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달서지회
부처님께 배웠습니다

“살면서 저도 모르게 잘못을 많이 합니다. 특히 목소리가 크고 화를 잘 냅니다. 가족들에게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잘 안됩니다. 그런 점을 고쳐볼까 해서 삼백배를 했는데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화가 줄어드니 남편은 제게 절에 자꾸 다니라고 합니다. 또 아들이 대학교 갈 때 복을 비는 마음으로 했던 기도가 아니라, 정신이 맑아질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아들을 군대 보내 놓고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제 백은 부처님입니다.”
오늘은 달서 지회에서 꾸준히 정진과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윤명란 님의 수행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평화운동, 왼쪽에서 두 번째 윤명란님
▲ 평화운동, 왼쪽에서 두 번째 윤명란님

‘스님의 하루’로 이어진 정토회와의 인연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중·고등학생 때는 기독교 학생회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때 불교는 미신 같았습니다. 절 단청과 사천왕 등도 있고 하니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혼 후 시어머니의 권유로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했으니 시어머니가 절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불교에 대해서 그냥 밀어내지 말고 좀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이 불교대학, 저 불교대학을 수료했습니다. 그렇게 불교와 인연 맺은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름 봉사도 하며 도반들과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제가 절에 열심히 다니고 있으니 성당 다니는 지인이 ‘스님의 하루’를 보내줬습니다. ‘어?’ 하고 눈이 뜨일 만큼 좋았습니다. 당시 동서와 사이가 나빴습니다. 저는 시부모에게 할 도리를 다하면서도 대접을 못 받는 것 같고, 동서와 시동생은 의무는 안 하고 받기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종갓집이라 1년에 제사를 12~13번을 지내는데 일찍 와서 돕지 않고, 오후 4~5시에 오니까 화가 많이 났습니다. 시어머니가 한마디 해주길 바랬지만 그러지 않으시니,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할 때 지인이 추천해준 우룡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걸 저에게 적용했습니다.

동서부부가 하는 짓이 너무나 미웠지만 늘 기도를 마칠 때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삼배씩 참회의 절을 했습니다. '세세생생 알게 모르게 지은 업 참회합니다.' 그렇게 3년을 하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저들과 나는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그렇다. 나는 유교식 교육을 받았고 그 사람은 핵가족만 접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마음 결정을 딱 하고 나서부터 제 마음이 너무 편했습니다. 그러니 상대도 바뀌었습니다. 정토회 오기 전에 이미 불법의 가피를 입고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하루’를 보니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주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도모례원에서 도반과. 오른쪽이 윤명란님
▲ 아도모례원에서 도반과. 오른쪽이 윤명란님

‘스님의 하루’를 매일 기다렸습니다. 지인이 보내 줄 때도 있고, 안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기다리며 궁금해 하다가 내가 직접 찾아봐야겠다 싶어서 법륜스님을 검색하게 되었고 정토회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2016년 초였습니다. 급한 성질 탓에 천천히 읽어보지 않고 〈깨달음의 장〉1 신청 자격조건을 불교대학 입학 자격조건으로 잘못 보았나 봅니다. 연령이 65세 미만이란 글자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58세였습니다. 이러다가 불교대학도 못 들어갈까 봐 부랴부랴 법당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 법당인 중리법당의 첫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중리법당에 누구보다 애착이 가고 행복했습니다. 법륜 스님은 쉽게 풀어서 하니 법문도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천일 회향일
▲ 천일 회향일

수행 대상, 둘째 아들

저의 수행 대상은 둘째 아들입니다. 큰아들은 잔소리를 싫어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바로 안 하고, 하고 싶어도 참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해야 합니다. 숨어서라도, 할아버지를 꾀어서라도, 엄마 주머니의 지갑을 훔쳐서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훔치면 표시라도 안 났으면 하는데, 늘 들통이 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과 많이 싸웠습니다. 제가 법륜스님을 일찍 만났다면, 둘째를 다르게 키웠을 것 같습니다. 아이마다 성격이 다른데 저는 똑같이 제 식대로 키웠습니다.

4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째에게 화풀이 했습니다. 사실 둘째 아이가 제일 만만했습니다. 큰아이는 시키는 대로 하니 말할 필요도 없었고, 작은 아이는 하지 말라 해도 하고 덤비었습니다.

한번은 둘째가 중학교 때, "냄새가 나니까 씻어라. 교복 벗어라." 하는데 교복을 안 벗는 겁니다. "내가 왜 엄마 말 들어야 하는데?" 하고요. 그럼 저는 "어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안 하냐"고 고함을 치며 책가방이고 뭐고 마구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도 고집이 세서 끝까지 교복을 벗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키우며 이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 같으면 그거 옷 안 벗는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네가 벗고 싶을때 벗어라 하고 놔둘 법도 한데, 제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화를 냈습니다. ‘당연히’ 하교 후에는 교복을 벗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맞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 보니까 그렇습니다.

업식의 변화가 이렇게도 어렵나요

초파일 봉사, 앞줄 왼쪽 첫 번째가 윤명란님
▲ 초파일 봉사, 앞줄 왼쪽 첫 번째가 윤명란님

정토회에 오기 전에도 꾸준히 참회 기도도 하고 불교 공부를 하며 나름 불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저의 못된 성질이 조금은 나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9년여간 시아버지 중풍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시할아버지도 눈이 안 보여서 또 뒷바라지했습니다. 시할아버지하고 많이 싸웠습니다. 시할아버지는 제 속을 많이 뒤집었습니다. 저는 ‘대꾸해서 죄송합니다.’ 하면서도 하고픈 말을 다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시할아버지는 저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못되게 말을 해도 틀린 건 없었다고요.

