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강원경기동부지부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겠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정식 전환된 후 유일한 저녁 지부장 소임을 맡아 힘차게 봉사해왔던 경기강원동부지부의 이일중 님. 소임하면서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 만큼이나, 주변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는 말에서 커다란 나무의 든든함이 느껴졌습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풀어놓는 소임과 수행에 대한 담담하고 다정한 이야기 시작합니다.

대학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 전 벤처기업에 입사해 두 해 정도 근무했습니다. 일이 재밌고 좋았습니다. 물론 벤처기업이다 보니 월급이 제대로 안 나올 때도 있었지만, 결혼 전이었고 열정이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하다 보니 경쟁이 심했습니다. 음주문화와 접대문화도 저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전부터 농사에 관심이 많았고 유기농법이나 생태 관련 활동 경험도 있었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 준비를 했습니다.

2015 정초순회법회 경기광주법당(맨 뒤 이일중 님)
▲ 2015 정초순회법회 경기광주법당(맨 뒤 이일중 님)

귀농 과정에서 만난 정토회

귀농운동본부의 활동가로 들어갔습니다. 종로에 있는 본부 사무실 옆에 현재 에코붓다의 전신인 불교환경교육원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법륜스님이 계신 곳 정도로만 알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큰애가 태어난 후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한 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한참 할 때 그곳에 법륜스님이 오셨습니다. 저희는 돈이 없어 고구마 키운 걸 팔아, 그 돈으로 북한돕기 성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 공동체 생활은 아침에는 절하고, 낮에는 농사짓고 노동하는 식으로 지금 정토회 공동체 생활과 비슷했습니다. 생태적 공동체였기에 전기도 거의 쓰지 않았고, 아예 쓰지 않는 쪽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모두 18명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여럿이 생활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2014 인도성지순례 법륜스님과 함께(왼쪽 이일중님)
▲ 2014 인도성지순례 법륜스님과 함께(왼쪽 이일중님)

공동체 구성원 중 유일하게 저희만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 형태였습니다. 아내와 상의 후 저희 가족만 따로 나와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고향이 문경이라 문경 근처에 터를 잡으려고 했다가, 또 순천 쪽에도 가봤다가,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 후 임용고시를 준비해 교사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 드디어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정토회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저녁 지부장

제가 경기강원동부지부의 지부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전국 지부장 소임은 모두 주간부 활동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부장 역할은 전일제 봉사를 해야 하는 소임입니다. 그래서 저녁부인 제가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쨌든 선출해 주었으니 ‘네 알겠습니다’ 하고 소임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밑마음에 부담이 있었습니다.

매주 세 차례의 지부장 회의는 모두 아침이나 낮에 진행되었습니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저는 아침 8시 회의에 온전히 참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회의에 빠진 적은 거의 없었지만, 직장에서 참여하다 보니 화상회의 카메라를 끄거나 도서관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빈 곳을 찾아 이동하며 회의할 때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직업이 교사라 수업 없는 시간도 있고, 또 시간표를 정할 때 최대한 회의 시간에 맞춰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늘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온전하게 지부장 소임에 매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1차 만일결사 회향을 기념하는 일만 불교대학, 일만 행복학교 목표에 조금 부족했던 점입니다. 물론 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지부 모두 같이 하는 것이긴 했지만, 그것이 제일 죄송합니다. 지부장 소임을 위해 두 달여간 직장에 휴가를 내면서 나름대로 집중했습니다. 수치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연연해지기도 했습니다. 한다고는 했는데, 돌아보면 제일 아쉽습니다.

소임으로 얻은 복

지부장은 직접 회원들과 접하는 일이 많지 않기에 도반들과 특별한 갈등은 없었습니다. 주로 회의가 많았는데, 활동가들이 대부분 서원행자1 이상이어서인지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하며 '저 도반은 왜 저렇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는 있었습니다.

2016 통일의병교육 경기광주법당(뒷 줄 가운데 이일중님)
▲ 2016 통일의병교육 경기광주법당(뒷 줄 가운데 이일중님)

제가 속한 지회의 지회장과 일하며 제일 많이 분별이 났습니다. 잘 아는 사이고, 또 얽혀 있는 관계이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일을 같이하며 다 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하며 제 생각이 다 옳지 않음을 계속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소임 덕분입니다. 저희가 매일 하는 말이지만, 정말 소임이 복입니다.

