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받아들임
향위법사님 세 번째 이야기

행자의 하루 담당소임을 하면서, 기승전결에 클라이막스까지 있는 수행담들을 선호했습니다. 글로도 구성이 완벽하고, 독자에게도 희망과 귀감이 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도 모르게 어떤 해피엔딩을 바랬나 봅니다. 이제는 더 나아지거나 고치려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고민하던 그즈음 향위 법사님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인터뷰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법사님에게 시스템 이야기 해달라고 설득하기를 참 잘 했다 싶습니다. 생생한 받아들임의 역사와 현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향위 법사님 마지막 이야기 시작합니다.

그대로 인정하기

법사가 된 것이 우리 도반들을 위해서 좋은 일일까 아닐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저를 위해서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괴로울 게 없네.’라고 느껴졌습니다. 그걸로 끝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드는구나. 괴로움이 일어났을 때 괴로우면 내가 욕심냈구나, 욕심내면 괴롭지. 욕심 안 내면 되지. 그것으로 끝인 것 같습니다. 괴로움의 문제는 고쳐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내 성질을 못 이겨서, 내가 욕심을 내서 만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법사교육 중
▲ 문경수련원에서 법사교육 중

어제랑 똑같이 살아서, 부족하거나 안 좋은 습관들을 보아도 아쉬울 뿐 괴로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로 예를 들면, 사람은 눈에 안 들어오고 일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쉽습니다. 사람 좀 챙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괴로울 건 아닙니다. 저에게 그 부분이 부족해서 아쉽지만, 그렇지 않은 나를 기준에 놓고 욕심내면 괴로움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 배우면 사실 괴로울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욕심을 내서 괴로움을 만들었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금은 밋밋하고 별 재미는 없습니다. 재미라기보다는 그런 느낌들이 좀 밋밋합니다. 요새 새삼스럽게 아무 일이 없는 것이 큰 복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집착과 아상이 셌었는데, 안달복달하지 않고 편안합니다. 예전에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며 잔머리를 굴리며 속을 태웠는데, 지금은 거기서 벗어나서 참 다행입니다.

법사가 되어 뭔가를 성취하고 뭐가 극복한 것이 아니라, 포기라면 포기인데 바른 관점에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쓸데없이 욕심내거나 쓸데없이 갈등하는 게 좀 내려놓아졌습니다. 내 입으로 “그거 욕심이지”라고 얘기를 하다 보니 점점 내가 그걸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법사가 된 게 참 좋습니다. 멋있는 모습을 못 보여 조금 창피하기는 하지만, 그것조차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면, 욕심부리는 것으로 알고 돌이켜지는 것은 제가 법사가 된 덕분인 것 같습니다.

공동체생활

봉화수련원에서 공양준비 중
▲ 봉화수련원에서 공양준비 중

2000년쯤 스님과 상담하고 “아! 이거네! 그래 맞아! 나도 행복해야지 그리고 세상을 맑히는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이 싫어 그만두려 했는데, 법륜스님 법문에서 “싫어서 그만 두는 것은 도망가는 것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빨리 도망가고 싶었지만, 법문을 듣고 7년 더 다닌 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100일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 기간 중 식구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저는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2, 3년 살다가 식구들이 돌아와 저도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조금 살다 다시 법당에 들어와서 또 몇 년 살았고, 지금은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이 회관과 가까워서 출퇴근하기도 좋습니다. 우리 보살님이 참 고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위대한 박정희대통령을 존경하고 국민교육헌장을 자랑스럽게 외우면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노래했습니다. 1979년 대학에 들어갔더니, 박정희 ***였습니다. 저에게는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입니다. 불공정한 세상이 너무 답답했고, 모두가 평등하고 공정하게 살아가는 대동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직장생활 하면서도 대학 때 가졌던 그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늘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직장을 그만두는 미련은 털끝만큼도 없었고, 정토회에 와서 활동하니 좋았습니다.

내가 만든 상

통일축전에서 도반과 함께
▲ 통일축전에서 도반과 함께

우리 부부 중에 한 사람은 사회를 맑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우리 보살이 직장생활을 좋아하니, 저는 제가 생각한 것을 하기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보살님이나 우리 애들 입장에서는 진짜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 고민, 제 생각에 빠져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서야 아이들이 그런 마음이 있었겠구나 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저는 늘 잘 났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고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족들의 불편할 수도 있는 마음에는 무심했습니다. 진짜 저만 보고 살았다 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세상을 다 무시하고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서, 오히려 맞춰주고, 잘해주려고 애쓰는데, 안 알아준다고 한 것이 후회스럽기는 합니다.

착한 상이든 나쁜 상이든, 무슨 상이든 그냥 있는 그대로 의논하면서 살면 된다 생각합니다. 감정 그대로 그냥 섭섭하면 섭섭한 것, 불편하면 불편한 것, 좋으면 좋은 것, 나쁜면 나쁜 것, 그냥 의논하면 사는 게 사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게 좋은 삶이야 이렇게 살아야 돼“ 라는 상을 하나 딱 세워놓고, 그 기준에 저를 맞추며 옆에 있는 사람들을 다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요새 그런 면에서는 식구들한테는 참 많이 미안합니다.