나중에는 시어머니까지 치매에 걸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렸으니 그것을 인정하고 어머니께 그냥 ‘네네’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었습니다. 요양보호사도 ‘네네’ 라고 해주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되는 겁니다. '어머니는 치매 환자다. 치매 환자다.' 하면서도 어머니를 안 볼 때는 괜찮다가도 어머니를 보면 화가 났습니다. 그럴 땐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화를 안 내는 게 아니라 화를 제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아도모례원에서 도반들과, 오른쪽이 윤명란님
▲ 아도모례원에서 도반들과, 오른쪽이 윤명란님

정토회에 들어와서야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를 알아차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업식을 바꿔보려고 정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자 바로 천일결사2 입재를 시작했고 천일을 기도했습니다. 다시 천일 결사 입재를 앞두고 화가 많은 성질을 고쳐봐야겠다 싶어 삼백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천일은 매일 삼백배를 하며 보냈습니다. 천일이 지나갈 무렵, 업식의 변화가 이렇게도 어렵나 하며 도반에게 하소연 했습니다. 스님은 천일만 하면 바뀐다고 하는데 기도를 엉터리로 하는지 변화가 없다고요. 다른 도반들의 수행담을 들어보면 나보다 늦게 들어왔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죽림정사에서 도반과 함께, 오른쪽이 윤명란님
▲ 죽림정사에서 도반과 함께, 오른쪽이 윤명란님

그 며칠 후, 치매 걸리신 시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화가 올라오려는 찰나 ‘억’ 하며 화가 아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때 ‘아!’ 나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어머니!’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어머니께 화를 내었을 텐데… 화를 알아차리자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이후로 그렇게 감당이 안 되던 화가 화나기 전에 알아차림이 가능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화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전에는 참는 게 많았는데 참는 것과 화를 알아차리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아들과 일을 같이 하면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화는 덜 납니다. 아들이 화를 낼 때면 말은 합니다. "엄마를 닮아서 너도 화를 많이 내는구나. 내 잘못이 제일 크지만 나는 이 나이에 고치려니까 힘이 드니, 너는 지금이라도 고쳐야 하지 않겠나. 엄마는 아직은 힘이 있는데 네가 고함을 지르니까 엄마도 서럽다. 그러니까 우리 편하다고 서로 고함지르지 말자. 우리 고치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안 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 대신 옛날만큼 잦지 않고 빨리 알아차립니다. 내가 넘어졌네 하고요. 그러면 바로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소임은 저에게 행운입니다.

아도모례원에서 도반과 함께, 맨 앞이 윤명란님
▲ 아도모례원에서 도반과 함께, 맨 앞이 윤명란님

당시 신생 법당이었던 중리법당에서 세 명이 주체가 되어 1인 3역을 하며 법당 일을 즐겁게 했습니다. 중리법당에서 불교대학을 다니며 법회 담당도 하고, JTS활동도 했습니다. 작은 법당이라 중복 소임이 당연했고 쓰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도반들과의 소통이 잘 되질 않아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세대 차이가 아닌가 하며 스스로 이해하려고 하며 잘 흘러갔습니다. 지나고 나니 힘든 것도 아닙니다. 즐거웠습니다. 경전반 담당도 3~4년 하였고 지금은 온라인 경전반 돕는이와 수행법회 그룹장을 하고 있습니다.

경전반 돕는이를 하면서 또 새롭게 경전을 만나고 있습니다. 스님이 언제 저런 말씀을 하셨지 하고 새롭게 들리는 것이 많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들어도 내 그릇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릅니다. 온라인의 좋은 점이 뭐냐면 예전에는 놓쳤으면 들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매일 틀어놓고 이어폰 끼고 답을 하면서 듣고 또 듣고 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돕는이를 하고 싶어도 컴퓨터를 못 해서 못했는데 작년에 배워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 온 것이 저에게는 너무 좋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온 것들이 나쁘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이전의 경험들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저를 나아가게 해주었습니다.

예전에는 제 목표가 65세까지 일을 하고 그 이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봉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65세면은 나이가 매우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설 쇠면 65세입니다. 이 나이에 이렇게 잘 쓰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온라인으로 바뀌고 나서 부족한 것은 열심히 배우고, 나이가 있으니 좀 더 시간을 내어 노력하려고 합니다. 제 능력 될 때까지는 정토회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사회 돌아가는 것을 알게 해준, 내 눈을 뜨게 해준 활동을 계속해서 할 것입니다. 소임을 하며 제가 더욱 자란 것을 느낍니다. 도반들과 함께 행복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전법하며 모두가 행복한 수행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도모례원에서, 왼쪽에서 두번째가 윤명란님
▲ 아도모례원에서, 왼쪽에서 두번째가 윤명란님


인터뷰 하는 동안 윤명란 님의 가볍고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시어른들을 모시면서도 꾸준히 정진하고 봉사해오신 윤명란님의 모습이 강인하게 느껴졌습니다. 빼곡한 봉사 일정 속에서도 신나게 활동하시는 윤명란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날씨가 추워 몸도 마음도 쉽게 움츠려들었는데 윤명란님을 만나니 저도 덩달아 힘이 났습니다.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글_김국화(대구경북지부 달서지회)
편집_한숙(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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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윤명란님, 존경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리포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2-08-21 13:11:48

박별빛

공감이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봉사 하시며 행복해 하시는 사진속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내요^^
감사합니다.

2022-08-19 10:27:46

채정희

예전 송현법당에서 처음 뵐 때부터 허물없이 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잘 물든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선배님의 뒤를 따라 잘 물들어 가고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2022-02-23 08: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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