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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진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가정 분위기는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웠고 그 속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그림 공부를 하며 지냈습니다. 저는 목표 의식이 분명해 하나를 이루고자 하면 끝까지 하는 성격입니다. 전업 주부였지만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해 직장 다니듯이 열심히 바쁘게 살았습니다. 다양한 미술 활동을 비롯하여, 무에타이, 클라이밍, 필라테스, 커피 바리스타, 장구, 글쓰기 등을 배웠습니다. 이런 저의 배움들이 법당 활동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림 재능이《법구경》을 그림으로 풀어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글을 썼던 경험은 온라인 발대식 발원문을 작성하는 데도 쓰였습니다. 제 삶의 경험이 그대로 전법 활동과 정토회 봉사에 고스란히 녹아 들고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곳 마다 저의 재능이 잘 쓰이고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한 때 치맛바람을 날리는 대치동 엄마였습니다. 남편과 아들 주변을 헬리콥터처럼 늘상 맴돌면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참견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간섭하며 제 방식대로 하려했고,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아들이 영어를 배우면 학습에 도움이 될까 싶어 저도 함께 영어를 배웠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엄마의 요구에 불평 없이 잘 따랐습니다. 공부, 그림, 운동, 뭐든지 잘했습니다.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해서 연예인 섭외를 받기도 했습니다.
엄마를 잘 따르는 듯 했지만 아들은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6살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날 낳았지만 난 엄마 것이 아니야!”'
아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저는 아들에게 제 삶의 목표를 두고 아들을 통해서 저의 꿈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은 고3 첫 시험에 일등을 한 후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방 문은 그의 마음과 함께 굳게 닫혀 버렸습니다. 닫혀진 방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어제까지도 멀쩡하게 자기 생활을 잘 하던 아이가 갑자기 말없이 방문을 닫았기 때문에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는 아들과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서로 길이 엇갈렸습니다. 아들은 전화도 해주지 않고 그냥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화가 잔뜩 났습니다. “길이 엇갈렸으면 전화를 해 줘야 할 거 아냐?”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들은 아무 말도 없이 제가 연습 중이던 우쿨렐레를 발로 툭 찼습니다. 그 발길질에 저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 올라갔습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너 같은 자식 못 키우겠다!, 당장 나가!”
아들의 물건을 밖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았지만, 저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울었습니다.
저는 하루 하루가 가슴이 터질 듯이 괴로웠습니다. 평소 독서를 하면서 알게 된 법륜스님의 희망 편지에 눈이 갔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스님의 환한 웃음과 명쾌한 말씀들에 답답한 제 가슴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다시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불교대학에 오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 저는 2019년 가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학사 프로그램 중 ‘100일 수행 맛보기’를 했습니다. 엎드려 108배 절을 하니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정말 아들에게 집착하고 있었구나!’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성공을 위해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구나!’
‘아들이 참 힘들었겠다!’
참회의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정토회는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저의 평생 직장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매달 월급을 받습니다. 월급은 저의 마음 통장에 가득 채워지는 행복입니다. 매일 축적되는 보너스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행자로 자신을 알아차림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정토회에서 저의 주된 업무는 지회 지원입니다. 그리고 교육연수, 경전대학 진행, 실천활동 총괄 등 매우 다양합니다. 저는 소임을 맡으며 이런 발원을 했습니다. '부처님 가시는 길에 자신의 옷과 머리칼로 흙탕물을 덮었던 선혜 동자와 25년간 부처님을 시봉했던 아난다 존자 같은 마음으로 봉사하리라.' 그래서 지회장을 비롯한 모둠장들, 그룹장들과 모든 회원이 불편함 없이 수행하고 활동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맞닿은 현실은 달랐습니다. 새롭게 편성된 경주지회는 대구 시지, 신매, 경산과 함께 지회를 이루면서 낯선 분들과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회 지원과 더불어 불교대학 담당까지 주어지니 불편한 마음이 자꾸만 올라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소임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활동 현장을 너무도 모르고 일을 하는 거 아닌가?‘ 저녁 시간에는 온라인으로 각종 회의와 교육, 그리고 법회로 가족들 얼굴조차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남편의 불만도 일소임이 늘어나는 만큼 커졌습니다 “방에서 안 나오고 컴퓨터 앞에만 있을 거면 왜 한 집에 같이 사는지 모르겠다, 방을 따로 내서 나가라!”
남편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책임 의식이 강한 저는 새로운 일이 주어지면 누구보다 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원리 원칙대로 일을 해야 하는데, 누군가 다른 방법이나 의견을 제시하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일이 많아 질수록 점점 부담감이 쌓여갔습니다.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니 언제나 내가 옳다라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너무 많아지니 저절로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잘하려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법사님과 간담회 때 제 상태를 점검받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 이후 제 자신의 모습이 살펴지고 온갖 분별심에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옳다는 오만한 생각이 내려놓아졌습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남편과의 갈등도 시간분배를 잘 해서 지혜롭게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지금 저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며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는 소임을 맡으면서 알게되었습니다. 모든 도반들과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지만, 서로 다르고 그런 다른 도반들을 통해서 배움과 겸손합을 얻었습니다. 제가 도반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 저의 노력과 정성은 내일의 자산이고 경험이 될 것입니다. 진리를 노래하며,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기에, 정토불교대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렙니다. 그 감사와 감동을 온라인 경전대학 발대식 발원문에 담았습니다.
인터뷰 내내 울면서 웃는 장보민 님의 감동적인 삶에 저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소임을 다 할 수 있나요?”라는 저의 질문에 “시간은 마음만 내면 만들어집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도 전법활동가가 되어 봉사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불법은 이렇게 수행자의 삶을 통해 이어지나 봅니다.
글_신정순 희망리포터(경주지회)
편집_박문구(서대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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