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
내 '까시'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21년 정토행자상 복지상을 받으신 안기숙 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젊은 사람이 수행을 열심히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화상 인터뷰에서의 첫인상은 ‘친근하고 푸근한 언니’ 였습니다. 인터뷰 내내 이어진 밝은 웃음소리는 20년 넘는 수행 생활로 얻어진 여유와 편안함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입담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한 경험에서 나온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가정 법회와 거리 모금 현장을 같이 지켰던 아이들이 그 덕분에 잘 자랐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안기숙 님. 어떤 활동들을 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김진영 희망리포터: 2021년 정토행자상 복지상을 받으셨는데요. 현재 맡고 계신 소임과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기숙: 현재 저의 소임은 통일특별위원회(이하 통일특위) 충주지회 제천 모둠장과 제천 행복센터 센터장입니다. 저는 그저 맡은 소임에 따른 역할을 했고, 수행자로서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준다니 이상하더라고요. 사실 안 받고 싶었어요. 어색하고 민망합니다.

2018 행복학교 반찬나눔(왼쪽에서 두번째)
▲ 2018 행복학교 반찬나눔(왼쪽에서 두번째)

내 이웃이 잘사는지 들여다 보는 마음으로

김진영 희망리포터: 복지상 수상 내용이 ‘행복시민들과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꾸준히 도우며 지역 담당 공무원과 연계하여 지역복지 증진에 기여함' 이였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기숙: 행복시민들과 함께 주변의 한부모 가정, 다문화가정의 아이, 가정폭력을 피해 사는 한부모 가정,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을 방문하여 반찬 지원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행복시민들이 그분들의 언니처럼, 이모처럼 살펴주었어요. 도와준다는 개념보다는, 내 옆에 사는 이웃이 잘사는지 들여다봐 주는 느낌으로요.

어느 날, 행복시민모임에서 가정폭력을 피해 아들과 원룸에서 사시는 분의 이야기를 했어요. 열일곱 살 아들과 돌아눕기도 비좁은 공간에서 일회용 가스레인지로 밥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분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행복시민 한 분이 눈 밑 주름성형 비용으로 모아두었던 백만 원을 선뜻 내놓으셨어요. 또 어떤 분은 농산물을 팔아 50만 원을 내겠다고 약속하셨어요. 다른 분은 이사 가면서 200만 원을 주시고, 또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400만 원 넘게 모았습니다. 200만 원은 보증금하고 나머지로 가전제품이나 가재도구 등을 마련하려는 이사계획 중에 그분의 치아가 전부 빠지고 다리마저 못 쓰게 되었어요. 재활용센터에서 분리 작업하며 생계를 잇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이사는 나중 문제가 되었어요. 병을 고쳐주고 생활이 되도록 해주는 게 코앞에 닥친 문제로 느껴졌어요. 제천의 병원에서 치료가 안 되어 원주로, 거기서도 안된다 하여 충주의 큰 병원으로, 또 거기서도 안되어 삼성서울병원으로 오가며 치료했습니다. 그렇게 병의 원인을 찾아 지속적인 치료를 받게 하고, 정부로부터 장애 등급도 받게 했습니다.

제천행복센터 행복시민 전체회의(두번째 줄 세번째)
▲ 제천행복센터 행복시민 전체회의(두번째 줄 세번째)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행복 시민들이 동행해주고 도움도 많이 주었어요. 행복시민들은 요청만 하면, 반찬도 뚝딱 만들어 주고, 후원금도 쑥쑥 냅니다. 우리나라에는 마음을 열기만 하면,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약사 선생님들도 틀니 하는 데에 보태라고 백만 원 넘는 돈을 선뜻 주고, 생활비로 쓰라며 현금을 내주기도 했어요. 코로나 재난지원금의 일부를 주신 분들도 있었어요. 장애 등급을 받으려면 준비서류가 많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었어요. 기초생활 수급이나 장애등급 신청과 긴급 생활비 지원 등을 우리 행복 시민님들이 함께 가서 도와줬어요. 아무래도 혼자 가서 이야기하기에는 절차도 잘 모르고, 용기도 나지 않는 것 같아요. 행복시민님들이 공무원님들과 소통도 원활하게 하고 많이 도와주려고 애쓰셨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된 건데, 갑자기 저더러 상을 받으라니 어색했습니다. 왜 당신이 나서서 그걸 하느냐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지인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어요. 사실, 저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자려고 눈을 감으면 눈앞에 아른거려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분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외면하고 두 다리 뻗고 그냥 잤을 것 같아요.

