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
무엇이든 집어내던 사람에서
'예'하는 법사가 되기까지

오늘은 정토행자상 특별상을 받은 향등 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할 말이 없다’라며 인터뷰를 멋쩍어하던 법사님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해서 질문 목록을 충분히 만들까, 고민하다가 선입견 없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어졌습니다. 법사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흐름대로 질문을 이어가 보기로 하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대표로 '대신' 받은 상

김진영 희망리포터: 이번에 정토행자상 특별상을 받으셨는데요. 현재 맡고 계신 소임과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향등 법사님 : 현재 정토회 재산 관리 위원으로서, 재산관리 업무와 JTS 공동대표 소임을 맡아 법인운영과 재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요. 남양주지회 부담당 법사를 겸직하고 있습니다. 수상 소감이라기보다는, 특별상을 받게 되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뭘 잘해서 주신 상이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이번에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전국에 있는 임차 법당들을 정리하고 임차계약을 해지했어요. 그 과정에서 임대차 계약 해지 관련 업무를 재산관리부와 행정처가 주관하고 각 지역 법당의 총무님들과 행정 담당자들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그게 2020년 8월부터 2021년까지 짧은 기간 내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온라인 조직개편으로 다른 소임을 맡았음에도 전임자로서 법당정리업무에 끝까지 책임을 다해주신 행정처와 각 지역 법당 관련 활동가들을 대표해서 제가 대신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토행자상 특별상, 향등 법사님
▲ 정토행자상 특별상, 향등 법사님

그리고 작년부터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면서 지역법당을 정리하고 으뜸절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행정적 처리와 재산관리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뜻하지 않게 상을 받게 되었네요. 사실 제 소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상 받는 것은 좀 민망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하는 이 일이 바로 '수행'

김진영 희망리포터: 재무 담당이라는 소임이 어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고 냉정한 업무잖아요.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향등 법사님: 6차 천일에 개설했던 가정 법회를 2010년경부터 지역 법당으로 확대 개원하면서 전국에 임차 법당인 164개로 늘어났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직전까지도 법당을 새로 내려고 계약 진행 중이던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인해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게 되면서 계약기간이 만료된 법당뿐 아니라 기간이 10년 가까이 남아있던 법당도 해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당연히 건물주와의 합의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부족한데, 전국 각지의 건물주들과 전화 통화로만 계약 해지를 진행하자니 소통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안정적인 월세 수입이 걸린 일이다 보니 각자 자기 입장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다 끝나는 식이었어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전화통을 붙들고 무슨 말인지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각 지역 사투리를 들으며 귀도 아프고, 속이 타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도 전화로만 오가다 보니 오해가 생기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예상은 했었지만, 전국 160여 개 법당의 계약 해지를 동시에 추진하는 과정이 절대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그나마 초창기부터 지역 법당의 임차 계약을 대부분 제가 진행했던 덕분에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대다수 건물주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일이 힘들다거나 괴로워서 못 하겠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일이 힘들수록 그 일을 해결하면 그만큼 자기 역량이 커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자기 전에 그날 하루를 돌아보면 절하고 명상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수행이구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을 통해 제가 또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20년 정초 순회법회때
▲ 2020년 정초 순회법회때

복 복, 무슨 복

김진영 희망리포터: 정토회가 다른 단체에 비해 일련의 과정들이 좀 엄격한 것 같은데요, 그런 엄격함 속에서도 꾸준히 흔들림 없이 수행을 이어오고 계시는 비결이 있을까요?

향등 법사님: 회원으로서 기준은 엄격하게 제시하고, 무보수 자원봉사로 소임을 맡아 일하는 게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무슨 복인지 그런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소임도 월급을 받지 않는 순수한 봉사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토회의 그런 체제가 좋아서 점점 정토회에 빠져든 경우이기도 하고요. 30년 전 처음 홍제 법당에 찾아가 법문을 들으면서 다른 절과는 확연히 다른 그런 부분이 마음을 움직였어요.

그때는 오로지 일뿐

김진영 희망리포터: 정토회와 인연 맺게 되신 계기를 듣고 싶어요.

향등 법사님: 지금은 제가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데, 그 당시 저는 힘들다거나 괴롭다고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았습니다. 이 인터뷰도 정토 행자로서 ‘그냥 합니다’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사실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다른 분들한테 보여드릴 만한 제 이야기가 없습니다. 다른 분들은 수많은 삶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행하고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런 경험이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만 알았고, 직장 다닐 때는 일만 알았고, 대학에서 잠깐 강의할 때는 또 그것만 알고 살았습니다. 정토회 와서 소임을 맡으면서부터는 또 그 소임에만 집중하고 살았어요.

