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초지회
청각장애, 괴로움도 부족함도 아닙니다

정토회에는 노보살들 모임인 ‘연화회’가 있습니다. 대부분 80세 이상이며 30명 정도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분이 없지만, 한꺼번에 모두를 소개하기에는 지면에 한계가 있어, 오늘은 30년간 지도 법사님의 법복을 수선한 구로지회 82세 임춘자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22년 봄 어느 카페에서
▲ 2022년 봄 어느 카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소리, 소리들

어려서 관절염이 심해져 수술했습니다. 여섯 살 무렵부터는 잘 보이지도 않고, 한쪽 귀는 전혀 안 들리고, 한쪽은 보청기를 해서 띄엄띄엄 들리기도 하고, 소리가 작거나 낮으면 그저 소리일 뿐 뜻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너무 가난했습니다. 남편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도 괴롭고 남편에게 불만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불평불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큰 시누가 어느절에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의 스님이 일 년에 세 번은 꼭 법당에 와서 기도하라 하여 입춘, 초파일, 동지가 되면 절에 갔습니다.

남편이 돈을 못벌어 많이 가난하고 어려워 편안히 살기를 부처님께 기도했습니다. 5~6년 지날 무렵 이것도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 절에는 법문도 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물어서 답을 들으면 대접할 돈이 없었기에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10년쯤 절에 다녔습니다.

큰딸이 결혼하자 둘째 딸은 제가 허전할까 봐 걱정스러워 불교신문을 구독해 주었습니다. 신문에서 ‘선’ 공부 모임에 관해 읽고 찾아갔습니다. 세 번을 참석했지만, 청각장애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서러워 옥상에 올라가서 실컷 울고 내려오니 강의가 끝나 있었습니다. 그날 신발장에서 《월간 정토》 잡지를 발견했습니다. 정토법당에는 법문, 수행, 보시, 나누기, 봉사가 있다는 것에 제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홍제동 포교원에 가니 이전에 갔던 절과 달리 인원도 적고 장소도 작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송년 법회(오른쪽 붉은 옷)
▲ 1990년대 중반 송년 법회(오른쪽 붉은 옷)

한올 한올 풀다 보니 어느새 5일

91년 홍제동 포교원에 가니 방석과 이불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결혼 전 배운 양재 기술로 지퍼도 달고, 바지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법복 수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봉사 기간이 30년 가까이 되지만 수선 봉사였기에 횟수는 얼마 안 됩니다. 스님은 옷 두 벌로 계속 수선하여 입습니다. 더는 수선할 수 없을 때까지 깁고 또 기웠습니다. 30년 동안 새 옷은 딱 한 벌 지었습니다.

한번은 덧댄 천을 떼고 다시 수선해야 했습니다. 옷이 너무 해져 그냥 떼면 천이 찢어질 것 같아 얇고 작은 송곳으로 한올 한올 풀었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온종일 했습니다. 덧댄 천을 떼는 데 5일이 걸렸지만 피곤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수선한 옷이《 월간 정토》의 표지사진으로 나왔습니다.

주인공이 새발뜨기로 수선한 스님 옷-《월간 정토》 표지 사진
▲ 주인공이 새발뜨기로 수선한 스님 옷-《월간 정토》 표지 사진

1991년 무작정 천일결사1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법문을 못들을 때도 경전은 읽었습니다. 아는 만큼만 알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갔습니다. 만일결사 시작한 초기에는 며칠 빠졌지만, 4차 천일결사때 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알람 소리를 못 들어 아침 5시 기도는 지키지 못하고, 잠에서 깨면 바로 기도했습니다. 몇년 전 부터 손목진동기를 통해 새벽기도 시간을 잘 지키고, 전화오는 것도 잘 받고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걸림 없이 쉬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편안하게 살 방법을 가르쳐 준 스승에게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스님께 필요한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값어치로 따지면 어림없지만, 옷 수선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으려고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은혜’라는 한마디로 표현합니다.

여든 살이 넘은 지금도 아직 바느질을 할 수는 있지만 순리에 따라 쉬고 있습니다. 수선할 옷이 안 오면 ‘그렇구나’ 합니다. 스님에게 필요한 것을 해드리고 싶지만 아무런 걸림 없이 쉽니다.

