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대문지회
부딪치는 사람과 만났을 때가 곧 나를 볼 수 있는 기회

여러분은 살면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을 무엇으로 꼽으시겠습니까? 가족이나 동료, 때로는 친구와 말이 통하지 않아서 괴롭고 답답하진 않으신가요? 지금 관계가 꼬여 불편한 사람과 시원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날아갈 듯 가볍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협업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려운 게 아니라, 즐겁고 편안하며 재미있기까지 하다는 안경자 님. 서대문지회장 소임을 마치고 이제 행복운동특별본부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하고 설렌다는 안경자 님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인도성지순례 중 안경자 님
▲ 인도성지순례 중 안경자 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이치를 알고 싶은 사람

우스운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어릴 적 꿈은 새마을 지도자였습니다. 20대에 태어난 목적은 무엇이며, 재능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인 20대 후반에 강북구 삼양동에서 동료 6명과 함께 13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했습니다.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이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으며 보람차고 삶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비영리 단체 활동이라 한 달 수입이 50만 원 정도였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제때 진학하기 어려울 만큼 집안 형편이 여유가 없었지만, 가난하거나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는 느끼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는 돈을 모으지 않는다고 타박했지만, 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존재 이유를 모를 뿐 아니라 세상살이에서도 모르는 것이 많으니 그것들의 실체와 이치를 간절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처님 법에 이끌렸습니다. 법륜스님의 명성을 알고 있었고, 언젠가 정토회에서 마음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98년에는 <깨달음의 장1>에 참가했습니다. 제 생각이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음을 알았고, 관점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평생 부처님의 법을 따라 살고 싶었습니다.

비영리 단체 활동은 일이 많아 본격적으로 정토회에서 봉사할 여건이 안 됐습니다. 서른여덟 살에 결혼하고, 마흔에 출산하여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육아에만 전념했습니다. 아이가 네 살 때부터 절에 데리고 다녔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절에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있던 정토회로 향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지 15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2019년 은평법당 이전불사 저녁 청소팀과 함께(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안경자 님)
▲ 2019년 은평법당 이전불사 저녁 청소팀과 함께(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안경자 님)

도반들과 동행하며 꿈을 이루다

2013년 서대문 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을, 2014년 경전대학을 졸업한 뒤 여러 봉사를 했습니다. 2016년 은평구청 강당에서 즉문즉설 행사를 총괄했는데, 각자 맡은 소임을 다하여 전체가 완성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모자이크 붓다로 쓰이는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2019년에는 은평법당 이전 불사를 총괄했는데, 힘들여서 45평 넓은 법당을 개원하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생을 받아 놓은 상태였지만 새 법당에서 진행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법당 건물 사용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법당을 이전하여 개원했다 철거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두 법당을 오가며 물품을 나르고 청소하고, 철거로 생긴 많은 쓰레기를 치우고,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은 다시 나누는 행사를 했습니다. 옛 도반들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하니, 도반은 저금통까지 털어 보시했습니다. 도반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라도 더 하려고 애쓰면서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이 일이 곧 내 일이라 생각하며 서로 격려했습니다. 내가 주인이라는 입장이 되자 가볍고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체험했습니다.

그 후 2020년 서대문정토회 총무, 2021년에는 서대문지회 지회장, 2022년 12월 1차 만일결사 회향 기간에는 서울제주지부 지부장 대행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며,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되니 도반들과 협업하는 것이 무척 즐겁고 설렜습니다. 돌아보니 새마을 지도자가 되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던 아이 적 꿈이 저를 이 길로 이끈 것 같습니다.

2022년 연탄지원 봉사(제일 왼쪽 안경자 님)
▲ 2022년 연탄지원 봉사(제일 왼쪽 안경자 님)

욱하는 성질

조직에서 책임진 일을 잘 해내려면 활동 목표와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도반들과 소통을 잘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단호한 면이 있어 할 일을 한번 명확하게 설명하고 나면 그대로 진행합니다. 꼼꼼하지 않고 한 번 지나간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감정을 섬세하게 공감하는 게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저와 달리, 속마음을 참고 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 말하는 사람들과 자주 부딪쳤습니다.

