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아들 단물은 이제 그만

오늘은 편집자 임명자님의 일상에서 깨어있기입니다. '수행의 꼬리를 겨우 잡고 그나마 다행이다'라며 스스로 위로하며 안주했습니다. 혼자 걷어 낼 수 있는 두꺼운 눈꺼풀이 씌워 있는지도 몰랐다는 임명자님의 깨어있기, 들어봅니다.

아들이 엄마네

하루의 시작은 늘 평범합니다. 아침 벨 소리에 반만 뜬 눈으로 일어납니다. 세면하러 갈 시간 없이 방석이 먼저 깔리고 습관처럼 밴드에 들어갑니다. 일에 지친 날은 잠깐 졸았을 뿐인데 사홍서원 음원을 듣기도 합니다. 때론 기도 시간을 놓치고 텅 빈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108배 하면서 정신 차리고 명상하면서 망상으로 빠지는 일상인데 오늘은 반쯤 돌린 염주가 멈춰있고 납작 엎드린 몸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뒤통수 갈기는 마음속 울림이 몸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아들 단물 그만큼 빨아 먹었으면 됐지, 얼마나 더 빨아 먹을 건데?’

하루 13시간 가게에 매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가게는 생각과 너무 달랐습니다. 모든 일이 서툴렀고 상황 상황이 두려웠습니다. 남편 반대를 무릎쓰고 무모하게 시작한 가게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입대를 기다리던 아들이 가게 일을 도왔습니다. 가게에만 묶여있던 아들은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현역 판정이 사회복무로 바뀌었습니다.

사회복무 기간 중 퇴근하면 가게로 달려오는 아들에게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이었습니다. 친구들 만나는 시간도 없이 엄마 가게만 지키면서도 수시로 지친 엄마 등을 토닥이거나 ‘사랑해 어무이’ 하며 위로했습니다. 그렇게 늘 엄마가 걱정된다던 아들이 복학했습니다. 비대면 수업과 대면 수업이 겹치는 수업 일정으로 대학근처 자취방을 구했으나 코로나 상황이 악화하여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했습니다.

눈꺼풀
▲ 눈꺼풀

"아들! 집으로 오지 그러니?"

"계약 기간 남았는데 아깝잖아요. 채우고 갈게요."

말은 계약 기간 채운다지만 아들 속내는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전화를 끊으려다 할 말이 더 있는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집에 한 번 갈게요. 자취집 문제로 의논 할 게 있어요."

"그래, 그거 말고 또 다른 일 있니?"

"아니 별일 없고 엄마도 보고 싶고... "

멋쩍은 듯 웃는 아들.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가 한두 가지씩 완성되어가는 부엌은 오랜만에 부산합니다. 퇴근한 남편 핀잔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습니다. 조금 늦은 저녁을 물린 아들은 다정하게 제 손을 잡으며...

"어무이 계약 기간이 끝나면 친구 집으로 짐을 옮길까 해요."

"아니! 집 놔두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저도 다 컸고, 부모 집에서 얹혀 사는 게 불편해요. 친구들은 졸업하고 취직해서 다들 독립했어요."

타지역에 취직한 친구가 혼자 살던 낡은 집을 아들이 관리해 주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더는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다 아는 사실을 엄마만 몰랐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은 독립시켜야 한다.' 머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가슴은 급체한 듯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아직 대학생이고 부모 지원이 필요한 시기라는 명분으로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취업하거나 결혼할 때 떠나 보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들 말이 다 맞는데... 그래도 아직은... 며칠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엎드린 방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 입장보다 내 이득만 챙긴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장 힘들 때 기댈 언덕이 되었고, 언제나 엄마 곁에서 즐거움을 줄줄 알았습니다. ‘아니요’ 한 번 하지 않던 아들이 제대로 한 방 날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옆에서 힘들다는 말을 삼키고 혼자 얼마나 속앓이했을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에게서 단물은 인제 그만 빨아 먹으라는 울림이 뒤통수를 갈기기 전까지는.

눈꺼풀 걷히다
▲ 눈꺼풀 걷히다

가게 하면서 수행의 꼬리를 겨우 붙잡고 있었습니다. 수행자 클럽에 남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자격 심사하면 항상 탈락이었습니다. 종일 힘든 노동과 이른 아침 수행의 병행이 버거워 흔들릴 때 도반이 있었습니다. 수행 과제와 수행 법회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개별 안내해 주었고, 불안한 수행의 끈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의지하며 겨우 이어온 수행의 길에서 무지한 눈꺼풀 하나 걷힙니다. 아직 걷히지 않은 꺼풀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두렵지 않습니다. 날마다 수행할 수 있는 클럽에서 누구보다 든든한 도반이 있고, 바른길을 안내하는 큰 스승님이 저에겐 있습니다.

글_편집_임명자/광주전라지부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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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

착한 아들을 두셔서 참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솔직한 이야기에 감사합니다:)

2021-11-30 18:03:01

지심법

보살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

2021-10-14 21:27:45

보산등

참 든든한 아드님을 잘 키우셨네요. 축하드립니다~

2021-10-03 05: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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