전문가로서 봉사할 때 필요한 마음의 자세

저는 전산 시스템을 통해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활동가들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다른 봉사자들도 와서 해주는 것이고 개발자들도 와서 해주는 것이라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봉사자들이 말을 안 들을 때, 모르면서 우길 때는 기가 차기도 하고 밉기도 합니다. 제가 제안한 것이 거절당하면 상처도 받습니다. 때로는 배신감도 느낍니다. 그런 일을 많이 경험하며 알게된 것이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이 길이 진짜 가야 될 길인지, 진짜 필요한 것인지, 이게 진짜 최선인지 늘 고민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제안을 그냥 하다 보면, 이게 어느 날 빙글빙글 돌아서,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실행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2015년 즈음 구글 교육 동영상을 만든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니, 재미없다고 가신 분도 있습니다. 당시는 구글 설문에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몇 년후 누군가 대단한 것을 했다고 해서 들여다보니, 바로 그거였습니다. 구글 사이트 기능도 그랬습니다. 2,3년 전에 조직별 지회별 지부별로 사이트도 만들고 그다음 지원국의 부서별 사이트도 만들었습니다. 틀을 짜서 필요한 샘플도 다 만들었습니다. 다 만들었으니 붙여 놓기만 하면 모든 소통이 다 된다고 열심히 설명했으나 아무도 안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엄청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일방적으로 되지는 않지만, 진짜 필요한 것이면 되기도 합니다.

시스템 쪽 일을 하다보니 욕심을 안 버리고 하고 있지만, 제 양껏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맨 처음 시도 할 때는 전혀 안 될 것 같지만,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관심 갖는 사람이 한두 명씩 생깁니다. 제 눈에서는 그런 사람이 다 그만두고 사라졌는데, 어딘가에서 빙빙 돌아서 생각도 안 하던 곳에서 만들어져 저에게로 다시 오기도 합니다

대중들이 수용해 들어갈 때 제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같이 막 만드는 열정까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잘 안 되었습니다. 북돋우면서 밀고 가는 거는 잘 못하고, 더 앞 단계로 확 끌어들이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부담을 갖고 주저앉아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한발이나 반발 뒤에서 눈치 봐가지고 하나씩 제안하고 있습니다.

구상을 갖고 있으면 이 설명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서 헤맵니다. 없으면,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그것이 수용되고 이해되어 활용되기 시작할 때 그걸 진짜 잘 살려낼 방도를 찾는 것, 그것이 기술자 입장에서의 중도라고 생각합니다.

지도법사님은 머릿 속에 천년이 구상이 있으시지만 늘 오늘 얘기를 하시는 중에 끊임없이 제안을 하시잖아요. 세 번 하고 포기하시겠어요. 수십 번 수백 번을 하시겠지요. 그러면서 그때 그 순간순간에 필요한 것을 찾아가시는데, 제게는 그것이 중도로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나만 알고 있는 것을 활동가들 속에서 실현되게 하려면, 두 개의 역할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한 발 앞서서 미리 제안한 것과, 제안한 것이 수용되었을 때 활동가들의 발걸음에 맞춰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두가지를 모두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역할을 잘 변신해 가면서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왼쪽으로 기울면 오른쪽으로 이끌며 가다, 뒤돌아보면 이만큼 와 있네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행정처 도반들과 현장답사에서
▲ 행정처 도반들과 현장답사에서

마치면서

부처님께서 엄청나게 뭘 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괴롭지 않게 살아라. 이렇게 얘기 하셨던 거로 돌아가서, 그리고 같은 값이면 조금 더 보람있게 살아도 좋겠다.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요새 들어서는 내 개인적인 욕심, 내 감정,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좀 돌아봐야 되나? 좀 돌아볼까? 어떤 게 있나? 이런 생각도 좀 듭니다. 우리 스승님께서도 얘기 하셨잖아요. 다섯가지 절대 하지 말아야 될 것만 아니면 ‘맘껏해라’ 하셨으니까. 예, 그런 개인적인 욕심도 좀 챙기는 그런 생활도 좀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글_최미영(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인터뷰, 편집_서지영(행자의 하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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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제 전공분야를 통해 봉사를 했었고 앞으로도 하려 하는데 법사님 말씀이 지침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저도 뭔가 느끼면서도 확연히 알지못했던 찜찜함의 정체를 덕분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10-16 16:09:26

지금여기

정토회란 이렇게 이렇게 정성들이 모여 이루어진 단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법사님 고맙고 감사 드립니다~~

2023-07-06 09:23:04

이영미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 전 활동했던 잊었던 행정처 장면들이 떠오르며 행복했습니다. 무심한 듯 사시는 향위법사님 글 통해서 많이 공감되고 제가 앞으로 나갈 길이 더 선명히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요..^^

2023-04-10 10: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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