기분이 나쁜 데도 가만히 참았다가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기억조차 못 하는 지난 일을 “당신의 말과 태도에 불편했다, 서운했다”고 표현하는 분들에게 “그랬어요?”, “그랬겠어요.” 하는 정도로 반응하니 상대방은 너무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했습니다. 그런 도반들과 서로 옳다고 주장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러다 점차 싸우는 것에 지치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회피했습니다. 상대방의 심정을 공감하고 인정하며,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은 다시 설명하면서 불편함과 오해를 풀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 없이 어떤 일이 마무리되면 바로 또 다른 일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피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쪽에서 피하면 다른 쪽에서 또 같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내 인생 전체에 걸쳐서 그렇게 반복되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왼쪽 안경자 님)
▲ 인도성지순례 중(왼쪽 안경자 님)

고집하는 나를 보다

정토회에 들어올 즈음, 단호한 태도와 갈등 상황을 회피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할 때도 그런 면을 돌아보곤 했는데, 정토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런 습관을 고치기로 작심했습니다. 소통이 막힐 때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만나는 것을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웃으며 부드럽게 말하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외우기도 하고, 안부를 묻는 문자를 먼저 보내는 등 노력했습니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 주장했으니 대화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투면서도 끈질기게 대화하던 중에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서로 너무나 다르구나!’. 그리고 상대방한테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상대방의 심정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본인의 주장을 반복하며 고집했습니다. 그동안 인간관계에서 제 모습이 확 보였습니다.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고집하는 자신을 알게 되자 상대방의 말을 들을 여유가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싸우던 그들과 평화롭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돕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소임을 하며 도반들과 관계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경험을 하니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편안히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지 않고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애착하거나 많이 챙기지도 않지만, 은둔형이었던 제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편안해하고 재미있어하다니 기뻤습니다.

2018 천일결사 예비입재자 환영의 날(뒷줄 가운데 안경자 님)
▲ 2018 천일결사 예비입재자 환영의 날(뒷줄 가운데 안경자 님)

부딪칠 때가 곧 공부할 때

저는 일을 할 때 계획한 대로 밀고 나가야 직성이 풀리고,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욱하는 마음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렇게 욱하는 것이 그냥 저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2차 만일결사를 준비하며 서울제주지부 지부장 대행을 하는데 조직 구성을 확 바꿔야 했습니다. 전법 활동가들로 조직을 새로 구성하기로 하고는, 일반회원들을 섞어서 다시 해야 한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밤새워 모둠별로 인원을 배정하고 모둠 이름까지 정했습니다. 그 구성이 좋은 이유를 백 가지라도 나열할 만큼 잘 만들었다고 자신했는데, 새로 해야 한다니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회의하면서 이런 계획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냐며 막 따졌습니다. 계획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도 없었고, 좋은 것을 바꾸어야 한다니 혼란스러웠습니다. 공청회에 참여하고 법문을 들으면서, 차츰 뭔가 놓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 수준에서 볼 수 있는 만큼만 조직을 보겠구나, 전체를 볼 때는 변경할 필요가 있었겠구나.’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대화를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욱하는 감정이 일어나거나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왜 고집하는지 이유를 살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상대방 탓을 하지도 않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뻤습니다. 수행은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소임은 그 도구입니다. 소임을 하면서 업식이 부딪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을 제대로 볼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소임은 클수록 유익합니다.


안경자 님은 연신 특별히 들려줄 내용도 없고, 그저 교과서 같은 이야기뿐이라고 했습니다. 모범적인 내용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교과서인데, 부처님 법을 따라 물러서지 않고 꾸준히 수행하는 안경자 님, “돌아보면, 지난 일 모두가 저 자신을 알고,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며, 성장하는 과정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냥 살고, 하루하루 살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늘 어제보다 오늘이 부자이고,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하고, 오늘보다 내일은 더 부자이고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글_이경희(서울제주지부 서대문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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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연

아는분을 읽게되니 친근한 마음이 컸는데 차츰차츰 대충 들은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저의 밑마음 비슷한 부분에서 빨리 읽어지지가 않습니다. 피하고 싶은 마음을 알고나서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정면돌파를 해 봐야겠다 는 의기가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2023-05-03 08:40:25

김미래

반가운 얼굴이 나와서 기쁜마음입니다. 보살님과 함께 옆에서 수행정진하고 보조소임할때 정말 의지도 되고 감사했습니다~ 은평법당 이전때 보살님의 모습이 아직도 선해요.~ 모자이크붓다의 감동과감격에 저도 감동이였답니다. 눈부신성장 기원합니다~

2023-04-26 21:41:19

이미숙

반가운분의 글이 실렸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찾아서 잘 읽었습니다^^
은평법당에서 보살님과 인연이 되어 뵐수 있었던 5년, 참 감사했습니다
소임을 수행의 도구로 자신을 알아가는 의미있는삶을 사시는 안경자님, 저도 배워나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4-21 07: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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