연화회 도반들과 나들이(맨 오른쪽)
▲ 연화회 도반들과 나들이(맨 오른쪽)

눈으로 들은 법문

법문을 들으려 법당에 갔지만, 한 줄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입 모양을 보려 앞줄에 앉았지만, 소리로만 인지될 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가지라도 깨닫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대면 나누기 때도 바로 옆 사람 말만 조금 알아들을 뿐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감동도 했지만, 참회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씩 알아가면서도 전체적인 감이 올 듯 말 듯 했습니다.

13년 후 영상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화면에서 입이 크게 나와 눈으로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제일 앞줄에 앉았지만, 속 시원히 다 알 수는 없었습니다. 자막이 있을 때는 눈으로 읽었습니다. 30년을 빈 가방 들고 학교 다니듯 왔다 갔다 그냥 다녔습니다. 궁금하고,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이 있었기에 희망이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홍보, 북한동포돕기 운동, 바느질 등을 하며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할 수 있었기에 법당에 오래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방법을 봉사하며 배웠습니다.

코로나가 가져온 기적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법회를 하면서 법문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바뀐 건 알았지만, 핸드폰으로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온라인으로 포살 법회를 하던 중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살피니 핸드폰 옆면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귀에 바짝 대니 스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때부터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꾸준히’, ‘알아차리기’ ‘나의 문제’라는 말도 온라인이 된 후에 알았습니다. 이제는 다 들려 너무너무 시원하고,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귀머거리가 듣게 된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전환 후 한 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 포기했던 명상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명상에 관한 법문을 듣고 ‘알아차리면 멈추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비소리를 들을 수 없어 혼자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습니다.

연화회 불국사 나들이(가운뎃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 연화회 불국사 나들이(가운뎃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르침을 모두 다 실천하지는 못해도, 할 수 있는 만큼 생활에 적용하며 삽니다. 남편과 갈등이나 싸움도 없었고 아이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세 아이 모두 뭘 해 달라고 조르지도 않았습니다. 엄마로서 한 것이 없는데, 오히려 저에게 더 해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남편도 화나는 일이 있어도 제가 못 들었다 하면 바로 멈췄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 돈을 잘 못 벌어 살기는 어려웠으나 저를 이해해주고, 정토법당에 나가는 것을 항상 응원해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또, 스승님, 부모님, 형제, 자녀, 이웃에게 사랑받기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분들의 사랑, 노고, 수고 덕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제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10-10차 백일기도 때부터는 자신을 점검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먼 곳이 아닌 생활 속에 있듯이 바느질에도 가르침의 이치가 묘하게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만 서로 맞추어 하나가 되듯, 왼쪽천과 오른쪽 천이 단추를 끼워 한벌의 옷이 되었습니다. 조화와 균형을 맞춰 하나되는 원리가 바느질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바느질을 하며 최선은 다했지만, 어렵지 않고 편안하고 즐겁게 했습니다. 제 스스로 만족하니 가볍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했기에 충족합니다.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에서(왼쪽에서 두 번째)
▲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에서(왼쪽에서 두 번째)

2002년 지원팀 엠티 후 공양간 봉사자와(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 2002년 지원팀 엠티 후 공양간 봉사자와(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청각 장애로 법문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에 적용하며 사는 임춘자님을 인터뷰하며 제가 뭘 놓치고 사는지 알았습니다. 봉사했기에 흔들림 없이 정토회에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확인했습니다. 1차 만일을 마치고 회향하며 걸림이 없다고 했습니다. 2차 만일을 회향할 때면, 저도 걸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글_최미영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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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장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부처님이십니다.

2023-11-30 10:52:23

느릿느릿

감동입니다~~

보살님의 그 마음에 고개가 숙여 지네요
감사 합니다.

법륜스님 젊었을 때 사진 보니
조으네요 ㅎㅎ

2023-08-20 13:26:21

장혜숙

감동입니다. 부끄럽습니다.

2023-03-30 13: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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