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창원지회
폭주기관차에서 놀이공원 꼬마기차로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 후 맡았던 여러 소임을 내려놓고 잠시 여유가 생겨, 매주 일요일 새벽 봉림사지에서 기도와 울력에 동참합니다. 아침 정진으로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진정한 수행자가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이득창 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싸움닭 같던 누나가 다니는 불교대학

우연히 본 친누나의 SNS에서 정토불교대학 신입생 모집 광고를 보고서 정토회를 알았습니다. 두 살 터울인 누나와 어릴 때부터 유난히 많이 싸웠습니다. 평소 싸움닭같이 느껴지던 누나가 다니는 불교대학에 대해 묘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1년은 교양 수준에서 공부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2015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지금은 누나와 만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심오한 법담을 허심탄회하게 나눕니다. 올해는 막내 여동생도 봄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누나 덕분에 부처님 법을 만났고, 지금까지 정토회라는 인드라망 그물에 빠져 나름 행복한 정토행자가 되었습니다.

창원 수목원에서
▲ 창원 수목원에서

저는 51년 전 경북 의성의 산골에서 2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난히 공부 잘하는 옆집 친구와 비교할 때면 크고 작은 좌절감을 맛보았습니다. 거기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심각한 고부갈등으로 집안 분위기가 무겁고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제 잘못도 아닌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두 분을 지켜봐야 했던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부갈등을 중재하지 못한 아버지가 더 밉고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최근까지도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어느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시켜 주고 용돈 준 사람은 아버지’란 스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두 달 전 아버지와 깊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신도 잘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랬구나,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내가 문제구나!’ 이제는 아버지가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 아버지를 밀어내는 제 마음을 참회 중입니다.

작은 아들 중학교 졸업식(왼쪽이 주인공)
▲ 작은 아들 중학교 졸업식(왼쪽이 주인공)

고맙고 미안한 가족들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 대부분이 그러하듯 저 역시 정토회를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란 탓인지 돈, 사람관계, 명예에 대한 욕구가 컸습니다. 한마디로 욕심 덩어리로 살았습니다. 현재 공무원인데 9급으로 시작해서 6급까지는 쭉 1등으로 승진했습니다. 마흔 살에 6급으로 승진해서 동료들이 퇴직 전에 4급까지는 무난할 거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자만의 결과일까요? 그때쯤부터 시작된 부서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지금은 한직으로 밀려났고, 6급 승진을 제일 늦게 한 동기가 5급 승진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와 같구나!'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갔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명예퇴직까지 생각했는데, 스님 법문을 듣고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는 거의 동물처럼 살았습니다.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화인데, 운전 중에 아내와 자녀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겁을 주려고 고속도로에서 170킬로 이상으로 속도를 내어 달리며 위협했습니다. 또 목소리가 꽤 큰 편인데, 자주 고함을 질러 식구들을 많이 놀라게도 했습니다.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내는 몰래 도망가려고 보따리도 몇 번 쌌다고 합니다.

두 아들에 대한 욕심도, 집착도 참 많았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과거에 저지른 제 행동에 비해 잘 큰 두 아들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큰아들은 현재 대학교 3학년이며 ROTC에 지원해 군 장교를 꿈꾸고 있고, 고3인 작은 아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 아내는 간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간호대학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며칠 전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당신은 정토회 만나서 인간 되어 간다“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묵묵히 기다리고 지켜봐 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저만 잘살면 됩니다. 납작 엎드리고 살 일입니다.

창원 봉림사지 울력(왼쪽에서 두 번째)
▲ 창원 봉림사지 울력(왼쪽에서 두 번째)

세렝게티의 치타처럼

2015년 불교대학 재학 중 <깨달음의 장>1에 다녀왔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침 정진을 하루도 거르지 않습니다. 때때로 시간을 못 지킬 때도 있지만 108배 후에 "일체중생이 행복하길 서원합니다”라며 3배를 더합니다. 제 장점 중 한 가지는 세렝게티의 치타처럼 한번 정한 목표는 끝까지 놓지 않는 것입니다.

