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
하기로 한 건 한다! 이게 바로 청년이다!!

하기로 한 건 꼭 하는, ‘청년정토회’ 시조새 김주영 님이 오늘 주인공입니다. 일이 되는 것이 중요한 주인공이, 마음을 먼저 품는 ‘정토회 찐청년’ 노보살님들을 떠올리며 왈칵 눈시울을 붉힐 때, 제 마음에도 커다란 파동이 일었습니다. 청년정토회, 평화재단, 대중부•대의원 활동을 거쳐 사무처 회의지원 소임까지 14년간 활동을 청년의 마음으로 배워 보았습니다.

동북아역사기행 스태프
▲ 동북아역사기행 스태프

점 잘 보는 사이비 스님의 법문에 참회의 눈물을

법당에 신발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스님이 온다며 가장 친한 친구가 절에 가자 했습니다. ‘얼마나 점을 잘 보기에 그토록 유명할까?’ 심심하던 차에 ‘언제 결혼할지 물어봐야지’ 생각하며 따라갔습니다. ‘왜 개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묻지? 여기는 사이비인가보다’ 하며 2~3명의 질문만 듣고 곧장 나왔습니다.

몇 달 후 친구가 불교대학에 한번 가보자며 다시 권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따라갔습니다. 첫날, 대구청년정토회 책임자인 향화법사님을 믿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마음 나누기 때, 한 도반이 부모님과 갈등을 말했는데 제가 해결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도반이 울면서 “마음 나누기는 조언하면 안 되는데 왜 하느냐? 기분 나쁘다. 분별 난다”고 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별이 뭐지?’ 궁금증만 가진 채 집으로 왔습니다. 도반들이 전화해 “그 분별은 그 도반의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다독여 주었는데,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법문에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늘 상대나 상황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이었구나, 그 생각 때문에 주제넘게 참견했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누기 때 분별 난다고 했던 도반이 이해가 갔고, 한 달 내내 참회라는 말만 들으면 눈물이 났습니다. 이즈음 입재 후 매일 108배 참회 기도를 했습니다.

행복학교 홍보 중
▲ 행복학교 홍보 중

부처님!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나요?

팀장을 하고 싶은 마음을 알았는지 유수스님이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제게 ‘부산・울산청년정토회’를 개척해보라 했습니다. 퇴근 후 기차를 타고 부산・울산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법당에서 불교대학 수업을 마친 후 막차를 타고 대구로 올라오거나, 법당에서 혼자 자고 새벽 기차로 출근하는 일상을 3~4년간 했습니다.

두북수련원에서 밭일하며
▲ 두북수련원에서 밭일하며

하루는 대구행 막차를 눈앞에서 놓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법당으로 되돌아가 “부처님, 저 다시 왔어요. 왜 이렇게 사람들은 안 모이고, 왜 이렇게 아픈 친구들이 많을까요? 저 오늘은 정말 법당 오기 싫었거든요!” 하며 울면서 나누기했습니다. 잠이 부족해 기도가 너무 하기 싫은 날엔 “부처님! 제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하며 따지고, 기도를 다 마치면 “부처님, 조금 더 잘게요” 하고 잤습니다.

부처님과 나누기하며 공부가 되는 걸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부처님은 노숙도 하셨는데 난 법당이라도 있지’ 하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뜻대로 만들어 쓸 수 있었습니다. 거리가 멀다지만 다녀보면 다닐 만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니 한없이 자유로웠습니다. ‘청년정토회’ 활동은 제 인생의 선물 같은 시기입니다. 두 번 다시 못할 힘겨움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백이면 백, 꼭 다시 그렇게 할 소중한 경험입니다.

내 짐을 대신 짊어진 자가 제자리에 머물 때까지

어릴 때부터 성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남들이 보기에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명품도 좋아했고 돈에 집착했습니다. 그러다 정토회 공동체 사람들과 실무자들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들이 돈 안 벌고 활동하는 시간에 내가 돈을 버는 것이구나, 그럼 내가 버는 돈은 내 돈이 아니구나’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맘껏 활동하는 건 누군가 헌신하여 기반을 닦아놓은 덕분이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때 음식을 잘못 먹어 릭샤(전통적인 인력거와 주기형 삼륜차를 발전시킨 자동식 인력거로, 대부분 바퀴가 3개이며 아열대 및 열대지역에서 주로 사용. 인도 기업 Bajaj가 최대 생산. 출처: 나무위키)를 타고 병원에 가다, 인도 여성이 맨발로 사람을 안고 가는 걸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사문유관1이 생각나며 보시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났습니다. 우물 파기에 1천만 원을 보시했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큰돈을 한 번 탁 내놓고 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쓸 만하면 쓰고 없으면 안 쓰니 돈에 대한 집착도 줄고 가진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마운 만큼 베푸는 삶을 저절로 실천합니다. ‘내 것’이라는 집착이 점차 없어지니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갑니다. 움켜쥐던 돈은 더 필요한 사람에게로, 성공만을 위해 썼던 재능도 꼭 쓰일 자리로 갑니다.