저는 언니, 오빠, 삼촌, 고모, 할머니 등 친인척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족과 이웃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울타리이고 보호자인지를 이번에 잘 알았어요. 지금도 기도하면서 문득문득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신백아동복지관: 석진관장님과 행복 시민
▲ 신백아동복지관: 석진관장님과 행복 시민

앞으로도 주변에 그런 분들을 보면, 다 돕지는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려고 정토 행자가 있고, 통일 특위, 행복센터가 있는 거니까요. 어려움에 부닥친 분들이 보통의 삶을 누리며 나와 같은 이웃이 되는 것,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지역의 이웃으로 함께 지내는 것, 그것이 목표입니다.

행복한 수행, 행복한 나눔, 행복한 실천

김진영 희망리포터: 통일특위와 행복센터, 행복 시민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안기숙: 통일특위는 평화재단 산하 특별조직이어요. 소임은 행복학교1 진행과 홍보활동, 행복시민모임 운영입니다. 행복학교 과정인 마음편, 관계편, 심화과정 모두 이수하신 분들 중 희망하시는 분은 행복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이 모여 활동하는 것이 행복시민모임이고, 그 모임들이 모여 센터의 개념으로 활동하는 것이 행복센터입니다. 행복한 수행, 행복한 나눔, 행복한 실천으로 나 자신과 사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모임입니다. 행복, 평화, 환경, 구조적 불평등과 관련된 활동을 합니다. 시민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이고, 온라인으로 모여 즉문즉설을 들으며 수행의 관점을 잡고, 사회적 실천을 의논하는 형식으로 운영합니다. 주 1회 정기모임을 하며 그간 살았던 이야기도 나누는 편안한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김진영 희망리포터: 정토회와 인연 맺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기숙: 제가 스님 법문을 처음 들었던 때가, 1999년 백일법문을 시작하신 날, 그날이 우리 막내아들 태어난 다음 날이었어요. 그 전날 병원에서 막내를 출산하고, 다음 날 집에 돌아와 젖을 먹이면서 라디오를 틀었는데 우연히 불교방송이었어요. 한 분이 강의하는데 그 강의가 한 번 듣고 흘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공테이프를 얼른 가져다가 녹음하면서 들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계속 스님 법문과 강의를 라디오로 들었어요. 아이가 18개월 될 무렵, 스님이 청주 법당으로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갔어요. 법당도 아니고 개인주택의 방 하나를 튼 곳에 30~40명이 모여 있고, 스님은 〈금강경2〉 하편을 강의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처음 스님을 뵈었는데, ‘아, 이분을 따라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스님이 커 보이고 기운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었어요. 그 당시 스님이 막 인도에 다녀오신 직후였는데, 법문은 칼같이 하시던 분이, 나누기할 때의 모습은 새까맣게 타고 바짝 마르시고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모습에 ‘스님 혼자서 저 큰일을 다 하실 수 있으려나, 나라도 도와드려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 스님이 너무 잘났고 너무 씩씩하셨더라면 같이 안 했을 거 같아요.

2.2003. 3.1 가족 거리모금: 업은 아이(막내), 분홍색모금함(큰딸), 판넬 목걸이(큰아들)
▲ 2.2003. 3.1 가족 거리모금: 업은 아이(막내), 분홍색모금함(큰딸), 판넬 목걸이(큰아들)

아이들, 남편과 함께 2시간 떨어진 청주법당을 다니다 스님과 묘덕법사님의 제안으로 제가 사는 제천에서 가정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월간정토모임, 금강경법회, 불교대학을 저의 집에서 5살, 7살, 13살인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북한동포돕기 거리모금할 때는 제 아이들만이 아닌 남편의 제자들인 중학생 아이들과 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했습니다. 복지, 환경, 평화 여러 활동을 두루 다 하고, 거기에 마음공부까지 할 수 있는 정토회는 저에게 종합선물 세트 입니다.

남들은 물놀이, 우리집은 명상수련

김진영 희망리포터: 정토회 회원으로서 본격 활동을 시작하신 시기는 언제이고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안기숙: 제가 〈천일결사3〉 3-8차에 입재했어요. 그때는 아이들이 어리니까 매번 〈입재식4〉에 참석하기가 힘들어 남편과 번갈아 참석했어요. 명상 수련도 교대로 오갔는데, 그러다 보면 여름이 훌쩍 다 지나가곤 했어요. 남들은 물놀이 가고, 휴가 여행 가는 철에 우리 집은 명상 수련, 백일기도, 실천과제 하다 보면 여름방학이 거의 다 가버리는 거예요.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 친정에 농사일 도우러 잠깐 갔다 오면 끝이에요. 그때 애들하고 어디 놀러 가 본 기억이 없어요. 청주법당에서 시작해서 제천에서 가정법회 3년하고, 불교 어머니회관으로 옮겨 활동하다 법당 만들고 2019년부터는 통일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4차 천일결사 회향식
▲ 4차 천일결사 회향식