꾸준히 정진해서 좋은 점은
첫째,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데 절보다 더 완벽한 운동은 없다.
둘째, 컴퓨터에 비유하면 마음이 최적의 상태로 안정된다.
셋째, 컴퓨터 “디스크 조각 모음”처럼 흐트러졌던 마음이 정리된다.
라는 점입니다.

또한 ‘모 아니면 도’의 습이 있습니다. 한번 한다면 끝을 봐야 하고, 안 한다고 마음먹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욕심이 많아 이해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서 득이 되지 않으면 남을 도울 줄 몰랐습니다. 그러던 제가 지금은 작지만 꾸준히 보시와 봉사를 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내는 연습 중입니다. 친구들에게 행복학교2를 전했는데, 제일 하지 않을 것 같던 친구가 행복학교를 졸업했고, 또 다른 친구 5명에게 전법을 했습니다.

봉사는 경전반 담당 소임으로 시작했습니다. 2016년 2월 불교대학을 졸업할 무렵 의창법당을 개원했습니다. 불교대학은 창원법당에서 다녔는데 의창법당 부총무의 요청으로 경전반은 의창법당에서 다녔습니다. 당시 봉사자가 없어서 학생인 제가 담당자를 했습니다. 경전반 학생은 저를 포함해 5명이었는데 모두 열정이 넘치고 얼마나 재미있게 활동했던지 독수리 5남매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였습니다.

의창법당 JTS 거리모금 중
▲ 의창법당 JTS 거리모금 중

경전반 졸업 후에는 저녁 수행법회, JTS 거리모금, 창원 봉림사지 울력과 기도, 이후 모둠장 소임도 했습니다. 소임을 받을 때마다 등 떠밀려서 했는데 동갑인 김미화 의창법당 부총무 때문이었습니다. 부총무 소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흘 걸러 감기몸살을 앓고 입술은 늘 부르터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렵 직장 업무에서 꽤 큰 사고를 쳐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법당 소임과 도반과 갈등까지 겹쳐 번 아웃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정토회는 물론 직장까지 버리고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습니다. 자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가지 끈. 새벽 정진만은 놓지 않았습니다. 정진마저 하지 않으면 일순간에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던 그때로 돌아가 영영 못 돌아올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는 게 몽환포영(夢幻泡影)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닙니다. 사고가 수습될 즈음 정토회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맡은 소임도 일시에 없어져 마음이 조금 홀가분합니다. 요즘은 봉림사지 일요 정진과 울력을 기꺼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의창법당 정회원의 날(뒷줄 맨 오른쪽)
▲ 의창법당 정회원의 날(뒷줄 맨 오른쪽)

정진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저는 정진은 꾸준히 하지만 변화하는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때때로 스스로 실망도 많이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대기만성이라고! 큰 그릇은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위로합니다. 더디지만 이제는 결단코 거꾸로 가지는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성의 중요성도 압니다.

3년 전 정일사3 회향 때 어느 법사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당신은 9년 정진하니 개인사는 모두 해결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9년이 되려면 아직 2년이 남았습니다. 원이자 욕심이지만 저도 2년 뒤에는 개인사를 깔끔히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런 것을 "언어의 선언적 기능"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부로 선언했으니 반드시 원이 성취되어 행복한 정토 세상을 만드는 일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창원지회장이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을 권유했을 때 깜냥도 되지 않는데 부끄럽다는 생각에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행 여정을 정리할 계기가 될 거라는 말에 용기 내어 글을 썼다는 이득창 님! 지금처럼 꾸준히 정진해서 2년 후에는 개인사가 말끔히 해결되길 기대해 봅니다.

글_이득창(경남지부 창원지회)
정리_손해경 희망리포터(경남지부 창원지회)
편집_도경화(대경지부 구미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3. 정일사 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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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특히 모 아니면 도 라는 습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저도 꾸준히 정진해서 습을 이겨내고 싶습니다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06-02 18:19:03

박별빛

저만 잘 살면됩니다.^^
공감합니다.
글을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8-19 12:40:57

견조 백창열

만날때마다 싱글벙글이신 우리 거사님
이런마음으로 생활하시니 그러시구나 느낍니다.
정진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함께해서 든든하고 아름다운 도반이십니다
봉림사지를 내집보다 더 잘가꾸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2022-08-19 1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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