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중울산지회
매화꽃처럼 꿋꿋하고 아름다운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맏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 집안 생활비에, 동생들 학비까지 책임지며 희생합니다. 오늘은 가족들의 나은 삶을 위한 밑거름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김춘자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엄마는 아빠가 되고, 나는 엄마가 되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딸 다섯의 맏이인 저를 당신과 닮았다며 많이 사랑했습니다. 손수건과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십 리를 걸어간 초등학교 입학식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버지 손 잡고 학교 간다고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습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뛰어놀던 저를 담임 선생님이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빨리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여덞 살인 저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힘이 빠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둘째와 경주 석굴암 입구에서
▲ 둘째와 경주 석굴암 입구에서

서른두 살 젊디젊은 엄마는, 새벽 4시에 저를 깨워 젖먹이 동생들을 맡기고 생선을 팔러 나가 해가 저물어야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아궁이에 불 때서 가마솥에 밥하고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하루는 학교에 늦어서 둘째 동생에게 ‘밥은 해놓았으니 동생들하고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니 동생들이 밥도 안 먹고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 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가 중천인 지금까지 굶고 있느냐며 둘째한테 마구 화를 냈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주위에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려면 이집 저집 한 명씩 보내라고 했지만, 엄마는 아버지 역할, 저는 엄마 역할을 하며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 살았습니다.

가출 그리고 가방공장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식 중학교에는 못 가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재건 중학교’라는 비인가 학교에 다녔습니다. 기저귀 가방 들고 막냇동생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엄마 몰래 짐보따리를 챙겨서 집을 떠나 동두천 어느 가방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친구 7명이 같이 갔는데 한 달도 못 버티고 모두 도망가고 저만 남았습니다.

엄마 혼자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벌어 보태야 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버텼습니다. 명절이 되어서야 집으로 갔습니다. 엄마는 제가 없어진 그 날부터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직장과 야학 공부를 병행하며 인생의 경험을 넓혀갔습니다.

가난하지만 자상한 남편을 만나

여행지에서 남편과 함께
▲ 여행지에서 남편과 함께

가장 아닌 가장으로 직장생활과 교회 청년회 활동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 회사 배구 코치인 남편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코치가 아파 나오지 못해서 시합 연습을 못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시 배구부 주장이었던 저는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코치 숙소에 갔습니다. 코치는 열이 펄펄 끓고, 편도가 부어서 말도 못 하고 물도 못 넘기고 누워 있었습니다. 어릴 적 동생을 보살피며 살아온 습관이 있어서인지 약을 사 먹이고 흰죽을 끓여 주며 “이것 먹고 빨리 낳아서 나오세요.”하고 직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남편은 약을 먹고 누워서 ‘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면 평생 마음고생은 안 하겠다’며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누나 넷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편. 저 역시 가진 것 없이 살아왔기에 마음만 맞으면 문제없겠다 싶어 3년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양가 어른들께는 결혼식만 올려 주면 알아서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비록 돈이 없어 생활이 어려웠지만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이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됐습니다.

이혼하는 딸 걱정이 아닌 내 걱정

남편 일자리를 따라 정착한 울산에서 아이 셋을 낳았고, 둘 다 꾸준히 일해서 점차 생활은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5년 차 큰딸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이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제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야 고생 끝나고 편하게 사나 싶었는데, 시집간 딸 때문에 힘들어질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힘든 마음에 “아이는 두고 너만 오라”고 했더니 “차라리 나보고 죽으라고 해라. 엄마 맞느냐?”며 큰딸은 악을 쓰며 대들었습니다.

