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한가위, 랜선을 타고 온 어머니

한가위 잘 지내셨는지요? 코로나19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벌써 옛이야기 같습니다. 늘 집에서 차례를 지냈는데 이번에는 정토회 온라인 합동 차례를 신청했습니다. 랜선을 타고 합동 차례에 다녀갔을 어머니가 “아야,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토회에서 정성껏 합동 차례를 해주니 참 고맙습니다. 랜선으로 다녀간 어머니에게 마음 깊이 차 한잔 올립니다.

정토회 추석 합동 차례
▲ 정토회 추석 합동 차례

이별한 지, 20년

제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20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8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8년밖에 같이 안 살았는데 무슨 정이 그렇게 들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에게 ‘정’도 ‘정’이지만 어머니 삶의 철학을 배운 것이 가장 고맙습니다.

제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혼자 되어서 6남매를 키웠습니다. 삶이 무척 고달프고, 억척같이 살았을텐데도 아들에 대한 집착이 없었습니다. 또 고생해서 키웠다고 자식들에게 알아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며느리인 저에게 지나온 삶을 담담하게 말할 뿐, 고생한 삶을 담아두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남을 지적하거나 험담하지 않았고, 늘 이웃에게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늘 지적하고 따지기 좋아하던 저는 그런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야무지지 못하니 '가난하게 사나?'라는 건방진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늘 시시비비를 가려야 직성이 풀리던 저와 달리 '괜찮다. 처음에는 다 실수한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가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제게 ‘네가 이건 틀렸고, 저건 잘못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내가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었나?’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조상님께 올리는 잔
▲ 조상님께 올리는 잔

돈 갚으라는 말 대신

그렇게 저는 어머니와 8년간 함께 살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지만 특히 두 가지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번은 퇴근하고 돌아온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그라요. 아직도 살기 어려워서 우짜요. 돈 있을 때 주시오. 어쩌것소. 힘내서 사소."
 

전화 내용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돈 있을 때 주시오’라니... 제 시댁이 얼마나 가난한데 남에게 돈을 꾸어주나? 이해 안 가는 통화였습니다. 당시 저희도 IMF때 시동생에게 빚보증을 서주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날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어디 돈이 나올 구석이라도 있으면 귀가 쫑끗했던 때였습니다.

“예전에 100만원을 빌려간 사람인데 아직도 어렵다고 안하냐?”

말을 들어보니 남에게 빌려준 그 100만원은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 일입니다. 어머니가 나이 육십이 넘도록 남의 식당에서 하루종일 허리도 못 펴고 일해서 번 돈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돈을 빌려 간 사람의 하소연에 돈 갚으라는 말 대신, 힘내서 살라는 격려로 전화를 끊은 것입니다.

"아니 어머니, 돈을 어떻게든 달라고 해야죠. 그렇게 전화를 끊으면 어떡해요. 그 분 전화번호는 아세요?"
"모르는디..."

"아이고, 답답해. 어머니는 돈을 빌려주고, 그 사람 전화번호도 모르면 어떡해요? 그 돈 어떻게 받을라구요?"

화가 나서 말하는 저를 어머니는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몰아부침에 씁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 눈빛.

"아야. 그 사람이 아직도 옹색해서 돈이 읎다 안하냐. 오죽 돈이 읎었으면 내 돈을 못갚것냐..."
 

어머니께 올리는 잔
▲ 어머니께 올리는 잔

그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것냐

저는 몽둥이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100만원은 그냥 돈 100만원이 아닙니다. 어머니 등을 반으로 굽게 만든 100만원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못 갚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오죽 돈이 없으면 내 돈을 못갚것냐.'라는 말로 상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뇌에서 거르지 않고 말이 팍팍 튀어나오는 저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고, 저도 ‘생각’이란 걸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사고방식은 그동안 제가 배우고, 살았던 상식에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의 돈을 빌리면 당연히 꼭 갚아야 하고, 또 빌려준 돈 역시 꼭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경우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제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세상 일이라는 것이 때에 따라 내 생각대로 안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머니
▲ 어머니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5개월간 병간호를 했습니다. 그 5개월은 8년간 제 밥을 차려준 어머니에게 사랑을 되돌려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가게 일에, 집안일에, 힘들었지만 어머니 대소변을 치우면서 인상 한번 쓰지 않았습니다. 성깔 있는 제가 어머니 병간호를 군말 없이 할 수 있었던 건, 다 어머니가 제게 베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살면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만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할때, 어머니가 한 말을 떠올립니다.

'그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것냐'

밥이 목에 넘어 가드냐

또 한 번의 일은 어머니가 흑산도에 사는 동생을 보러 일주일간 집을 비웠을 때였습니다. 저는 어머니도 없으니 편했습니다. 퇴근하고 예전 활동하던 단체에 가서 일 보고 늦게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바쁘고, 신난 일주일이 가고 어머니가 왔습니다. 퇴근하고 들어온 제 저녁을 챙기며 어머니는 빙긋이 물었습니다.

"아야. 꽃에 물 안줬냐..."
"헉? 까먹었다."

"아야... 너 그동안 밥은 먹었냐."
"그럼요, 먹었죠."

"밥이 목에 넘어 가드냐..."

어머니 질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밥이 목에 넘어가드냐' 어떻게 한 집에 같이 사는 생명이 밥을 굶는데 어찌 너만 밥을 잘 먹을 수 있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저는 제 몸에 밥 주는 것만 신경 썼습니다. 집안에 꽃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무심했습니다. 정말 베란다 꽃이 바싹 탔습니다. 어머니가 그 꽃을 살리느라 엄청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내 화단에 핀 분꽃
▲ 내 화단에 핀 분꽃

정토회 불교대학을 다니며 부처님께서 비둘기를 살리시려고 당신의 온 몸을 던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어머니의 ‘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말한 생명의 이치는 하찮아 보이는 꽃이나 제 생명이나 다 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화단에 물 주는 것을 까먹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들리는 어머니의 '아야, 밥이 목에 넘어 가드냐?' 소리에 깜짝 놀라 물주러 갑니다.

괜찮다

말대답 잘하는 며느리, 따지기 좋아하는 며느리, 음식 배울 마음이 전혀 없는 며느리를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 것이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며느리가 보낸 랜선을 흔쾌히 타고 왔을 것입니다. 며느리가 좋다면 당신도 좋다고 할 울 어머니.

“아야... 괜찮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냐... 괜찮다...”
 

어머니가 제게 해준 이 '괜찮다'라는 말을 오늘 여러분께 나누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 괜찮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글_편집_정토행자의 하루 편집팀

전체댓글 34

0/200

서영수

저희 어머니가 생각나 코끝이 찡하네요:)

2021-11-30 17:56:26

지심법

님의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1-10-14 21:17:01

최화심

보살님의 시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아계신 부처님을 뵙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부처님같은 시어머니를 모신 복 있는 분이시네요~~

2021-09-28 20: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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