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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삼촌이 신학대 다니고 저도 주일학교 교사로 성당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결혼 전까지 별다른 괴로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한다던 남편이 출근하면 그날 중에는 들어오지 않고 꼭 자정을 넘겨야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성격이 온순하고 말이 적은 사람이라, 저 혼자 안달을 냈습니다. “나랑 같이 있는 게 싫어? 이젠 날 사랑하지 않아?” 물어보며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남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결혼 생활과 남편 때문에 저도 모르게 큰아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 음악, 미술은 기본이고 취미가 아닌 선수반으로 스포츠도 많이 시켰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목동에서 곤지암으로 스키 레이싱을 가고, 다녀와서 영어학원, 수학학원에 악기도 두 종류 시키면서 밤 9시 반까지 애를 돌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이 “누나, 이건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야. 아이도 누나도 너무 힘들어 보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얘 지금 공부도 잘하고, 스포츠도 여기저기서 선수 하라고 난리야. 나 지금 너무 좋아.” 이건 행복한 게 아니라는 동생의 말 한마디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갔을 때 “엄마, 나 이제 회장 선거 안 나갈래. 나도 내 인생 살고 싶어.”라고 선언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학기 중이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도에 가서 한 달을 지냈습니다. 집을 떠나지 않으면 제가 아이들의 학원을 끊지 못할 것 같아서 내린 극약 처방이었습니다.
제주도에 다녀와서 바로 남동생이 권한 불교대학에 들어갔고,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글귀를 만났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불을 밝혀야 한다는 그 말이 제 가슴에 와 꽂혔습니다. 예수님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아이에게 공부해라, 밥 먹어라,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너무나도 감사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전까지는 도반이 하는 ‘불법 만나 감사합니다’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게 바로 그거구나!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누어야겠다 싶어서 어떤 소임이든 거절하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큰아이가 중학교 3학년 됐을 때 담임 선생님이 전화해서 “어머니, 준우가 참 잘 컸어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학교에서 존경하는 사람 이름 적으랬더니 ‘손승희’라고 적었답니다. 선생님이 교무실에 불러서 손승희가 누구냐 물으니 ‘우리 엄마인데 환경 활동 되게 많이 하고 강의도 하는 환경 운동가여서 존경한다’고 말했답니다. 선생님의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많이 내려놨다고 하면서도, 예전에 만났던 학부모들에게 요즘 어떤 학원이 좋다 이런 얘기 들으면 마음이 흔들리던 때였습니다. 공부 안 하는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는 나를 존경하고 있다니 미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아들을 믿어주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가 이제 고2가 되었습니다. 클래식 작곡을 공부하고 싶다며 매일 음악 듣고 피아노 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 갈 때 자주 데리고 다녔더니 미래에 NGO 활동가가 되어도 좋겠다고 말합니다. 둘째도 학원 안 다니고 친구들 몰고 다니면서 제 스타일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여성 운동을 했기에 집에서는 종이컵, 물티슈 같은 일회용품을 못 쓰게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도 면생리대를 썼고, 제 아이들도 면기저귀로 키웠습니다. 외출할 때면 수저 세트까지 챙겨 다녀서 일회용 젓가락으로 밥 먹여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특별히 환경 활동을 한다고 의식한 건 아닌데 저에게는 이런 씨앗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씨앗을 키운 건 바로, 정토회였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닐 때 진행자의 권유로 환경 담당을 맡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서울제주지부 각 법당 환경 담당이 서초법당에 모여서 회의하는데, 모두들 환경 고수이고 저 혼자만 학생이었습니다. 법당마다 지렁이 잘 키우고 있는지, 쓰레기 얼마나 줄였는지, 환경 교육은 잘하고 있는지 그분들과 회의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한번은 한여름에 서울적정기술한마당 쓰레기제로 부문 에코붓다 부스 참여를 하는데, 너무 더운 날이라 한 도반이 아이스크림을 한 봉지 사서 나눠주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하나 집어 들었는데, 옆에 계신 도반이 “저는 사양하겠어요. 그건 정토회 취지와 맞지 않아요.”라며 거절했습니다. 그 단호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저분은 정토회 환경 관점을 제대로 잡고 계시는구나’ 싶어서 그분을 멘토로 삼았습니다. 그때부터는 그 도반이 제안하면 무조건 ‘네.’ 하고 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에코숍을 꾸며야 한다는 말에 되살림공간에 방치돼 있던 물건들을 가져와 일일이 목공 작업을 해서 제 자리를 찾아 주었습니다. 환경 관련 소임을 하던 도반들은 저를 기억하고 함께할 수 있는 자리에 불러주었습니다. 