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일산지회
비난 받는 건 좋은 일이에요!

일산지회에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기꺼이 앞장서 주는 도반이 있습니다. '비난받는 건 좋은 일이다'라고 말하는 지원 담당 조현경 님. 잘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현경 님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불안함과 억울한 마음의 시작

저는 1971년 수색에서 태어났습니다. 결혼 4년 만에 태어나 집에서는 귀한 딸이었고, 친척들에게는 귀염둥이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동네 유지였던 큰아버지로부터는 유달리 귀염을 받아 마치 큰집 막내처럼 거의 큰집에서 살다시피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함께 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7살 때 큰 집과 어머니와의 잦은 불화로 관계가 틀어져, 외할머니가 살던 파주 운정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모님은 다시 친가가 있는 수색으로 돌아갈 마음에, 저를 수색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은 저를 학교에 데려다 줄 수가 없어,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오로지 어린 저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기차역에 내리지 못할까 불안하여 ‘한글을 빨리 배워야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씨를 익히니 장님이 눈을 뜬 것 같은 환희심과 함께 학교에 가는 불안감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
▲ 인도 성지순례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

어머니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무슨 물건이 깨지거나 동생들이 잘못하면 아무 잘못이 없는 저도 함께 단체 기합을 받았습니다. 배려심이 많은 아버지에게 화가 나도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저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꾹꾹 눌렀던 화가 분출될 때는 저를 많이 때렸습니다. 그로 인해 제 마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불안함과 억울한 마음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 같습니다.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중 사장님이 막냇동생을 소개하였습니다. 제 말을 잘 들어주는 남편을 보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T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의 수입이면 어린 시절의 지긋지긋한 가난을 더 이상 겪지 않을 거 같아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이런저런 갈등 속에서 남편은 시댁 식구들만 챙겼고, 어려움을 말하면 오히려 저를 시댁을 비난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저의 자존감은 점점 더 낮아졌습니다. 시어머님의 성화로 낳게 된 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전증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이 슬펐지만, 아이의 병이 친정 쪽에 유전적 문제가 있다고 탓하는 남편과 시어머니 때문에 더 괴로웠습니다. 치료로 고달픈 시간을 보내도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환경에서 자란 남편은 '집안일은 내 몫이 아니다'라는 입장이 분명했습니다. 가사 분담은커녕, 1년에 한 번 아이가 수면 초음파를 받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날에도, 남편은 회사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아픈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남편에게 참 서운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맨 왼쪽)
▲ 인도성지순례(맨 왼쪽)

책임감이 강했던 나, 번아웃이 오다

시댁과 가까이 살면서 도움이 필요한 크고 작은 일들은 거의 제 몫이었습니다. 남편에게 하소연하면 “너는 시댁을 왜 그리 비난하냐?”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3년간 병을 앓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누구보다도 좋아하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꾹꾹 누른 채, 동생들을 통솔해 장례식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 친정어머니가 뇌출혈로 입원하고, 병원 간호를 하던 중 저는 번아웃이 왔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누워만 있었습니다. 친정도 안 가고, 시댁도 안 갔습니다. 친정과 시댁의 발길을 끊은 죄책감으로 악몽도 자주 꾸고,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파주 운정 행복센터에서 상담프로그램을 하던 중 법륜스님의 행복 강연에 갔습니다. 사이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연에 참여하지는 않고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았습니다. “자식이 어른이 되면 효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스님 법문에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았고, 저에게 해방의 열쇠를 딱 쥐여준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 매일매일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텃밭을 가꾸던 저는 ‘식물도 혼자 싹을 내어 이렇게 잘 살아가는데, 사람도 마찬가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유튜브만으로는 괴로움의 근본을 해결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2017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인경 지부 전법 사랑방에서 전법 중 (윗줄 맨 오른쪽)
▲ 인경 지부 전법 사랑방에서 전법 중 (윗줄 맨 오른쪽)

한 생각이 깨어지는 순간

법을 만난 환희심으로 어떤 소임이든 맡아보겠다는 마음에 2018년 봄 불교대학 사회자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 당시 운정법당은 개원한 지 얼마 안 되어 법당에 갓 들어온 사람들이 봉사를 맡았고, 저도 불교대학을 다니며 소임을 했습니다. 제가 천일 결사와 불교대학 담당소임을 맡고 있던 중 평가 회의에서 제가 이 소임들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도반들에 대한 배신감과 그 자리를 만든 총무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저의 자격 얘기가 계속 들려오면서, 활동을 접을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그 때마다 총무님이 잡아주었습니다. 저 또한 그만둘 생각만 들었지 막상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괴로웠습니다.

