 마음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바쁘다 보니 제가 옳다는 한 생각에 머물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불교대학 학사회의 ppt 그림이야기 중에서
▲ 불교대학 학사회의 ppt 그림이야기 중에서

상대를 인정하는 경험을 하니 일상에서 저의 삶의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최근 두 딸과 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 성향이 서로 다릅니다. 한 명은 휴향형이고, 한 명은 관광형으로 숙소 예약부터 의견이 달랐습니다. 두 명 모두 바쁘게 생활하느라 충분한 의견 조절이 없었기에 결국 여행 중 다투었습니다. 제가 정토행자가 아니었으면 저도 끼어들어 같이 싸우고 딸들에게 잔소리도 하며 서로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딸들의 다툼을 보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봉사를 통해 깨달은 감사함

경전대학을 다니면서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안산 다문화센터로 봉사를 다녔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2년 넘게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어떤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벌은 돈을 보시하며 봉사하는 것을 알고 감동 받았습니다. 제가 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 9. 15 안산다문화센터 고려인 생일 상차림 (둘째줄 가운데 최순화 님)
▲ 2020. 9. 15 안산다문화센터 고려인 생일 상차림 (둘째줄 가운데 최순화 님)

센터에 계신 월광 법사님에게도 감동 받았습니다. 매일 하천 쓰레기를 주워 하나하나 씻어서 재활용품으로 분리수거하는 것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문화센터에서 가장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감사함 입니다. 지금은 자주 못가지만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월광법사님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저는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은 없지만 정토회에서 주어지는 소임에 잘 쓰이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남편을 이해 못했던 부분도 ‘아~ 다르구나’ 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물론 매번 이해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해 받으려 하지 않고 이해하며 사는 수행자의 자세로 살려고 합니다. 저는 급한 성격이라 때때로 실수를 합니다. 그래서 한가롭고 여유있게 대처하는 여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2020. 9. 5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직접준비한 공양으로 사시예불 드린 후 태국근로자 아둔 님과 함께
▲ 2020. 9. 5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직접준비한 공양으로 사시예불 드린 후 태국근로자 아둔 님과 함께


저는 정토행자의 하루를 읽으며 출근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볍게 내어놓는 것을 읽으며 저도 인생을 가볍게 살아야지 합니다. 출근길은 제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입니다. 글을 읽으며 감동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바람이 최순화 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집에 오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한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행과 봉사로 자신의 각진 모서리들을 녹이며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으로 거듭나고 있는 도반을 만났습니다. 지금 마음 따뜻합니다.

글_이지우 희망리포터 (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전체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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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감동 받고 갑니다. 도반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8-20 12:16:42

박미점

감사합니다. 꾸준히 정진하시는 모습에 감동 받습니다.

2023-08-19 19:42:27

보현

고맙습니다

2023-08-18 06: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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