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영지회
나를 제대로 알면 상대방의 마음도 보입니다

"특별한 수행담이 아니라 읽는 분들이 재미가 없으면 어쩌나?"라고 걱정하던 강혜인 님과의 대화는 예상 시간을 훌쩍 넘길만큼 풍부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어려움이나 수행담을 나눠 혹여나 다른 분들이 위로받거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의 존재 가치가 있겠지요.”라며 부담될지 모를 개인적인 이야기도 기꺼이 나눠준 강혜인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나의 꿈은 현모양처

저는 유복한 집안에 장녀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자식들에게는 매우 인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독 아버지를 잘 따랐습니다. 자식교육에 열성이던 어머니는 아버지 수입이 빠듯하다 생각했는지 경제적인 문제로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당시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더 좋아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컸던지라, '어머니가 경제관념이 없는 게 아닐까? 좀 더 아버지에게 맞춰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녁책임팀장 소임 중(오른쪽)
▲ 저녁책임팀장 소임 중(오른쪽)

하지만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 덕분에 저는 공부도 곧 잘했고, 이후 약대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졸업과 함께 결혼을 선택했고, 직업적인 성취보다 아버지 같은 좋은 분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릴 때부터 남편에게 잘 맞추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괜찮지 ‘않은’ 시부모님 모시기

비슷한 환경의 집안과 결혼하여 딸 둘을 낳고 잘살고 있었습니다. 결혼 11년 만에 편찮은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남편과 화목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기에 크게 불평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저에게 주어진 자유시간도 없고, 한참 사춘기인 아이들 케어도 소홀하게 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시아버님과는 성향이 맞지 않았습니다. 시아버님은 시어머님께 세상없이 자상한 분이었지만, 리더십 있고 성격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시어머님은 온실 속 화초처럼 연약하고, 순수하고, 예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어머님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할 말 다 하는 성격이다 보니, 시아버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며느리가 탐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혹여나 아들 불편할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제 마음은 평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법륜스님과의 즉문즉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법륜스님의 금강경1 강의를 해운대 법당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강의 내용이 좋아서 듣다 보니 이어서 불교 대학 과정도 하게 되고, 없는 시간이지만 쪼개어 주 1회씩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강의가 끝나면 법륜스님과 도반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고민을 나누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문경 선유동 연수원에서〈정일사[^각주3]〉를 마치고(윗줄 오른쪽 두번째)
▲ 문경 선유동 연수원에서〈정일사[^각주3]〉를 마치고(윗줄 오른쪽 두번째)

"저는 시부모님을 어떻게 잘 모셔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은 아주 간단했지만, 제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더 잘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로 표현했지만, 사실 시부모님 모시는 게 불편하지만, 남편과의 관계를 생각해 내색하지도 못하는 제 마음을 스스로 돌아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불편한 마음을 인정하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자.'라고 관점을 바꾸자, 시부모님을 모시는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진 듯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화목함에 사로잡혀 있던 내 모습

남편은 금융권의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시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았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니 때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시아버님과 손위 동서가 문제라고 생각되어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법사님과의 대화 중 저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얘기를 듣던 법사님은 “혜인님은 보고 싶은대로만 보시네요. 남편분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상황을 정확히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여태껏 남편 일이라면 그저 잘되겠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현실을 직시하니 남편에게도 개선해야 할 문제점과 해결해야 할 일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통일의병[^각주29]대회 기수 봉사 중(가운데)
▲ 통일의병[^각주29]대회 기수 봉사 중(가운데)

