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주지회
모든 사람에게 숙일 수 있습니다

“저같이 평범한 사람은 정토행자의 하루 이야깃거리가 못 됩니다.”라고 계속 인터뷰를 거절해온 이경옥 님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불교대학 졸업 후 수행 법회 나누기 기록소임을 시작으로 11년째 정토회에서 봉사하고 있으며, 지금은 경주지회 경전 대학 담당과 모둠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온화한 미소와 친절한 안내로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미소가 편안한 그녀의 10년 전 모습은 어땠을까요? 지금부터 따라가 봅니다

미소 속에 숨은 슬픈 내면 아이

어린 시절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세상에 무서울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병명을 모른 채 서서히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 내고 화내는 아버지를 원망했고, 힘든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2019년 선유동 연수원에서 저녁반 팀장 회의 마치고
▲ 2019년 선유동 연수원에서 저녁반 팀장 회의 마치고

저의 가정환경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싫어서 항상 웃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남들이 볼까 봐 부끄러워했고, 그런 자신이 싫었습니다. 이런 두 마음 때문에 겉으로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우울하고 슬펐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중적인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이러한 자책감은 ‘아버지가 아프니 우리 가족은 웃는 것도 행복한 것도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천방지축이던 어린 소녀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자기표현을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하면, 제 생각을 어두운 마음의 우물 속에 깊숙이 꼭꼭 숨겼습니다.

욕심 많은 엄마

아버지의 병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인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시댁에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시댁 일에도 충실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가 다 한다’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무거운 책임감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인해 몸은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마음에 안 들면 화도 냈습니다. 남편에게도 비수 같은 뼈있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큰 아이는 친정어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다섯 살이 되어 할머니를 떠나 저희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아들에게 저는 매일 학습 문제로 화내고 소리 질렀습니다. 대학을 가지 못한 저의 열등감을 아이를 통해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시댁 동서들의 아이들보다 우리 아이들이 더 잘 돼야 했습니다. ‘아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돼야 한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아이의 마음은 보지 못하고 몰아붙였습니다. 딸은 엄마와 오빠의 전쟁을 지켜보면서 눈치껏 알아서 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엄마는 엄마와 생각이 다르면 다 이상하다고 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되새겨 보니 정말로 제 마음대로 하려고 했고, 제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당시 절을 하면 머리가 무거웠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머리로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음으로는 부정하고 있으니 머리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1년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수행을 시작한 후 쓴 수행일지
▲ 2011년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수행을 시작한 후 쓴 수행일지

두 얼굴을 가진 비겁한 사람

직장동료의 소개로 2011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을 공부하면서 ‘이런 공부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고, 수업방식도 참으로 특이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나누기를 할 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양동이 뒤집어쓰고, 색안경 끼고 세상을 본다는 법문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딱 저를 가리키는 것 같았습니다.

법륜스님이 말한 괴로움의 원인인 세 가지를 제가 다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 제 욕심대로 돼야 한다는 생각에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둘째, 자녀들이 제 성질대로 안 된다고 화내고 짜증냈습니다. 셋째, 인간관계에서 ‘내가 잘한다, 그래도 내가 옳다’라는 시비분별이 강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부정적이고 괴로운 삶을 살면서도, 밖에서는 늘 웃으며 친절한 두 얼굴을 가진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천일결사 입재 후 새벽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첫 번째 기도문이 ‘부모님 감사합니다.’ 두 번째 기도문은, ‘남편은 부처님입니다. 감사합니다.’ 세 번째 기도문은, ‘아이들을 믿고 지켜보겠습니다.’였습니다. 저의 기도문은 모두 가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21년 8월 경주 봉황대에서 가족 단합대회, 맨 앞쪽이 경옥 님
▲ 2021년 8월 경주 봉황대에서 가족 단합대회, 맨 앞쪽이 경옥 님

남편은 이런 저를 ‘경질(신경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지켜봐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부정적인 엄마 밑에서도 착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지금 감사할 일들이 넘쳐나는데도 저는 인식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했습니다. 법륜스님 법문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가족에게 숙일 수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숙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 바로 나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하고 있을 때 대부분 명심문을 ‘예 하고 그냥 합니다’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명심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수 법사님께 “왜 무조건 예 하고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법사님의 반문에 "하기 싫을 때도 예 하고 해보니까 저에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다가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아 그냥 해보니 나에게도 좋구나.’ 지금은 하기 싫어도 하고, 하고 싶어도 그냥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아버지가 아팠던 과정을 돌아보았습니다. 다리를 절 때는 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목발을 짚고 걸을 때는, 그래도 절 때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휠체어를 탔을 때는, 그래도 목발을 사용하여 스스로 걸을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 주어진 현실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압니다. 행복은 지금, 여기, 바로 저에게 있습니다. 지금은 주어진 모든 현실이 고맙습니다.

경주 황성공원에서 황성 모둠 불교대학 홍보 중, 맨 앞이 경옥님
▲ 경주 황성공원에서 황성 모둠 불교대학 홍보 중, 맨 앞이 경옥님

종합 선물 세트, 수행, 보시, 봉사

수행은 7-2차 천일결사 입재를 시작으로 온라인 공동랜선 정진으로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가족과 모든 대인관계가 편해지니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처음 보시에 대해서는 ‘나도 못 사는데 누굴 돕는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인연의 도움으로 제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그렇게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무도 돈을 주지 않지만, 정성을 다하는 봉사도 큰 보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수행, 보시, 봉사는 하나의 꾸러미로 제 삶을 밝히는 종합 선물 세트입니다. 저는 이 선물을 매일 받고 있습니다. 원이 있다면, 제가 받은 이 선물을 많은 분이 인연이 되어 받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법 만난 인연에 감사하며, 어제나 오늘이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제 삶을 지금 이대로 사랑합니다.


자기 삶이 너무 평범해서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던 경옥 님의 사연을 듣고 나니, 소설책 한 권은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이는 그대로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까지 십여 년을 꾸준히 수행해 온 경옥 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속마음까지 활짝 웃는 경옥 님은 진정한 수행자입니다. 가족에게 숙일 수 있으면 누구에게나 숙일 수 있다는 말이 제 마음을 울립니다.

글_신정순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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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숙

글속에서 진심을 느끼며 정말 열심히기도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작심삼일로 주저앉는 제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머리로 이해한다면서 실천못하는 나의 어리석음과
아집 정말 업이세구나 생각하며 보살님께 진심으로
머리를 숙입니다

2022-06-24 13:37:53

유동란

글속에 따뜻한 봄날에 지나가는 강도높은 비,바람을 만나서 ᆢ가을에는 풍성한 결실이 되어 머무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ㆍ저도 사람이 변한다는게 간단하게 느껴지만 저가 변하려니 간단 하지 않다는 것 을 느끼며 전 요즘 일상속 사람,물질등에서 내가 주인이 되려고 자꾸자꾸 저를 바로세우는 마음에 전염을 합니다 무상으로 다 주는 하루가 주인의 하루❤.

2022-06-15 05:19:42

박미순

가족에게 숙일수 있으면 모든사람에게 숙일수
있다
저는 반대로 하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2022-06-08 17: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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