김진영 희망리포터: 통일특위나 행복센터 모두 새로운 시스템을 개척해야 하는 활동인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안기숙: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특위의 어려운 점은, 정해져 있지 않은 지역 실천 활동을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요.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누가 하라는 것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조절하며 해나가야 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가 더 크니까 하는 것 같아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활동가들과 힘을 모아서 해내는 그 과정들이 굉장히 새롭고 유익해요. 처음에는 행복학교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ppt나 프로그램이 따로 있지 않고, 법문 127개 중에서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맞는 것을 골라서 했어요. 그때그때 외부 영상이나 프로그램으로 새로 만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3년을 하면서 프로그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마다 계속 바꿔나가면서 지금의 행복학교 프로그램이 됐지요.

힘들 땐, 도망갔습니다

김진영 희망리포터: 힘들었던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안기숙: 도망갔습니다. 2010년도 7차 천일결사 시작할 즈음 저를 대신할 후임이 있길래 ‘딱 1년만 도망갔다 오자. 정토회 없이는 못 사니까 딱 1년만 쉬고 돌아오자’라고 혼자 다짐하고 살며시 도망갔습니다. 스님이든 법사님이든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그대로 숨어버렸습니다. '돌아오면 되지 않겠나'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법당
▲ 개인법당

제 마음 밑바닥에 늘 ‘나는 이제 할 바를 다 했다’가 있었어요. 이 일을 정말 좋아하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늘 내가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라도 도망가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남편과의 불화도 한몫했지요. 부부가 함께 수행하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을 상대에게 적용하기 때문에 요구 기준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요. 남편이 수행을 안 하면, 내가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기대치가 없는데, 같이 수행하고, 밖에서는 사회활동가로서 존경받고 있으니, 제가 남편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더 높은 거예요. 남편이 피곤해서 저에게 짜증을 내면, 이율배반적이라 느껴져 싫은 거예요. 그런 과정이 누적되면서 관계 개선의 기미가 안 보였어요. 〈나눔의 장5〉에서나 법사님께 다 내놓고 이야기했으면 되었을 텐데 그때는 착한 병에 걸려서 조금만 내놓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으며 속으로는 ‘얼른 도망가서 남편과의 문제부터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관계를 회복하고 돌아오려 했어요. 함께 수행하는 부부가 싸움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자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혼자 수행해도 아무 문제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혼자 해보니 삼보 중에 승보가 왜 들어가는지,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요. 법사님의 안내, 함께 정진하는 도반들이 저의 수행에 정말 소중한 보물임을 알았어요. 그래서 딱 1년 후 돌아왔습니다. 정토회에 실망하거나 싫어서 나간 게 아니라, 내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돌아오는 마음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법당철거 후, 개원회원과의 만남으로
▲ 법당철거 후, 개원회원과의 만남으로

내 '까시'가 다 어디로 갔을까?

김진영 희망리포터: 지금은 거사님과 안 싸우시나요?

안기숙: 싸울 일이 별로 없어요. 화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원래 예민하고 까칠한 스타일로 지켜야 할 것은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관이 엄청 강했어요. 그걸 충청도 사투리로 ‘까시럭 지다’라고 해요. 그런데 그 까시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화나고 서운했던 것들이 행복학교 참가자들 만나고, 도반들과 같이 활동하며 다 없어졌어요. 매년 명상수련도 빠지지 않고 한 것도 많이 도움 됐어요. 제가 명상수련을 딱 한 번 빠졌는데, 정토회에서 도망가 아버지 병간호했던 그해여요. 명상과 기도 덕분에 내가 화낼 만한 일이 있었나를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서로 각자의 일을 하느라 바빠 싸울 일이 점점 줄어들기도 했고요. 상대에 대한 요구가 점점 사라지면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도 들어요. 게다가 복지활동하며 어려운 분들을 만나다 보니, 제가 사는 정도를 불평하고 원망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세상에 대한 욕심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머리로 법문 듣는 거와는 다릅니다. 현장에서 늘 어려운 모습들을 보면 욕심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김진영 희망리포터: 세상 사람들이 다 다르다고 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힘들지는 않았나요?

