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주지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기도

권현주 님에게 “기도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니, “기도는 하루를 건강하게 만드는 약과 같아요.”라고 대답합니다. 그 약이 아픔을 치료하는 약일까요? 건강을 유지하고 예방하는 보약일까요? 200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기도하는 권현주 님의 극진한 기도 예찬가를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정토행자가 되다

2002년 첫 아이가 세 살 때, 동생을 따라 문경수련원 천일결사1 입재식2에 갔습니다. 입재식이 뭔지도 모르고 놀러 가는 마음으로 따라갔습니다. 얼떨결에 천일결사에 입재하고 법륜스님이 직접 걸어주는 염주를 받았습니다. 입재식을 마치고 나오는데 툇마루에 앉아있던 스님이 제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고, 아이도 스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것이 저와 정토회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명상수련 중(오른쪽에서 첫번째)
▲ 명상수련 중(오른쪽에서 첫번째)

천일결사에 입재했지만, 기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이 소개해준 법륜스님의 금강경3 책을 읽고 법문 테이프를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2008년,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면서부터 아침 기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기도

성장기의 저는 자신이 싫었고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이 불편했습니다.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엄마도, 아버지도 저를 안아주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집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고, 비가 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에게는 든든함을 주는 엄마가 되어주고, 아이들이 집을 제일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라고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성실하게 기도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자, 학원에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습니다. 그 불안감은 아이의 결정과 상관없이 제 마음에서 일어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대학생인 첫째 아이는 행복하다고 자주 말합니다. “엄마,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요.”라고 말하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서 사는 큰딸이 대견합니다.

딸과 함께 JTS 거리모금 활동 중
▲ 딸과 함께 JTS 거리모금 활동 중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도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공부합니다. 둘째는 제가 피곤해서 누워 있으면 자기가 아끼는 인형을 저의 품에 넣어줍니다. 몸을 뒤척이다가 손에 잡히는 보드라운 인형에게서 딸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둘째 아이가 공부하다가 나와서 슬그머니 저의 품에 안길 때도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에 “엄마 딸이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 둘째 딸은 곧장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저의 사랑에 화답해줍니다. 이렇게 저의 집은 따스함이 흐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저의 기도가 제 마음을 따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한 기도

20대 말에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살면서 의지하고 싶고, 투정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삼 형제의 막내인 남편은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남편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소를 키우며 삼 형제를 공부시킨 어머니를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남편이 자식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서 저에게는 사랑을 반만 주는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 제가 시어머니에게 잘하면 남편의 사랑이 오롯이 저에게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며 노력했습니다. 남편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시어머니에게 쏟던 사랑을 돌려서 저에게 주지는 않았습니다.

아침기도에 함께 하는 것들
▲ 아침기도에 함께 하는 것들

저는 시댁에 가면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한 번도 저에게 밥을 차려준 적이 없었습니다. 밥, 국, 반찬을 해서 상을 차리는 것은 당연히 며느리의 몫으로 여겼습니다. 한 번은 시댁에 가니, 시어머니가 추어탕을 끓여놨다며 먹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도 요리하시기는 하는구나!’라며 놀랐는데, 밥상에 추어탕은 한 그릇만 있었습니다. 남편 것만 있고 제 것은 없었습니다. 평소에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아들을 본능으로 챙기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기도를 하며 자신을 살피고 어머니와 남편의 입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남편은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 ‘뭐가 문젠데?’라고 묻지 않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제 마음을 다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했습니다. 또한, 남편을 빼앗긴다는 저의 마음보다 아들을 빼앗긴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기도문을 ‘어머님, 남편을 낳고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정하고 기도했습니다. 남편에게는 ‘못난 나랑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아기 같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줘서 고맙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점점 제 마음이 편해지면서 문제 삼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요즘은, 정토불교대학 홍보 시기가 되면 남편은 홍보물을 차에 붙이고 다닙니다. 본인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열심히 법을 전합니다. “우리 아내가 변했어요”라고 저의 변화를 얘기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합니다. 그런 남편 덕분에 서너 명 정도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가족과 함께(오른쪽에서 두번째)
▲ 가족과 함께(오른쪽에서 두번째)

