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그렇게 하려면 그만두라
-향취법사님 두 번째 이야기-

친정 같고, 등대 같던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끝내고 막막한 가운데 만난 정토회. 이곳에 법사님이 찾던 것이 모두 있었다고 합니다. 정토회를 만나 신나게 활동하던 법사님의 두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어릴 때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늙음, 죽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고 잘 살았다고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고민 끝에서 ‘보람 있게 살자.’는 답에 도달했고, 정말 보람 있는 일을 결정하는 시기를 서른다섯 살로 잡았습니다. 이 책 저 책을 탐닉하며 끊임없이 답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서른다섯에 찾은 생활협동조합에서 13년의 활동을 끝내고 나오니 저에게는 친정 같은 존재가 없어진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저를 보호해주던 보호막, 인생의 기준으로 잡고 가려던 든든한 등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쉬면서 불교공부를 하러 온 정토회에서 법문을 듣는데 스님의 말씀이 명쾌하고 속이 후련했습니다. 제가 찾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읽던 책을 뒤로 하고 법륜스님의 책을 전부 사서 읽었습니다.

법문을 듣고 스님 책을 읽고 정토회 활동을 하는 동안은 아무런 번뇌가 없고 즐거웠습니다. 기가 막히게 멋진 놀이터, 그 자체였습니다. 정토회에 발을 딛고부터 저는 병가나 휴가를 낸 적이 없습니다. 매주 받는 법비만으로 제 몸과 마음은 치유되었습니다. 찾아 헤매던 답을 찾았기 때문에 단박에 이 길을 선택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중인 향취법사님
▲ 인터뷰중인 향취법사님

저는 항상 무언가 배우는 걸 좋아해서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도 만들고 서예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족에 그칠 뿐 항상 2프로가 부족했습니다. ‘보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로 사회를 바꾸고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했는데, 새로 배우는 것들은 이것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침과 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귀농하여 동네 어르신들에게 뜸 봉사를 하면 제가 찾던 보람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뜸 공부도 하고 있었습니다. 뜸 초급과 중급 과정을 마치고 고급 과정 등록을 앞둔 시점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고급 과정은 시간을 많이 내어야 해서 불교대학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또 당시 빈그릇운동이 한창이던 정토회 활동에도 지장이 생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법사님께 물었고 법사님의 답변을 듣고 저는 단번에 불교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자꾸 채우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답변에 제 고뇌가 탁 놓아졌습니다. 불교대학과 빈그릇운동에 매진했습니다. 제가 협동조합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 양천구청과 연이 있어 빈그릇운동과 양천구가 협약을 맺는데 연결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정토회가 농업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 19%에 그칩니다. 최근 우리는 러시아 전쟁으로 밀가루 가격이 폭등하는 경험을 했지만, 예전에는 사람들이 자급자족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자각하지 못하는 분위기라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수출국에서 농산물 수출을 중지하면 우리나라 역시 식량난에 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흙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토회 활동 초기 이런 안타까운 마음에 정토회에서 농업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식량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지도법사님께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정토회의 기획력과 실행력을 봤을 때 지도법사님이 이끌어주면 우리나라의 농업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농업의 문제는 농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추진해야할 사안이라는 답변을 듣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올해 9월, 농업회사법인을 만들면 청년 일자리 창출과 농촌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스님 법문을 들었을 때 지난 답변의 깊은 뜻을 알았습니다. 지도법사님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뛰어난 해결방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보다는 농업 전문가와 일자리 전문가들이 모여 이러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거라는 지도법사님의 뜻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서대문법당 불교대학졸업식 (앞줄 가운데)
▲ 서대문법당 불교대학졸업식 (앞줄 가운데)

아이들에게 간식 대신 준 것

저는 활동에 중심을 두고 있었기에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지나가는 말로 다른 친구 엄마들은 간식으로 빵도 구워주고 이것저것 만들어줘서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간식 대신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된 삶인지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큰 아이가 군대에 갔을 때 편지를 썼습니다. 어릴 적 네가 원하는 걸 다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오히려 아이는 ‘엄마는 대신 다른 걸 줬다.’고 답장해 주었습니다. 아이들도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세상을 위해 잘 쓰이는 제 삶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남편은 사회활동에 호의적이어서 대화가 잘 통하고 잘 맞았습니다. 결혼 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 와서 외로움과 싸우고 아이 둘을 낳아 독박 육아로 지쳐있던 제가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생기가 돌고 재미있어하니 남편이 지지를 많이 해줬습니다. 단체에서 "멋진 남편상"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현장 입재식 시절 (앞줄 두 번째 법사님, 뒷줄 두 번째 법사님의 남편)
▲ 현장 입재식 시절 (앞줄 두 번째 법사님, 뒷줄 두 번째 법사님의 남편)