두북수련원 나비장터(왼쪽에서 두 번째 김주영 님)
▲ 두북수련원 나비장터(왼쪽에서 두 번째 김주영 님)

나는야 엄격한 관리자! 노보살님을 만날 때는 말랑말랑

저는 논리, 효율, 조직을 중시했습니다. 논리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분별이 났습니다. 정일사2 때 한 도반이 “나는 주영이가 한 번 더 조직, 조직하면 이 조직 나가버릴 거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일이 되기 위해’ 모인 사람이라는 입장이고, 그 도반은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법사님을 붙들고 “법사님 도반들이 조직적으로 일하지 않아요. 이 일을 왜 담당자가 하지 않고 다 같이 하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하고, 그들은 “주영이 봐라, 봐라. 또 법사님한테 가서 저런다”고 했습니다.

일을 중심에 둘 때 일이 잘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을 노보살님들을 통해 알았습니다. ‘저 사람 저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고 말에 별로 안 걸리는 성향이라 그런지 제 말이 셉니다. 지적하듯 말하니 도반은 방어하며 분위기가 딱딱해질 때가 있습니다. 노보살님들은 앉아서 별말 하지 않으면서 도반의 마음을 품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도반들이 “이건 이렇게 한번 해 보겠습니다”하고 마음을 더 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제 반에 팬티를 안 입고 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팬티를 입히지?’ 하는 생각에 아이가 말만 하면 틀렸다고 꺾었습니다. 꺾어서 제 말을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 아이도 힘들고 저도 아이가 예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기도하면서 그 아이를 탁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 아이가 계속 팬티를 입고 왔습니다. 선생님이 부드러워지니 아이도 약속을 지켰습니다.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마음을 먼저 어루만지는 말랑말랑한 방법이 통한다는 것을 노보살님들을 보고 배웠습니다.

붓다하우스 도반들과 여행 중(뒤줄 왼쪽 김주영 님)
▲ 붓다하우스 도반들과 여행 중(뒤줄 왼쪽 김주영 님)

보자 보자 하니까 그냥 봐 지네

세상을 자로 재듯 등급을 매겼습니다. 결혼할 남자 조건을 따졌습니다. 학부모는 직업으로 판단했습니다. 한번 한 약속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지켜보았습니다. 옳은지 그른지 명백히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북아역사기행 중 비룡폭포 앞
▲ 동북아역사기행 중 비룡폭포 앞

9차 천일결사3 끝 무렵 ‘붓다하우스’ 4에 입주해 7명~8명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약속하고 합의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놓친 부분을 다른 도반이 알려주면 고칠 기회를 주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도반들은 저와 달랐습니다. 한 도반이 설거지하지 않고 출근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퇴근을 빨리하니 안 씻은 그릇을 매번 제일 먼저 봅니다. 그럼, 스트레스를 확 받습니다. 몇 번 얘기했는데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 도반이 설거지하지 않고 9박 10일 명상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그 도반이 씻지 않은 그릇을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명상 마치고 왔을 때 설거지하라고 했습니다. 도반이 기분 나빠했습니다. 당시에는 도반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니 마이(많이) 고생했다. 내가 그때 성질이 더러버(더러워) 갖고 힘들었재?” 하고 위로했습니다. 제때 치우지 않는 도반과 안 치운 걸 못 보는 제 습이 똑같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지금은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봐 지는 게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연합니다. 사는 게 굉장히 편합니다. 편견 없이 보는 세상은 참으로 풍요롭습니다.

하기로 한 건 꼭 하는 게 삶을 풍요롭게 이끈 힘

천일결사 첫 입재에는 백 일 동안 매일 정진했습니다. 두 번째는 활동이 너무 많고 피곤해 60일을 채 못 채웠습니다. 그 이후 하루도 기도를 쉰 적이 없었고, 2016년부터는 새벽 5시, 시간을 지켜 기도합니다. 아버지는 “너 옛날에 맨날 새 꽁치처럼 입을 새초롬하게 내놓고 있었다” 하고, 동생도 “누나는 입에 칼을 물고 있다”고 할 정도였지만 정토회 활동 2년 만에 “확 변했다,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딸이 최고다” 합니다.

예전에는 시련을 피했습니다. 그랬더니 삶이 콩알만 했습니다. 기도의 힘으로 시련을 넘어서니 할 수 있는 게 많고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사는 데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히 제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생겼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 덕입니다.

동북아역사기행 스태프
▲ 동북아역사기행 스태프


김주영 님은 공양 짓고 천 배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 매우 많다 했습니다. 환지본처(제자들과 걸식 후 수행처로 돌아오는,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한 부처님의 모습에 이미 모든 법이 다 설해져 있음을 수보리가 깨달았듯이 말입니다. 온라인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한 리포터로서 앞으로 직접 보고 배울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글_곽정란 희망리포터(대경지부 구미지회)
편집_도경화(대경지부 동대구지회)


  1. 사문유관 부처님이 동서남북 4문을 방문해 생로병사를 체험한 일화.(출처 : 불교신문) 

  2. 정일사 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3.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4. 붓다하우스 정토회 수행공동체로 청년활동가 6명이 한 집에 거주. 현재는 모두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없어짐.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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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찬

와~ 청년정토회에 귀한 모범이 계셨었군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배우고 싶은 모습이 한가득이네요!

2023-06-28 06:53:33

보현

고맙습니다

2023-06-15 09:10:26

광명심

저도 효율적인 사람 아니면서 효율적인 척 정토회에서 분별냈는데... 사람을 먼저 보고 함께 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겟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5-31 13: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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