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전주지회
정토회와 인연, 삼세번

TV로 만난 법륜스님의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은 불법을 배우고 싶다는 원을 세우고 군산 법당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위치가 어딘가요?”
”네~ 여기는 OO미용실입니다!"
“네? 미용실이요? 아, 알겠습니다...”

미용실이라는 응답에 당황해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법당이 미용실에 있는 그림은 주인공의 상상과 너무나 멀었고, 혹시 사이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정토법당에 나가고자 했던 마음은 바로 닫혀버렸습니다. 이렇게 정토회와의 첫 인연은 아쉽게 스쳐 지나가 버렸습니다.

정토회와의 두 번째 연은 놓치지 않고 붙잡았지만, 잠깐의 괴로움으로 다시 멀어집니다. 세 번째 연으로 수행, 보시, 봉사를 가볍게 해나가며 삶의 행복을 찾은 강동주 님의 삼세번(더도 덜도 없이 꼭 세 번)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제사보다 젯밥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갔던 절은 향기로운 향냄새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즐거운 놀이터였습니다. 매주 일요일에 부산에서 가장 큰 절인 범어사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법회를 다녔습니다. 주지 스님께서 법문도 해주셨지만 그 때는 어린나이라 알아듣지 못하고 지겨울 뿐이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외며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할까요? 이것이 저와 불교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놀이터와 같던 범어사 전경
▲ 어린 시절 놀이터와 같던 범어사 전경

우리집은 무척이나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정과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직 술과 친하게 지내고, 어머니는 화장품 하나도 사치라 여기며 평생 화장 한 번 하지 않고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거야.'라고 되새기며 굳건한 마음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제가 벌어서 대학등록금을 내고, 직장도 다녔습니다. 열심히 살기도 했지만,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사람은 왜 살까?’ 하는 회의를 가지며 깊은 나락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주말부부가 되어 깊어지는 마음의 골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5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달콤한 신혼 생활을 질투라도 한 듯, 남편은 군산으로 이동 보직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대기업을 다니고 있던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군산으로 갈 수 없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우리 형편에 아직 맞벌이를 해야한다는 핑계로 군산에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객지에서 생활하는 데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기 싫었습니다.

경전대학 진행중인 강동주 님
▲ 경전대학 진행중인 강동주 님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2년 동안 여러가지 일로 마찰이 생기고 시댁과의 갈등으로 골이 깊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매우 힘들다며, '우리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다. 이제 돈도 다 싫으니 군산에 올라와 함께 살자.' 하며 하소연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부산과 군산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비용이며 여러 가지 불편한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지역을 오가며 한참을 지내다 보니 마음의 문이 점점 열리며 결심했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 하며 2007년 낯선 군산이라는 도시로 와서 한 살림으로 살았습니다.

외로움에 끌려다니다

군산에 올라와서 계획대로 바로 아이를 가지며 그 해에 큰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역 생활은 너무 힘들고 외로웠습니다.특히나 첫아이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틈틈이 육아 서적을 챙겨 보며 저는 스스로 준비된 엄마라고 자만했지만, 책과 현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만 있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평소 저를 잘 챙겨주던 지인이 함께 교회 가기를 권유했습니다. 외로웠던 저는 집요하게 권유하는 그 사람을 거절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 저렇게 집요하게 권하는 데는 무언가가 있겠지'라며 막연하게 거부할 수 없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한편으로 아이에게도 친구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맨 오른쪽)
▲ 불교대학 졸업식(맨 오른쪽)

아이는 잘 적응하고 교회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일 년 가까이 교회를 다닐 때까지도 제 마음은 온전히 열리지 못하고, 설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때문에 사람에게 의지하며 끌려다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결국 저는 교회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외로운 타향살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법당이 미용실이라니

평소 '사람은 왜 살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TV채널을 돌리다 법륜스님이 하시는 말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질문이 잘못됐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에 순간, 제가 삶을 남에게 의지하며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주체적으로 삶을 살고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나락으로 떨어질 때마다 가졌던 의문이 드디어 해결되었습니다.