남편과 제가 부딪치는 지점은 노후 자금입니다. 남편은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 젊은 시절에 돈을 모아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저는 화폐단위로 경제적, 사회적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부심으로 저를 세울 때 남편하고 부딪쳤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날을 세우고 있으면 남편이 바로 걸고 들어왔습니다. 그럴 때면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하는 이 일이 참 좋다. 이 활동을 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다.”라고 말하며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또 “우리는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고 있으니 나는 얼마든지 안 쓰고 살 수 있다. 나는 밍크코트, 진주 목걸이, 다이아 반지 아무런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제 생각을 남편이 받아줘서 갈등이 해소되었습니다. 남편 덕분에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정말로 고맙습니다. 진짜로 숙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몸소 체험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정토회 활동을 했습니다. 딸아이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인도선재수련을 갔다가 삭발을 하고 돌어왔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인도에 가면 긴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이 번거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발심행자가 되어 돕는이 봉사도 했습니다. 남편은 2013년 평화재단 리더십아카데미로 정토회와 연을 맺었고 통일의병 활동과 불교대학 진행자 봉사 소임을 맡았습니다.

에코붓다 환경강사 양성워크숍에서 (첫째줄 왼쪽 첫번째)
▲ 에코붓다 환경강사 양성워크숍에서 (첫째줄 왼쪽 첫번째)

그렇게 하려면 그만두라

협동조합에서 일할 당시 음식쓰레기 퇴비화 사업을 맡아 진행했습니다. 과일 껍질이나 야채 다듬고 나온 찌꺼기, 우려낸 보리차, 달걀 껍질 등 소금기가 없는 음식쓰레기를 각 가정에서 말려서 내놓으면 이를 수거해 농가에 퇴비로 쓰도록 전달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구청을 찾아가 말린 음식쓰레기를 수거할 차량과 천 평의 퇴비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천 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 십여 곳에서 약 30% 정도의 주민이 이 사업에 동참해서, 한 번 수거할 때 2.5톤 트럭이 가득 찰 정도였습니다. 퇴비화 사업은 순항하는 듯 했지만 종량제 도입으로 음식 쓰레기통이 생기자 주민들의 퇴비화 사업 참여율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한편으로 퇴비화 사업이 가사노동을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정토회의 지렁이를 이용한 퇴비화사업에서는 이런 비판적인 이야기가 일절 나오지 않았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지렁이 분양사업을 맡았습니다. 난지도에 가서 지렁이를 퍼오고, 토기도 구해와서 교육하는 분양 행사를 잘 마쳤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가 맡은 사업에 대한 내부 평가는 혹독했습니다. 심지어 제 윗선 팀장 도반은 ‘그렇게 하려면 그만두라’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저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만 급급해 보여주기 식의 일처리를 했던 겁니다.

전에 활동하던 단체에서는 제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혼자 주도하고 처리하는 데에 익숙했던 것입니다. 또 구청과 같은 공공기관과 함께 추진하는 사업들을 해왔던지라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치중하여 일했던 겁니다. 제가 맡은 지렁이 분양사업은 속 빈 강정과 같았습니다. 사업에 참여한 도반들 모두가 ‘내가 한 부분에 참여했다’는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일할 때 드러나는 제 업식을 보고 나니 팀장 도반의 쓴소리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고마웠습니다.


향취법사님의 수행담은 총 3회로 발행예정입니다.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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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편집_서지영(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녹취&글_김난희(강원경기동부지부 원주지회)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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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자신을 돌아보시는 법사님의 모습 본 받겠습니다.

2023-01-21 15:25:12

황금숙

수행하시는 분의 마음이 법륜스님의 설법을 그대로 따르시는것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다음의 수행담 기다려봅니다. 가족분들의 지지도 큰 힘이 되어 주시네요

2022-11-23 22:35:54

무량덕

참 배울게 많은 수행담입니다. 저도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2022-11-23 16: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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