안기숙: 정말 달라요. 나와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내 마음에 완벽하게 쏙 드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순간 화나고 보기 싫은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데, 일하면서 그 사람 없이 일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잖아요. 스님이 말씀하셨듯, 내가 세운 원을 성취하려면 이분들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나 혼자서는 못하잖아요. 그리고 나머지는 명상 수련, 법문 듣기, 〈정일사6〉 정진, 〈나눔의 장〉 등등 잘 짜인 수련 과정을 통해 그때그때 내 마음을 조금씩 덜어내었습니다. ‘화낼 일이 없다 그러는데 진짜 그러네, 저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 그러는데 진짜네’ 하는 순간들과 만나면서 해방되는 느낌이 들어요. 연습이 쌓이면서 점점 해결됩니다.

예전에는 정진과 수행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 웃고, 맛있으면 맛있게 먹으면서 편하게 삽니다. 그리해도 제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거나 오계를 어기지는 않습니다. 20년 동안 헛공부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좀 강한 도반이 와도, 가볍게 ‘왜 그렇게 강해. 그러지 마.’하면서 웃으며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03.7.19 월간정토모임: 묘덕법사 상담법회
▲ 2003.7.19 월간정토모임: 묘덕법사 상담법회

기도가 키운 아이들

김진영 희망리포터: 가정 법회에 참석했던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합니다.

안기숙: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게, 처음 스님을 뵙고 금강경 법문 들은 후 참회계 할 때였어요. 그때 ‘다겁생래 지은 업장...’ 하면서 절을 하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와 10살 큰 딸아이를 보는데 너무 미안한 거예요. 내가 어떻게 애한테 짜증 내고 혼내고 학습지를 그렇게 시키고 학원을 보내고, 3살짜리를 한글 가르치고 영어 가르치고 피아노에 태권도에. 세상에 애를 학대해도 보통 학대를 한 게 아닌데, 그러면서 또 화내고 짜증 내고 한 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절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애들도 ’우리 엄마가 요새 왜 이렇게 순해졌지?'그럽니다.

가정법회
▲ 가정법회

기도 시작할 때 3살, 5살, 10살이었던 아이들이 지금은 31살, 26살, 24살 됐습니다. 다 잘 자라줬고 다들 편안합니다. 제가 아이들 어릴 적부터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계속해서 그런 것 같아요. 큰아이 결혼 준비하며 상견례와 다른 여러 절차도 어렵지 않게 치렀습니다. 다른 두 아이도 다 독립했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스스로 벌어서 등록금 냈습니다. 부족할 때 빌려 간 등록금도 취직 후 다 갚았습니다. 아이들끼리도 ’엄마 아빠 도움을 더 적게 받고 독립하는 사람이 최고로 멋있는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김진영 희망리포터: 그래도 아이들이 셋이라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고비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안기숙: 정토회 활동하며 도반들과 부대끼기도 하고 갈등 상황을 풀어야 할 때도 많아요. 또 전법 하며 새로운 상황들에서 뛰어넘어야 하는 감정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거리 모금하며 견뎌내야 하는 낯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 보면 아이들의 사춘기는 봄바람 같은 거예요. 오히려, 아이들이 저를 조용히 도와주었어요. 처음에는 거리 모금하는 것이 창피하니, 하지 말라고 하고, 제가 보통 엄마들처럼 화장이나 파마를 안 하고 늘 소박하게 다니니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지구환경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는 엄마를 잘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또 함께 환경 실천도 하고, 엄마가 돕는 사람들을 함께 도우려고 합니다.

2021년 가족사진(딸 결혼 1주일 전)
▲ 2021년 가족사진(딸 결혼 1주일 전)


친근한 이웃 언니 같던 안기숙 님의 첫인상이 이야기를 들을수록 중심이 확고부동한, 강단 있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안기숙 님의 시원한 웃음소리를 길어 올릴 수 있는 건 수행이라는 우물을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맑고 깊은 수행의 우물, 저도 시원한 수행 한 바가지 해야겠습니다.

글_김진영
편집_최미영(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1.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2.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3.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4.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5.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6.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전체댓글 13

0/200

일광명김민지

가족사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도반이 남일때보다 가족이라면 더 어려울거라고 짐작을 하곤했는데...

2022-08-13 17:45:49

써니

가정법회하실때 저희부부가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작은아이 동욱이가 휴지대신 손수건 쓰고 화장실에 걸려있던 천조각들을 보며 많은걸 느꼈었죠~
2005년 우리부부가 충주에서 제천을 오가며 공부했던 터전들이 이렇게 만들어졌었구나~ 역사를 느끼며 뭉클하고 많은걸 돌아보게 됩니다...
참 고맙습니다.^^♡

2022-08-13 09:06:51

손미옥

수행하고 봉사하며 살아온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현장에서 봉사하고 실천하는 모습 감동입니다. 벌써 아이들이 그렇게 컸군요. 함께 해나가니 참 좋고 감사합니다()

2022-08-12 22:58:29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