제가 ‘나만 바라봐 줘!’라는 집착을 내려놓으니, 아내와 어머니의 줄다리기에서 힘들었을 남편은 아주 홀가분해 보입니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와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모든 걱정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아들의 마지막 인사를 다 듣고 시어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어머니를 보내는 마지막이 평화로울 수 있었고, 그 마지막을 제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저의 꾸준한 아침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위한 기도

자식을 끔찍하게 품어주었던 시어머니와 다르게 친정엄마는 냉정한 편이었습니다. 저는 엄마 품에 편안하게 안겨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래로 세 명의 동생들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서 도망갈까 봐 어린 저는 전전긍긍했습니다. 엄마가 외출할 때는 동생 기저귀를 챙기며 엄마를 도왔고, 아버지와 다투고 마음이 상한 엄마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정엄마는 제가 착한 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침 기도를 꾸준히 하면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시어머니와 남편과의 관계도 편안해졌지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을 외우며 제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침 기도 중
▲ 아침 기도 중

서서히 부모님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복자로 태어난 엄마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부족했던 사랑을 남편으로부터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또한 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돈 때문에 싸우는 것 같지만, 서로가 ‘나 좀 바라봐 줘!’라는 마음이 강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의 저는 부모님의 불편한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부모님의 감정에 이입되어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 전 제 생일날, 아버지가 저에게 전화해서 “현주야, 생일 축하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처음 들어보는 제 생일을 축하하는 아버지의 말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제 나이 오십 넘어서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꾸준한 기도를 통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선물처럼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도 확인했습니다.

나를 위한 기도

뒤돌아보니 참 성실하게 살았는데, 저는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잘한 것보다 모자란 것이 무엇인지 먼저 살폈습니다. 그런데, 아침 기도를 하면서 어느 순간 ‘이만하면 괜찮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받았던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라는 기도문의 참된 의미를 이제는 체험을 통해 압니다.

정토회에서 소임을 하면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반과 갈등이 생기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 스스로 묻고 대답합니다.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지? 괴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고 있는 것이지, 일을 잘하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자문자답하고 나면, 상대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을 수 있습니다. 천천히 가도, 때론 한참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남산순례 봉사 중
▲ 남산순례 봉사 중

저에게 기도는 글쓰기 같습니다. 기도문을 만들고, 그 기도문에 맞도록 꾹꾹 눌러서 글을 써 내려갑니다. 쓰다가 막히면 한숨 돌리고 다시 씁니다. “아침 기도가 수행평가라고 할 때, 현주 님의 수행평가 점수는 몇 점일까요?”라는 질문에 “100점 만점으로 하면 95점 정도요!”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저에게 주는 높은 점수에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나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내가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구나! 좋구나! 따뜻하구나!’ 기도할 수 있고, 나누기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합니다. 제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그 날까지, 오늘도 성실하게 글을 써 내려갑니다.


권현주 님은 자라면서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마음 따뜻한 남편을 만나서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정토회를 만나 꾸준히 기도하면서 주변인이었던 자신이 지금은 중심이 되었습니다. 꾸준한 기도 덕분에 주변인이었던 자신이 지금은 중심이 되어 산다는 말이 가슴 뭉클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는 권현주 님에게 ‘행복’이 더는 낯선 말이 아닙니다. 권현주 님의 기도 예찬 덕분에, 이른 아침 가볍게 몸을 일으킵니다. 권현주 님, 가까이에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경주지회)
편집_성지연(성남지회)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입재식 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3. 금강경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전체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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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옥

현주님, 기도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전해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2023-02-10 15:07:57

불린이

여차 하면 왈칵할 뻔 했습니다.

2022-06-08 19:33:01

권기숙

와아 감동입니다.~~멋찜 아침기도가 수행의평가 저를돌아보며 반성했습니다

2022-06-04 07: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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