몇 주 법당에 안 나가기도 하고, 여러 수련 바라지도 가고, 법사님에게 괴로움을 내어놓기도 하고, 1,000배 정진도 하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괴로움은 더 해지기만 할 뿐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괴로웠고, 마주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몇몇 도반들이 법당을 떠났습니다. ‘혹시 나 때문에 나간 것이 아닐까? 그분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 한번 못했는데.... 내가 더 노력했다면 그분들이 남아있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하는 마음과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이겨내야 한다. 정진을 더 꾸준히 해라"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서원 행자 수계식
▲ 서원 행자 수계식

정진하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제가 괜한 고민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안 나가는 것이 아니다. 본인들이 결정하고 선택한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구나.’를 알았습니다. 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소임을 하며 상대를 제 생각의 틀에 끼어 놓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평불만이 많은 도반, 앞에 나서지 않는 도반, 계산하는 도반, 말만 많은 도반 등등의 틀에 상대를 놓은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계속 소통하며 부딪혀 보니, 그들은 제가 만든 틀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제 생각이 돌이켜지니, 도반들의 장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피하고만 싶던 마음은 없어지고, ‘나에게 정말 좋은 도반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난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어렸을 때부터 칭찬을 많이 받은 저는 비난 받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하면 혼자 상처받았습니다. 평가 회의에서 엄청나게 비난을 받고 나니, 비난받는 것의 타격감이 많이 줄었습니다. ‘비난받는 건 정말 나쁜걸까? 칭찬받는 건 정말 좋은 건가?’ 이런 의문들을 연구를 해보니, ‘비난 받으면, 비난받는 만큼 개선해 나갈 기회이니, 비난받는 것이 나쁜 것만이 아니구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를 비난한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제 상처도 치유할 수 있었고, 수행도 깊어졌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비난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비난받는 순간은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한 생각 돌이키면 괴로움을 소멸시킬 소중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제가 잘났다는 걸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 저는 평범한 사람이 좋습니다. 잘난 사람은 계속 잘 나야 하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모둠장 회의(윗줄 맨 왼쪽)
▲ 모둠장 회의(윗줄 맨 왼쪽)

꾸준한 정진이 바로 제 수행의 힘입니다. 아침 정진을 하면서 ‘아, 내가 또 그런 마음이 들었구나!’라며 저를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올라오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입니다. 정진은 ‘내게 그런 마음이 있구나, 내가 아직 상처가 덜 치유되었구나, 그래도 너는 잘 살아왔다. 그리고 이 길을 잘 선택했다.’라며 저 자신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시간입니다.


'이 소임이 나에게는 참 큰 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자세하고 상세하게 본인의 수행담을 나눠주는 도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에너지를 얻습니다. 도반들이 겪은 어려움이 저의 어려움과 다르지 않고, 그런데도 극복해 나아가는 모습에, 저 또한 희망의 빛을 찾아갑니다. 소중한 도반 현경 님, 고맙습니다.

글_김세영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일산지회)
편집_최미영(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전체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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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하

현경님의 표정이 언제부터인가 아주 밝고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느꼈는데,
그 미소가 얼굴에 새겨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헤쳐오셨는지...
비난받는 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임을 알려주셔서
저 또한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짐해봅니다.
고맙습니다.

2022-06-22 09:23:55

김선이

감사합니다ᆞ
수행담을 읽으며 제 호습을 보게됩니다ᆞ
제꼬라지하고 너무비슷합니다ᆞ
참회하고 다시 마음잡아봅니다ᆞ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6-13 07:56:48

일향화

새물정진 도반님~반갑습니다 수행담 소중하게 잘 읽었습니다^^멋지세요~~

2022-06-13 07: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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