제가 일할 때는 다른 일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도 우리 아이들한테 미안한 점이 많아요. 아이들 학교 행사에 참석하거나 살뜰히 챙겨줘 본 일이 없어서요. 직장 동료가 자녀 학교 일로 휴가를 낸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일에만 빠져 살았습니다. 직장에서는 일 잘하는 부하 직원이면서 어려운 상사였고, 집에서는 일만 아는 사람이었지요. 우리 보살이 출근을 못 할 만큼 아프다고 할 때도 저는 내 일 하러 간다며 휙 가버리는 식이었고, 보살이 혼자 입원하고 퇴원한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게 살았어요.

홍제법당 시절 94년 3월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사찰순례때 유수스님과
▲ 홍제법당 시절 94년 3월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사찰순례때 유수스님과

보살 따라 시작한 새벽기도

처음에 정토 법당에 찾아간 것도 내 괴로움 해결하기 위해 수행하려고 간 것이 아니에요. 그냥 보살 따라갔는데 이삼백 명이나 되는 대중들이 쌀 한 톨 흘리지 않고 공양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제 마음이 움직였던 거예요. 제가 지향하는 환경 문제를 정토회가 정확히 실천하는 모습을 그때 봤습니다. 그 후로 틈나는 대로 법문 듣고 아이들과도 함께 정토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데리고 같이 법당에 갔던 우리 보살은 그다음 날부터 바로 천일결사에 입재해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하고 있고요. 저도 그런 보살을 지켜만 보다가 6년이 지나 3-2차 때부터는 정식으로 입재했어요.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새벽기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고마운 것은, 칠십이 된 이 나이에도 큰 어려움 없이 기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저는 보살과 함께 정진할 수 있으니 다른 분들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조건이기도 합니다.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수행과 활동을 해오신 다른 분들을 생각하면 저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제가 특별히 수행을 열심히 해서 이룬 게 없거든요. 어려서는 부모님이 특별 대우를 해주셨고 형제들도 잘 해줬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장가를 잘 가서 아내가 뒷받침도 잘해주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정토회를 만나서 물 만난 고기처럼 활동하고 있잖아요. 공부가 되려면 특별히 장애가 있어야 하고 백척간두에도 서보고 해야 한다는데 제가 그런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무슨 복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잘 풀렸던 것 같아요. 부처님한테 특별히 잘한 것도 없고, 새벽마다 기도하라고 해서 그거 한 것 말고는 없어요. 아마도 어머니가 지어 놓으신 복을 제가 지금 다 받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1년 반포 열린법회때
▲ 2011년 반포 열린법회때

아직도 먹먹한 그 이름, 어머니

김진영 희망리포터: 어머니 이야기를 조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향등 법사님: 이게 병일 수도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서 말문이 턱 막힙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어머니 이야기를 잘 안 하려고 해요. 다른 부모들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제가 늦둥이로 태어나서 부모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게 지금도 부담으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29살 되던 해, 직장을 잡고 결혼도 하고 첫아이도 낳고 안정될 무렵에 어머니가 갑자기 위암 말기 선고를 받고 6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그 6개월 동안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고령에 저를 낳으셔서 그때 어머니 71세셨으니 적잖은 나이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신 게 제 마음에 한이 된 것 같습니다.

1980년 8월 고향집, 부모님
▲ 1980년 8월 고향집, 부모님

그래도 홀로 되신 아버지를 26년 동안 함께 살면서 손주들 키우는 재미로 외롭지 않게 해드릴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시아버지를 친아버지보다 더 잘 모시고 살아준 우리 보살한테는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지요. 그때 어머니가 힘들게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불교와 절에 대한 원망 심이 컸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 따라 절에 자주 다녔고 어머니 기도하시는 것도 많이 봤지만, 불교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다닌 것뿐이었어요. 주변에 선행도 많이 하시고 법 없이도 사실 어머님 같은 분이 왜 그렇게 일찍 돌아가셔야 하나. 절이나 기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절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93년도에 홍제 법당에서 법륜스님 법문을 듣고 '불교라는 게 이런 거구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을 내가 원망할 일이 아니구나, 때가 돼서 돌아가신 것이니 원망할 것도 없고, 어머니 오래 모시고 싶은 것도 나의 욕심일 뿐이구나'를 알게 됐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곧 긍정적인 사람

김진영 희망리포터: 분위기를 살짝 바꿔 보겠습니다. 정토회가 지난 몇 년 사이에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는데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 궁금해요.

2018.6 .24. 법사 수계식
▲ 2018.6 .24. 법사 수계식

향등 법사님: 제가 정토회 와서 가장 크게 변화된 부분이 수행자로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거예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이렇게 하면 되지'라는 긍정적인 자세로 돌이킬 수 있는 게 저한테는 큰 강점이었습니다. 정토 행자의 목표인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게 결국 긍정적인 자세라고 봐요.