동네야유회에서 김춘자 님의 가족
▲ 동네야유회에서 김춘자 님의 가족

지금 돌아보니 딸이 아니라 어려움을 감당해야 할 저 자신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괴로움을 덜기 위해 심리 상담도 받고 봉정암, 상원사, 통도사 등 이 절 저 절 다니고, 용하다는 점집까지 찾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미움과 원망만 쌓여 갔습니다. 그러던 2015년 여름, 곁에서 늘 고민을 들어주던 언니가 불교대학을 권유했습니다. 법륜스님과 정토불교대학은 몰랐지만, 불교 공부가 하고 싶어 그해 가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법으로 물들며 보이는 꼬락서니

정토회에서는 전에 다니던 절과는 달랐습니다. 스님 법문을 영상으로 보고 동그랗게 앉아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입이 안 떨어져 너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매번 눈물을 흘리며 무슨 마음을 나누었는지도 모르면서 스님 법문이 좋아 수업은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해 9월 남편에게 어렵게 허락을 구하고 결혼 이후 처음 홀로 4박 5일 <깨달음의 장1>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얼마나 고집 세고, 욕심 많고, 집착이 강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동그랗게 모여앉아 나누기를 했던 불교대학 시절
▲ 동그랗게 모여앉아 나누기를 했던 불교대학 시절

저로 인해 상처 입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돌쟁이 큰딸을 네 살 때까지 친정엄마에게 맡겼습니다. ‘그때 아이가 받았을 상처는 보지 못하고 독선으로 키워 사춘기 때부터 반항했구나, 결혼해서도 그 힘듦을 견디려 애썼구나’ 큰딸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구나! ' 그때부터 하염없이 참회의 눈물이 났습니다.

매일 새벽 다섯 시 기도를 하며 마음을 살폈습니다. ‘넘어지면 넘어진 줄 알고 다시 일어나라’라는 스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집착, 고집, 욕심 3종세트에 사로잡히기를 반복하는 업식 놀음에서 조금씩 벗어났습니다. 그렇게 복잡했던 마음이 차차 편안해지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향했던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 저를 보니 제가 편안하고 온 가족이 행복합니다.

불교대학 졸업식 봉사(오른쪽)
▲ 불교대학 졸업식 봉사(오른쪽)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 6년이 흘렀습니다. 불교대학 졸업 후 경전대학 학생이면서 불교대학담당으로서 첫 소임을 맡았습니다. 온라인 정토회에서는 경전대학 진행자, 불교대학 돕는이,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했습니다. 소임은 참으로 소중한 선물입니다. 학생 때 이해 못 했던 법문도 소임 맡아 반복해서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와 정말 잘했구나 싶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나누기는 그들을 이해하고 산 경험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작은딸은 불교대학을 졸업했고, 큰딸도 행복학교2에 다니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의정부에 있는 동생에게 행복학교를 권하고 있습니다. 작은 소원이 있다면 가까이 있는 남편, 자식, 형제자매가 부처님 법 만나 괴로움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통화와 글로 소통하며 주인공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주인공의 삶을 읽다 보니 점심시간마다 산책하며 마주치는 매화꽃 봉오리가 생각납니다. 3월 초 쌀쌀한 날씨에 작지만 예쁜 순백의 꽃잎을 매일매일 조금씩 피워가는 매화를 보며 그 꿋꿋함에 감탄했습니다. 꽃잎이 바람에 눈 오듯 떨어지면 가지에는 다시 푸른 잎이 힘차게 달릴 것입니다.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매화꽃 같은 아름다운 주인공의 이야기로 봄이 오는 소리를 전합니다.

글_김봉재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중울산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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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보살님의 수행담이 내얘기 같아 눈물로 공감합니다. 내고집 때문에 힘들었을 가족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고 진솔함에 감동입니다 강 사합니다

2022-04-22 06:00:35

혜당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될수 밖에 없었지만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랑과 그 추억이 있으셔서
그것이 밑거름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지금 행복하셔서 다행입니다..

2022-04-19 08:36:02

현광 변상용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버린 맏딸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도 안 가네요 ㅠ
그 책임감, 배려 등이 지금의 도반님을 만들어 주는 역할도 했을테니 세상사 모르는 게 맞네요.
열심히 사셨고 이젠 불법안에서 평온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꿋꿋한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2022-04-18 21: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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