마침 그때 제가 생태전환 및 환경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서 환경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지금 사무처 회원활동국 실천활동팀 환경 파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환경 실천 콘텐츠 개발하는 것이 주요 소임입니다. 매달 정토회 회원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참여할 수 있는 환경실천 콘텐츠를 기획하고 홍보하는 일을하고 있습니다. 또 보리수 2기 총무팀에도 소속되어 보리수 모집 홍보 영상도 제작해 보았고 에코붓다 소식지 발행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소임을 맡으면 그곳에 닮고 싶은 멘토가 한 분씩 꼭 있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힘차게 올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배워 집에서 적극 실천하고 있는 건 지렁이 키우기와 뒷물수건 쓰기입니다. 처음에는 그 징그러운 걸 왜 집에 가져오냐며 싫어하던 남편이 2년 전부터는 지렁이아빠가 되어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직접 관리합니다. 저희는 과일을 껍질째 먹고 흙퇴비화도 하고 있어서 지렁이 먹일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현관문 앞에 통을 내놓고, 우리 라인 주민들에게 과일 껍질을 담아 달라고 해서 지렁이에게 줬습니다. 남편이 지극정성으로 키운 덕에 우리 집 지렁이는 건강하고 윤기가 반짝반짝한 것이 아주 예쁘답니다.
정토회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해서 저 역시 가족에게 강요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천하는 걸 보고 어느새 아이들도 친정엄마도 뒷물수건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집에 있던 소창과 아이들 기저귀 천으로 뒷물 수건을 잔뜩 만들어서 화장실에 놓아두고 씁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 휴지가 없습니다. 제가 아예 사지를 않습니다. 소창으로 작고 얇게 만든 대안휴지는 아이들 학교 갈 때 티슈 대신 쓰라고 가방에 넣어줍니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잘 쓰고 친구에게도 나눠주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처음 환경상을 받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습니다. 이런 상은 10년 넘게 활동하신 법사님이나 선배 도반들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큰 상을 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온라인 환경 교육 시스템을 구축한 환경팀에 주는 상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콘텐츠를 개발하라는 응원의 의미다 생각하니 가슴도 벅차고 많이 설렜습니다.
사실 저는 미술을 전공하고 결혼 전에 아르바이트로 디자인을 좀 해봤을 뿐 사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정토회 활동하면서 컴퓨터로 하는 것들을 배웠는데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배우는 게 빠르고 손이 빨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당연히 저 같은 줄 알고 재촉하거나 간섭했습니다. 어느 날 법사님께서, 상대는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 생각할 수 있으니 항상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라며, ‘모두가 소중한 존재입니다’라는 명심문을 주었습니다.
사실 정토회 활동하면서 도반과 갈등이 생길 때 가장 힘들었는데 이 명심문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와달라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가 도와줬는데 오히려 타박의 말을 들었을 때라거나, 자기 이익 취하는 것에 너무 재빠른 경우를 볼 때 저 또한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대번에 불편함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아, 저분은 저런 업식이 있구나, 나는 이걸 서운해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런 부딪힘 속에서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뭐든 빨리 배우는 대신 싫증도 빨리 내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꾸준히, 즐겁게 활동하는 건 정토회가 처음입니다. 제가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리고 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도반과 함께하는 행복이 꾸준히 활동하게 하는 힘입니다. 하지만 불교대학과 행복학교에 비해 환경 파트와 에코붓다 활동에 인원이 부족한 점은 아쉽습니다. 기후 위기나 환경을 이야기하는 유명한 단체들에 비해 우리 정토 회원들이 일상생활에서 환경 실천을 정말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과 실천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고, 정토회를 넘어 일반 시민들에게 많이 홍보하고 싶은데 그 부분이 아직은 미약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큰 꿈이 생겼습니다. 지금 기후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가 붓다 담마와 환경적인 요소를 결합한 기후 명상인데, 전 세계인이 아침에 눈 뜨면 이 기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저는 오늘도 환경을 방편 삼아 전법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 만나 관점을 바꾸니 내가 행복해지고 가족이 행복해진 손승희 님. 이제 정토회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 그 행복을 전하고 싶다는 손승희 님은 단단한 한 그루 나무 같았습니다. 그 나무가 맺은 수많은 열매가 씨앗이 되어 나에게도 이르렀다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글_ 김옥자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양천지회)
편집_홍윤미(인천경기서부지부 부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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