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용인지회
민다나오에 가실래요

남궁영임 님을 만나고 집으로 오는데 제 가슴에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남궁영임 님이 봉사 다녀왔던 필리핀 민다나오가 몇 걸음 걸으면 갈 수 있는 이웃집이 되었습니다. 저도 민다나오 사람들을 만나서, 덕지덕지 걸치고 있는 문명의 껍데기를 벗어 보고 싶었습니다.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는 남궁영임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민다나오 공동체 봉사자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
▲ 민다나오 공동체 봉사자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

가슴 뻥 뚫리는 말씀

2001년부터 집 가까이에 있는 절에서 금강경1을 공부했습니다. 4년여를 공부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도반이었던 권유경(현 선명법사) 님이 법륜스님 테이프로 공부하자 하여 2004년 4월에 서초법당에 가서 법륜스님의 금강경 테이프를 샀습니다. 스님의 금강경을 들으니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너무 좋아서 차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도 이어폰을 끼고 다녔습니다.

그해 11월 서초법당에서 반야심경2 가을 강좌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불교대학 공부를 하고, 이어서 2006년 경전반에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1기생입니다.

2006년에 인도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16박을 집 밖에서 자고 왔는데 놀랍게도 식구들이 멀쩡했습니다. 이전에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잔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순례 중에도 ‘식구들이 나 없이 잘 살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일 년간 정토회를 다니고 일어난 일입니다. 이때부터 날개 단 듯, 서초법당 지객으로 활동하고, <깨달음의 장3>과 <나눔의 장4> 돕는 이를 10번 정도 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지객으로 활동(오른쪽)
▲ 정토사회문화회관 지객으로 활동(오른쪽)

내 몸값은 0원이다

2016년 11월 19일에 필리핀 민다나오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지금 봉화수련원에 있는 이정자 님 내외분과 함께 사람도 경치도 푸르른 민다나오에 4개월 다녀왔습니다. 이미 한 번 다녀오신 이정자 님이 함께 가자고 제안하여 용기 내어 신청했습니다. 가기 전 ‘내 몸값은 0원이다’라는 서류를 보자 마음이 서늘해져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서명하고 나니 비장한 마음에 이어지는 깃털 같은 가벼움, ‘온전한 자유다!’,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한 힘이 솟았습니다. 그 힘은 지금도 저에게 유효합니다.

법륜스님은 2002년 라몬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한 후, 필리핀 대주교의 요청으로 수상금을 필리핀 민다나오 주민들을 위해 쓰기로 하였습니다. 민다나오는 반군들이 숨어들어와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학교가 멀어 갈 방법도 없고, 너무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학교 지어주기를 원했습니다. 학교 터를 닦고 짓는 것은 주민들이 하고, 정토회에서는 학교를 짓는 자재비용을 충당했습니다. 물을 뜨러 계곡까지 가야 했던 주민들을 위해 물탱크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집집마다 파이프를 깔아 수돗물처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민다나오 지역 학교 방문 (맨 위 왼쪽에서 다섯 번째)
▲ 민다나오 지역 학교 방문 (맨 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정토회 봉사자들은 모두 파란색 JTS조끼를 입고 일합니다. 이 옷은 반군이나 정부군이나 보호해 줄 대상이라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정토회 사람들은 양쪽 사람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민다나오는 지도에 전 지역이 새까만 색으로 칠해져 있는 특별여행경보 지역으로 필리핀 사람들도 여행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가보니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정토회 봉사자 다섯 명이 상주하고 있는데, 저는 이곳에 소소한 일상을 돕는 봉사를 하러 갔습니다. 마당과 화단에 풀을 뽑고 작은 텃밭을 가꾸고, 행사가 있을 때, 평소에 쓰지 않는 방들을 청소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에 감동하고 자연에 감동하고

아침에 일어나 적삼 챙겨 입으면 마음이 정돈됩니다. 그 마음으로 기도하고 소심경 읽으며 발우 공양하면 마음이 정갈하고 편안해집니다. 도반들과 함께 하는 공간의 깊고 고결한 기운이 참 좋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의자에서 넘어져 팔을 다쳤는데, 이때 안병주 국장님과 송치현 님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팔에 반깁스를 한 상태였지만 방에서 나름대로 기도했습니다. 공양도 환부에 좋은 식단으로 따로 식탁에 차려 주었지만 나름 발우공양에 참여했습니다. 한 달간 식단을 따로 차려 준 도반들의 배려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참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민다나오 주민들은 선하다는 표현을 넘어서 순수해 보였습니다. ‘바라는 것이 없고, 내 것이 없고, 내가 없는 삶, 이런 모습이 중생인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늘 푸르고 수놓은 듯 온갖 꽃들이 피어 있고, 저녁녘엔 날마다 멋진 노을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밤이 되면 큰 별들로 가득 찬 황홀한 하늘이 있고, 보름이 되면 달이 너무 커서 바로 코앞에 달이 있는 듯했습니다. 넉 달 동안 이렇게 사람에게 감동하고, 자연에게 감동하고 2017년 3월 29일에 돌아왔습니다.