그 이후 저는 오히려 남편과의 갈등의 씨앗을 안게 되었습니다. 불편할까 눈감아버린 마음을 자각하고, 문제의 본질을 마주하자 남편과 다툴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정확히 알고 나니 해결 방법 또한 알게 되고, 함께 힘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맞추어야 할 것과 아닌 것을 지혜롭게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편과 화목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계속 사로잡혀 있었다면, 저희 부부에게 더 큰 문제가 되어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편과의 갈등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나를 제대로 알면 상대방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04년부터 정토회와의 인연으로 새벽 기도를 꾸준히 하다 보니, 제 마음을 정확히 알고 돌이키는 연습이 되었습니다. 저를 돌아볼 수 있으니, 상대방의 마음도 더 깊이 이해하는 혜안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동창들과 모임을 하고 돌아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TV 소리가 왜 이리 크냐!”며 타박이었습니다. 급기야 리모컨을 뺏어 TV를 꺼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확 상했고, 남편에게 똑같이 싫은 소리로 돌려줬습니다. 얼마 후 비슷한 상황이 한 번 더 발생했고, 그때는 남편의 불편한 마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해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자, 그제야 남편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유한 친구들이 많은 동창 모임에서 혹시 마음 다치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었는지 제가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그저 저의 하루가 묻고 싶었던 것 뿐이고, '나와 대화하고 싶은 것을 저리 표현하는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규 서원행자[^각주34] 교육 중(오른쪽 두번째)
▲ 신규 서원행자[^각주34] 교육 중(오른쪽 두번째)

예전 같으면 서로 기분만 상하고 말았을 상황이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바라보니 남편은 제 마음을 걱정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본질을 제대로 알고자 하니, 결과는 이토록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일상에서도 많이 배우며 지냅니다.

어려운 일도 생각하기 나름

여느 부부들의 삶이 그러하듯, 우리 부부도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만큼 고비고비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때로는 아이들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불법과 수행으로 제 마음을 단단히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게 내가 풀어야 할 인생의 숙제이구나,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해 보자! , 이런 문제도 겪어보지 않고 인생을 산다면 내가 얼마나 교만에 빠져있을까?' 하고 받아들이니 지금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어려운 일도 항상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집안일에는 젬병인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정토회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는 남편, 어느덧 성인이 되어 제 몫을 충실히 해내는 딸들, 저를 성장시켜주는 봉사 소임들, 그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 감사할 뿐입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오른쪽 두번째)
▲ 인도성지순례 중(오른쪽 두번째)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지금은 경전대학 진행자 및 담당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성당 주일학교 선생님 봉사를 했던 기억이 좋아서 예전부터 불교대학 봉사 소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약국 운영하느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못했던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이동시간이 없고, 수업 시작도 30분 늦춰져서 가볍게 잘하고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비슷한 역할로 봉사할 수 있는 인연이 닿아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포용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고, 도반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이 길을 갈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주어지는 소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불교대학 진행자, 담당 소임을 맡고 있으면 일주일에 기본 3일 이상, 한번에 3시간 정도는 오롯이 할애해야 하며 이외의 활동도 많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쁘고 힘들지 않으신가요?"라는 질문에 "2017~2019년 저녁 책임팀장 소임을 할 때는 밥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었을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아주 여유롭고 좋습니다. 어떤 일도 늘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생기는 것 같아요."라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시던 강혜인 님의 미소가 너무 편안해 보였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탁 받아 들이는 용기와 할 수 있을 만큼 해보자 하는 마음의 여유, '자유롭고 가볍게 살기'가 이런거 구나 하고 느껴졌습니다. 희망리포터를 하며 하나씩 배워갈 수 있어 또 한번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글_강문주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수영지회)
편집_김세영(인천경기서부지부 일산지회)


  1.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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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향

수행과정을 담담하게 나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나를 살피니 상대가 보인다는 말씀이 공감됩니다. ((()))

2023-10-04 08:57:37

감보람

혜인님 덕분에 경전반 잘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혜인님 수행담 읽어보며 몰랐던 사실도 새롭게 알게되고 또 많이 배웁니다^^

2022-08-25 07:17:52

문성용

거사님의 tv 끄라는 말씀이 대화하고 싶었다는 내용에. 참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함을 알게 됩니다. 혜인님 수행담 감동입니다

2022-08-24 12: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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