다시 지부장 소임을 맡는다면

다시 지부장 소임을 맡는다면, 제일 먼저 같이 활동하는 도반들이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좀 더 세심하게 챙기고 싶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개편하면서 너무 일에만 집중한다는 평가가 꽤 있었습니다. 제가 사람을 잘 챙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옆에서 누군가 울고 있으면 '우는구나' 정도였는데, 지금은 '왜 우세요?'라고 물어봅니다. 예전에는 저의 이런 부족한 부분을 외면했습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면서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이 정토회 조직 책임자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법사님처럼 행사 후 고생한 사람들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힘들어 하거나 일이 잘 안되는 도반이 있으면 옆에서 들어주거나 챙겨주면서 활동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제가 부족합니다. 직장에서는 일로 만났으니 일로 풀 수 있습니다. 특히 남자들은 직장 끝나고 술 마시면서 풀기도 하고 친목을 다지는 분위기가 있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싫어합니다. 물론 술도 못 마십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헤어지고 나면 사람이 남아야 하는데 일만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성과주의에 길들어져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가끔 했습니다. 조직 책임자 자리는 일도 되게 끔 해야 하고 동시에 사람도 챙기는 자리인데, 다른 지부장들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 모두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2022 43차 지부지원팀회의(두 번째 줄 맨 왼쪽 이일중님)
▲ 2022 43차 지부지원팀회의(두 번째 줄 맨 왼쪽 이일중님)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것은 온라인 정토회가 전국적으로 한 방향으로 가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 지부만의 특색을 살리고 싶습니다. 사실 모둠, 지회, 지부 각각 색깔을 달리할 수 있는데, 여러 이유로 다 비슷하게 했습니다. 경기강원동부지부는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되기 전까지 법당이 가장 많았던 지부 중 하나입니다. 위로는 연천부터 아래 수원까지 지리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지역의 특색이 담긴 모델을 조금씩 개발해보고 싶습니다. 이전에도 우리 지부의 색깔이 살아있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곤 했지만, 그걸 시도해 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가장 잘 느끼는 상대

저의 부족함을 가장 많이 느끼는 상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입니다. 아내도 정토회 일을 같이하지만, 활동 얘기를 하는 것과 나누기는 또 다릅니다. 그런 것 때문에 아내가 아주 속상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상대가 길게 얘기하려 하면 결론만 말하라고 합니다. 아내는 다른 정토회 도반과 긴 시간 통화하는데, 저와는 길게 이야기하지 못해 답답해합니다.

제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공감을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버지와 비슷합니다. 쑥스러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행사에 가면 어떤 도반은 오랜만에 만났다고 두 팔로 안으면서 반가워하는데, 저는 "반가워요"라고 말로만 인사할 정도로 표현을 못합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어려움에 처하면 누군가가 저를 위로해주고, 힘들 때 옆에서 지지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다도 못 떨고 표현도 잘 못했던 제가 정토회 활동하면서 어느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이나 경전대학, 행복학교 진행하면서 제 성격 그대로 하면 안 되니까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하고, 안 오시면 왜 안 오시냐, 아프시다고 하면 괜찮으시냐고 묻습니다. 전화도 하고, 또 활동가들에게 "고생하셨다, 감사하다"는 말도 합니다. 이제는 조금 할 수 있습니다.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겠습니다

정토회에 있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공감력입니다.〈나눔의 장2〉에서 저의 부족함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일보다는 사람을 보려 하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법활동가나 서원행자 포살 때 거의 되풀이하고, 또 스스로에게도 늘 말하는 게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겠습니다’입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 옛날에는 "경상도 남자는 다 그래"라고 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표현하려 합니다. 나름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미흡하니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2022 죽림정사 연등달기(왼쪽에서 두 번째 이일중님)
▲ 2022 죽림정사 연등달기(왼쪽에서 두 번째 이일중님)

계속 노력하고 있고, 계속 깨지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제일 안 됩니다. 직장이나 정토회에서는 좀 덜 하지만, 가족을 대할 때는 확실히 말투가 다정다감하거나 부드럽지 않습니다. 아내와 자주 "우리 웃으며 부드럽게 말하자"라고 얘기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사방이 조용하여 마음이 정갈해집니다. 새벽 수행을 통해 마음, 말, 행동에서 들뜨지 않는 것이 오래 유지됩니다. 출근도 늘 남들보다 일찍 합니다. 직장이나 정토회 일을 하며 분별심도 줄어들었습니다. 말이나 행동도 차분해지고 얼굴도 좀 편안하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토행자의 하루>의 애독자였던 제가 희망리포터가 되어 처음 인터뷰하면서 만난 이일중 님. 담담하고 차분하게 지부장 소임과 개인 수행에 관해 나눠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소임을 맡아 애써주는 도반들 덕분에 저 같은 사람도 정토회에서 편안히 수행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_이혜수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
편집_최미영(국제지부 아태지회)


  1. 서원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발심행자 3년 후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서원행자 자격이 주어짐.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짐. 

  2.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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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행복한길

이일중거사님, 겸손하시지만 지혜와 열정을 가지신 모습에 평소 존경하는 마음 한가득입니다. 저녁반 유일 지부장 소임도 훌륭하게 해 내셔서 또한 모두의 자랑입니다. 건강하시고 담에 또 뵈어요. 감사합니다.

2023-04-19 20:53:25

보현

고맙습니다

2023-04-09 09:34:55

이윤주

늘 묵묵하시던 거사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함께 했기에 더 반가운 마음입니다.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4-06 07: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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