민다나오를 가고 오는 길에 마닐라를 들르게 되는데, 마닐라에서 이원주 님 집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원주 님 덕분에 마닐라에서 64킬로미터 떨어진 곳 따가이따이 따알 화산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배도 타고, 말도 타고 가서, 산을 올랐습니다. 이 화산은 활화산이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 귀한 여행이었습니다.

민다나오를 못 잊은 저는 2020년 1월 13일, 장덕자 님, 이정자 님과 민다나오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2개월 머무르다 코로나 확산 직전인 3월 13일에 돌아왔습니다. 민다나오 사람도 보고 싶고, 민다나오 자연도 보고 싶고, 민다나오 옥수수와 바나나도 먹고 싶습니다. 그들의 선함으로 제 자신의 선함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장덕자 님과 함께 바나나 간식시간(오른쪽)
▲ 장덕자 님과 함께 바나나 간식시간(오른쪽)

말년의 길

나이와 상관없이 봉사도 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이 길이 말년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초법당에서 오는 손님들 법당안내와 홍보를 하고 때때로 공양을 돕거나 청소 등을 하는 ‘지객’으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새로 지어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년간 수요법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법회는 0순위입니다.

예전엔 남편과 싸움이 잦아서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늘 한숨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를 다니는 중, 어느새인가 한숨이 사라졌습니다. 불교대학 공부할 때, 스님 법문에서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자기의 안경을 쓰고 있다'라는 말이 와닿아 일상에 적용하려 애썼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다투고 있는데 저는 빨간색 안경을 쓰고 있고, 남편은 파란색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남편에 대한 제 말과 행동이 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의 말과 행동이 덩달아 순해졌습니다. 아마도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는 남편과 지금까지 함께 살지 못했을 게 틀림없습니다.

정토회를 다닌 지 10년이 지나니, ‘나를 봐달라’는 마음이 훅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누가 잘했다고 칭찬 안 해주나?’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분별할 줄 아는 지금의 이 모습은 불법 덕분입니다. 불법을 잘 깨치도록 이끌어 주신 스님 덕분이고, 게으름 부리지 않고 꾸준히 수행하게 힘을 준 도반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몇 달씩 집을 비워도 불평하지 않는 남편과 딸들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가족들의 순순한 동의가 있었기에 15년간 정토회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홀로서기 중

홀로서기 중인 남궁영임 님
▲ 홀로서기 중인 남궁영임 님

그동안 정토회와 함께 한 15여 년간 저의 삶은 날마다 행복했습니다. 일흔을 넘은 지금,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저는 서원행자5 옷을 벗었습니다. 일반회원이 되고 나니 소속감이 없어서인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것처럼, 앞이 캄캄하고 외롭고 아득했습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기를 3개월 즈음에 스님 말씀이 들렸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살 것이냐!”

이 말씀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했습니다. ‘맞다. 이것도 괜찮다!!’ 하나의 길이 막힌 듯 하더니 다른 길이 생겼습니다. 농사일이 온 것입니다. 농사일 봉사를 하다 보니 심고 싹트고 자라고 거두는 일이 경이롭습니다. 봉화수련원에 가서 들깨 농사도 한 달간 도왔습니다. 이제는 ‘홀로서기를 할 때다, 내 생 내가 책임져야지!’ 마음먹으니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남궁영임 님과 좁은 찻집에서 만나는 두어 시간은 너무 귀중했습니다. 마음 근력이 단단해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다나오에서 봉사했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부끄러웠습니다. 자잘한 일에 붉으락푸르락하기를 밥 먹듯 하는 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도 민다나오에 봉사활동 다녀와야 할까 봅니다.

글_장준분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 용인지회)
편집_허란희(강원경기동부 용인지회)


  1.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2. 반야심경대승경전의 하나 

  3.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4.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5. 서원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발심행자 3년 후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서원행자 자격이 주어짐.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짐.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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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

스님말씀도 영임회원님도 참 감사합니다 모두 오래오래 안녕하세요:)

2021-11-30 17:21:27

묘향심

'덕지덕지 걸치고 있는 문명의 껍데기를 벗어 보고 싶었습니다.'
민다나오 사진을 보니 맑은 물 같습니다.

2021-11-28 07:17:22

박신영

남궁영임님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나누기에 감동이 일어 눈물이 흐릅니다 . 필리핀 민다나오에서의 봉사활동을 생생하게 얘기해주셔서 직접간듯한 느낌입니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하고 봉사하는마음속에 자유로움이 가득합니다 . 감사합니다 도반님

2021-11-25 06: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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