온라인으로 전환하기로 하는 과정에서 두북공동체에서 법사단이 모여 여러 차례 공청회를 하고 수많은 연구를 했어요. 그러다가 2020년 8월, 왜관 법당 정리를 시작으로 2021년 8월까지 모든 지역 법당을 정리하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처음 결정이 났을 때는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부동산 계약이라는 게 계약과정보다는 해지 절차가 훨씬 어려워요. 게다가 하나도 아니고 160개가 넘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법당을 단기간에 해지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부정적인 마음이 먼저 일어났어요. 건물주 동의 없이는 해지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거든요. 해지 절차 진행 과정에서 심하면 소송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어요. 마지막 순간에 주인이 마음을 바꿔서 소송까지는 안 갔지만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수행자라는 본분을 지키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이키다 보니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법사 수계식
▲ 법사 수계식

처음 코로나가 왔을 땐, 스님 법문에서도 그러셨지만, 길어야 1년이면 사라지지 않겠나, 낙관적인 전망을 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비워둔 법당의 월세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전국 법당의 월세가 일 년에 20억씩 들었거든요.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지출을 차지하는 법당 유지 비용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시급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토회가 아니면 결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저도 놀랄 정도로 발 빠른 대응이었고 신속한 전환이었지요. 수행이나 활동이 공간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코로나 같은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방법은 결국 온라인 정토회가 아니겠는가. 물론 나이 드신 분들이 컴퓨터 다루는 게 쉽지 않고, 집안에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어려운 분들도 있을 거고, 여러 부작용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지나고 보면, 저 같은 경우에는 '전환하기를 잘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수밖에 없겠다'라고 평가합니다.

93년부터 이어진 보살의 새벽 정진

김진영 희망리포터: 정토회 활동을 함께 하시는 보살님 이야기 살짝 부탁드립니다.

향등 법사님: 우리 보살은, 93년 3월 어느 날, 직장에서 전임자가 서랍에 두고 간 월간 정토를 보고, 이런 데가 있다고 가보자고 했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네 식구가 홍제 법당에 찾아간 다음 날부터 보살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정진했습니다. 정진이 끝나고 밥해서 아이들 도시락 싸주고 자기도 출근했고요. 그걸 지금까지 하루도 안 빼놓고 계속 새벽 기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법사 수계도 받은 주명 법사 마경숙 님입니다.

2002년 11월  평화통일기원 천일기도 회향식 주명법사 마경숙 님과
▲ 2002년 11월 평화통일기원 천일기도 회향식 주명법사 마경숙 님과

2022년, 보살보다 먼저 일어나는 나

김진영 희망리포터: 30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수행해오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일 것 같은데요. 정토회를 만나 가장 크게 변화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향등 법사님: 가장 큰 변화는 만족할 줄 알고 긍정적으로 본다는 거예요. 제가 돈 많은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함이 없어요.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다리가 좀 아픈데 그래도 백팔 배는 할 수 있어요. 이명 증상이 있어서 귀에서 소리가 계속 나요. 눈은 백내장이어서 조금 멀리 있는 건 안 보여요. 결국 수술해야 하는데, 안과에서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미루고 있어요. 여러모로 불편하지요. 그렇지만 눈이 전혀 안 보이는 분도 있고, 다리가 불편해서 못 걷는 분도 있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저는 진짜 이 나이에 복이 터진 거예요.

제가 워낙에 작은 것 하나까지 집어내는 성격이라, 정토회와 부처님 법을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지요. 99년 6월 천일 결사에 정식으로 입재한 이후로 새벽 정진을 하기 싫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눈 뜨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그렇게 23년을 넘기다 이제는 새벽이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집니다. 지금은 제가 우리 보살보다 더 먼저 일어난다니까요. (웃음)


법사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토회가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역시 정진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정토회의 힘은 정진이예요!

글_김진영 희망리포터/경기광주지회
편집_조미경/경남지부/김해지회

전체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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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행

묵묵히 수행정진하시는 부부법사님 감동입니다.
감사드립니다.

2022-07-27 17:50:24

이무철

김기진 법사님! 대단한 정통불교를 수행하시는 행자이신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난관들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법사님의 온건한 불교심이 활활 불타오른것인듯 하니 부럽고 내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분도 불교에 매우 열정적이라, 서울 모 불교대학학원 **관리직으로 재직하고 있다는소식을 들었지요. 부러위요!

2022-07-18 11:25:39

정윤희

만족할 줄 알고 긍정적으로 보신다는 법사님 말씀이 마음이 닿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07-03 1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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