그 후 법륜스님의 법문과 즉문즉설을 찾아보며, ‘남은 인생은 불법을 제대로 공부해 보면서 살아 볼까?’라는 마음을 먹고 군산 법당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위치가 어딘가요?”
”네~ 여기는 OO미용실입니다!"
“네? 미용실이요? 아, 알겠습니다...”

순간 당황하여 전화를 끊고, ‘무슨 법당이 미용실에 있어. 이거 사이비 아냐!’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규모가 큰 절만 다녔기 때문인지 법당이 미용실에 있는 그림은 제 상상과 멀었기에 바로 마음을 닫아 버렸습니다. 상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JTS 홍보중인 강동주 님(가운데)
▲ JTS 홍보중인 강동주 님(가운데)

정토회와 두 번째 인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부산에 살고있는 친언니가 정토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70세가 넘은 고령의 아버지도 정토회를 다니며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고 수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느그 아버지, 요즘 술도 끊고 엄청 좋아지셨다.”

어머니의 한 마디에 가슴이 한 껏 뭉클해지며, 이번에 연이 닿은 정토회는 꼭 가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2017년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군산에 온 지 10년 만입니다. 외로움에 끌려다니며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닌 과거의 저를 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불교는 불법이 아니라 기복 종교였음도 알았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배운 불법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고, 제 삶의 방향을 확연하게 알게 해주었습니다.

삼세번의 마지막 연

경전대학에 올라가면서 불교대학 담당이라는 소임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내 꼬라지'를 보았습니다. 법당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도 다니는데 정토회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수행의 관점보다 책임감으로 소임에 임했던 저는 금번 불교대학 학생들을 졸업시키고 소임을 내려놓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도 성지순례도 다녀오고 정토회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다 얻으며 쉽게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경전대학을 졸업하면서 소임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싶어 정토회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해방감으로 마냥 좋을 줄 알았던 생활은 다시 정토회를 다니기 전 괴로웠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사춘기 아들하고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마음이 편하질 못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첫 줄 맨 왼쪽 강동주 님)
▲ 천일결사 입재식(첫 줄 맨 왼쪽 강동주 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온라인정토회로 전환되는 시점에 법당 총무 소임을 맡은 동기 도반이 저의 끈을 놓지 않고 군산 법당 행복학교 담당을 맡아줄 것을 권유했습니다. 저에게는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컴퓨터 사용에 부담이 없던 저는 흔쾌히 소임을 맡았습니다. 화상으로 진행하는 행복학교와 온라인 법당은 또 다른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논두렁이 절

그간 법을 멀리하며 떨어져 지낸 6개월이 시간 낭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삶에서 행복을 찾고 제가 주체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불법의 도움이었고 지도법사님의 법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정토회와 떨어져 살 수는 없겠구나!’라고 마음에 깊게 새겼습니다.

지금은 군산 모둠장 역할을 다하며 가볍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암큰스님 말씀을 늘 새깁니다.

“여보게. 어떤 사람이 말이야. 논두렁에 앉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 논두렁이 절이라네. 이것이 불교야.”


전주지회 군산 모둠에서 수행, 보시, 봉사에 있어서 가장 큰 열정을 뿜어 내는 주인공, 항상 밝고 맑은 에너지 뿜어 내는 주인공, 주변을 온통 행복 에너지로 채워주는 주인공. 희망리포터 역시 긍정의 에너지를 듬뿍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더도 덜도 말고 항상 지금처럼 만큼 머물러 주기를 마음 다하여 합장 기원합니다.

글_김경호 희망리포터(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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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세번의 기회 꽉 잡은 손 도반되어 함께 가요 감동입니다

2022-04-11 14:55:18

박원섭

다시 읽어도 빠져드는 감동이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021-12-09 22:18:22

서영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지하는 어느 교회에서의 생각, 여러기회에도 아쉽게 불법을 만나지 못한 경험, 경전반 졸업 후 소임을 맡기까지 거리를 둔 시간을 낭비처럼 여겼던 생각, 행복한 삶을 위해선 정토회와 떨어져서는 살 수 없겠구나 하셨다는 강동주 회원님의 경험담을 읽으며 저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오래오래 안녕하세요:)

2021-12-04 16: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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